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85화 (85/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85화

한편 최수빈은 태화의 생각처럼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언니는 또 전화를 안 받고. 내 문자도 씹고……. 이상하네.’

최수빈은 태화가 자신을 찾아온 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에잇! 정말 짜증 나네!”

최수빈은 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감쌌다.

“아. 진짜 뭐지? 뭐냐고!”

그때였다. 최수빈의 스마트폰에 문자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최수빈이 재빨리 자기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송윤주에게서 문자 메시지였다.

최수빈은 기대감에 송윤주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한철 오빠랑 지금 영화 보는 중이었거든.

최수빈은 송윤주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자신이 알고 싶었던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윤주 언니. 난 지금 언니가 극장에서 영화 보고 있는 걸 알고 싶은 게 아니라고. 태화가 왜 여기 왔는지 알고 싶은 거라고.”

최수빈은 스마트폰을 침대에 내려놓고서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었다.

‘태화가 날 찾아온 건……. 캐스팅 때문이야. 그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없어. 캐스팅이라…….’

하지만 최수빈은 태화가 자기를 여주로 캐스팅하러 온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수빈에게 흘러갈 수 있는 정보가 막혀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혹시 조연급 중에 펑크가 났나? 그래서 나를 캐스팅하러 왔다? 이건가?’

최수빈의 이런 추측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영화에서 조연급이 펑크가 나도 촬영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수빈은 자신의 추측을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뭔가 정보가 더 필요했다.

최수빈은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최수빈은 커튼을 살짝 젖히고 태화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태화와 한재영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가는 건가?’

하지만 최수빈의 이런 생각은 바로 잘못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차에서 내린 태화와 한재영은 자신들이 본래 탔었던 위치를 바꿔서 다시 차량에 탑승했다. 즉 태화가 운전석에 한재영이 보조석에 탑승한 상황이다.

‘뭐야? 가는 게 아니었어?’

#.

태화와 한재영은 식사를 마치고 차 안에 앉았다.

“재영아. 잘 먹었다.”

“암.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지. 안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는다.”

그때였다. 태화의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태화는 바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윤주 누나야. 방금 수빈이한테 문자 메시지 보냈대. 한철이 형이랑 지금 영화 보는 중이라 전화 못 받았다고.”

“크크크. 수빈이 지금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겠다.”

“그렇겠지. 자신이 알고 싶은 정보는 빠졌으니까.”

“일단 계획대로 진행되는 거네.”

“그렇지.”

한재영은 피곤했는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태화가 한재영에게 말했다.

“피곤하면 눈 좀 붙여.”

“그럴까?”

“그래. 내가 있으니까 넌 눈 좀 붙여. 혹시 모르니까 나하고 자리 좀 바꾸자. 혹시 누가 차 빼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 배려심이 남다르시네. 감독님?”

“내가 언제는 안 그랬냐?”

“오케이. 자리 바꾸자.”

태화와 한재영은 차에서 내린 후 자리를 바꿔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한재영은 조수석에 앉자마자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잘 자세를 취했다.

“그럼. 부탁한다.”

“그래. 잘 자라.”

태화는 의자를 살짝 젖히고 자기의 등을 기댔다.

[영감님. 수빈이가 어디까지 생각했을까요?]

[아마 내 생각에 자네가 이곳에 온 건 최수빈 자신을 캐스팅하러 온 거로 생각하고 있을 걸세.]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그 배역이 여주라는 건 모르겠죠.]

[그럴 걸세. 최수빈에게 가는 정보가 현재는 차단되어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수빈이에게 좀 잔인한 거 같기도 합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자업자득이기도 하네.]

[자업자득이요?]

[그렇네. 최수빈이 자네와 차분하게 대화에 응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걸세. 최수빈은 자네를 보자마자 감정이 폭발한 거지.]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좀 씁쓸하네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성으로 판단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네. 감정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네. 그래서 사람을 어리석은 존재라고도 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최수빈은 결국 자네를 만나러 오게 될 걸세.]

[저도 그렇게 될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감님은 오늘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습니까?]

[그렇네. 전에 난 내 작품을 들어가기 위해서 한 여배우를 캐스팅해야 했었네. 그래서 주연을 맡을 여배우를 만나기 위해서 한동안 매일 그녀의 집에 찾아갔었지. 그 여배우는 탑 클래스는 아니었지만 나름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배우였었네. 하지만 그녀는 날 전혀 만나주려 하지 않더군. 그래서 꾀를 부렸네.]

[어떻게요?]

[어느 날부터 난 그녀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네. 그리고 그 여배우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켰네. 그렇게 하고 며칠 후 그 여배우가 날 찾아오더군.]

[매일 찾아오던 사람이 찾아오지 않으니 궁금했던 모양이었군요.]

[그렇네. 난 그때 깨달았지. 호기심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

몇 시간 후.

최수빈은 침대에 누워서 벽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9시. 송윤주에게 문자 메시지가 온 지 3시간이 정도가 지난 후였다. 최수빈은 아직 태화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 결론을 못 내리고 있었다. 최수빈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윤주 언니한테 다시 전화해 볼까? 영화도 대충 끝날 시간이고.”

