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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46화 (46/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46화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다.”

“그럼 뭐야?”

“나하고 한철 선배.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케미가 좋을 수도 있어.”

“아이고. 난 정말 모르겠다.”

한재영이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네 입에서 이한철이라는 그 이름이 나올 줄이야.”

“어제는 그냥 넘어가더니 갑자기 오늘 왜 그러냐?”

“그만큼 신경이 쓰여서 그런다.”

“재영아. 누구보다 이 작품 잘되길 바라는 네 마음 알아. 그래서 그만큼 신경을 썼겠지.”

“…….”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한번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나도 고집부리지 않을 거야.”

“너 고집부리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그래 인마. 이제 됐냐?”

“알았다. 그럼 네 생각대로 해.”

“재영아. 넌 한철 선배가 혹시라도 합류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줘.”

“그건 걱정하지 마. 이미 예비 리스트 다 만들어놨으니까.”

“역시 넌 최고야.”

#.

며칠 후.

태화는 연남동에 있는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카페는 2층짜리 카페였는데 2층에 테라스가 있는 구조였다. 태화는 2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화는 자리에 앉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송윤주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는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태화는 오늘 한재영과 함께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 한재영이 이 자리에 오지 않은 이유는 이우섭과 김현석의 업무를 감독하고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오늘까지 씬 분석표가 정리되어야 다음 단계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재영은 이미 연출부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우섭과 김현석의 업무를 감독하고 점검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약속 시간이 되자마자 태화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송윤주의 전화였다.

“태화야. 도착했니?”

“네. 저 카페에 있어요.”

“나도 바로 도착이야.”

태화는 테라스에서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태화의 시야에 송윤주의 모습이 보였다.

“윤주 누나!”

송윤주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송윤주의 시야에 태화의 모습이 보였다.

송윤주는 태화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송윤주는 자신이 마실 커피를 사 들고서 태화가 있는 자리로 갔다.

“누나. 커피 내가 사려고 했는데.”

“야. 됐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네가 나한테 연락을 다 하고.”

“누나가 연락하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나온 거 아니냐?”

송윤주가 태화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왜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태화야. 너 살 좀 빠진 거 같다?”

태화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만졌다.

“그렇게 보여요?”

“그래. 저번에 주문진에서 봤을 때보다 살이 더 빠진 거 같은데?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요즘 좀 바빠요.”

“바빠? 무슨 일을 하는데 살이 빠질 정도로 바빠? 너 연기도 관뒀다며?”

“제가 요즘 일을 벌여놓은 게 있어요.”

송윤주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을 벌여? 뭔데? 무슨 일인데?”

“그것 때문에 누나의 도움이 좀 필요해서요.”

“너 그럼 내 도움이 필요해서 만나자고 한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겸사겸사. 누나 얼굴도 좀 보고. 하하.”

“꼭 그런 게 맞구먼. 뭘.”

“하하. 들켰나. 미안해요. 누나.”

“야. 그럴 땐 좀 발뺌해야 하는 거 아니니?”

“굳이 누나한테 그런 거짓말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그래서 널 좋아하지.”

송윤주는 갈증이 났는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럼. 내가 도움을 줄 일이 뭐야?”

태화는 자신의 태블릿을 송윤주에게 건넸다. 태블릿 화면엔 <내 복권 내놔!> 시나리오 첫 페이지가 띄어져 있었다.

“이게 뭔데?”

“제가 쓴 시나리오예요.”

송윤주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네가 쓴 시나리오? 그럼 넌 연기 관두고 시나리오 쓴 거야? 작가 되려고?”

“아뇨. 감독이요.”

“뭐, 감독?”

“저 이번에 그 시나리오로 저예산 영화 준비해요.”

“작품을 들어간다고? 이거 단편이 아니라 장편인데?”

송윤주에겐 태화의 근황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네. 그래서 일단 누나한테 시나리오에 관한 평가를 좀 받아보려고요.”

“야. 근데 여기서 읽기 좀 그렇지 않니?”

“일단 앞부분만 좀 읽어봐요. 누나가 원하면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알았어. 근데 태화 너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요즘 제가 좀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읽어볼까?”

10분 정도가 지난 후 송윤주가 태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태화야. 이거 네가 쓴 거 맞지?”

“맞아요. 제가 쓴 겁니다.”

“야. 이 녀석 시나리오 쓰는 재주가 있었네.”

“재주라기보단 열심히 썼어요.”

“오. 겸손함까지.”

“누나, 어떤 거 같아요?”

“확실히 재밌어. 나도 저예산 영화 몇 번 참여해 봤는데 확실히 차별성이 있어. 전에 참여했던 작품들은 작가주의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좀 이해 안 가고 지루한 부분이 많았거든.”

“메일 보내드릴까요?”

“그래. 보내줘라.”

송윤주는 말을 마치고 태화에게 메시지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보내줬고 태화도 바로 송윤주에게 시나리오를 이메일 보내줬다.

“그런데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된 거야?”

“영화협에서 하는 저예산 영화 지원 사업에 당선됐어요.”

“정말이야?”

“네. 운이 좋았어요. 한 번 떨어졌다가 막차 탔거든요.”

“막차?”

태화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저예산 영화 지원 사업에 당선됐던 상황을 송윤주에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태화는 불필요한 부분에 관해선 송윤주에게 말하지 않았다.

“시나리오의 재미로 봐선 당선될 만하지. 늦었지만 축하한다.”

“고마워요.”

“태화야. 이제 본론을 말해라. 단순히 시나리오 모니터링하는 거로 날 만나자고 한 건 아닐 거 아냐?”

