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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05화 (103/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05화

정원석이 최수빈에게 손을 건넸다.

“최수빈 님. 앞으로 잘해봐요.”

최수빈은 정원석이 내민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정원석 님.”

최수빈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정도면 머리채 세게 잡히는 게 손해만은 아닌데요?”

최수빈의 말에 정원석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최수빈 님. 보통은 아니시군요.”

“보통이 아니어야 여주를 하는 거 아닌가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태화는 정원석과 최수빈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시름 놓았다.

[태화 군. 잘 넘어갔네.]

[네. 정말 다행입니다. 솔직히 오늘 좀 걱정됐었거든요.]

[자네의 걱정이 뭔지 알고 있네. 여주가 최수빈으로 바뀌고 나서 정원석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잖은가? 첫 대면에서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느끼면 앞으로 촬영할 때 문제가 될 수 있었네.]

[그렇습니다. 생각보다도 두 배우 간 첫 대면이 잘 이뤄져서 다행이었습니다.]

[오늘 이러한 결과가 정원석과 최수빈의 성격이 맞아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닐세. 그건 자네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일세. 즉 자네가 만든 판에 정원석과 최수빈이 녹아 들어온 것일 뿐이네.]

태화가 이한철과 송유주를 비롯한 스태프에게 정원석 앞에서 최수빈에게 거리감을 두게 한 것, 그리고 정원석이 다소 과하게 최수빈의 머리채를 잡았을 때 개입한 것은 태화가 만들어낸 판이기도 했다.

태화가 정원석과 최수빈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죠. 오늘 두 사람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

정원석과 태화는 옥탑방을 나와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원석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감독님. 오늘 제가 호사를 누리는군요.”

“네?”

“감독님이 직접 이렇게 배웅을 다 해주고 말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정원석 님은 우리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연기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고맙죠. 하지만 내일부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혹시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부담이 되는 겁니까?”

태화가 이렇게 말한 건 정원석의 진의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럼. 뭡니까?”

“부담보다는 감독님의 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 진심이요?”

“아까 최수빈 님과 촬영 감독님, 그리고 분장팀장과 인사를 나눌 때 일부러 거리를 둔 거죠?”

태화는 정원석의 발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걸…….”

“처음엔 저도 그때 분위기가 어색하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최수빈 님이 살짝 당황하는 표정도 봤고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죠?”

“감독님하고 최수빈 님. 두 분이 옥탑 구석에서 얘기를 나눴잖아요.”

“네.”

“그 모습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두 분이 꽤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라는 걸.”

“그랬군요. 별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전 다만…….”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최수빈 님과 촬영 감독님 그리고 분장팀장도 서로 잘 아는 사이 같은데……. 그렇게 잘 알던 사이인데 왜 내 앞에서 일부러 거리감을 두게 했을까? 그리고 결론을 내렸죠.”

“…….”

“제가 소외감을 느낄까 봐 그런 거 아닙니까?”

“네. 제 딴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선혜영 님이 없는 상황에서 정원석 님이 느낄 소외감이 클 거로 판단했었습니다. 그래서 촬영 감독님과 분장팀장님께 수빈이와 거리를 두게 했습니다.”

태화는 정원석에게 최수빈 님이 아니라 수빈이라고 호칭했다. 이미 상대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거리감을 둔 호칭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수빈 님은 그 사실을 몰랐죠. 아까 옥탑 구석에서 두 분이 대화하는 분위기를 보니 최수빈 님이 감독님을 추궁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수빈이까지 그 사실을 알고 행동하면 정원석 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었습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짜고 하는 거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감독님의 의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전 감독님의 배려라고 느꼈으니까요. 감독님의 진심도 느꼈고요.”

태화와 정원석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원석이 태화에게 말했다.

“오늘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습니다.”

“그랬다니 다행입니다.”

“솔직히 혜영이 저렇게 되고 나서 마음을 잡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소중한 사람이 그렇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다시 감독님 만나고 마음을 다잡게 됐어요. 감독님은 저를 배려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제가 정신 안 차리면 안 되겠더라고요. 게다가 최수빈 님도 괜찮은 연기자 같고요.”

“네. 수빈이 괜찮은 연기자입니다.”

“근데 궁금하긴 하군요. 캐스팅에서 한번 떨어지면 보통 감정이 좋지 않은데……. 최수빈 님 자존심도 세 보이고…….”

“수빈이가 자존심이 좀 세죠.”

“도대체 어떻게 최수빈 님을 캐스팅한 겁니까?”

“뭐. 가서 해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하하. 그랬습니까? 감독님이 여배우한테 그렇게 떼를 썼다면 거절하기 힘들지요. 제가 만약 최수빈 님이었다면 감독님이 애교를 부려도 받아줬을 겁니다.”

태화는 정원석이 애교라는 말을 하자 순간 뜨끔했다.

“아. 애교요?”

“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정말로 애교라도 부린 겁니까?”

태화는 순간 당황스러우면서도 정원석의 촉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화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 그렇죠.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잠시 후 정류장으로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정원석이 마을버스에 타며 인사를 건넸다.

“감독님. 그만 가 보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

“네.”

정원석이 탄 마을버스가 부르릉 엔진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태화는 마을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몸을 돌렸다.

