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허수아비의 기도 (12)
마녀의 숲 앞에 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모였다.
마녀의 봉인을 유지하는 쐐기인 안전 가옥을 허수아비가 연달아 파괴하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관리 부대 외에도 많은 인원이 모인 탓에 마법사들이 거의 700명에 달했다.
마법사들은 군복부터 정통적인 마법사 로브, 정장, 백의, 교복 등 복장이 다양했다.
각각의 복장을 통해 서로의 신분과 소속된 곳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각계각층의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흡사 마탑의 학회라도 열린 듯한 광경 속에서 마법사들은 서로 교류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마스터 아르윈!”
숲 입구에서 마법사 로브를 입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군 정복(正服)을 입은 중년 사내에게 성을 내고 있었다.
“진정하시죠, 오노러블 아산트.”
관리 부대의 총괄 대장인 6위계 마법사 아르윈은 무뚝뚝한 얼굴로 늙은 마법사에게 진정할 것을 권했다.
그 딱딱한 어조에 7위계 대마법사인 아산트는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나! 왜 우리를 막는 게야!”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여보내 달라 하셔도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뭬야?!”
늙은 마법사가 자신의 키만 한 마법 지팡이를 들이밀자 관리 총괄 대장도 짤막한 마법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지금 해보시겠습니까?”
담담한 그의 목소리에 늙은 마법사는 움찔했다.
마법사로서 위계는 늙은 마법사가 더 높았지만 마법의 위계와 전투 능력은 별개였다.
제아무리 대마법사가 위력적이고 위해한 대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지만 숙련된 전투 마법사가 날리는 마탄보다 빠를 순 없었다.
게다가 눈앞의 군인은 마법 전투의 스페셜리스트로 왕국 전투 마법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였다.
“크흠…! 내가 성급했네. 사과하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늙은 마법사가 지팡이를 내리자 관리 총괄 대장 아르윈도 다시 마법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해해 주게! 자네도 관리 1대 부대장의 ‘연락’을 받지 않았나!”
아산트의 물음에 주변의 마법사들도 동조했다.
“맞소!”
“우리도 숲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오!”
마법사들의 아우성에 아르윈은 미간을 좁혔다.
관리 부대가 사용하는 비상 연락 마도구는 기본적으로 ‘아르카나 01, 마술사’ 휘하의 마법사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모인 마법사들은 관리 1대 부대장의 연락을 보고 급하게 모여든 이들이었다.
비상 연락으로 온 내용은 간단했다.
‘마녀의 빗자루로 추정되는 물건 발견, 회수를 시도 중이나 겹겹의 마력장과 알 수 없는 봉인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임.’
마녀의 빗자루, 그것도 사재의 마녀 중 최강이라 불린 도로시의 빗자루.
마녀에게 마녀의 빗자루란 마법사에게 마법 지팡이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물건이었다.
마법 지팡이는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한낱 보조품, 심하게 말하자면 소모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녀의 지팡이는 마녀에게 제2의 마력회로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다른 마녀도 아니고 위대한 대마녀 도로시의 빗자루라는, 마법사들이 눈 돌아가기 충분한 물건을 발견했다는 소식에 서부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이 몰려들었다.
마술사의 주요 세력이 있는 수도나 거리가 멀고 숫자가 적은 동부의 마법사들은 거리와 여러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모이지 못했지만 서부의 마법사만 해도 700여 명이나 되었다.
“하아….”
관리 총괄 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상 연락 마도구가 마술사 휘하 각 파벌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설정을 통해 특정인에게만 연락을 보내는 게 가능했기에 부하의 ‘실수’에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그래도 아르윈은 부하의 실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마녀의 빗자루를 발견했다고 해도 손이 떨렸을 테니 말이다.
“모두 진정하시고 저희 통제에 따라 주십시오.”
아르윈의 말에 몇몇 귀족 출신 마법사들이 반발했다.
“우리가 왜 당신들 통제를 따라야 하지?”
“당장 비키기나 해라!”
관리 부대가 막고 있는 입구는 숲에서 그나마 안전한 길이었다.
숲을 돌아다니는 그림자 짐승과 허수아비는 음차원의 마력이 있는 곳만 돌아다녔기에 음차원의 마력이 비껴간 길을 통해야지만 안전하게 숲 중반부까지 갈 수 있었다.
