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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08화 (106/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08화

최수빈은 태화의 말이 뜬금없이 들렸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얼굴에 피부 트러블 생긴 여주로 대중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려면 잠을 제때 자야지. 안 그래?”

태화의 말에 최수빈은 순간 빵하고 터졌다.

-하하하. 태화, 네 말이 맞는다. 그런 배우로 등장하면 안 되지.

“알았으면 빨리 자라.”

-고마워. 힘이 되어줘서.

“나도 고맙다.”

-뭐가 고마워?

“솔직히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수빈이 네가 캐스팅에 응해줘서 그런 거잖아. 네가 캐스팅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면 내일 촬영에 대한 설렘이나 긴장감은 아예 없는 거였어.”

최수빈은 태화의 말을 듣고서 뭔가 생각이 났다. 그건 자신의 존재감과 관련된 것이었다.

-네가 그랬잖아.

“뭘?”

-내가 캐스팅된 게 기적이라고.

“맞아. 그런 기적 같은 존재가 내일 촬영에 쫄면 안되는 거지. 안 그래?”

-그래. 기적 같은 존재가 그러면 안 되지. 너도 잠을 좀 자야지. 멍한 상태로 연출하면 안 되잖아.

“그래야지. 나도 금방 잘 거야.”

-잘자.

“그래. 너도”

태화는 최수빈과의 통화를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서 평상에서 일어섰다.

#.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의 시간. 촬영이 예정된 골목길 근처로 태화와 한재영, 이우섭과 김현석이 도착했다. 실제 촬영이 이루어지는 삼거리 골목길은 길이 좁아서 차를 주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교적 길 폭이 넓은 곳에 차를 대고 필요한 장비를 가지고 이동해야 한다.

태화와 일행이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 스태프가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스태프는 미술 소품팀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미술 소품팀은 한 팀이 다 담당한다. 미술 소품팀은 작은 탑차를 함께 몰고 왔는데 그 차량에 촬영에 필요한 소품과 인원 통제에 필요한 각종 도구가 실려 있었다.

미술 소품팀장 전윤석이 SUV 차량에서 내려 태화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감독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팀장님도 잘 지내셨죠?”

“한 피디한테 여주 캐스팅되었다는 말 듣고 놀랐습니다. 그렇게 빨리 캐스팅해 버리다뇨.”

“뭐, 운이 좋았죠. 팀장님. 한재영 피디한테 들었습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윤석은 면도를 며칠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지저분하기보다는 오히려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수염이 꽤 멋있게 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윤석이 태화의 말을 듣고서 활짝 웃었다. 그러자 얼굴엔 난 수염과 어우러지면서 호탕한 느낌이 났다.

“기왕 하기로 한 거 화끈하게 도와주는 게 낫죠. 감독님은 작품에만 신경 써요.”

“고맙습니다. 팀장님.”

태화의 시야에 이우섭과 김현석이 탑차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탑차에서 물건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우섭과 김현석의 행동은 태화가 지시한 게 아니었다.

이우섭과 김현석 두 사람의 판단으로 행동한 것이다. 태화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일을 찾아간다는 건 그만큼 두 사람의 실력이 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태화 군. 그동안 자네만 성장한 게 아니구먼.]

[그러니까요. 우섭이하고 현석이. 두 녀석도 성장했어요.]

[그렇네. 시련은 자네만 겪은 게 아니네. 저 두 사람도 자네와 함께 시련을 겪었네.]

[그래서 어렵게 얻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은 거고요.]

미술 소품팀에 도착한 팀은 사운드 팀이었다. 박지형 사운드 팀장과 그의 조수 조용우가 장비를 들고서 차에서 내렸다. 박지형은 여전히 긴 머리를 휘날렸는데 그 모습이 역시나 락커같았다. 두 사람이 태화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태화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박 팀장님. 그리고 조용우 님 반갑습니다.”

조용우는 차분한 성격답게 태화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태화에게 말을 건넨 건 박지형이었다.

“감독님. 잘 지내셨습니까?”

“네. 잘 지냈습니다.”

“그동안 고생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굴에 살이 좀 빠지신 거 같습니다.”

태화가 손으로 자신의 볼을 만지며 말했다.

“하하. 고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어쨌든 대단하십니다. 전 다시 촬영에 들어가는 건 힘들 거로 생각했었거든요.”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에 대한 믿음이 너무 약하셨던 거 아닙니까?”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때였다. 태화와 박지형의 대화를 듣던 전윤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운드 팀장님은 제가 안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바로 인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운드 팀장님은 머릿결이 참 좋은 거 같습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겁니까?”

“왜 갑자기 제 머릿결을?”

“저도 머리를 기르고 싶긴 한데 머리털이 돼지털이라.”

전윤석은 전부터 찰랑찰랑하게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이 말했듯이 머리카락이 돼지털이라 머리를 기르면 지저분해서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었다.

“지금도 괜찮으신데 왜?”

“그러니까 기르지 마라?”

전윤석이 살짝 삐친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진짜 삐친 게 아니라 장난이다.

“에휴.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기르고 싶으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있습니까?”

“네. 미용실에 자주 가서 관리받으세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결국 돈을 써야 한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전윤석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에이. 그냥 머리 기르는 거 포기하련다.”

“뭐. 지금도 잘 어울리시는데요.”

