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210화 (210/214)

제210화. 허수아비의 기도 (11)

하늘 높이에서 제이드의 머리 위로 전서구 인형 하나가 떨어지듯 내려왔다.

음차원의 마력이 짙어 마도구가 오작동하기 쉬운 마녀의 숲에서 제대로 전서구 인형을 보내기 위해 포물선을 그리듯 높이 날아올라 음차원의 마력과 접촉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역시 유안이군요. 숲에 들어온 적들에게서 갈취한 모양입니다.”

유안이 보낸 전서구 인형의 다리에는 편지와 함께 하얀 팔찌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곳에 있는 다섯 명 모두가 착용하고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여분으로 두 개씩 가질 수 있을 만큼 많았다.

만약 적과 만난다면 팔찌를 노릴 게 분명했으니 여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팔찌 자체의 내구도도 그리 높지 않아 일정량 이상의 마력을 사용할 경우 고장 날 위험이 컸다.

결국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팔찌도 마도구라 어쩔 수 없었다.

“모두 팔에 차면 될 것 같습니다.”

“와! 드디어 제대로 마법을 쓸 수 있겠어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던 실루아는 좋아하며 손목에 팔찌를 찼다.

팔찌를 차도 인형술사인 그녀는 마법 효율이 유독 좋지 못했지만 전력은 많을수록 좋았다.

제이드가 길버트에게도 팔찌를 건네자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길버트는 의아해했다.

“저도 차는 겁니까?”

“예, 팔찌의 기능은 마력을 방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마법을 사용하는 데 맞춰 조정되어 있지만 검기를 사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요?”

길버트는 신기해하며 하얀 팔찌를 찼다.

유안의 편지를 확인한 제이드는 아르카나의 안전 가옥을 불태우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이걸로 열일곱 채를 없앴군요. 굉장히 복잡한 마법이네요. 과연 사재(四災)의 마녀를 봉인할 만합니다.”

제이드는 이 숲을 매개로 구성하는 봉인 술식을 만든 사람은 못해도 8위계 마법사라 확신했다.

어쩌면 현자라 불리는 9위계 수준일지도 몰랐다.

마법사의 경지가 꼭 전투력과 일치하는 건 아니었지만 대마법사라 불리기 시작하는 7위계인 오노러블 이상의 마법사치고 약한 사람은 없었다.

“집중하는 중에 미안한데, 뭘 적는 거야? 암호?”

하얀 팔찌를 찬 소피아는 신성 마법으로 오두막에서 꺼내 온 금고를 부수며 물었다.

제이드의 노트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호와 문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숲의 대략적인 지도와 지금까지 파괴된 안전 가옥의 위치를 표시했다.

소피아의 물음에 제이드는 필기를 마치고 싱긋 미소 지었다.

“마법 연구를 할 때 암호로 쓰는 게 습관이라서요. 그냥 제 계획이 가능한지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제이드의 대답에 다들 관심을 보였다.

“그 유안이 악랄하다고 평할 정도로 사악한?”

“그 도련님께서 그렇게 평가할 정도면 보통 계획이 아니겠죠?”

“음, 그 유안 군이 인정한 계획이라.”

“저저! 그 유안 오빠가 자기 계획을 수정할 정도로 사악한 계획이 뭔지 궁금해요!”

동료들의 지대한 관심에 제이드는 당황했다.

“제 계획은 그렇게 대단하진 않습니다. 유안의 계획 마지막 부분을 조금 바꾼 것뿐이거든요. 그리고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실행이 가능한지 계산이 안 끝나서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제이드가 한발 물러나자 동료들은 그 계획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넘어갔다.

“그럼 유안 오빠의 계획은 뭐예요?”

실루아의 물음에 제이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유안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우선 지금처럼 오두막을 철거하는 겁니다. 앞으로 약 스무 개 정도만 더 철거하면 준비가 끝납니다.”

“그리고요?”

“오두막 금고에 있는 검은 오팔을 챙겨야 합니다. 추후 작전에 사용되는 물건이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제이드는 소피아가 부순 금고에서 검은 오팔을 챙겼다. 어느새 오팔을 담은 주머니가 묵직했다.

“목표치의 반쯤 파괴했으니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야드 씨와 길버트, 실루아는 계속해서 숲 중앙으로 향하며 오두막을 파괴해 주세요. 실루아, 오두막을 찾는 방법은 아시죠?”

