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208화 (208/214)

제208화. 허수아비의 기도 (9)

숲 안에 아르카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허수아비가 다룰 수 있는 모든 듀라한을 소환하도록 시켰다.

“고작 서른이 넘는 숫자인가.”

전성기의 허수아비는 천이 넘는 듀라한을 이끄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아르카나와 도로시의 전쟁에서 대부분 잃고 지금은 간신히 32체를 유지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마지막 전투에서 허수아비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모인 이들의 일부를 듀라한으로 만들어서 지금 숫자인 거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거다.

내 말에 허수아비는 변명하듯 항변했다.

“어쩔 수 없다. 도로시와 연결이 거의 끊긴 상태인 데다 새로 병사를 수급할 기회가 없었다.”

이 숲에선 마력을 방출해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보다는 신체 내부에서 마력을 순환하여 싸우는 기사가 전력 손실이 훨씬 적다.

그럼에도 아르카나는 숲을 관리하는 인원을 전부 마법사로 구성했다.

허수아비가 근접 전투와 달리 원거리 전투에 약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허수아비는 육체를 단련한 기사가 아니면 듀라한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만들 순 있지만 허약해 빠진 마법사의 몸으로 만들어봤자 막대한 리소스만 차지한 채 일반 스켈레톤만 못한 듀라한이 만들어져서 안 만드는 거였다.

마녀와 연결이 제대로 되어 있을 때라면 낭비를 해도 상관없지만, 마녀와 연결이 끊기다시피 한 지금이라면 막대한 손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퀄리티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

지금 앞에 서 있는 듀라한은 하나같이 초인급에 준하는 괴물들이었다.

물론 초인급에 준한다고 해도 마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허수아비가 이들의 전력을 다룰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생전에 진짜 초인이었던 듀라한이 둘, 초인에 근접했던 무인이 서른이다.

빠듯하지만 부족한 숫자는 아니다.

갑자기 내가 이해해 주자 허수아비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무슨 꿍꿍이지?”

“무슨 꿍꿍이긴, 복수하고 싶지 않아? 네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적들을 처리할 수 있거든.”

머리에 뇌가 아니라 짚만 든 바보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러 감언이설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조금 이야기하니 허수아비는 홀린 듯 내게 협력하겠다 약속했다.

“…뭔가 속는 기분이다.”

“하하하하, 착각이야. 지금까지 오두막을 부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믿음을 줬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리고 조금 속으면 어때? 도로시만 풀려나면 되는 것 아니야?”

내 물음에 허수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협력하기로 했으니 묻지. 듀라한을 조종할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되지?”

“숲 안이라면 자유롭게 가능하다.”

“숲 밖이라면?”

허수아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거의 활동하지 못한다. 도로시가 있다면 모를까 현재 듀라한을 움직이는 동력은 숲에 고인 음차원의 마력이다.”

아주 좋다.

“그거 아쉽네. 활용성이 떨어지겠어. 그래도 당장은 쓸 수 있으니 다행인가?”

나는 일부러 아쉬움을 내색하며 은근히 허수아비를 바라봤다.

허수아비는 움찔하더니 잘못한 사람처럼 내 눈을 피했다.

“제이드, 오두막을 찾을 수 있겠어?”

내 물음에 제이드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마력 흐름만 읽을 수 있으면 의외로 찾기 쉬우니까요.”

“좋아, 그럼 야드, 길버트, 실루아, 소피아와 함께 움직이며 오두막을 파괴해. 금고는 잘 확인해 보고.”

굳이 내가 없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제이드라면 부수고 내용물을 꺼낼 수 있다.

강철 따윈 종이 찢듯 찢어버릴 수 있는 괴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기계식 금고가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였다.

“오두막을 파괴하는 데 다섯이나 갈 필요가 있습니까?”

타당한 의견이다. 솔직히 오두막이 마법으로 보호되어 있다고 해도 제이드 혼자서 충분했다.

“오두막만 부순다면 그렇겠지.”

나는 제이드의 귓가에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속삭여줬다.

내 작전을 들은 제이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런 악당.”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럴 리가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럼….”

제이드는 악동처럼 미소 지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제이드의 말을 들은 나는 감탄했다. 마법에 미친 내추럴 본 마법사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누가 누굴 보고 악당이라고 한 거야? 그런데 가능하겠어?”

