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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206화 (206/214)

제206화. 허수아비의 기도 (7)

앞장서서 숲을 헤쳐 가는 나는 수시로 귀화가 담긴 랜턴을 흔들어 나뭇잎에 나타나는 숲 전체의 마력 흐름을 읽어냈다.

“이쪽이야.”

시시각각 마력 흐름의 변화를 타고 표류하듯 움직이는 아르카나의 안전 가옥은 정확한 규칙성을 알지 못하면 찾기 힘들었다.

반대로 말하면 흐름만 알면 딱히 규칙성 따위 몰라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숲의 마력 흐름은 사재(四災)의 마녀를 봉인하는 만큼 그 흐름이 괴랄했는데, 이 흐름에 따른 복잡한 규칙을 아는 건 아르카나 중에서도 ‘매달린 사람’을 비롯한 몇 명뿐이었다.

아, ‘매달린 사람’만 몇십 명은 되니 의외로 많은 셈인가?

‘매달린 사람’은 마녀 도로시에 의해 영혼이 백여 조각으로 나뉜 뒤로, 아르카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열심인 마법사였다.

영혼이 백여 조각으로 나뉜 탓에 인간성이 불완전해지고 시시때때로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오는 처지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만능 석판 ‘판도라’가 필요했다.

내가 보기엔 그 꼬라지면 그냥 깔끔하게 죽는 편이 더 편하고 쉬울 것 같은데 말이야.

뭐, 영혼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진하니까.

죽는다고 파편화된 영혼이 다시 하나로 뭉치리란 법도 없었다.

“음, 대충 여기쯤인 거 같은데.”

주변을 살펴보며 앞으로 걷다 보니 내 앞에 갑자기 신기루처럼 오두막 하나가 나타났다.

찾았다, 아르카나의 안전 가옥이다.

안전 가옥을 확인한 허수아비는 놀라서 날 바라봤다.

“어떻게 찾은 거지?”

“잘.”

실제로도 그냥 잘 찾아왔을 뿐이다.

“하긴, 어떻게 찾았는지는 상관없지. 중요한 것은 저 바퀴벌레 소굴을 없애는 거니까.”

바퀴벌레 소굴이라니, 절묘한 표현이구만.

나는 허수아비가 오두막을 없애기 전에 손을 들어 말렸다.

“부수는 건 이따가 하고 조금만 기다려 봐.”

나는 일행들과 함께 안전 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안에는 의식주가 전부 갖춰져 있었다.

신선 식품은 없지만 각종 말린 보존식, 침낭과 다양한 사이즈로 준비된 여분의 갈아입을 옷이 몇 벌 보관되어 있었다.

숲을 관리하는 놈들의 유니폼인가? 옷이 다 똑같이 생겼다.

아까우니까 모두 챙겨 가기로 하자.

혹시 써먹을 때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아르카나가 꾸준히 방문하는 모양이네.”

먼지가 쌓여 있고 묵은 공기가 매캐하게 깔려 있는 걸로 봐선 몇 달 정도는 사람이 온 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삭거나 녹슨 부분이 없는 걸로 봐선 매년 관리를 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이 숲은 아르카나가 막대한 희생 끝에 봉인한 마녀가 있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다.”

안전 가옥에 보관되어 있는 비밀 금고를 찾았다. 마법이 아니라 기계식으로 이루어진 금고였다.

안전 가옥은 숲의 마력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면역인 것은 아니라 마법식 금고는 고장 날 위험이 크기 때문이겠지.

나는 금고에 귀를 가져다 대고 천천히 금고 다이얼을 돌렸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틱르륵-

그렇게 조심해서 다이얼을 돌린 끝에 ‘철컥!’ 소리가 나며 금고가 열렸다.

마법이 발달한 세계라 그런지 이런 기계식 금고는 너무 허술했다.

“전에도 생각했는데 금고 따는 법은 어디서 배운 겁니까?”

제이드의 물음에 나는 장난스럽게 웃어넘겼다.

“그냥 여기저기서. 왜? 가르쳐줄까?”

“가르쳐 주신다면야 저야 좋죠.”

