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2화
끼이익!
사람을 친 차는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곧바로 다시 출발했다.
뺑소니였다.
태화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툭.
태화는 차에 치인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차에 치인 장면을 본 것은…….
덜덜덜.
태화는 절로 온몸이 떨려왔다. 방금 일어났던 사고의 목격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주위를 보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항상 그렇다. 누군가 필요할 땐 꼭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법칙처럼…….
태화는 떨리는 몸을 이끌고 차에 치인 사람에게 다가갔다. 당황한 태화의 입에서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 어.”
태화는 홀린 듯 차에 치인 사람에게 다가갔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였다.
사고를 당한 순간 머리를 다쳤는지 머리에서 피가 났다. 노신사는 백발이어서 그런지 빨간 피가 더 선명하게 잘 보였다.
태화는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서 노신사에게 다가갔다.
“어, 어르신! 괜찮으세요?”
노신사는 대답 대신 입에서 피를 토했다.
쿨럭!
노신사가 태화를 쳐다보았다. 노인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태화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일까? 입에서도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젠장. 오늘 무슨 날이야! 오디션도 떨어졌는데!”
태화는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 폰을 꺼내어 119에 전화를 걸었다.
-네. 119입니다.
“네. 여기 교통사고로 다친 사람이 있습니다. 위치는 망원역 앞 횡단보도입니다. 빨리 와주세요. 어서요. 급합니다.”
전화를 끊은 태화는 노신사를 보았다. 노신사는 힘겨워했다.
“어르신. 정신 차리세요! 금방 구급차가 올 겁니다! 어르신!”
노신사의 눈동자가 태화를 보고 나서 자신의 손을 가리켰다.
태화는 노신사가 가리키는 곳을 살폈다. 노신사가 가리키는 곳엔 낡은 빵모자가 떨어져 있었다.
태화와 노신사가 있는 곳에서 5m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저 빵모자 어르신 겁니까?”
노신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신사의 모습을 본 태화는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위급한 이 순간에도 모자에 대한 집착이라니……. 도대체 저 낡은 빵모자가 뭐길래.’
태화는 재빨리 빵모자를 자신의 손으로 집어서 노신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행동은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태화는 빵모자를 잡은 채 노신사를 바라보았다. 눈에 고인 눈물 때문일까?
노신사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고독하게 느껴졌다.
태화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빵모자를 노신사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이런 행동에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빵모자를 쓴 노신사의 모습은 왠지 모를 분위기가 느껴졌다. 노신사는 태화가 빵모자를 자신에게 씌워주자 입술을 지긋이 움직였다.
그건 노신사가 태화를 향해 지은 미소였다.
‘정말, 이상한 노릇이다. 이 상황에서 몸은 고통스러운데 의식만은 또렷하니…….’
노신사가 힘겹게 입을 뗐다.
“오늘 오디션에 떨어졌나 보군. 쿨럭.”
“그렇긴 한데요.”
“자네. 배우 지망생인가?”
평소의 태화였다면 오디션 탈락을 물어보는 노신사에게 불만을 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 상황은 그런 순간이 아니었다.
태화는 단지 힘겨워하는 노신사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르신 말하지 마세요. 제발요.”
노신사가 다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태화는 초조하고 무서웠다.
28년 인생에서 이렇게 바로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건 처음이었다.
태화는 빨리 현장에 도착하지 않고 있는 119 구급대를 원망했다.
“119는 왜 이렇게 안 와!”
“난 글렀네.”
“아닙니다. 어르신. 그렇게 약한 말씀 하시지 마시고…….”
태화의 말에도 노신사는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저 잘생긴 청년이 내 삶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인 건가?’
노신사는 점점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오랫동안 외롭게 지낸 까닭인가? 조금이라도 더 저 청년과 대화하고 싶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대화이기에……. 신이여,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노신사의 염원이 신에게 전달된 것일까? 노신사는 대화를 계속할 수 있었다.
“나도 젊은 시절 배우를 꿈꾸기도 했었지. 근데 난 내 길이 아닌 걸 알고 접었지.”
“어르신이요?”
“허허. 영화판에 들어와 보니 너무 잘생긴 사람들이 많더라고. 배우는 되지 못했지만, 영화판을 떠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럼, 어르신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영화감독.”
노신사의 말에 태화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이시라고요?”
“그래. 내가 박도봉일세.”
어르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지만, 순간 태화는 난감했다. 태화는 박도봉 감독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이 순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데.’
태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다. 처음엔 당황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지금은 그래도 약간 여유가 생긴 상태였다.
‘이럴 땐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어 주는 게 맞겠지.’
굳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대에게 실망감을 줄 필요는 없었다. 태화도 현 상황에 맞게 대답했다.
“아. 그러셨군요.”
하지만 태화의 의도와는 달리 박도봉 감독은 눈치가 빨랐다.
“나를 잘 모르는 것 같군.”
“그게…….”
“이해하네. 난 성공한 감독이 아니었으니까.”
“…….”
“사람들은 나를 싸구려나 만드는 삼류 감독이라고 그랬지.”
태화는 박도봉 감독의 말을 듣고서 짠한 감정이 몰려왔다.
‘자신이 싸구려 삼류 감독이라는 말을 왜 하실까?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인데…….’