“해봐야 알겠지만 운이 좋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나는 가볍게 운을 띄웠을 뿐인데 그런 악랄한 생각을 하다니. 이 녀석도 점점 본성을 드러내는군. 마음에 들었다.

“제 생각대로 움직여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해봐.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 말이야.”

제이드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모두 유안에게 배운 겁니다. 아마 유안이 조금 더 마법에 능통했다면 저보다 더 좋은 작전을 짰을 겁니다.”

“아닌 것 같은데.”

내게 배운 거라면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라 할 만했다. 스스로 자부하건대, 나는 제이드만큼 사악하지는 않았다.

제이드가 네 명을 이끌고 숲 중앙으로 향했다.

“자, 그럼 우리는 새롭게 올 손님맞이나 하자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허수아비를 커맨드 센터 삼아 듀라한들을 숲 이곳저곳으로 내보냈다.

잔혹한 사냥 시간이다.

* * *

아르카나의 관리 1대는 조심하며 숲 내부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 브리핑대로 3분대와 4분대는 흩어진다. 살아서 보자, 주군을 위하여.”

부대장의 지시에 각 분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하게 대답했다.

“살아서 다시 봅시다, 주군을 위하여.”

“주군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주군인 ‘아르카나 01, 마술사’를 위해 전장에 선 이들이었다.

갈라져서 흩어지는 마법사들의 허리춤에는 오두막을 대신할 검은 말뚝이 매여 있었다.

“숲 내부로 들어갈수록 그림자 짐승들이 사납게 공격하기 시작할 거다. 1-1분대는 경보 마법을 사용하며 수색하고 1-2분대는 보호 마법으로 선행 수색을 보조해라.”

수색조로 뽑힌 10명의 마법사는 마법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어 탐사하듯 좌우로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지팡이에는 마녀의 사역마인 그림자 짐승들이 접근하면 환한 빛이 나오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바로 뒤따르는 같은 분대의 10명은 방어막과 보호 마법을 걸어 그림자 짐승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공격하더라도 큰 부상을 입지 않게 보조했다.

마법을 구사하기 힘든 환경인 만큼 다소 낭비처럼 느껴질지라도 어쩔 수 없었다.

제아무리 전투에 익숙한 전투 마법사들이라도 기본적으로 허약한 마법사들이었다.

경보 마법으로 습격을 미리 알아내도 반응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에인, 허수아비의 위치를 추적해라.”

부대장의 지시에 2분대장인 흑갈색 머리의 여 마법사는 주문을 외우며 숲의 마력 흐름에 집중했다.

숲의 마력이 과하게 고여 있고 흐름이 격렬한 탓에 장거리 마력 탐지 마법은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허수아비의 거대한 존재감은 마력 흐름 자체를 왜곡시켰기에 찾기 수월했다.

혼탁한 물속에서 작은 자갈은 찾기 힘들어도 몸집보다 큰 바윗덩어리는 그나마 찾기 쉬운 것과 같다.

“발견했습니다. 현 위치로부터 남서향 3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력 소모가 심한 숲에서 넓은 구역을 탐사하다 보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고생했다. 지금부터 ‘성긴 그물 작전’을 시작한다.”

성긴 그물 작전은 3, 4분대가 쐐기를 박고, 관리 2, 3대의 추가 지원이 오기 전까지 허수아비의 시선을 끄는 작전이었다.

육체적 능력이 부족한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만큼 근접전은 상정하지 않고 부대원들이 최대한 넓게 산개하여 원거리 차륜전을 펼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당연히 넓은 범위에서 따로따로 움직이는 만큼 유기적인 움직임을 위해 분대장을 중심으로 통신 마법이 어지럽게 오고 갔다.

허수아비가 있을 거라 파악된 위치를 중심으로 산개한 부대원들은 연습한 대로 허수아비가 보이지 않을 거리에서 포위망을 형성했다.

-여기는 1-1, 작전을 시작하겠다. 1-13은 움직여라.

부대장은 귓가의 마력파 수신 마도구의 감도를 최대한 높이며 전음 마법에 귀를 기울였다.

숲의 마력 탓에 노이즈가 심하게 끼었지만 다행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1-13, 공격을 시작하겠다.

1분대장의 지시에 따라 1분대의 분대원 중 허수아비와 가장 가까운 이가 마법을 날렸다.