무례한 귀족 출신 마법사들의 반발에 아르윈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숲 입구를 막고 있던 관리 부대원들이 일제히 마법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나와 관리 부대는 주군으로부터 숲의 ‘관리’를 명받았다. 현 시간부로 통제에 따르지 않는 이는 주군의 명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기겠다. 반항하는 자는 죽여라.”
살벌하리만큼 차가운 명령에 항의를 하던 마법사들은 주춤거렸다.
“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소?”
반말을 하던 귀족 출신 마법사가 반존대로 물었다.
“나는 주군의 명을 이행할 뿐이다. 거부하겠다면 마법 지팡이를 들어라.”
아르윈이 마법 지팡이를 겨누자 항의하던 마법사는 양손을 들며 항복했다.
그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통제만 따른다면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겠다는 말에 긴장하던 마법사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단, 모두가 알다시피 숲은 위험합니다. 모두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저위계 마법사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모두 들어갈 수 없다면 가장 먼저 제외되는 건 저위계 마법사들일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윈의 이어진 말에 저위계 마법사들은 낙담했다.
“3위계 이하는 숲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체, 특히 다리가 불편한 사람 또한 불가합니다.”
“잠깐! 비행하면 되지 않소!”
위계는 충분하나 지팡이에 몸을 기댄 마법사가 항의했다.
“숲 내부는 장기간 비행이 불가능한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들어오시겠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자살을 말릴 의무는 없으니.”
억지로 따라와도 보호해 주지 않겠다는 말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각오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내 마음대로 하리다.”
도로시의 마녀 빗자루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르윈은 마법사들의 태도에 미간을 좁힌 채 제한 사항을 말했다.
그때마다 여러 반발이 있었으나 소요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다.
단련된 정예 전투 마법사의 마법 지팡이 앞에선 없던 예의도 만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300여 명의 마법사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걸러져 나갔다.
사실 마법사들을 걸러낸 관리 총괄 대장도 이렇게 해봤자 결국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마법사가 숲에 들어갈 거란 건 알고 있었다.
허수아비가 안전 가옥을 파괴하는 걸 멈추게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이상 관리 부대 전원 숲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들어갈 마법사를 걸러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은 인원들은 보호할 의무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들어갈 인원들에게 팔찌를 지급해라.”
그의 명령에 부하들은 팔찌를 지급했다.
지급이 끝나자마자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아르윈은 말했다.
“지금부터 숲 내부로 진입한다.”
160명의 관리 부대가 일사불란하게 앞장서서 들어가자 허둥지둥 팔찌를 찬 240여 명의 마법사들이 바로 뒤따랐다.
남은 300여 명도 눈치를 보다 반은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숲속으로 들어갔다.
아르윈은 가장 앞에서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분수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너무 많군.”
그의 한탄에 관리 2, 3대의 부대장들이 동조했다.
“팔찌 없이 들어온 이들 중 100여 명은 죽겠죠?”
“팔찌를 찬 사람들 중에서도 죽는 사람이 속출할걸?”
숲 초입을 지나자 숲에 가득 찬 음차원의 마력이 전신을 휘감았다.
“작전대로 산개한다.”
관리 부대는 그림자 짐승들과 조우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 5명씩 나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법사들도 각각의 소속들로 나뉘어 따라 했다.
이 숲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관리 부대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워낙 대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곳곳에서 그림자 짐승이 기습해 왔다.
“음, 쓸데없는 짐덩이들이 붙어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저 괴물들의 시선이 분산돼서 오히려 좋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쓸데없는 전투가 적어서 다행이네요.”
부하들의 농담에 아르윈은 쓰게 웃었다. 다행인 점은 뒤따라오는 마법사들의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 그림자 짐승들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 뒤에 따라오는 멍청이들의 생사는 이미 관심 밖이었다.
“로이, 관리 1대와 통신 연결은 어떻게 됐지?”
아르윈의 질문에 부하는 난감한 듯 대답했다.
“숲에 들어오고 나서 계속 시도 중인데 받질 않습니다.”
“허수아비와 교전 중인가? 그럼 허수아비의 위치를…”
계속 이동하며 마저 지시를 내리려는 그때 저 뒤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콰앙-!
그 소리에 놀란 마법사들은 폭음이 들린 곳을 바라봤다.
그 순간 검은 안개를 뚫고 선명한 붉은 화염이 일어나며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다.
쾅! 콰앙-!
“끄아악! 내 다리!”
“아아악! 아파!”
