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허수아비의 기도 (10)
아르카나의 관리 부대가 숲 내부로 진입하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법사 한두 명 정도면 숲의 마력 흐름에 파묻혀 감지할 수 없었겠지만, 스무 명이 넘어가면 숲 전체에 영향을 준다.
물론 그것도 숲에 들어온 마법사들이 모두 5위계 이상의 일류 마법사라 가능했지만 말이다.
“65명이라, 선행 수색으로 일부만 왔나?”
아르카나의 관리 부대는 총 4개 대로 이루어져 있다.
관리 1, 2, 3대는 각각 총원 80명으로 전투를 맡았고 관리 4대는 40명으로 전투 지원을 맡았다.
실질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건 최대 240명인 셈이다.
저들은 여러 조직을 휘하로 두고 있는 아르카나에서도 손꼽히는 마법사 전력이었다.
저들은 모두 잃는다면 ‘아르카나 01, 마술사’가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정예 중의 정예였다.
“둘로 갈라졌네.”
나는 빛의 정령인 은하의 눈으로 멀리서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숲의 마력 때문에 평소보다 마력이 많이 소모되긴 했지만 그래도 하얀 팔찌를 끼고 있으니 여유로웠다.
아마 팔찌뿐만 아니라 내 마력의 근원이 사재의 마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정령의 특수성 덕분인 듯했다.
이 숲을 가득 메운 음차원의 마력은 마녀에게서 뽑아낸 마력을 치환하여 만들어졌다.
“내 당장 요절을 내버리겠다!”
허수아비는 침입자에 분노하며 두 눈의 귀화를 키웠다.
“진정해. 그렇게 화낸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허수아비를 진정시킨 나는 빠르게 견적을 짰다.
“재미있네. 우선 듀라한을 이곳으로 스물 정도 산개시켜 놔. 네가 미끼가 될 거야.”
나는 나뭇가지로 땅에 대략적인 숲 내부를 그리며 허수아비에게 서 있을 자리를 알려줬다.
“음, 미끼라면 난 뭘 하면 되는 거지?”
허수아비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뭘 할 생각하지 말고 평소 아르카나의 관리 부대가 왔을 때처럼 처맞고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할게.”
“왜 내가 처맞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야….”
대가리가 짚으로 채워져 있으니까?
“관리 부대의 기본적인 대 허수아비 전술은 알고 있거든. 그런 전술이 세워졌다는 건 네가….”
“난 안 멍청하다!”
“…우직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평소에 그런 말 많이 들었나 봐?”
내가 키득거리자 허수아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관리 부대는 주기적으로 실전에서 전술 연습을 하기 위해 숲에 들어와 허수아비를 공격하고 도망갔다.
당연히 연습 도중 사망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연습을 안 하면 지금 같은 실전 상황 발생 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니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이이…!”
“아, 그래도 내가 말하는 대로 듀라한을 움직여 줘. 모든 건 다 네 주인을 위해서야.”
“…흥!”
내 감언이설에 허수아비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노려보면서도 내가 지정한 곳으로 걸어갔다.
허수아비가 가만히 서 있기를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관리 부대가 산개하며 작전을 시작했다.
검은 안개 사이로 붉은빛이 번쩍이며 관리 부대가 허수아비를 열심히 때릴 때 나는 느긋하게 움직이며 관리 부대의 위치를 파악했다.
뭉쳐 다닐 때는 파악하기 쉬웠는데 흩어지니 검은 안개 탓에 관측이 어려웠다.
“도련님, 이렇게 천천히 움직여도 괜찮은 건가요?”
프레시아의 걱정에 나는 별것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그거 맞고 안 죽어. 맷집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거든.”
됐다. 관리 부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역시 글로 읽는 거랑 움직임을 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나는 관리 부대의 마법사가 올 장소로 가 대기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기다리니 허수아비를 마법으로 때린 마법사 하나가 땀을 흘리며 열심히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아마 ‘1-1분대 8번’이란 녀석이었다.
“허수아비.”
나는 바람의 정령인 나비를 통해 허수아비를 불러 듀라한을 움직였다.
“크억!”
관리 부대의 마법사는 뒤에서 당한 기습에 허리가 꺾이며 요란하게 땅을 굴렀다.
음차원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언데드답게 숲에서 움직이는 게 암살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은밀했다.
나는 땅에 엎어진 마법사의 목 바로 아래 등을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하얀 팔찌와 전음 마법 수신용 마도구를 떼어냈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그의 눈 바로 앞에 있는 땅에 칼을 박아 넣으며 말했다.
“소리 지르면 죽는다. 질러봤자 들을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사실 질러도 상관없다. 나비가 막을 텐데 뭐.