제이드는 정말로 관심 있는지 눈을 반짝였고 날 지켜보던 야드도 관심을 보였다.

금고 안에는 하얀 팔찌 하나와 검은 오팔 열세 개, 그리고 작은 공같이 생긴 마도구가 두 개 있었다.

“제이드, 이거 받아. 그리고 이건 야드.”

팔찌는 제이드에게, 작은 공은 야드에게 줬다.

“하얀 팔찌는 이 숲에서 마법을 제한적이게나마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전용 마도구고 그 누런 공은 섬광탄이야. 그림자 괴물에 즉효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던져서 터트려.”

팔찌를 제이드에게 먼저 챙겨준 이유는 그가 사계의 현자이기 때문이다.

마력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마녀의 마법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섬광탄은 야드가 가장 제구력이 높으니 나오는 족족 야드에게 챙겨줄 생각이다.

검은 오팔은 내 주머니에 집어넣고 오두막을 나섰다.

“자, 챙길 건 다 챙겼으니까 부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내 말에 허수아비는 랜턴이 달린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일어나라, 루실후르.”

그러자 숲의 그림자에서 목 없는 여성 듀라한이 나와 두 주먹에 푸른 귀화를 두르더니, 주먹으로 오두막을 부수고 불태웠다.

잘 타네. 역시 싸움 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는 게 불장난이었다.

평범한 불과 다르게 냉기를 내뿜으며 활활 타오르는 광경은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한여름에 입김이 나는 경험은 쉽게 하기 힘들었다.

“저거 철완(鐵腕) 루실후르지?”

내 물음에 허수아비는 이해 못 했는지 고개를 까닥거렸다.

“철완은 모르겠지만 루실후르다. 동료가 그렇게 부르더군.”

철완 루실후르는 내 재종조인 호국공보다 반 세대 정도 앞선 인물로, 지금 듀플리온 왕국과 자잘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의 전사였다.

주로 검이나 창을 사용하는 이들과 달리 독특하게 맨손 격투로 초인까지 된 걸로 유명했다.

보통 초인 중에 맨손 격투를 잘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두 주먹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프레시아처럼 규격을 벗어난 천재가 아니라면 초인이 되기 위해선 목숨을 건 전투를 수없이 치러야 한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자신의 심상을 바로 세울 만큼 치열한 격전 속에서 살아남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철완은 그런 짓을 성공한 만큼 대단한 무인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왕국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괴물이다.

나는 그런 듀라한을 가리키며 허수아비에게 당당히 요구했다.

“쟤, 나 주라.”

“...? 싫다.”

내 요구에 허수아비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허수아비의 거절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마음 바뀌면 언제든 말해. 자, 다음 장소로 가자고.”

나는 앞장서서 나아갔다.

오두막은 얼마나 부숴야 입질이 오려나? 기대되네.

* * *

아르카나의 안전 가옥에서 휴식과 재정비를 마친 ‘매달린 사람’은 숲 중앙으로 향하기 위해 오두막을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 숲을 휘감는 마력의 흐름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전 가옥이 하나 사라졌습니다. 오두막 안에 있어서 몰랐는데 적어도 2시간 이내에 파괴된 듯하군요.”

아르카나가 숲 이곳저곳에 세워둔 안전 가옥은 단순히 숲을 관리하는 조직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둔 게 아니다.

오두막은 그 자체만으로도 쐐기로서 숲의 음차원 마력을 붙잡아 두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숲에 가득 찬 음차원의 마력은 숲을 유지하는 근원이자, 봉인에 지속적으로 마력을 공급하는 자원이었다.

마력은 기본적으로 양차원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성질이 있기에 음차원의 마력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결국 언젠가는 고갈되어 봉인이 풀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안전 가옥의 소멸은 봉인 유지 시간을 단축시키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매달린 사람’의 말에 자반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괴물이 또 파괴한 모양이네, 참 무서운 괴물이란 말이지.”

어차피 안전 가옥의 파괴는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었다.