“자기는 머리 길렀다 이거지?”

“그렇죠. 뭐.”

전윤석과 박지형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태화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즐거웠다.

[태화 군. 즐겁지?]

[네. 이 맛에 현장, 현장 하나 봅니다.]

[그렇네. 개성 있는 스태프와 대화는 언제나 즐거우니 말일세.]

[그러니까요.]

전윤석과 박지형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 촬영 준비를 위해서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반가운 얼굴이 태화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의상팀장 하유정이다.

하유정이 차에서 내려 태화에게 다가왔다.

“의상팀장님 어서 오세요.”

“감독님. 반가워요.”

하유정은 요 며칠 가장 바쁘게 지낸 스태프 중 한 명이다. 배우가 바뀌면 그에 따라 의상 콘셉트도 다 바뀌어야 한다. 특히 비중이 큰 여주가 바뀐 상황이기에 하유정은 바쁠 수밖에 없었다.

실제 하유정은 최수빈이 옥탑에서 연기하는 기간에 실제로 옥탑으로 찾아왔었다. 하유정은 시간 관계상 의상을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었던 의상과 최수빈의 의상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의상을 선정했다. 태화도 하유정이 선정한 의상이 마음에 들었고 결정했다.

#.

하유정이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한철을 비롯한 촬영팀이 도착했다. 이한철과 함께 촬영 보조인 박주성도 차에서 내렸다. 태화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촬영 감독님. 어서 오십시오.”

“오늘 감독님 컨디션 좋아 보입니다.”

“당연히 좋아야죠.”

태화가 옆에 서 있는 박주성을 보며 말했다.

“주성 씨도 반갑습니다.”

“감독님. 잘 지내셨죠?”

“네. 저야 잘 지냈습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솔직히 오늘 촬영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대요?”

“네. 매직아워 시간대에 영화 촬영하는 건 저도 처음이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이한철과 박주성은 태화와 인사를 나누고 나서 카메라 세팅을 위해 자리를 떴다. 이한철은 카메라를 한재영에게 건네받았다.

스태프들이 거의 도착할 무렵 남주인 정원석이 현장으로 도착했다. 스태프들은 정원석을 보자마자 인사를 건넸다.

“정원석 님. 안녕하세요.”

“네. 잘 지내셨죠?”

스태프들은 정원석에게 인사를 건네며 동시 선혜영의 안부를 물었다. 정원석은 선혜영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 스태프들이 고마웠다. 정원석은 스태프와 인사를 나누다 어느새 태화 앞에 섰다. 태화가 먼저 정원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하루 잘 쉬셨습니까?”

“네. 아주 잘 보냈습니다.”

태화는 정원석의 얼굴을 잠시 살펴보았다. 그러자 정원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감독님. 왜 그러시죠?”

“얼굴에 뭐가 안 난 거 보니 잠을 잘 주무신 거 같습니다.”

태화가 정원석에게 보인 행동은 감독이라면 당연히 점검해야 할 사항이다. 배우의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기면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다.

“네. 잠 잘 잤습니다.”

정원석은 대답하고 나서 활짝 웃었다.

“좋군요. 감독님.”

태화는 정원석이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분주해서 좋은 거죠?”

“맞아요. 이런 분위기 그리웠습니다. 병원은 아무래도 차분한 분위기여야 하니까요.”

“앞으로 많이 분주할 겁니다.”

“그럼 저야 좋죠. 근데 몇 분은 안 보이는군요.”

“분장팀장님하고 최수빈 님이 아직 도착 안 했습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근처라고 연락이 왔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정원석은 최수빈이 촬영 기간 송윤주와 함께 차량으로 이동할 계획이란 걸 태화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태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수빈을 태운 송윤주의 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최수빈과 송윤주는 차에서 내려 스태프들과 인사했다. 특히 최수빈은 몇몇 스태프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처음 보는 상태였다. 이럴 땐 배우인 최수빈이 적극적으로 스태프들과 인사하고 안면을 트는 게 중요한데 최수빈은 그걸 비교적 잘하고 있었다.

최수빈은 모든 스태프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심수영 역할을 맡은 최수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반갑습니다.”

스태프들은 최수빈이 초면이지만 반응은 꽤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최수빈이 심수영 역을 빨리 맡아주기로 했고 그로 인해 작품이 엎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윤주와 최수빈이 인사를 하기 위해 태화와 정원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먼저 인사를 건넨 건 태화였다.

“두 분 어서 오십시오.”

최수반과 송윤주도 태화의 인사에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태화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최수빈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자 최수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감독님. 왜 그렇게 보세요?”

“얼굴에 뭐가 났는지 확인한 겁니다.”

“네?”

“얼굴에 뭐가 안 난 거 보니 잠은 잘 잔 것 같군요.”

“네. 아주 꿀잠을 잤습니다.”

송윤주는 태화와 최수빈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송윤주가 미소를 지은 건 태화와 최수빈의 관계가 왠지 심상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어제 둘이 통화를 한 거 같은데…. 재영이 반응도 그렇고. 역시. 뭔가 있구먼. 뭔가 있어.’

태화도 송윤주의 표정을 얼핏 보았다.

[태화 군. 재밌구먼.]

[뭐가 말입니까?]

[송윤주의 저 표정. 무슨 의미일 것 같나?]

[대충 감은 옵니다. 저하고 수빈이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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