태화가 옥탑방으로 발길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태화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태화가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다. 바로 송윤주였다.

태화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누나.”

-태화야. 나 퇴근한다.

“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수빈이도 같이 퇴근해. 괜찮지?

“네. 오늘 수빈이도 고생 많이 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그 말은 나중에 전해줄게.

“같이 있다면서요?”

-지금 곯아떨어졌어. 많이 피곤했나 봐.

최수빈은 송윤주의 차 뒷좌석에서 자고 있었다. 송윤주의 옆에는 이한철이 앉아 있었다.

“그렇군요. 많이 피곤했을 거예요. 누나가 집까지 잘 바래다주세요.”

태화의 말에 송윤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태화야. 지금 수빈이 챙기는 거야?

“뭐. 고생한 건 고생한 거니까요.”

-어쨌든 오늘 태화, 네 얼굴 보니 좋았다.

“저도 누나 얼굴 봐서 좋았어요. 한철이 형도 그렇고요.”

-그래. 너도 쉬어라. 피곤할 텐데.

“네. 그럴게요.”

태화는 송윤주와의 통화를 끝내고 한재영의 옥탑방으로 향했다. 태화는 평온한 마음으로 옥탑방으로 향했지만 송윤주의 차는 방금 통화로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오빠. 태화 있잖아. 수빈이한테 관심이 있는 거 아닐까?”

“뭔 소리야? 오늘 피곤했다잖아.”

“아니. 그렇지 않아. 오빠하고 나 처음 사귈 때 기억 안 나? 그때 오빠가 나 피곤하지 않냐고 하면서 챙겨주고 그랬잖아.”

“뭐. 그랬지.”

이한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윤주 네 말은 이게 다 관심의 시작이다?”

“그렇지. 솔직히 태화가 언제 수빈이 챙기고 그랬어?”

“그래도 너무 앞서서 생각하지 말자. 오늘 정말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태화는 감독이고……. 그래서 수빈이를 여주로서 챙기는 건 당연하잖아.”

“물론 오빠 말도 맞아. 그런데 그 관계가 서태화와 최수빈이란 말이야. 절대 말도 섞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송윤주의 말을 들은 이한철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하긴 아까 나도 연기하는 거 촬영하는데 느낌이 좀 묘하더라고.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지?”

“윤주야. 그래도 너 함부로 말하지 마라. 자금 아주 중요한 시기야. 영화 촬영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바로 코 앞이고.”

“알아. 나도.”

송윤주는 룸미러로 뒷좌석에서 자는 최수빈의 모습을 슬쩍 보며 말했다.

“수빈이 저거.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있었네.”

#.

며칠간 정원석과 최수빈이 연기를 맞춰보는 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사이 특별한 일은 선혜영이 병원에서 퇴원한 일이었다. 태화도 선혜영이 퇴원하는 날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여건상 갈 수 없었다. 어쨌든 정원석은 선혜영을 퇴원시키고 나서 연기 연습을 하기 위해서 바로 한재영의 옥탑으로 출근했었다.

정원석과 최수빈. 두 주연 배우의 연기에 관한 집중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태화는 두 사람의 연기에 만족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두 사람에게 주지시켰다.

“정원석 님. 그리고 최수빈 님. 중요한 건 실전입니다. 두 사람의 연기 컨디션을 모레 있을 촬영 첫날에 맞춰서 끌어올려야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우 중 간혹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연기에 대해 과한 의욕이 앞선 나머지 체력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정원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은 쉬는 겁니까?”

“네.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태화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까지 연기 연습을 하면 절 원망할 거 같아서요.”

최수빈이 태화의 발언에 대꾸했다.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 되겠네요.”

“최수빈 님은 그럴 수도 있겠군요.”

태화는 그동안 최수빈이 해왔던 지난 며칠을 회상해 보았다. 매일 아침 9시에 옥탑에 출근해서 저녁때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그동안 강행군을 해왔으니까요. 내일 하루 푹 쉬면서 체력 비축을 해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겠어요. 그럼 이제 퇴근해도 되는 건가요?”

“잠깐만요. 첫날 촬영에 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태화는 말을 마치고 나서 옥탑에 있는 다른 스태프들을 불렀다. 한재영과 이우섭, 김현석에 이한철과 송윤주가 태화가 있는 평상으로 모였다.

“여러분들을 여기 모이라고 한 건 촬영 스케줄 때문입니다.”

한재영이 태화에게 물었다.

“스케줄 변화가 많습니까?”

태화는 자신의 태블릿을 조작했다.

“좀 있습니다. 일단 촬영이 좀 까다로운 건 뒤로 돌렸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모레 있을 첫 촬영이니까.”

“그렇죠.”

첫 촬영이라는 말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화에게 향했다.

“내가 첫 촬영으로 고른 건 박성욱과 심수영이 퇴근하면서 골목에서 복권을 줍는 장면입니다.”

한재영이 살짝 놀라며 말했다.

“잠깐 만요. 그건 조명을 치고 촬영해야 하는 건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이 그나마 가장 무난한 장면이라서 고른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전 이 장면에서 조명을 치지 않을 겁니다.”

“네? 조명을 치지 않는다고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제가 이 장면을 고른 이유는 날씨 때문이기도 합니다.”

“날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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