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84화
최수빈이 송윤주에게 전화를 할 무렵. 송윤주는 이한철과 함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송윤주는 이한철과 태화와 전화 통화했던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건 이한철이 송윤주 자기의 연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한철은 입이 무거웠다.
이한철이 송윤주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태화가 수빈이에게 우리 쪽 상황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지?”
“응.”
“그럼. 그렇게 해. 나도 태화 생각과 같아. 수빈이가 지금 우리 쪽 상황을 알아봐야 좋을 게 없어.”
“근데 수빈이가 나중에 나한테 서운해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나까지 태화의 작전에 동참한 거잖아. 수빈이 속이고.”
이한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캐스팅이 우선이야. 너도 수빈이가 우리 영화에 참여하면 나쁘지 않잖아.”
“그렇긴 하지. 수빈이가 우리 영화에 참여하면 태화하고 사이도 좋아질 거고. 동기끼리 계속 으르렁대는 것도 좀 웃기잖아.”
“그러니까 좀 서운한 감정이야 나중에 풀면 돼. 게다가 수빈이가 다른 작품 오디션을 봤다며?”
“응.”
“그럼. 더욱 태화가 수빈이를 만나기 전까지 수빈이가 우리 쪽 상황을 알면 안 돼.”
“그렇게 되면 태화의 입지가 좁아져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지금은 여러모로 태화가 불리한 상황이야. 그런데 수빈이가 우리 쪽의 상황까지 알게 되면 태화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듣고 보니 그러네.”
“선혜영 님이 이 작품에서 아웃되고 그나마 수빈이가 대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수빈이가 할까?”
“그건 두고 봐야지. 현재로선 태화를 믿을 수밖에.”
송윤주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울렸다. 송윤주는 발신 번호를 확인하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수빈이야. 어떡하지? 전화 받을까?”
“내 생각엔 받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겠지?”
“응. 대화하다 보면 말이 어떻게 나갈지 모르니까.”
“알았어.”
송윤주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받지 않았다. 얼마간 벨 소리가 계속 울리다 멈춰다. 그리고 부재중 메시지가 송윤주의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떴다.
송윤주는 자기의 스마트폰을 들어서 바로 설정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이한철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벨 소리 묵음으로 바꾸려고.”
“뭐?”
“내가 수빈이는 잘 알아. 분명 수빈이는 한 번 더 전화할 거야.”
송윤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송윤주의 스마트폰의 액정에 발신 번호가 떴다. 송윤주가 피식 웃으며 자기의 스마트폰 화면을 이한철에게 보여주었다.
송윤주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발신 번호에 수빈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이거 봐. 맞지?”
“정말 그러네.”
잠시 후 최수빈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언니. 전화가 안 돼서 그러는데……. 태화가 여기 왔어요. 혹시 무슨 일로 여기 왔는지 아는 거 있어요?
송윤주는 이한철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이한철이 문자 메시지를 보고서 발언했다.
“윤주야. 태화한테 연락해 주는 게 좋겠다.”
“수빈이한테 연락이 왔다고 알려주라고?”
“그래. 태화한테 도움이 될 거야.”
“알았어.”
송윤주는 태화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
태화는 차 안에서 한재영이 편의점에서 사 온 먹을 거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재영은 편의점 도시락, 컵라면, 생수, 그리고 간식거리 등 푸짐하게 사 왔다. 태화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재영에게 말했다.
“야. 차에 전기포트가 있을 줄은 몰랐다. 네가 컵라면 사 오는 거 보고 뻘짓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영화 스태프로 일하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거 다 풀면 지금 캠핑도 가능하다.”
실제 한재영의 차 짐칸에는 물건이 꽤 실려 있었는데 이게 바로 한재영이 말한 캠핑 장비였다. 특히 외진 곳의 야외 촬영을 갈 때 요긴하게 쓰일 물품들이었다.
“크크크. 하여간 재영이 넌 난 놈이야.”
“그걸 이제 알았냐?”
“야. 차에 냄새 배겠다. 창문 좀 열자.”
“오케이.”
한재영은 차의 창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태화의 스마트폰의 벨이 울렸다. 태화는 자기의 스마트폰을 들어서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어. 윤주 누난데?”
“윤주 누나? 무슨 일이지?”
“아마도 수빈이 때문이지 않겠어?”
“그런가?”
태화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나. 어쩐 일이세요?”
-태화야. 지금 뭐 하고 있었어?
“수빈이 집 앞에 있습니다.”
-수빈이는 만났고?
“네. 만나기는 했는데 저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네요. 저한테 쌓인 게 많아서겠죠. 수빈이가 지금은 집에 들어가 있어요.”
-그랬구나. 그럼 넌 지금 수빈이 집 앞에서 죽치는 거야?
“네. 누나 근데 진짜 무슨 일이에요? 여기 상황을 알고 싶어서 전화한 거 같지는 않고.”
-실은 수빈이한테 방금 전화가 왔었어.
“수빈이한테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전화 받지 않았어.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요?”
-응.
태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태화가 보기에 송윤주의 행동이 나쁘지 않았다. 송윤주가 전화를 받지 않음으로써 최수빈에게 흘러갈 수 있는 정보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누나 잘했어요. 근데 그게 다예요?”
-실은 전화가 한 번 더 왔어. 내가 그것도 받지 않았고.
“네. 누나 잘했어요.”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수빈이가 문자를 보냈어.
“수빈이가 문자를 보냈다고요?”
