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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62화 (62/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62화

전체 리허설 당일.

캐스팅된 연기자들에게 공지된 리허설 시간은 오전 9시다. 이 때문에 태화와 스태프는 ‘독립영화재단’으로 오전 7시에 모였다.

오늘은 기존의 인원 외에 촬영을 위해 이한철이 합류했다. 태화는 오늘 전체 리허설을 촬영하고 나서 따로 분석할 예정이다. 태화는 이 분석된 결과를 가지고 콘티를 최종적으로 결정지을 계획이다.

리허설 현장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분장과 의상을 담당할 스태프도 리허설 시간에 맞춰 도착할 예정이다. 분장과 의상은 연기자들이 작품의 캐릭터에 맞게 분장과 의상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임무다.

오늘 리허설은 연기자들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분장과 의상 스태프에게도 중요하다. 실제 연기자의 모습을 보고 분장과 의상 콘셉트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한철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오늘 리허설 하려면 공간을 좀 만들어야겠는데?”

“네. 책상하고 의자하고 다 빼죠.”

연기자들은 오늘 단순히 시나리오 리딩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연기를 펼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하다.

이한철은 카메라 가방을 한쪽 구석에 놓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러자 이한철의 두꺼운 팔뚝이 드러났다. 이한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또 있었네.”

“형은 최소한 두 명 이상입니다.”

이우섭과 김현석은 이한철의 팔뚝을 보며 한마디씩 했다. 먼저 이우섭이 말하고 김현석이 이어서 발언했다.

“와. 팔뚝 두께가 남다르시네요.”

“그러게요. 저희도 나름 체격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태화가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이거 말 나온 김에 우리끼리 팔뚝 두께나 한번 재볼까?”

이우섭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까요?”

“지금 자는 없으니까 수치로 재는 건 그렇고 그냥 눈대중으로 하자고.”

“네.”

태화와 이한철 그리고 이우섭과 김현석은 나란히 서서 각각 자신의 오른쪽 팔뚝을 갖다 대었다. 하지만 한재영은 이 팔뚝 두께를 재는 거엔 참여하지 않았다.

태화가 한재영을 보며 말했다.

“재영아. 너도 이리 와.”

한재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사양할게.”

“왜?”

“난 육체파가 아니거든.”

“그럼 뭐냐?”

“지성파.”

“뭐? 지성파? 풋…….”

“뭐야? 너 지금 비웃는 거냐?”

“아니. 비웃는 게 아니라…….”

“그럼?”

“그냥 웃음이 나오네.”

순간 한재영이 발끈하며 말했다.

“야. 그게 비웃는 거지.”

그냥 웃음이 나오는 건 태화만이 아니었다. 이한철과 이우섭, 그리고 김현석도 그냥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영아. 나도 그냥 웃음이 나온다.”

“한철이 형까지 왜 그래요?”

“어쩔 수 없다. 제어가 안 돼.”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한재영이 아니었다. 한재영의 뻔뻔함이 이어졌다.

“나에 대한 질투를 그렇게 표현하지 마. 이 육체파들아!”

한재영의 말에 네 사람은 순간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한편 한재영의 반응과 별개로 육체파(?)들은 팔뚝 두께를 재었다. 팔뚝 두께를 잰 결과는 이한철이 독보적인 일등이었고 태화와 이우섭 그리고 김현석은 눈대중으로 보기에 거의 차이기 나지 않았다. 물론 자를 사용해서 정밀하게 측정하면 얼마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우섭은 이 결과에 살짝 놀랐다.

“태화 형. 보기와는 다르게 팔뚝이 꽤 두껍네요.”

“그동안 꾸준히 운동해왔으니까. 자. 그럼 이제 리허설 준비하자.”

“네.”

태화와 스태프는 오늘 전체 리허설로 사용할 강의실의 책상과 의자를 전부 다른 강의실로 옮겼다. 이한철은 태화가 말했던 대로 두 명의 몫을 거뜬히 해냈다.

태화와 스태프가 책상과 의자를 옮기자 강의실엔 꽤 넓은 공간이 확보됐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 연기자들이 맨바닥에 앉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화와 나머지 스태프들은 준비해 온 종이 박스를 펼쳐서 강의실 바닥에 깔았다. 종이 박스를 바닥에 깔면 바닥의 냉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태화가 이한철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한철이 형. 어때요? 이 정도면 오늘 리허설 가능하겠죠?”

“그래. 이 정도면 큰 문제 없겠어.”

#.

먼저 오전 8시가 되자 분장과 의상을 맡은 송윤주와 하유정이 도착했다. 태화가 송윤주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누나. 어서 와요.”

“태화야. 고생 많았다. 이제 정말 크랭크인 얼마 안 남았네.”

“네.”

“태화야. 수빈이 일 고맙다.”

“뭘요. 제가 할 일을 한 건데요.”

“아냐. 네가 그래도 내 체면 세워준 거다. 네가 그렇게 안 해줬으면 아마 난 수빈이한테 고개도 못 들었을 거야.”

송윤주는 최수빈에게 감독이 태화인 걸 알면서도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보게 만든 사람이다. 만약 태화가 최수빈에게 성의 없게 행동했다면 송윤주로선 최수빈에게 체면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태화는 송윤주와 인사가 끝나자 의상을 맡은 하유정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유정은 단발머리에 귀여운 인상 그리고 태닝을 한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한번 보면 쉽게 잊혀질 인상이 아니다.

