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허수아비의 기도 (8)
다섯 번째 안전 가옥에 발을 들인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왜 그럽니까?”
바로 뒤따라 들어오던 야드의 물음에 나는 잠시 멈추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이상해.”
“뭐가?”
야드 바로 뒤에 서 있던 소피아가 야드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고, 나는 내부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오두막 안에 사람이 방문한 흔적이 있어.”
현관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흙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사람이 누운 듯 먼지가 눌리고 쓸린 자국이 있고, 거실에 놓인 테이블은 먼지를 닦아낸 듯 유독 깔끔했다.
닦을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 테이블과 의자 아래 먼지가 뭉쳐 떨어져 있었다.
내 말에 프레시아와 제이드가 내 양옆을 호위하듯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어. 이미 자리를 떠난 모양이니까.”
계속해서 살펴보니 다른 안전 가옥에 비해 비축된 식량이 적었다.
무엇보다 나름대로 정돈 되어있던 다른 곳과 달리 수건과 세면대의 물기가 아직 젖어 있었다.
“인원은 적어도 세 명, 많으면 다섯 명.”
먼지가 앉은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크기와 밑창 문양으로 분류하면 네 명 정도인가?
숫자가 적다.
숲을 관리하는 담당자는 ‘아르카나 01, 마술사’.
마술사가 숲을 관리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낼 때는 적어도 열 명 이상은 보냈으니 이 숲의 관리자들은 아니겠군.
그렇다면 아르카나에서 별도로 임무를 위해 소수의 별동대를 파견한 건가?
그렇다면 이 숲의 설계자인 ‘매달린 사람’은 포함되어 있을 거다.
관리 목적이 아닌 소수의 적이라, 뭐가 목적이지?
별자리 미궁에 아멜리가 치천사의 창각을 노리고 왔던 것처럼 또 소설보다 빠르게 사건이 진행되는 건가?
“수건의 물기로 보아 적어도 4시간 전까지는 이곳에 있었던 것 같네.”
마녀의 숲은 빛이 들지 않고 한여름임에도 서늘함이 감돌아서 물기도 느리게 말랐다.
젖은 수건은 세 개, 그중 유독 많이 젖은 게 하나. 이곳에 온 사람 중 하나는 여성, 혹은 장발의 남성이다.
오두막 내부에 욕실이 구비되어 있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씻기에는 저항감이 들 테니 샤워는 아니고 간단히 씻는 정도일 거다.
이렇게 수건이 젖었다는 건 긴 머리칼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였다.
긴 머리카락이라, 누구지?
이곳에 투입될 넘버즈 간부 중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넘버즈가 아닌 고위 간부 중 한 사람인가?
아니, 여기 온 ‘매달린 사람’의 분신이 여성체일 경우도 있겠구나.
“유안 군, 여분의 옷을 갈아입은 모양입니다.”
야드는 옷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옷가지를 발견했다.
옷 중에는 피가 묻고 찢어진 것도 있었다. 누군가 부상을 입었군.
하지만 피의 양이나 찢어진 크기를 보면 큰 부상은 아니었다.
“부상을 입었다라….”
이상하다. 어째서 부상을 입었지?
내 추측대로 '매달린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면 굳이 그림자 괴물들과 싸우며 숲을 돌아다닐 이유가 없을 텐데?
내가 사용한 나뭇잎에서 숲 전체의 마력 흐름을 알아내는 방법은 소설 속에서 '매달린 사람'이 사용한 방법이다.
'매달린 사람'이 안 왔나?
…아니면 설마 아직 지금 시점에는 나뭇잎을 통해 마력 흐름을 관측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건가?
“도련님, 왜 갑자기 그렇게 웃습니까?”
프레시아가 내 환한 미소에 한 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아아, 별거 아니야. 그냥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림자 괴물들을 못 피한다면 찐한 소개팅을 주선해 주는 게 인지상정인 법.
나는 금고를 털고 오두막에서 나왔다.