검은 안개 사이로 선명한 붉은 빛이 번쩍였다.

등불로 사용하는 귀화(鬼火)와는 달리 살상을 목적으로 한 화염 구가 날아가는 빛이었다.

-여기는 1-13! 허수아비가 이쪽으로 온다! E3으로 이동하겠다!

화염 구를 날린 분대원은 작전대로 동북쪽 3시 방향으로 날았다.

마력 효율이 좋지 못한 데다 빽빽한 나무로 가득한 숲에선 비행 마법은 비효율적이었지만 허약한 마법사의 다리로 뛰어봤자 금방 잡힐 게 분명했다.

-여기는 2-24! 1-13을 확인!

2분대의 분대원이 도주하는 1분대의 분대원을 확인하는 전음이 들려왔다.

-허수아비를 요격하겠다! 넷! 삼! 둘…!

그러고는 다시금 붉은 빛이 검은 안개를 뚫고 번쩍였다.

-여기는 2-24! 허수아비가 경로를 변경! W7로 이동하겠다!

2분대의 분대원은 서남쪽 7시 방향으로 향했다.

허수아비는 사재의 마녀의 사역마에 걸맞게 굉장히 강력했지만 행동 패턴은 단순했다.

사실상 생각을 하지 않고 본능적인 직감에 의존하여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허수아비의 본능은 단순히 직감을 넘어 하나의 능력이나 마찬가지였다.

흉포하고 날카로워서 시야가 트이고 적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허수아비가 지닌 능력 중에서 가장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짙은 마력으로 감각에 혼란을 주고 검은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는 환경에서는 흉포한 본능은 오히려 허수아비에게 독으로 작용했다.

멀리서 공격해 온 이를 쫓다가 다른 방향에서 공격이 들어온다면 바로 위험 대상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여기는 1-26. 허수아비 경로 변경, W11로 이동.

-여기는 2-12, 1-26을 확인. 요격을 준비하겠다. 오, 넷, 삼, 둘…!

관리 1대의 부대원들은 서로 돌아가며 공격하고 미끼가 되어 시선을 끌었다.

허수아비가 공격한 이를 쫓을 때 마력을 소모한 이들은 휴식을 취하며 마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합이 잘 맞는다고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으악! 여기는 1-17! 그림자 짐승들의 습격이다!

-여기는 1-1! 1-12와 1-19는 1-17을 구하라!

-여기는 2-1! 1-19의 자리는 2-19가 메워라!

숲속에서 봉인된 마녀를 지키는 건 허수아비뿐만이 아니었다.

-여기는 1-14, 허수아비의 경로 변경을…! 으아악!!

그리고 아무리 전투 상태일 때 본능이 앞서는 허수아비도 무작정 돌진하진 않았다.

다른 누구보다도 숲의 지리에 익숙한 허수아비는 때때로 지형지물을 이용해 도망치는 적을 따라잡아 거대한 낫으로 두 동강 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관리 1대는 희생을 줄이며 연습한 대로 능숙하게 허수아비의 시선을 끌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는 1-13, 지지직… 허수아비를… 지직! 공격하겠다!

전음 마법에 노이즈가 조금씩 심해지더니 소리가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1, 여기는 1! 전 부대원 수신 감도를 재조정하라! 다시 한번 전파한다! 전 부대원 수신 감도를 재조정하라!”

음차원의 마력에 음성 정보의 유실이 크다 판단한 부대장은 귓가의 수신기 감도를 더 높였다.

-여기… 2-18, 허… 수… 아비의… 지지직! 오, 좋은 마독… 지직! …확인! 요겨겨겨! …넷, 삼, 두두두...!

-여기는… -24, 허… 지지직! 하얀 팔… 지직! 의 경로…지직!

위치를 노출할 각오를 하고 수신 감도를 높였건만 노이즈는 더 심해졌다. 게다가 전음 사이로 이상한 말까지 섞여 있었다.

-여기는 1-18.

그때 갑자기 언제 노이즈가 심해졌냐는 듯이 소리가 말끔해졌다.

-이제 남은 건 당신뿐이다, 오버.

한 점의 잡음 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처음 듣는 이의 것이었다.

순간 소름이 돋아 수신기를 뜯어내려는데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꿍~!”

푹!

부대장은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을 보며 경악했다.

땅에 쓰러지며 본 마지막 광경은 금발의 유약해 보이는 소년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