“하유정 님. 어서 오세요.”

하유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 잘 지내셨죠?”

태화는 하유정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보다시피. 나쁘지 않아요.”

송윤주와 하유정이 도착한 후 캐스팅된 배우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전에 오디션에서 노안의 연기자로 강하게 인상에 남았던 이재성은 탈락했다.

이재성은 노안이지만 실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역할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특히 이재성의 목소리는 중년의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젊었다.

반면 늦은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던 우한수는 합격해서 이곳에 도착했다. 태화가 우한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감독님. 나를 선택해 줘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선생님께선 당당하게 연기력으로 합격하신 겁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리허설이 다소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우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도 체력은 자신 있으니까.”

“혹시라도 힘드시면 말씀하십시오.”

“배려해 주어서 고마워요.”

리허설 장소에 도착한 연기자 중 가장 관심을 끈 건 역시 남녀 주연을 맡은 정원석과 선혜영이었다. 정원석과 선혜영은 함께 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정원석이 먼저 리허설 장소에 도착했다.

“정원석 님. 반갑습니다.”

“감독님. 저도 반갑습니다. 안 본 사이에 더 멋있어진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진짜 촬영장에서 사람들이 감독님을 배우로 착각하는 거 아닙니까?”

“전에도 말했듯이 정원석 님이 이 작품의 주연이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연은 잘 끝났습니까?”

정원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잘 끝났습니다.”

실제 정원석이 공연했던 연극은 객석 점유율이 평균 80% 정도로 흥행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태화가 미소를 지으며 정원석에게 말했다.

“오늘 많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각오는 돼 있죠?”

“하하. 각오는 하고 왔습니다.”

정원석은 태화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서 종이 박스가 깔린 곳으로 가 앉았다.

태화는 정원석에게 선혜영과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태화 군. 정원석은 나름 정무적 판단을 한 것일세.]

[저도 영감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겠죠. 그로 인해서 쓸데없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 정원석은 선혜영이 캐스팅되고 나서도 고맙다는 메시지 하나 저한테 보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원석은 자기 관리가 확실한 연기자네. 그 의견을 따라준 선혜영도 마찬가지고.]

[네.]

[어쩌면 자네 영화를 통해서 괜찮은 연기자 두 명이 대중에게 소개될 수도 있을 것 같네. 전에 가졌던 정원석에 관한 우려는 접어도 될 것 같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겁니다.]

[아주 좋은 태도일세.]

정원석이 도착하고 얼마 후 선혜영이 리허설 장소에 도착했다.

“선혜영 님. 반갑습니다.”

“감독님. 잘 지내셨죠?”

“네. 오늘 좀 힘들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오늘 여기 올 때 각오하고 왔습니다.”

선혜영은 태화와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나서 연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선혜영은 정원석의 바로 옆자리에 앉지 않고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원석과 선혜영의 관계를 알고 있는 한재영이 슬쩍 태화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두 사람 확실하네.”

“그렇지. 공과 사는 구분하겠다는 거지.”

#.

얼마 후, 태화는 연기자들이 모두 도착하자 어떻게 리허설을 진행할지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공지드렸다시피 오늘 리허설은 원 씬 원 커트 원칙에 따라서 진행될 겁니다. 좀 더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대사가 약간 틀리는 것 정도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오늘 리허설에서 중요한 건 디테일한 대사보다는 여러분이 원 씬 원 커트에 맞춰 연기를 펼치는 것입니다.”

가장 연장자인 우한수가 손을 들었다.

“우 선생님. 말씀하세요.”

“감독님. 원 씬 원 커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뭡니까? 내가 나이는 좀 있어도 연기경력이 짧아서 원 씬 원 커트로 진행된 작품 경험이 없습니다.”

“좋은 질문이십니다.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씬을 커트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 씬에 등장해야 할 캐릭터가 적절한 타이밍에 화면에 등장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기뿐 아니라 씬 전체의 흐름을 제대로 숙지해야 합니다.”

“음. 쉽지 않겠군요.”

태화가 대답을 이어갔다.

“네. 우 선생님 말씀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믿지 않았다면 원 씬 원 커트를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 선생님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질문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겠는데요?”

우한수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그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리허설을 통해서 여러분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게 될 겁니다. 또한 함께 연기하게 될 상대 연기자에 관해서 알게 될 거고요. 저는 이게 저나 여러분이 얻어갈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화는 연기자들과 한 명씩 눈을 맞췄다. 연기자들은 태화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터 배역을 맡으신 분들에 관한 소개가 있겠습니다. 호명된 분은 자리에서 잠깐 일어났다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남자 주인공인 박성욱 역할을 맡은 정원석 님.”

태화가 호명하자 박수 소리와 함께 정원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박성욱 역할을 맡은 정원석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원석의 인사가 끝나자 태화가 선혜영을 소개했다.

“그럼 다음은 여자 주인공인 심수영 역할을 맡은 선혜영 님입니다.”

태화의 호명에 선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심수영 역할을 맡은 선혜영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태화는 계속해서 배역 소개를 이어갔다.

“다음은…….”

태화는 연기자들의 소개를 마치자 스태프 소개로 진행을 이어갔다.

“연기자들의 소개는 이걸로 마치고 이제 스태프 소개로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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