다섯 곳의 안전 가옥을 털며 얻은 거라고는 숲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하얀 팔찌 2개, 대(對) 그림자 괴물 전용 섬광탄 15개, 검은 오팔 84개, 정체 모를 마법 시약 4병이 전부였다.
곤란하다. 가장 필요한 하얀 팔찌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었다.
실루아와 야드 몫의 팔찌도 있어야 할 텐데. 다른 안전 가옥에 있을지 모르겠다.
귀찮지만 다른 방법으로 마법을 사용해야 하나?
“이제 부숴도 돼.”
“알겠다.”
내 말에 허수아비는 듀라한을 조종해 열심히 다섯 번째 오두막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야.”
“왜?”
내 부름에 허수아비는 왜 부르냐며 날 바라봤다.
“이 숲에 우리 말고 침입자가 더 있다는 거 알고 있었지?”
침입자가 있다면 허수아비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숲에서 마력 흐름과 그림자 짐승들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잘 느끼는 게 허수아비다.
내 물음에 허수아비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 대답에 나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마녀의 봉인을 풀기 위해 협력을 하고 있으면 알아서 말해 줬어야지!
얼굴만 사람이지, 대가리 속이 짚으로 채워진 새끼.
뇌가 없는 허수아비에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나 보다.
“저 오두막 안쪽에 사람이 있던 흔적이 있었다.”
“그렇군…?”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짚 대가리 허수아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쯧쯧,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이래서 짚 대가리는 안 돼.
“하아~!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저 오두막은 아르카나 것이고, 흔적이 있다는 건 우리 말고 다른 쪽 침입자들은 아르카나 소속이라는 말이야. 이해했어?”
아르카나가 왔다는 말에 허수아비는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지팡이를 꽉 쥐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야야, 진정해. 지금 쳐들어가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거든.”
숲에 아르카나가 들어와 있다는 건 그쪽도 안전 가옥이 실시간으로 박살 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관리인들을 불러들였을 거란 이야기였다.
아무리 허수아비가 있고 마녀가 봉인당하기 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림자 괴물들을 풀었다고 해도, 이 숲은 아르카나가 만든 곳이다.
아르카나에게 유리한 것들이 가득하다는 말이었다.
빈집 털이로 편하게 가나 싶더니만, 꽤나 고생하게 생겼다.
“그리고 최대한 숲 내부로 끌어들여서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어야 재미있지.”
* * *
“또 안전 가옥이 사라졌습니다.”
‘매달린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일곱 번이나 듣는 소리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두 번째 파괴를 느꼈을 때까지는 그래도 허수아비가 정말로 운이 좋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기대를 했다고 말해야 옳았다.
그 기대가 벗어나지 않도록, 그래서 관리인들을 긴급 소집한 게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어서 욕이나 들어먹었으면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대는 안전 가옥과 함께 박살 나버렸다.
“관리 인력은 언제쯤 올까요?”
로우어펠의 물음에 자반은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마녀의 숲은 아르카나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봉인한 마녀가 있었기에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그런 만큼 숲 인근에 누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상주 관리인이 있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전투 인력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마술사’의 직속은 수도에 있겠지만 준비된 관리인 전력은 서부전선 인근의 마도병단에 있을 테니까. 급하게 온다면 슬슬 숲에 도착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야.”
전투가 가능한 마법사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대상인 만큼 마법사들이 장기간 모여 지내도 의심을 사지 않을 장소가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녀의 숲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서부전선의 마도병단은 최적의 대기 장소였다.
“광대, 일단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할 준비를 계속하죠. 가뜩이나 수레바퀴의 예지 때문에 앞으로 몇 년이나 뒤에 예정되어 있던 작전을 급하게 당겼는데 차질이 생기게 할 순 없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수레바퀴는 지금 사태를 예지했기에 급하게 자신들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때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듯 종이 새 하나가 내려왔다.
손에 닿은 종이 새는 원래 종이의 모습으로 변하며 편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관리 1대 도착. 현 시간부로 숲에 진입 시작. 2, 3대는 순차적으로 도착 예정.