-응. 메시지 읽어줄게. 언니. 전화가 안 돼서 그러는데……. 태화가 여기 왔어요. 혹시 무슨 일로 여기 왔는지 아는 거 있어요? 이렇게 왔어.
“누나. 잠깐만요.”
-왜?
태화는 본능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응. 알았어.
태화는 송윤주와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자 태화와 송윤주의 통화를 듣던 박도봉 감독이 태화에게 말을 걸었다.
[태화 군. 최수빈이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구먼.]
[그런 모양입니다. 문자 메시지까지 보낸 걸 보면.]
[이로써 자네에게 가능성이 좀 더 열렸네.]
[네. 수빈이가 궁금해할수록 저를 만나러 올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하네.]
[조심해야 한다고요?]
[최수빈이 궁금해하되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되네.]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의미죠?]
[최수빈이 자네와 송윤주가 뭔가 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네.]
[음. 영감님 말처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수빈이를 찾아온 시점과 윤주 누나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합쳐진다면 뭔가 의심할 구석이 나오겠네요. 저와 윤주 누나가 뭔가 작당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네.]
[그럼 현시점에서 중요한 건 수빈이가 가질 수 있는 의심의 고리를 끊어내는 거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네. 여기서 송윤주의 역할이 중요해졌네.]
[결국 윤주 누나가 수빈이에게 연락을 취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맞네.]
이 순간 한재영은 태화의 분위기를 살폈다. 한재영은 진즉에 태화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뭔가 생각하는 듯한 모습에 태화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한재영이 조심스럽게 태화에게 말을 걸었다.
“태화야.”
“왜?”
“어떻게 할 거야? 수빈이가 윤주 누나한테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다며?”
“아무래도 윤주 누나가 수빈이에게 연락하게 해야 할 것 같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수빈이가 궁금해하면 우리한테 유리한 거 아냐?”
“아니. 그렇지 않아. 수빈이가 궁금하게 하되 의심하게 하면 안 돼.”
“의심하게 하면 안 된다? 음……. 그러고 보니 타이밍이 공교롭기는 하다. 네가 여기 온 것과 윤주 누나가 수빈의 연락을 받지 않은 거.”
“그래서 윤주 누나가 수빈이한테 다시 연락을 취해야 해. 그래야 수빈이의 의심을 끊어낼 수 있어.”
“지금 바로 윤주 누나한테 연락할 거냐?”
“그래야지.”
태화는 송윤주와 통화를 시도했다. 송윤주도 태화의 전화를 기다렸는지 통화 연결음이 들리자마자 바로 받았다.
-그래. 태화야.
“네. 누나. 누나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내가 할 일?
“네. 누나가 수빈이한테 다시 연락을 해줘요.”
-나보고 수빈이한테 전화하라고?
“네. 누나가 다시 연락하지 않으면 수빈이가 의심할 수도 있어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다시 통화하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근데 무슨 문제 있어요?”
-혹시 통화하다가 쓸데없는 말을 할 거 같아서 그러지.
송윤주는 확실히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직접 통화하는 게 불편하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 돼요.”
-그래도 될까?
“네. 뭐 영화관에서 영화 보고 있어서 전화 못 받았다고 하세요.
-음. 그렇게만 보내도 될까?
“네.”
-근데 다시 연락이 올 수도 있잖아. 네가 나한테 주소를 물어본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전화 받지 마세요.”
-전화를 받지 말라고?
“네.”
그때였다. 태화는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네. 누나 혹시 한철이 형이랑 같이 있어요?”
-응.
태화는 송윤주의 선의를 믿고 있지만,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한철이 형이랑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
-알았어. 바꿔줄게
잠시 후 이한철이 전화를 받았다.
-태화야. 나다.
“한철이 형은 대충 어떤 흐름인지 알고 있죠?”
-윤주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
“혹시 수빈이가 다시 전화 연락을 하면 한철이 형이 대신 받아줘요.”
-내가?
“수빈이가 한철이 형한테는 자세한 건 안 물어볼 거잖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수빈이가 윤주만큼 나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형이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게 맞아요.”
-그래. 알았다. 핑계를 대더라도 영화와 관련해서 대면 안 되겠지?
태화는 이한철의 대답을 듣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한철이 형은 내공이 있어요.”
-그러냐?
“네. 형.”
-태화. 너 수빈이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 윤주나 나나 나중에 수빈이한테 욕먹을 각오 하고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까지 도와주는데 수빈이 못 데려오면 알지?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다. 윤주 다시 바꿔줄까?
“아뇨.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요.”
-알았다. 이만 전화 끊으마.
태화는 송윤주, 이한철과 통화를 마쳤다. 그러자마자 한재영이 태화에게 말을 걸었다.
“한철이 형도 참전하는 거야?”
“응. 그렇게 됐다.”
한재영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야. 이거 판이 재밌게 흘러가네. 처음 수빈이 태도를 보고 캐스팅하는 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한철이 형도 절실한 거야. 나도 그래서 한철이 형한테 부탁한 거고.”
“하긴. 한철이 형도 우리 영화가 촬영감독으로 입봉하는 작품이잖아. 솔직히 선혜영 님이 연기하다가 그런 사고가 날 줄 알았겠냐? 다시 생각해도 정말 어이없는 사고였잖아.”
“네 말이 맞아. 이제 수빈이가 캐스팅되지 않으면 자기의 입봉작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야. 한철이 형 처지에선.”
“어쨌든 한철이 형이 참전한다니까 든든하기는 하다. 그런데 수빈이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답답하겠지. 자기한테 들어오는 정보가 전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