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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50화 (50/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50화

태화의 말에 이우섭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크랭크인. 정말 기대됩니다.”

막내 김현석도 한마디 보탰다.

“저도 기대됩니다.”

이어서 한재영도 한마디 했다.

“나도 기대된다.”

막내 김현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재영이 형. 형도 기대돼요?”

“그럼. 영화에 참여하는 스태프는 크랭크인 되는 순간을 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지. 그전에 몇 작품 경험했느냐는 상관없어. 물론 자신의 지위도 상관없고. 태화 너도 설레지 않냐?”

“그야. 당연하지. 지금 당장에라도 준비만 되면 찍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태화는 스태프들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서 손뼉을 쳤다.

“자. 힘내자.”

“넵!”

이우섭과 김현석은 거의 동시에 힘차게 대답했다. 그런 후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이우섭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형. 그럼 저희는 장소 헌팅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고지가 멀지 않았다.”

“네.”

“혹시 일하다가 목이 마르거나 하면 음료수 사 먹어. 괜히 돈 아낀다고 참지 말고. 나중에 영수증 처리해 줄 테니까.”

“알겠어요.”

이우섭과 김현석은 옥상과 이어진 계단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두 사람의 발걸음이 힘차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한재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쟤네 둘 오늘따라 기합이 많이 들어가 보인다.”

“그럴 만도 하지. 정말 조금만 더 하면 크랭크인인데.”

이우섭과 김현석이 옥탑을 떠나고 태화와 한재영 둘만 남았다.

“태화야. 어제 연락 안 왔지?”

“응. 이따가 한철 선배한테 연락하려고.”

“언제쯤?”

“점심 먹고 오후에 하려고. 아침부터 전화해서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어쨌든 오늘 결론이 난다는 말이네.”

“그렇지.”

“그러고 보면 한철 선배도 고민하고 있긴 하나 보다.”

“아마도. 그러니까 결정을 빨리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

오후 시간.

[영감님. 이제 슬슬 한철 선배한테 연락해 봐야겠어요.]

[태화 군. 연락하기 전에 이거 하나만 명심하게.]

[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결국 감독이네. 자네만 중심을 잡으면 돼. 촬영감독이 중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결국 자네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사람일세. 자네만 흔들리지 않으면 작품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네.]

[알고 있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흔들릴 수는 없죠.]

[그럼 됐네.]

태화는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이한철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태화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재영이 입을 열었다.

“태화야. 한철 선배한테 전화하게?”

“응.”

태화는 한재영에게 대답한 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뜸 들인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연결음이 5번 정도 울린 후 전화를 받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태화냐?

“네. 선배. 어떤 결정을 했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이한철 외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화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금방 알아챘다.

“혹시 윤주 누나랑 같이 있어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윤주하고 둘이 이야기하고 있었어. 네 작품에 참여할지 말지.

“결론은 났나요?”

-어느 정도는.

“어떻게 결론이 났습니까?”

-윤주하고 나는…….

“네.”

태화는 이한철의 대답을 기다리는 이 순간 긴장감을 느껴야 했지만, 오히려 담담했다.

-네 작품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난 네가 말한 대로 가치에 투자해 보기로 했다.

“선배. 고마워요.”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

짧은 순간 송윤주가 이한철에게서 전화를 넘겨받았다. 송윤주가 자신을 바꿔 달라고 이한철에게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태화야. 나한테는 안 고맙니?

“누나도 당연히 고맙죠. 누나 공이 제일 크잖아요. 하하.”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내일이요?”

-왜. 안 돼?

“당연히 되죠. 근데 어디서 만날까요?”

-당연히 네가 있는 곳에서 만나야지. 그런데 사무실은 있니?

“아뇨. 정식 사무실은 없고 그냥 임시로 쓰는 곳이 있어요.”

-거기가 어디니?

“재영이 옥탑방이요.”

-재영이 옥탑방? 걔는 왜 옥탑방으로 갔어?

“설명하자면 길어요.”

-일단 문자로 주소 보내줘. 내일 나하고 한철 오빠랑 같이 갈게.

“네. 누나. 그럼 내일 봐요.”

-그래. 내일 보자.

송윤주의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태화는 시선을 돌려 한재영을 바라보았다.

한재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화야. 한철 선배 이 작품에 참여한다는 거지?”

“응. 그렇게 결정했다네.”

“하하. 정말 이렇게 결론이 날 줄이야.”

“그리고 내일 한철 선배하고 윤주 누나 이리로 온단다.”

“너 통화할 때 들었어. 근데 넌 기분이 어떠냐?”

“무슨 기분?”

“슬슬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거잖아. 가장 비중 있는 역할을 할 배우 섭외했고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촬영감독이랑 사운드 팀도 섭외했는데.”

“기분이야 좋지. 그런데 동시에 책임감도 느껴지는 게 사실이야. 그 사람들 끌어들인 건 결국 나니까.”

“오. 서태화. 많이 진중해졌는데?”

“감독하려면 진중해야지. 안 그래?”

“그렇긴 하지.”

이한철이 태화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 순간 태화는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도봉 감독은 태화가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태화 군. 자넨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네.]

[제가 놓치고 있다고요?]

[그렇네. 이제 자네와 이한철의 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한재영에게 설명해야 하네. 만약 이한철이 촬영감독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지만 말일세.]