박도봉 감독은 자신에 관한 평가를 하고 나자 갑자기 격한 감정이 올라왔다.
너무나 억울한 삶이었다. 어느 누가 싸구려 영화나 만드는 감독이라고 한다면 그걸 달게 받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박도봉은 몸속에서 피가 솟구쳐 올라왔다.
쿨럭. 쿨럭.
다시 박도봉 감독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그 횟수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박도봉은 이제 죽음을 직감했다.
‘이제 죽는구나……. 그래도 조금 더 대화하고 싶다. 조금 더…….’
박도봉 감독은 자신을 바라보는 태화를 바라보았다.
“자네…….”
“네. 감독님.”
박도봉 감독은 말을 하는 게 힘겨워 보였다. 태화가 재빨리 박도봉 감독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름이……. 뭔가?”
태화는 본능적으로 박도봉을 향해 크게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서태화입니다.”
“좋은…… 이름이네.”
“감독님! 그만 말하세요!”
태화는 박도봉 감독의 손을 잡았다. 박도봉 감독의 손은 경련으로 떨리고 있었다.
“조금만 버티세요! 좀 있으면 구급차가 올 겁니다!”
태화는 박도봉 감독의 손을 잡은 채 다시 소리쳤다.
“구급차야! 제발! 빨리 와라! 제발 좀!”
태화는 누군가의 죽음을 홀로 지켜본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태화의 기대와는 달리 구급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태화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는 구급차가 원망스러웠다.
“제길! 느려 터져서!”
말을 마친 태화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태화의 눈에서 쏟아져 나온 눈물은 볼을 타고 그대로 박도봉 감독의 얼굴에 떨어졌다.
순간 박도봉 감독은 따뜻한 태화의 눈물을 느꼈다.
박도봉은 자신이 이렇게 죽는다는 게 너무나 허망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눈물이 참 따뜻하구나. 그래도 내 인생은 실패만은 아니라는 건가? 저렇게 눈물을 흘리며 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잖은가? 참. 인생 모르는구나. 서태화라고 했던가?’
박도봉 감독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자신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버린 부인과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모습 그대로였다.
‘오래 기다렸지? 나도 이제 따라가.’
갑자기 박도봉 감독의 호흡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헉헉헉…… 고……맙…네.”
태화는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박도봉 감독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으아아! 안 됩니다! 감독님! 정신 차리세요!”
하지만 태화의 외침과 달리 박도봉 감독은 생전의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헉!”
박도봉 감독은 마지막 숨을 내뱉고 나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감독님! 정신 차리세요! 감독님!”
태화는 절규했지만, 박도봉 감독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도봉 감독이 세상과 이별하자 그제야 멀리서 119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삐우- 삐우-
#.
다음 날 아침.
태화는 자신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태화는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잠이 안 올까 생각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몸이 피곤했는지 태화는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편안하게 숙면해서 그런지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오디션 탈락, 과음 그리고 뺑소니 사고.
어제 하루를 느낌으로만 본다면 하루가 아니라 몇 년을 겪은 듯했다.
‘참나. 어제 그런 일을 겪었는데 이렇게 꿀잠을 잔 건 또 뭐냐?’
태화는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밤새 꿀잠을 잔 건 태화가 그렸던 모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쯤 자신은 밤새 과음으로 괴로워야 했다.
몸이 괴로워야 그나마 오디션 탈락의 아픔을 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태화의 몸 상태는 속이 좀 쓰린 것 빼고는 너무 좋았다.
‘내가 처한 상황은 엿 같은데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렇게 역설적인 상황은 뭐지?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태화는 책상에서 자신의 스마트 폰을 가져와서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검색어는 박도봉 감독.
박도봉
직업 영화감독(1945~)
본명 박도길. 강릉 출생. 서울에 상경해서 처음 본 도봉산이 멋있어서 자신의 예명을 도봉으로 함.
7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주로 활동함.
태화는 박도봉 감독에 관한 정보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게 없네. 그러니 사람들이 잘 모르지.”
그때였다.
터벅터벅.
전미경이 태화의 방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태화는 재빨리 침대에 다시 누워 자는 척했다.
덜컥.
방문이 열렸고 전미경이 태화의 방으로 들어왔다.
“태화야. 일어나라. 콩나물국 끓여놨다.”
“…….”
전미경의 말투는 의외로 담담했다. 정상적이라면 전미경은 태화에게 잔소리하는 게 당연했다.
특히 태화는 지난밤 연락 두절에 과음까지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전미경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시 방문을 나섰다.
태화는 이 의외의 반응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잔소리해야 하는데……. 뭐지. 이 상황은?”
상황이야 어찌 됐든 태화는 이대로 침대에만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급하게 온 생리현상부터 해결해야 했다.
#.
변기 앞에 선 태화는 급하게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몸에 소변이 쌓여서 그런지 물줄기도 꽤 두꺼웠고 세찼다. 그래서인지 변기로 떨어지는 소리도 제법 컸다.
콸콸.
이 정도 소변량과 소변 굵기라면 태화 인생에서 가히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다.
태화가 남아 있는 소변이 절반쯤이라고 느껴질 그 순간이었다.
[허허. 제법 튼실하네. 오줌빨이 아주 세구먼! 마치 수도꼭지를 다 돌린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