“네! 알아요, 걱정 마세요!”

실루아의 활기찬 대답에 제이드는 미소를 지었다.

“소피아는 준비해 주세요.”

싱긋 웃으며 소피아를 부르자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어지는 제이드의 설명에 유쾌하게 웃었다.

“푸하하핫! 재미있겠다, 당장 하자.”

* * *

관리 1대 소속 3, 4분대는 귀화를 담은 등불에 기댄 채 조심스럽게 숲속을 걸었다.

25명의 인원은 다섯 명씩 나뉘어 다소 거리를 벌린 채 움직였다.

관리 부대는 허수아비를 상대하기 위해 80명의 부대원을 뒀지만 사실 마녀의 숲은 5명으로 움직일 때가 가장 효율이 좋았다.

그 이상일 경우 그림자 짐승들이 그들의 마력을 감지해 달려들었다.

물론 그 이하로 움직인다고 그림자 짐승들이 달려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멀리 있는 그림자 짐승들이 침입자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평소처럼 숲을 돌아다닐 뿐, 근처에 있다면 마력으로 만들어진 짐승답게 예민한 후각으로 마력을 감지하고 달려들었다.

숫자가 적을수록 감지당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는데, 그 가능성 하나 때문에 사람을 줄이면 그림자 짐승에 대항할 수 없었다.

“여기다. 정말로 안전 가옥이 무너져 내렸어.”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는 무너져 타버린 잔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숯이 된 잔해에는 아직도 푸른 빛을 내는 귀화가 냉기를 풍겼다.

“언데드 특유의 음산한 귀화, 역시 허수아비가 부리는 듀라한인가. 표본을 채집한다.”

관리 부대의 마법사들은 일사불란하게 듀라한이 남긴 흔적과 귀화를 특수 케이스에 채집했다.

강력한 사역마인 허수아비는 단순한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적을 상대할 때 일일이 명령을 내려야 하는 권속을 부리기보다 직접 상대하는 것을 선호했다.

덕분에 허수아비가 지닌 낫으로 상대를 베어 듀라한으로 만드는 능력에 대한 연구는 미진했다.

언데드를 만드는 힘의 근원은 허수아비의 주인인 마녀 도로시로 추측되었기에 표본은 더욱 중요했다.

“채집이 끝났으면 바로 쐐기를 설치한다.”

표본을 가방 안에 넣은 3분대장은 허리춤에서 말뚝을 뽑아 무너진 오두막 근처 바닥에 꽂았다.

그러고는 말뚝에 오팔을 엮어 만든 밧줄을 감고 세 명의 마법사가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문 소리에 검은 오팔이 공명하며 마력을 방출되었다.

오팔의 독특한 마력은 말뚝 인근의 음차원 마력과 섞여 주변을 마력 공백 지대로 만들었다.

마치 진공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사이 다른 두 명의 마법사가 다른 주문을 외워 말뚝을 활성화 시켰다.

“설치가 끝났군.”

마법사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렸다.

과한 마력 사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탈진 증상까지 보였지만 3분대장은 부하들을 독려했다.

“긴급 보고에 따르면 적어도 한 채는 더 파괴되었을 거다. 혹시 안전 가옥이 더 파괴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이동하면서 마력 회복을 한다.”

“예!”

관리 부대가 말뚝을 은폐하고 떠나자 숨어서 지켜보던 제이드와 소피아가 수풀 사이에서 나왔다.

“저거 뽑을 거지?”

“당연하죠. 저런 흥미로운 마도구를 보고 그냥 지나치면 마법사가 아닙니다.”

제이드는 다섯 명의 마법사가 공들여 박아놓은 말뚝의 마법을 간단히 해체하고는 무 뽑듯이 쑥 뽑아버렸다.

“저 사람들도 나중에 알면 허탈하겠어.”

“그래서 재미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그럼 유안의 말대로 찐한 만남을 주선해 보자.”

소피아는 신성력을 조금씩 흩뿌리며 그림자 짐승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음차원의 마력과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신성력은 그림자 짐승들에게 있어 강력한 도발이었다.

동시에 제이드가 검은 오팔에 담겨 있는 마력을 풀어 주변을 마력 공백 지대로 만들었다.

“진짜, 유안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동감입니다.”