[한철 선배가 촬영감독으로 참여한다고 결정된 이상 재영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오해를 풀어야 하죠.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요.]

[감독은 참여하는 스태프와 연기자의 역학관계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네.]

[역학관계라고 한다면 정무적 감각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정무적 감각이네. 자네는 이한철을 촬영감독으로 결정했고 현재 그런 결과를 낳았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네. 자네가 선택한 사람들이 서로 잘 융합하도록 하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네. 감독이 사람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방치하게 되면 나중에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네. 게다가 이한철과 한재영은 그냥 스태프가 아니야. 프로듀서와 촬영감독,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은 스태프네.]

[영감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요. 재영이가 혹시라도 한철 선배에게 가지고 있었던 오해를 계속 가진 채 촬영에 임하다 보면 나중에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죠.]

[바로 그 걸세. 갈등의 불씨는 대단한 이유보다는 오해와 감정이 대부분이네.]

[정말 중요한 걸 놓칠 뻔했군요.]

실제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 간의 불화, 연기자와 연기자 간의 불화, 그리고 연기자와 스태프 간의 불화로 촬영 도중 영화가 좌초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재영아. 너한테 할 말 있다.”

“할 말?”

“그래. 나하고 한철 선배. 네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

“내가 모르는 사실.”

“기영 선배 졸작 때, 나와 한철 선배 사이에 다른 사람은 모르는 대화가 있었어.”

“둘 사이의 대화?”

“그래.”

태화는 한재영에게 자신과 이한철에게 있었던 대화 내용을 말해주었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었거든. 네가 굳이 한철 선배를 촬영감독으로 생각했던 게.”

“이제 이해가 가냐?”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간다. 네가 한철 선배한테 악감정이 없는데 굳이 피할 필요는 없는 거지. 근데 너도 참 대단하다. 어째서 그동안 그 말을 안 한 거야?”

“지금까진 할 필요가 없었잖아. 나하고 한철 선배가 부딪힐 일도 없었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이제 한철 선배 보는 게 조금은 편할 거 같다.”

“그럼 됐어.”

#.

저녁 시간

태화는 퇴근해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화 군. 조명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일 이한철이 온다면 분명히 조명에 관해서 말하게 될 걸세.]

[촬영과 조명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니까요. 하지만 조명팀을 따로 섭외하는 것도 좀 그래요. 조명이 실제 필요한 분량이 많지 않아서…….]

[방법이 있네.]

[뭡니까?]

[조명팀을 따로 섭외하지 말고 촬영감독 밑에 개퍼(gaffer)를 두는 거네.]

[아. 맞다. 그 방법이 있었군요. 영감님 말은 DP 시스템으로 가자는 말이군요.]

[그렇네. DP 시스템이 자네 영화에 맞네.]

개퍼는 촬영감독의 지시를 받아 조명을 담당하는 팀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선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을 따로 분리해서 운영하지만, 해외에서는 촬영감독이 조명팀을 함께 운영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는데 이걸 DP(Director of Photography) 시스템이라고 한다.

[개퍼를 섭외해서 가는 건 좋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뭡니까?]

[우리나라에선 조명팀의 자존심이 강하다는 거네. 조명팀은 촬영감독의 지시를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네.]

[그렇다면 촬영감독과 인간관계가 있다면 어떨까요?]

[음. 인간적인 관계로 묶여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나?]

[네. 있어요.]

박도봉 감독은 태화가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정민석인가?]

[네. 민석이 형은 한철 선배하고 인간적 관계가 없는 게 아니거든요.]

[음. 한번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어.]

[이외의 반응이네요. 전 영감님이 말릴 줄 알았는데.]

[만약 정민석이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일이 수월하게 풀리네. 굳이 말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게다가 저번에 정민석을 봤을 때 뭔가 마음속에 미련이 있는 거로 보였네.]

[저도 민석이 형 만났을 때 영감님과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어쩌면 정민석은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네.]

#.

다음 날 오후

태화는 장소 헌팅을 나갔던 이우섭과 김현석을 일찍 옥탑으로 돌아오게 했다. 왜냐하면 촬영감독으로 섭외된 이한철과 인사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 촬영감독은 현장 진행에 있어서 역할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실제 촬영장에서 현장 진행을 해야 할 이우섭과 김현석에게 이한철의 존재는 중요하다.

태화를 포함한 네 명은 옥탑 평상에 앉아서 오늘 방문하기로 한 이한철과 송윤주를 기다렸다.

이우섭이 태화에게 물었다.

“형. 촬영감독을 맡으실 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괜찮은 사람이야. 실력도 있고.”

“혹시 성격이 이상하거나 그런 건 아니죠?”

“왜? 걱정되니?”

“제가 전에 참여했던 단편 영화의 촬영감독 성격이 좀 괴팍했거든요.”

“그래서 고생 좀 했구나.”

“네. 제가 아픔이 좀 있습니다. 그분이 평상시에는 멀쩡하다가 촬영만 들어가면 사람이 이상하게 변하더라고요. 입에서 나오는 말의 90%가 욕이더라고요.”

실제 스태프 중에 촬영장에 가면 평상시와 180도 다르게 돌변하는 사람이 가끔 있긴 하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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