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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61화 (61/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61화

“재영아! 잘 도망가라. 태화 눈빛 장난 아니더라!”

그 사이 태화와 한재영의 재밌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서태화! 그만 따라오라고!”

“사랑한다. 재영아!”

현장 스태프들이 즐거워 분위기와 반대로 박도봉 감독은 순간 차분해졌다.

‘잠깐만. 한재영이 조합장을 만나서 했던 행동들.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박도봉 감독은 과거 한재영이 태화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태화야. 너는 널 너무 몰라.”

“내가 날 모른다고?”

“그래. 넌 말이야 묘한 매력이 있는 녀석이야.”

“묘한 매력?”

“그냥 뭔가 해주고 싶어진달까?”

박도봉 감독은 태화의 매력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저 때는 태화 군의 매력이 가능성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 매력이 실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무릎을 꿇을 수 있게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잠시 후 태화와 한재영이 스태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한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 어디까지 간 거야?”

한재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기. 언덕이요.”

“꽤 먼 거리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태화 이 녀석 포기를 모르더라고요.”

태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도망가면 될 줄 알았냐? 나도 오기가 있다. 이거지.”

“이 집요한 녀석.”

태화와 한재영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다른 스태프들 사이에선 다시 웃음이 터졌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이한철이 태화와 한재영.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야. 너희 둘 부럽다.”

태화가 이한철에게 되물었다.

“부러워요?”

“그래. 너희 둘처럼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나기는 쉽지 않거든.”

“특히 감독과 프로듀서는 죽이 잘 맞아야 하죠.”

“그러니까.”

영화를 제작하는 데 커다란 두 개의 기둥은 감독과 프로듀서다. 이 두 사람이 죽이 잘 맞는다는 건 영화 제작과정에서 든든한 기둥이 받치고 있는 것과 같다.

태화가 이한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한철이 형.”

“왜?”

“형한테 할 말 있어요.”

“할 말? 중요한 일이야?”

“네. 촬영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

전날 저녁.

오디션으로 모든 배역에 관한 캐스팅이 완료되고 헌팅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태화는 머리가 아팠다. 바로 콘티 때문이었다.

[영감님의 조언이 맞아요. 콘티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야 해요.]

[그걸 알고 있어도 콘티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지?]

[그러네요. 뭔가 막히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막힌다는 건가?]

[이 시나리오의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역동성, 배신, 불안감, 긴박함. 그런 건데 그게 잘 살아나지 않는 느낌이에요.]

[그건 당연하네.]

[당연하다고요?]

[태화 군. 자네가 작업해 놓은 콘티는 큰 문제가 없네.]

[문제가 없다고요?]

[내가 볼 땐 오히려 자네의 콘티는 꽤 높은 수준일세. 커트를 나눈 것도 꽤 정교하네. 난 자네의 콘티를 보고 나서 뿌듯하기까지 했네.]

[그런데 왜 그럴까요? 뭐가 문제인 건가요?]

[자네는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어.]

[간과한 사실이요?]

[그렇네. 자넨 촬영 기법을 계산에 넣어두지 않았네.]

[촬영 기법이요?]

[그렇네. 촬영 기법은 중요하네. 촬영 기법에 따라 자네가 강조하고 싶은 정서를 더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네. 이 영화에 흐르는 역동성, 배신, 불안감, 긴박함. 이런 것들은 안정적인 촬영 기법으로는 얻기가 힘드네.]

일반적으로 영화 촬영은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 카메라를 삼각대 같은 지지대에 설치해서 촬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박도봉 감독은 이 일반적인 촬영 기법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영감님 말이 어떤 건지 알겠어요. 어설프게 많은 걸 취하기보다는 확실한 걸 하나 취해야겠어요.]

[이제 감을 잡았나?]

[네.]

#.

“한철이 형. 이번 촬영. 모든 장면에서 핸드헬드로 갑니다.”

“뭐? 핸드헬드?”

핸드헬드 기법은 카메라를 삼각대 같은 안정된 지지대에 거치하지 않고 손에 들고 찍는 기법을 말한다. 이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촬영이 가능하다.

“이유가 뭐냐?”

“이 작품에 흐르는 정서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흐르는 정서는 역동성, 배신, 불안감, 긴박함입니다.”

“그렇지.”

“안정적인 화면에선 이 정서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한철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핸드헬드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자칫 화면만 어지러울 수 있어.”

“대신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있죠. 어설픈 것보다는 낫잖아요.”

“확실하게 한가지는 얻는다. 좋아. 감독인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따라가야지.”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

“네.”

“뭔데?”

“롱 테이크입니다.”

태화의 발언에 이한철은 놀란 듯 말했다.

“너 혹시?”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모든 씬을 원 씬 원 커트로 갈 겁니다.”

이한철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화야. 너무 욕심이 과한 거 아니냐?”

영화는 짧은 쇼트를 연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처럼 커트로 나눌 때 장점은 관객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커트로 나뉠 때 관객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비해 롱 테이크는 쇼트를 끊어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관객은 정서적 흐름을 따라가는데,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롱 테이크는 자칫 관객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태화 군. 난 자네의 생각에 반대하네.]

[이유가 뭡니까?]

[핸드헬드에 롱 테이크라니.]