“누, 누구, 어억!”
체중을 실어 강하게 밟자 마법사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질문도 내가 한다. 이름과 소속을 말해라.”
“나는 적과 협상하지 않, 으아아아-!”
누니가 마법사의 등에 앉아 전류를 내보냈다. 번개의 정령답게 내게는 전기가 오지 않게 세심히 조절했다.
“지금은 맛보기야. 대답을 안 하면 마력회로부터 지질 거다. 이름과 소속.”
마력회로를 지진다는 내 말에 포로가 된 마법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메, 멜롬 바나드 제스탈론. 듀플리온 왕국 군 서부 사령부 예하 7마도사단 73마도병단 소속이다.”
마법사라고 마력회로는 끔찍이 아끼는구만.
포로의 이름을 들은 아바스엘의 표정이 굳었다.
“제스탈론이라면….”
“아는 가문이야?”
내 물음에 아바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스탈론 백작가는 왕국에서 손꼽히는 마법 명가 중 하나입니다. 제 친구도 그쪽 가문 사람입니다.”
“아, 그래? 운이 좋았네, 포로야. 목숨은 구했어. 잠깐 자고 있어봐.”
파지직!
“무으… 엑.”
나는 전기로 지져 포로에게 잠시 꿈나라 여행을 보냈다.
“…주군, 죽이지 않는 겁니까?”
아바스엘의 물음에 나는 밧줄로 포로를 꽁꽁 묶으며 대답했다.
“이놈들 전부 죽이면 서부전선 전력 공백은 어쩔 거야?”
사실 죽여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이들을 땜빵 할 전력은 북방에 넘쳐났다.
이계의 구멍이 닫히면서 검귀 데미웨이의 영지가 몬스터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블란츠바그 후작가에 대가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당장 이놈을 죽이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내가 말했듯이 관리 부대를 전멸시켜 버리면 당장의 전력 공백이 생겨버린다.
둘째, 관리 부대가 ‘마술사’의 직속 부하들이라고는 하지만 진심으로 목숨 바쳐 그를 따르는 놈들은 간부들 정도뿐이다.
셋째, 이놈들이 살아 있어야지 ‘마술사’ 새끼의 전력을 제대로 숲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아르카나 01, 마술사’는 왕비와 함께 날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왕궁 내부로 들여보낸 개새끼였다.
마술사 놈의 전력을 지워버릴 수 있다?
이런 기회는 못 참지.
“이거 받아.”
나는 포로가 차고 있던 하얀 팔찌를 아바스엘에게 던졌다.
“감사합니다! 주군!”
아바스엘은 환하게 웃으며 냉큼 하얀 팔찌를 찼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법을 못 쓰는 게 트라우마를 자극했던 모양이었다.
손가락을 튕기며 간단한 마법을 사용한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받아. 거기 걸린 마법은 분석 가능하지?”
귀에 거는 수신 마도구를 받아 든 아바스엘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가능하다 못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거 저와 위즐이 개발한 마도구입니다.”
종종 얼빵한 모습에 잊을 때가 있는데 아바스엘은 현 마도팔현 중 한 사람인 위즐 백작을 제치고 최연소로 슈프림 메이지가 된 대마법사였다.
“그립군요, 이거 개발할 땐 아직 선생님께서 마법 학교에 재직 중이셨는데…. 전혀 업그레이드가 안 되었네? 장난하나!”
추억에 잠기려던 아바스엘은 자신이 학생 시절 개발한 마도구가 아직까지 그대로 사용되는 작태에 분노했다.
노르망디 시절 수통을 쓰던 전생의 군대나 왕정 국가인 현생의 군대나 거기서 거기구만.
“진정하고, 대충 사용법 알려줘.”
“알겠습니다.”
나는 아바스엘이 알려주는 마도구 사용법을 숙지하며 허수아비를 커맨드 센터 삼아 듀라한들을 조종해 관리 부대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목표가 된 마법사들은 허수아비를 때리고 도망가는 녀석들이었다.
마력 소모가 심한 곳에서 전력을 다해 날아서 도망치느라 지쳐서인지, 아니면 듀라한의 동화에 가까운 은신 능력 때문인지 한 번에 기절하여 내가 있는 곳으로 끌려왔다.
나는 기절한 포로들을 차례대로 깨운 다음 심문을 시작했다.
“이름과 소속을 말해라.”
“적과 협스아아악! 말하겠다! 빌리 진! 듀플리온 왕국군 서부 전선 사령부….”
“통과, 누니.”
-뾰로로~!
파지직-!
“이름과 소속.”