최수빈은 자기의 스마트폰을 집어서 송윤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여러 번 울리도록 송윤주는 최수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최수빈은 송윤주가 전화를 받지 않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니는 오늘 왜 이러는 거야?”

이제 슬슬 음성사서함 안내가 나올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최수빈은 음성사서함 안내를 듣기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갖다 대려 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최수빈은 반가움보다 의아했다.

목소리가 송윤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빈이니?

“한철 오빠?”

-그래. 나다.

이한철은 태화가 말한 대로 최수빈에게 걸려 온 전화를 송윤주 대신 받았다. 송윤주와 이한철은 여전히 카페에 있었다. 단골 카페였지만 몇 시간 자리를 차지하는 게 미안해서 현재 새로 먹을 걸 주문하고 버티는 중이었다.

이한철은 최수빈에게 전화가 오자 카페에서 가장 조용한 곳으로 송윤주와 이동했다. 이한철이 조용한 곳으로 이동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카페로 느낄 수 있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래 요즘 잘 지내고?

“네. 그런데 윤주 언니는요?”

-지금 전화 받기가 좀 그런데.

“네? 언니랑 통화 안 돼요?”

-지금은 좀 힘들 거 같다.

“왜요? 저 급해서 그런데….”

이한철이 순간 짜증이 나는 말투로 말했다.

-수빈아.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겠냐?

최수빈은 순간 현재 송윤주와 이한철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두 사람은 오늘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었어. 그리고 지금은 윤주 언니가 전화를 받기가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한철 오빠의 짜증을 내는 말투. 그렇다는 건….’

최수빈이 여기까지 생각하자 결론은 하나였다.

‘어머! 지금 내가 실수한 거야?’

최수빈은 순간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오빠. 미안해요. 이만 전화 끊을게요.”

-그래. 알았다.

최수빈은 재빨리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서 최수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수빈은 이한철과의 통화로 인해 송윤주에 대해 그나마 의심했던 부분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진짜 앞으로 한철 오빠를 어떻게 보지?”

#.

송윤주는 이한철이 최수빈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손바닥으로 이한철의 등을 때리며 말했다.

“어머. 미쳤어. 수빈이한테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떻게? 자기한테 다 맡겨두라며?”

“그럼. 다른 방법이 없잖아.”

“뭐?”

“지금처럼 물어보는 게 민망할 정도로 말하는 게 맞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수빈이가 집요하게 물어봤을 거라고. 그러는 사이에 뭔가 눈치를 챌 수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앞으로 수빈이를 어떻게 봐?”

“못 볼 건 또 뭐 있어? 너하고 나 사귀는 사이인 거 다 아는데. 우리가 무슨 죄지었어?”

“에이. 몰라.”

송윤주는 이한철에게 등을 돌리고 섰다. 이한철은 살짝 토라진 송윤주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이한철이 피식 웃으며 송윤주를 자신을 보도록 다시 돌려세웠다.

“윤주야. 괜찮아.”

“…….”

“너무 걱정하지 마.”

“누가 걱정한대? 쪽팔려서 그렇지.”

이한철이 송윤주의 손을 잡았다.

“윤주야. 쪽팔릴 게 뭐 있냐? 실제로 있었던 일도 아닌데. 이번 일 끝나고 수빈이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돼.”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지?”

“그럼. 그나저나 태화 이 자식.”

“왜?”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수빈이 캐스팅 못 하기만 해봐.”

#.

태화는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한재영을 보았다. 한재영은 잠을 잔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그때였다. 태화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태화는 한재영이 잠에서 깰까 봐 재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네. 한철이 형.”

-방금. 수빈이한테 전화 왔었다. 내가 윤주 대신 전화 받았고.

“네, 고마워요.”

-그런데 내가 수빈이한테 어떻게 말했는지 안 궁금하냐?

“아까 제가 말했던 대로 했으면 굳이 말 안 해도 돼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진전은 있어?

“아직 모르겠어요. 수빈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네요.”

-어쨌든 너 수빈이 꼭 데려와야 한다. 알았지?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화야. 내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이 말 한마디만 할게.

“하세요.”

-내가 너보다 영화 선배로서 말하자면……. 영화판은 버티는 놈이 무조건 이긴다. 이거 하나만 알아둬.

“알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하여튼 좋은 소식 기대하마.

“네. 형.”

태화가 이한철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한재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한테 전화…… 온 거야?”

한재영의 목소리는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자다가 얼떨결에 태화와 이한철의 통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태화는 한재영을 보았다. 한재영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이 녀석은 자면서도 전화를 듣네.”

“그럼. 내가 누군데. 쩝쩝.”

태화는 한재영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태화는 웃음이 잦아들자 답답함을 느꼈다.

‘차 안에서 이렇게 있는 것도 곤욕이네.’

태화는 차 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왔다. 태화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지개를 힘껏 켰다.

“으라차차!”

태화는 기지개를 켜고 나서 최수빈의 방을 바라보았다. 최수빈의 방 창문엔 커튼이 쳐져 있었고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태화는 한동안 커튼이 쳐진 최수빈의 방 창문을 쳐다보았다.

[영감님. 수빈이가 도대체 언제까지 버틸까요?]

[지금쯤 거의 한계에 도달했을 거네.]

[그럼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말이 얼마 남지 않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