마녀의 권속인 허수아비는 안전 가옥이 봉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카나 소속의 봉인 관리 인원이 숲에 들어오면 오두막에 숨는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렇기에 허수아비는 안전 가옥을 발견할 때마다 파괴하곤 했다.

“으음~ 그런 것 같긴 한데… 저번 소실 이후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또 안전 가옥이 사라지면 계산이 틀어져서 말이죠.”

안전 가옥은 기본적으로 허수아비에게 파괴될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안전 가옥이 파괴되면 관리 인원들이 다시 시간을 들여 안전 가옥을 원상 복구해 놓는 거다.

하지만 마녀를 봉인하는 마법이 특별한 만큼 안전 가옥을 복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잇달아 쐐기가 파괴된다면 봉인을 유지하는 틀이 무너져 내릴 수 있었다.

허수아비가 오두막을 발견할 시기를 계산하여 봉인이 유지되도록 계산한 것도 ‘매달린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영혼이 파편화되기 이전의 ‘본체’가 계산했다.

‘매달린 사람’의 걱정에 로우어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일이라도 있겠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번 숲의 마력 흐름이 바뀌었다.

흐름의 변화를 피부로 느낀 ‘매달린 사람’과 자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마력 흐름의 변화가 의미하는 건 명백했다.

“...안전 가옥이 또 파괴됐습니다.”

“허수아비가 미친 괴물이라지만 오두막을 찾을 방법은 없을 텐데 어떻게?!”

“이건 긴급 상황입니다. 숲의 ‘관리인’에게 연락하겠습니다.”

‘매달린 사람’은 마법으로 종이 새를 만들어 높이 날렸다.

“이 숲을 관리하는 건 ‘마술사’였던가요?”

로우어펠의 물음에 자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그는 오지 못할 거다. 아마 부하들을 보내오겠지.”

“어? 왜요? 이 정도 일이면 본인이 직접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로우어펠의 말은 타당했다.

만약 허수아비가 안전 가옥을 발견할 방법을 찾았다면 관리 책임자인 ‘아르카나 01, 마술사’는 당장 숲으로 와야 했다.

“그의 신분을 생각해라. 마탑 내부에서 ‘마술사’와 ‘삭풍(朔風)의 현자’의 내부 항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심지어 여름 열매의 현자까지 삭풍의 현자를 지원하고 있으니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다.”

마도팔현(魔道八賢) 중 한 사람, ‘삭풍의 현자’ 위즐 백작은 마탑 내부의 비밀 결사 ‘그림자 탑’과 치열하게 내전 중이었다.

‘아르카나 01, 마술사’는 그림자 탑의 탑주였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다.

자반의 말에 ‘매달린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사태의 심각성은 알 테니 적어도 마스터 클래스 이상으로 이루어진 마법 사단을 보내올 겁니다. 어쩌면 ‘탑’과 ‘죽음’도 올 수 있겠네요.”

아르카나의 간부이자 그림자 탑의 간부인 퍼펫 마스터 니벨과 음차원의 마력을 능숙히 다루는 네크로멘서 아리사라면 큰 전력이 될 터였다.

로우어펠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런데 이 숲에서 마법사들보다는 기사들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 안에서 마법은 약해지잖아요.”

그의 지적에 ‘매달린 사람’은 피식 웃었다.

“오히려 마법사들이 더 낫습니다. 검기나 검강도 쉽게 흩어지는 숲의 특성 탓에 기사들도 약화되는데 ‘그’ 허수아비를 상대로 근접전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그녀의 말에 로우어펠은 그의 숙부에게서 전설처럼 들은 일화들을 떠올렸다.

말레콥 제프리즈 또한 과거 마녀를 봉인하는 전투에 참전했기에 생생한 경험을 조카에게 전해주었다.

“마녀를 봉인하던 당시, 마법사 전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기사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원거리 견제 수단이 없는 허수아비는 마법사가 상대하는 게 정석입니다.”

한숨을 내쉰 그녀는 숲 안쪽으로 향하며 씁쓸하게 말했다.

“허수아비도 마녀와 오랫동안 연결이 끊어져 있어서 상당히 약화됐을 테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 생각하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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