마력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 짐승들은 신성력까지 함께 지워진 공백 지대를 눈치채지 못하고 수백 마리가 줄지어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두막이 파괴된 곳으로 향하던 관리 부대는 비명을 지르며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많이 마주쳐야 십여 마리뿐이던 그림자 짐승들과 대규모 소개팅이 성사되었다.

* * *

귀화로 생긴 나뭇잎 그림자를 보니 아르카나의 안전 가옥이 있던 자리 근처로 막대한 마력 흐름이 관측되었다.

격한 파도처럼 몰아치는 마력 흐름 속에 새하얀 점 하나가 덩그러니 생긴 걸로 보아 제이드와 소피아가 내 계획대로 찐한 소개팅을 주선해준 모양이었다.

듀라한에게 쉽게 당해서 약해 보이지만 관리 부대는 왕국에서 정예 중에 정예만 엄선한 전투 마법사 부대였다.

정확히는 제73마도병단이 정예였지만, 관리 부대는 대부분 73마도병단 소속으로 잠입해 있었으니 같은 말이었다.

여하튼 25명이나 되니 그림자 짐승들로는 쉽게 죽지 않을 거다. 죽을 것 같으면 마음 약한 제이드와 소피아가 살리겠지.

나중에 포로로 잡아 오면 죽일 놈들만 죽이고 목줄을 채워 방생할 예정이었다.

자유롭게 살다가 내가 부르면 바로 ‘아르카나 01, 마술사’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달려와야 할 운명이었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으음~ 언제쯤 오려나?”

연락용 마도구에는 그럴듯하면서도 내가 마술사 녀석이라면 참지 못할 내용들로만 적었으니 아직 부대에 남은 관리 부대는 전부 숲으로 올 거다.

관리 부대는 원래 올 예정이었으니 넘어가고 중요한 건 마술사의 다른 부하들이다.

당연히 오겠지? 그림자 탑 녀석들은 어지간해선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을 거다.

내가 노리는 건 마탑 외부에 있는 숨겨진 전력들이다.

상황이 상황이고 먹음직한 미끼도 풀었으니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아.

겸사겸사 다른 아르카나의 세력까지 휘말리면 금상첨화겠지만 무리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허수아비가 날 보며 물었다.

“이봐. 그런데 내 듀라한들에게 뭘 시키는 거냐?”

허수아비는 내가 시킨 그대로 듀라한을 조종했지만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뭘 시키기는? 손님들이 올 테니 성대한 환영 준비를 하는 거잖아.”

“환영 준비?”

“그리고 겸사겸사 봉인을 풀 밑 준비도 포함되어 있어.”

안전 가옥이 봉인을 유지하는 쐐기 역할이라지만 안전 가옥을 모두 파괴한다고 바로 봉인이 풀리지는 않았다.

현명한 마녀 도로시는 아르카나가 자신의 봉인을 풀려 할 때는 분명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 예견했다.

그래서 도로시는 봉인 당하면서도 봉인 술식에 간섭해 누군가 봉인을 풀려 하면 자신을 지킬 수단이 발동하도록 함정을 숨겨놓았다.

내가 제이드에게 시킨 것들과 지금 듀라한에게 시킨 것들은 모두 봉인을 풀기 위해서였다.

내 말에 허수아비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뭐, 좋다. 네 덕분에 귀찮은 놈들을 처리하고 귀찮은 오두막까지 없앴으니 괜찮겠지.”

마녀는 저 허수아비의 대가리 속에 짚이 아니라 제대로 된 걸 넣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 적어도 생각이란 걸 했을 텐데 말이야.

그때 허수아비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봤다.

“…침입자다.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많다.”

허수아비의 말에 나는 은하의 눈으로 허수아비가 바라본 방향을 살폈다.

허수아비의 말대로 무장을 한 수백 명의 마법사가 숲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관리 부대의 정원보다 한참 많아 보였다.

그들은 내가 통신 마도구로 유도한 그대로 갈라져 숲 내부로 깊숙이 들어왔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폭소했다.

“아하하하하!”

딱!

내가 손가락을 튕긴 그 순간-

쾅! 콰과과과과과광-!!

숲 전역에 굉음이 울리며 폭발이 일어났다.

“지금부터 술래잡기 시간이다! 잘 도망쳐 봐라!”

술래(폭발)에 잡히면 죽는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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