갑작스러운 폭발과 피비린내 나는 비명에 마법사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법이 극도로 억제되는 숲에서 저 정도 폭발을 연달아 내려면 얼마나 복잡한 술식과 많은 마력이 필요할까?
아무리 팔찌를 차고 있는 그들이라도 저런 규모의 폭발을 일으키는 건 쉽지 않았다.
“…마, 마력이, 마력이 안 느껴져!”
누군가 경악해 외친 소리에 다들 의아해했다.
사방에 가득 찬 게 음차원의 마력이었는데 무슨 말인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콰과광-!
그러나 이어지는 폭발에 모두가 그 말을 이해했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 당연히 일어나야 할 마력의 응집이 느껴지지 않았다. 폭발 후 퍼져야 할 마력의 발산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이런 마법이 있다니…!”
폭발에 사람이 죽고 다치는 도중에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경이로움에 빠졌다.
마법 없이 저 규모의 폭발을 일으키려면 막대한 양의 화약이 필요했는데 숲에 들어오면서 그런 냄새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현자도, 현자도 이런 건 불가능할 거야…! 말도 안 돼!”
멍하니 감탄하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홀로 정신을 차린 아르윈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전원~!! 폭발을 피해 도망쳐-!!!”
그 외침에 관리 부대원을 비롯해 마법사들은 제정신을 차렸다.
마법에 미쳐 사는 마법사들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콰과과과과광-!!
다들 일제히 비행 마법을 사용하며 폭발을 피해 숲 안쪽으로 날았다.
몇 명이나 죽었는지, 바로 옆의 사람이 살았는지 신경 쓰지 못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마법사들은 살기 위해 나아갔다.
* * *
“에고고, 멀리 있는 걸 폭파시키려니 마력이 꽤 드네.”
내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하품을 하자 아바스엘은 경악하며 날 바라봤다.
“저, 저 폭발이 그냥 ‘꽤’ 드는 수준인 겁니까?”
“응? 어, 그렇지?”
그의 경악 속에는 경외심과 절대적인 믿음이 느껴졌다.
아, 설마 저 연쇄 폭발이 내 ‘마법’인 줄 아는 건가?
미친 건가? 이런 거지 같은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저런 대규모 폭발 마법을 사용해?
나는 그저 숲에 들어오기 전 길버트가 이건 뭐냐고 물었던 ‘재미있는 물건’에 달린 뇌관에 누니의 힘으로 작은 스파크를 일으킨 것뿐이다.
내 ‘재미있는 물건’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잔뜩 먹인 규조토’, 다른 말로는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렸다는 소리였다.
마법을 사용하기 힘든 환경이라면 그냥 마법을 안 사용하면 그만 아닌가?
내 다이너마이트는 별자리 미궁에 들어가기 전 아바스엘이 마탑에서 사 온 규조토와 흑연, 질소 등으로 만든 물건이었다.
원래는 펜릴을 잡을 때 사용하려 만든 거였지만 어떻게든 사용하면 그만 아닌가.
쾅-! 쾅-! 콰과광-!
나는 ‘마술사’의 부하들을 살피며 꼭 죽어야 할 놈들이 있는 곳 위주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며 숲 안쪽으로 몰아넣었다.
서부전선에 근무 중인 관리 부대는 가급적 살려두기 위해 나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숲 이곳저곳에 터지는 폭발로 음차원의 마력이 날아가며 숲을 이루는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우리도 숲 중앙으로 향하자. 도로시 얼굴을 보러 가야지.”
나는 악동처럼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숲 전체가 흔들리는 연속적인 폭발에 로우어펠과 오스먼드는 놀라서 숲 외곽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숲 중앙에 있는 마녀 도로시를 봉인한 봉인석 앞에선 ‘매달린 사람’과 자반은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봉인의 틈이 열려요.”
‘매달린 사람’의 말에 자반이 품 안에 고이 보관하고 있던 창백하게 빛나는 보석을 꺼냈다.
자반은 회한 섞인 눈빛으로 보석을 내려다봤다.
“라일라, 어리석은 날 용서하지 말거라. 네가 사랑 때문에 날 배신했듯이 나도 사랑 때문에 널 희생시켰을 뿐이니… 그저 날 이해하거라.”
보석에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머금고 있던 보석이 부서지며 주변의 음차원의 마력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보석 안에서 반투명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나의 딸, 라일라여.”
언데드 밴시의 울음소리가 숲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