“첼레빌 모드망, 서부 전선 사령부….”
파지직-!
“미첼 파실 콘라드, 왕실 파견 마도병단….”
파지직-!
누니는 다시 포로들을 차례대로 기절시켰다.
“이름과 소속.”
“루오만트 델 드라펠가, 소속은….”
“아, 됐어. 그만 말해도 돼.”
나는 소속을 말하려던 녀석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기분 나쁜 감각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드라펠가는 가문 전체가 ‘마술사’놈의 열렬한 추종자다. 어떻게 지지고 볶아도 배신하지 않을 녀석을 살려둘 수는 없다. 사실 배신하게 만들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노력할 만한 가치는 없었다.
“도련님!”
내 손에 피를 묻히자 프레시아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괜찮아. 부하들에게만 손을 더럽히라 종용할 순 없잖아.”
앞으로 내 손에 죽을 놈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거다. 이 정도에 무너져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아바스엘.”
“예, 주군.”
나는 포로들에게서 회수한 수신 마도구를 건네며 지시를 내렸다.
“이놈들 대신해서 시원하게 허수아비 뒤통수 좀 갈겨주고 와.”
작전이 멈추면 이상함을 눈치채고 튈 수도 있다.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지.
내 의도를 눈치챈 아바스엘은 폭소했다.
“하하하하! 역시 주군이십니다. 정말 악 …철두철미하시군요.”
방금 악마 같다고 말하려 하지 않았냐?
내 시선에 아바스엘은 헛기침을 하며 허수아비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나는 수신 마도구를 귀에 장착하고 관리 부대의 통신을 엿들었다. 그리고는 중간 중간 작전에 맞춰 허위 정보를 흘렸다.
“여기는 1-13, 이동 중인 허수아비를 확인, 공격하겠다!”
당연히 내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방해 전파를 사방에 흩뿌리며 붙잡은 포로 중 살 놈과 죽을 놈을 나누었다.
아바스엘이 대마법사라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허수아비에게도 적당히 움직일 방향을 지시했다.
“여기는 2-18, 허수아비의 경로를 확인! 오, 좋은 마도구! 크흠! 확인하였다. 요격하겠다. 넷, 삼, 둘, 하나!”
계속해서 거짓 통신을 주고받으며 포로들의 물건을 탈탈 털었다. 역시 지원을 빵빵하게 받는 녀석들답게 좋은 마도구와 장비로 가득했다.
잡힌 포로의 머릿수를 세어보니 서른아홉. 부대장만 남았다.
“자, 그럼 이동하자.”
붙잡은 포로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밧줄로 묶고 머리만 나오도록 땅에 파묻어 버렸다. 듀라한이 아주 만능 일꾼이었다.
나는 방해 전파를 그만 내뿜고 부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이는 부대장은 이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허둥대고 있었다. 나는 은밀히 그의 배후를 잡으며 키득거렸다.
“여기는 1-18. 이제 남은 건 당신뿐이다, 오버.”
그러고는 그의 등을 찌르며 인사했다.
“까꿍~!”
관리 부대의 팀장인 그는 허망한 눈빛으로 날 보며 땅에 쓰러졌다.
나는 그의 품에서 연락용 마도구를 찾았다.
편지와 같은 형태의 마도구는 내용을 적으면 같은 글씨가 나타나는 형태였다.
“이걸로 관리 부대와 어떻게 놀아볼까?”
재미있는 술래잡기나 해볼까?
* * *
“냐하하하! 더럽게 머네, 얼마나 남았어?”
어느 초원에 대자로 누운 일리우 아리사는 땀을 흘리며 니벨에게 물었다.
마찬가지로 니벨 또한 땀에 절어 지친 듯 비틀거리며 대답했다.
“몰라요. 급하다고 지도만 쥐여주고 날아가라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아르카나 16, 탑’ 니벨 디 프로벨린은 ‘아르카나 01, 마술사’의 파벌에 속해 있었다.
때문에 마녀의 숲에서 생긴 이상 사태를 해결하라는 ‘마술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냐하하~! 더럽게 힘드네, 이게 뛰어서 국토 종주랑 뭐가 달라!”
“어쩔 수 없어요. 지원을 받기엔 현재 마탑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요.”
“그래? 그럼 좀 쉬자.”
아리사의 제안에 니벨도 땅에 주저앉으며 대답했다.
“후우~ 그래요. 뭐 문제 있겠어요?”
마녀의 숲으로부터 꽤 떨어진 초원에서 두 마법사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수도에서 서부 국경 근처까지는 너무나 먼 길이었다.
“관리 부대가 알아서들 잘하겠죠.”
“냐하하하~! 맞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