‘아르카나 01, 마술사’의 부하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잘됐어. 허수아비에 대한 건 마술사 일파에게 맡기고 움직이면 될 것 같네.”
자반은 품 안의 창백한 보석을 쓸어 만지며 숲 중앙 방향을 바라봤다.
* * *
마녀의 숲 입구에 화려한 자수가 놓인 마도병단 망토를 입은 이들이 모였다.
“관리 1대 1분대 총원 20, 열외 없음, 이상 보고 끝.”
“관리 1대 2분대 총원 20, 열외 없음, 이상 보고 끝.”
“관리 1대 3분대 총원 20, 열외 5, 전투 지원 5, 현 인원 15. 이상 보고 끝.”
“관리 1대 4분대 총원 20, 열외 10, 전사(戰死) 2, 부상 3, 전투 지원 5, 현 인원 10. 이상 보고 끝.”
총 65명의 전투 마법사가 군기 잡힌 모습으로 오와 열을 맞춰 섰다.
그들은 아르카나 소속이기도 했지만, 서부전선 예하 마도병단 소속이기도 했기에 모든 인원이 긴급히 내려온 명령에 모이진 못했다.
관리 2대와 3대가 곧장 마녀의 숲으로 오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았기에 갖은 절차와 보고를 생략하고 올 수 있는 모든 인원이 투입되었다.
오랫동안 군대에 소속되어 있어 군기가 잡혀 있는 전투 마법사들 앞에 그들을 이끄는 중년의 부대장이 앞에 섰다.
“지금부터 긴급 작전을 수행한다. 작전의 목표는 숲 내부를 돌아다니는 마녀의 사역마 허수아비가 쐐기를 파괴하는 것을 막고, 나아가 봉인 쐐기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을 파악해 파기하는 것이다. 작전 개요는 다음과 같다.”
부대장은 허공에 마법으로 숲 내부 지도를 띄워 놓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열외 인원이 없는 1분대와 2분대가 허수아비의 시선을 끄는 사이 3분대와 4분대가 오두막의 역할을 대신해 줄 일회용 쐐기를 박아 봉인이 흔들리지 않도록 막는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허수아비가 안전 가옥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을 회수하거나 아르카나에서 전력을 투입할 시간을 벌 순 있을 터였다.
관리 1대가 허수아비가 안전 가옥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까지 찾으면 좋겠지만, 그들만으로는 불가능할 테니 후속 부대인 2대와 3대에 맡긴다는 게 작전의 골자였다.
“질문 사항 있나?”
브리핑을 끝낸 부대장의 물음에 한 마법사가 손을 들었다.
“뭐지?”
“허수아비가 안전 가옥을 파괴하는 게 문제라면 허수아비를 파괴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처리하자는 질문에 부대장은 질문한 부대원을 노려봤다.
“…신입이군. 그래, 신입이면 모를 만하지. 숲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역마는 평범한 사역마가 아니다. 우리 관리 부대의 전력으로는 정면 승부가 불가능하다. 상대는 지리적인 요소와 원거리 공격으로 지연전을 펼치는 게 고작인 괴물이다.”
부대장의 설명에 신입이라 불린 마법사는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강력한 전투 마법사로 이루어진 동료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걸 보고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희만으로 부족하다고 해도 상부라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불가능하진 않지. 봉인이고 나발이고 다 박살 낼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투사하면 허수아비도 소멸할 거다. 봉인과 함께 말이지.”
부대장의 어이없다는 말에, 반박을 한 부대원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봉인이 박살 나면 당연히 숲 중앙에 잠들어 있는 마녀 또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할 거고, 봉인이 풀린 마녀는 소멸한 허수아비부터 되살릴 거다.
그러고는 자신을 봉인한 아르카나를 상대로 게릴라를 펼칠 터였다.
“자, 그럼 이제 내부로 진입한다. 전원 팔찌를 착용하도록.”
전투 마법사들은 일제히 하얀 팔찌를 착용했다.
아르카나의 숲 관리 1대는 긴장된 발걸음으로 숲속에 들어갔다. 그 안에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