[영감님이 첫날 그런 말을 했었죠. 감독이 왜 특정 타이밍에 컷을 외치느냐고. 그리고 그 답은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걸 다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전 그걸 롱 테이크로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부담이 크네.]

[전 오히려 핸드헬드에 롱 테이크 조합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가 핸드헬드로 등장인물을 따라가기 때문에 화면의 지루함이 덜 하고요.]

[자네 생각은 나쁘지 않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네.]

[영감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무슨 생각?]

[이제 한철이 형한테 말할 겁니다. 같이 들으세요.]

[알겠네.]

태화가 이한철에게 말했다.

“남녀 주연배우는 기본적으로 연극배우 출신입니다. 긴 호흡의 연기는 익숙합니다.”

이한철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고려해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정확히 계산이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롱 테이크는 그 씬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화면에 등장해서 자신의 연기를 펼쳐야 한다. 하지만 이 타이밍을 잡는 게 만만한 게 아니다.

여기에 카메라도 연기자의 연기에 따라 적절하게 움직여야 한다. 조금만 삐끗해도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촬영하는 것보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게다가 NG가 많아지게 되면 연기자들은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게 된다.

이한철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말투로 태화에게 말했다.

“롱 테이크는 경험이 많은 감독도 연출하기가 쉽지 않아. 거기에 핸드헬드라니.”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물론 네 시도가 나쁘지는 않아. <버드맨-2015년 작.>이라는 영화도 있으니까. 하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해서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뭐냐? 핸드헬드야 영화의 정서를 표현한다고 하지만…….”

“이 영화엔 아까 말한 정서 외에 다른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의외성입니다.”

“의외성?”

“네. 롱 테이크 상태에서 등장인물이 불쑥 등장하는 거죠. 또한 주인공이 불쑥 어느 장소로 가기도 하고요. 이게 커트로 나누어서 가면 그 느낌이 반감됩니다.”

“음.”

이한철은 태화가 방금 낸 의견에 바로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한철이 보기에 태화의 생각은 분명 타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한철은 태화의 의견을 따르기에는 여전히 불안했다.

“네 생각은 알겠지만, 난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

태화는 이한철이 이렇게 발언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현장 경험이 있는 이한철로선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화는 이한철을 설득할 방안이 있었다.

“일단 한번 시도는 해보죠.”

“시도?”

“네. 전체 시나리오 리딩할 때 전체 리허설해 보려고요.”

“전체 리허설을 한다?”

“네. 그때 보고 나서 판단하겠습니다.”

이한철은 태화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테스트라도 해보고 판단하겠다는 것 아닌가.

“좋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너도 그 생각 접어야 한다.”

“네. 나 혼자만 고집부린다고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알았어.”

테화는 고개를 돌려 한재영을 보았다. 한재영은 태화와 이한철의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태화는 이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재영도 진즉에 태화와 이한철의 논쟁에 끼어들었어야 했다.

“재영아. 넌 한마디 안 하냐?”

“솔직히 염려는 되지만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거 의왼데? 난 너도 반대할 거로 생각했는데.”

“한철이 형은 촬영감독으로서 의견을 제시한 거고 난 시각이 좀 달라.”

“다르다?”

“그래. 프로듀서의 관점으로 말할게. 네가 말한 대로 촬영이 잘 이루어지면 이 영화에 개성이 생기는 거잖아.”

“그렇지. 영화의 모든 씬을 원 씬 원 커트에 핸드헬드로 촬영된 영화는 많지 않으니까.”

“저예산 영화가 기존의 상업영화와 경쟁하려면 결국 차별성이야. 뭔가 색다른 점이 있어야 배급사도 흥미를 느낀다고. 그래서 난 태화 너의 그 생각에 반대하지 않아.”

“오. 한재영. 프로듀서다운 생각인데?”

태화는 이한철과 한재영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비록 관점은 다르지만, 이 두 사람에게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철이 형 그리고 재영이. 두 사람 다 고마워. 두 사람의 의견은 조금 다르지만, 목표는 같잖아. 이 영화의 성공.”

이한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성공해야지. 이 작품. 내 촬영감독으로서 입봉작이다. 매우 중요해.”

한재영이 뒤이어 말했다.

“나도 한철이 형 말에 동감. 나도 프로듀서 입봉작이야.”

태화가 웃으며 발언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난 감독 입봉작이야.”

태화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태화와 한재영 그리고 이한철이 웃기 시작했다.

“크크.”

그러자 곁에 있던 이우섭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입봉작입니다. 장편영화.”

여기에 김현석이 빠질 수 없었다.

“저도요. 저는 영화 입봉작입니다.”

순간 현장은 각자 입봉작 드립으로 재차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하하하.”

웃음이 잦아들자 태화가 이우섭을 불렀다.

“우섭아.”

“네.”

“지금 캐스팅된 모든 연기자한테 공지해라. 이번에 시나리오 전체 리딩은 원 씬 원 커트를 위한 리허설로 진행될 거니까 거기에 맞게 준비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의상 분장 스태프한테도 연락해라.”

“의상 분장 스태프한테도요?”

“그래. 연기자가 다 모이는데 의상 분장 스태프도 다 모여야지.”

“알겠어요. 그런데 다른 스태프들은 안 와도 되나요?”

“그래. 오디오 같은 기술 스태프는 굳이 올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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