“당연하죠.”

“혹시 나보고 네 작품에 참여해 달라고?”

“네. 그래 줄 수 있어요?”

“뭐. 나도 당분간 영화 잡힌 게 없어서 가능은 할 거 같은데.”

“누나. 고마워요. 그런데 누나한테 하나 더 부탁할게요.”

“뭐야. 그거 말고 또 있어?”

태화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누나, 이한철 선배하고 사귄다면서요?”

송윤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재영이가 말해줬어요.”

“재영이라면 한재영?”

“네. 재영이도 저랑 같이 이 작품에 참여해요.”

“진짜?”

“네. 재영이는 이 작품 프로듀서예요.”

“그럼 재영이 생각이야? 나를 통해서 한철 오빠 참여시키는 거.”

“아뇨. 재영이는 한철 선배가 이 작품에 참여하는 거 반대했어요. 제 흑역사에 한철 선배도 있잖아요.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왜 굳이 한철 오빠하고 하려고 그래? 일부러라도 같이 작품 하는 거 피해야 하는 거 아니니?”

“이유는 모르겠어요. 이 작품의 촬영감독으로 그냥 한철 선배 이름이 영감처럼 떠올랐어요.”

“뭐? 영감처럼?”

“네. 누나는 그냥 한철 선배하고 저하고 만날 자리만 한번 만들어줘요. 그거면 돼요.”

송윤주는 태화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현재 태화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다.

“지금 네 표정. 내가 널 알고 나서 최고로 진지한 표정 같다.”

“맞아요. 저 지금 정말 진지하게 누나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송윤주는 태화의 부탁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았다. 태화는 자신이 동생처럼 챙긴 후배고 이한철은 연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태화의 흑역사로 묶여 있었다.

‘혹시 한철 오빠와 태화. 이 두 사람이 작품을 같이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끝날 수도 있어.’

송윤주는 결심을 섰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한 번뿐이야. 그 이상은 안 돼.”

“그 만남에서 만약 한철 선배가 거절하면 더는 누나 귀찮게 안 할게요.”

“알았어.”

“고마워요. 누나.”

“근데 너 자신 있어?”

“자신감 보다 일단 부딪혀 보는 거죠.”

“너 좀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무대포로 덤비기도 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럴 만한 이유?”

“네. 나 이 작품 무조건 만들어야 하거든요.”

“…….”

“그것도 잘 만들어야 해요. 그거면 설명이 되지 않아요?”

“그래. 충분히 설명된다.”

얼마 후 태화는 송윤주를 보내고 나서 한동안 카페에 더 머물렀다.

[영감님. 제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걸까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네. 하지만 가끔은 그 경험을 뛰어넘는 것도 존재하네.]

[그게 바로 영감이군요.]

[그렇네. 나는 일단 자네가 자신의 영감대로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고 있네. 설령 이한철이 예정된 그 한 번의 만남에서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말일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죠.]

[바로 그걸세. 감독은 나중에 후회할 수 있는 사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네. 해보지도 않은 것과 해봤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아주 다르네. 뭔가 시도를 했다는 건 성공 여부를 떠나 경험으로 남지만, 시도 자체를 안 한 건 아무것도 남지 않네. 많이 부딪혀야 그만큼 많이 배우는 걸세.]

[그렇게 해서 이미 성과도 냈고요.]

[그렇네. 현재 이 작품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자네가 직접 부딪히며 견뎌왔기 때문일세. 처음부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행동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자네도 없는 거네.]

#.

다음 날 오전.

태화를 포함한 네 명은 한재영의 옥탑방 평상에서 오전 회의를 열었다. 이우섭이 씬 분석표를 태화에게 건넸다.

“형. 씬 분석표 작업 완성했습니다.”

뒤이어 한재영이 발언했다.

“내가 검토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오케이.”

태화가 시선을 이우섭에게 돌리며 말했다.

“우섭아. 혹시라도 상황이 바뀌면 그에 맞춰 바로 수정해야 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씬 분석표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여러 번 수정된다. 시나리오가 수정될 수도 있고 장소 헌팅 과정에서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화가 시선을 김현석에게 돌리며 말했다.

“현석아. 일해 보니 어때?”

“저야 뭐 그냥 하는 거죠.”

“아직 정신없지?”

“네.”

“그래도 정신 놓으면 안 된다. 정신 놓는 순간 사고 치는 거야. 알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우섭이하고 현석이한테 새로운 업무를 주겠다.”

“…….”

“새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오디션 준비를 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장소 헌팅이다.”

태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우섭이 발언했다.

“근데 오디션은 어디서 진행합니까? 여기서 진행할 수는 없잖아요.”

이우섭의 말대로 한재영의 옥탑에서 오디션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오디션을 보려면 연기자들이 연기 오디션을 보는 곳도 필요하지만, 대기하는 곳도 있어야 한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우선 오디션 공고만 내. 남자 주인공 박성욱 역할만 빼고.”

“시나리오 내용은 어디까지 공개할까요?”

“간단한 개요 정도만 공개해. 장편영화이고 저예산 영화 지원 사업에 당선됐다는 정도.”

“줄거리도 비공개입니까?”

“일단 비공개로 해. 내가 말한 정도만 공개해도 지원자가 있을 거야.”

“네. 그럼 오디션 공고는 그렇게 영화 관련 커뮤니티에 올리겠습니다.”

“오케이. 오디션 장소는 나중에 결정되면 알려줄 테니까 그때 상황 봐서 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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