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허수아비의 기도 (5)
빛 한 점 들지 않는 숲을 푸른 불빛에 의지해 걷다 보니 공포 영화 속처럼 느껴졌다.
사라락~!
“으힉!”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 길버트는 깜짝 놀라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허리춤에 매인 검은 난쟁이가 벼린 검이 아닌 아멜리가 준 축성(築聖)검이었다.
숲을 돌아다니는 그림자 괴물은 기본적으로 저주로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근간이 저주라는 말은 신성력에 큰 데미지를 입는다는 말과 같았다.
성녀인 소피아가 축성을 걸면 더 효과가 좋겠지만, 이곳의 환경을 고려하면 성직자가 거는 축성은 제한 시간이 있어서 꾸준히 신성력을 발하는 축성검이 더 나았다.
“제,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도련님!”
덜덜 떨면서 누가 누굴 지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긴장한 건 길버트뿐만 아니었다. 이런 환경에 전혀 면역이 없는 프레시아와 제이드, 실루아, 아바스엘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아니, 마법사 세 사람은 마법을 거의 쓰지 못하는 환경 탓인가?
“실루아, 여차할 때는 난 도움이 안 되니 프레시아의 옷자락을 잡으렴.”
실루아는 무서운 듯 두리번거리며 내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실루아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더 내게 달라붙었다.
“아니에요, 전 오빠를 믿어요. 프레시아 언니도 오빠를 가장 먼저 구할 거고요.”
이런 영악한 꼬마를 보았나. 일이 터지면 나랑 같이 구해지겠다는 심보가 마음에 들었다.
음음, 흡족하구만. 이대로만 커다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실루아의 키가 큰 것 같았다.
역시 성장이란 걸 하는 건가.
“신기하군요. 이렇게 빛이 들지 않는데 나무가 이렇게 무성히 자라다니.”
반면 야드는 아무렇지 않게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뭘 적는 거야?”
내 물음에 야드는 별것 아니라며 싱긋 웃었다.
“나중에 서커스 기믹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역시 유안 군을 따라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남들은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할 것들을 많이 경험하니 말입니다.”
하기야 나와 함께하면서 대규모 흑마법 의식과 고대 유적, 그리고 이런 숲까지 와보니 그런 말이 나올 만했다.
“너는 괜찮아 보인다?”
내가 소피아를 보며 묻자 소피아는 별게 다 무섭다며 코웃음을 쳤다.
“신께서 날 보호하실 텐데 잡귀 따위야.”
대단한 자신감이다. 역시 소피아다웠다.
나는 귀화가 담긴 랜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오른쪽으로 조금 꺾자. 저 나무가 있는 방향.”
내가 한 나무를 가리키자 선두의 프레시아가 진로를 꺾으며 정글도로 수풀을 베어 길을 만들었다.
“유안, 길은 어떻게 아는 겁니까?”
제이드는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내 길잡이 방법이 신기한 듯 물었다.
“별거 아니야. 야드가 이렇게 빛이 안 드는 숲에서 나무가 잘 자라는 게 신기하다고 했지?”
“예, 그랬죠.”
“이 숲의 나무는 너무 오랫동안 음차원의 마력에 노출되면서 음차원의 마력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는 특이한 성질을 띠게 되었어.”
내 설명에 세 명의 마법사는 눈을 반짝였다. 저거, 희귀한 마법 재료를 발견했다는 눈이구만.
“그 탓에 이 나무들은 숲의 마법을 이루는 한 축이 되었고, 또 그 덕분에 나뭇잎 앞에 귀화로 만든 불빛을 흔들어보면 숲 전체의 마력 흐름을 대강 알 수 있게 되었지.”
제이드는 바로 손가락을 튕겨 도깨비불을 만들어 나뭇잎 앞에 흔들었다.
“오! 진짜네요! 나뭇잎 표면이 미세하게 변하면서 그림자가 순환하듯 움직입니다.”
“우리가 숲에 들어온 방향과 숲 중심까지의 거리를 대충 계산하면 현 위치도 알 수 있어.”
숲에 널린 나뭇잎들이 일종의 지도인 셈이었다. 숲을 돌아다니는 그림자 괴물도 마력으로 육신이 구성되는 만큼 나뭇잎의 그림자로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마력을 방출할 수 있기 전까지 그림자 괴물들을 마주치는 건 사양이었다.
그놈들은 한 놈이 보이면 보이지 않는 근처에 수십 마리는 있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다.
심지어 마법의 일종이라 물리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되살아나기까지 한다.
“신기하네. 유적에서도 별걸 다 안다 싶었는데,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소피아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었고 제이드가 나 대신 대답했다.
“유안은 책을 많이 읽어서 압니다. 그렇죠?”
능청스레 내게 동의를 구하는 제이드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제이드도 내 정보의 출처가 궁금하긴 한 모양이었다.
“맞아.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지.”
당연하게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설명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고 말이야.
소피아는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바스엘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께선 모든 걸 알고 계신다.”
마터호른산에서 마법을 되찾은 이후로 가끔씩 아바스엘은 부담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야. 그냥 남들보다 약간 더 아는 거지.”
그 약간이 조금 크긴 하지만 진심이었다.
“뭐, 비밀인 거면 어쩔 수 없지.”
내 대답에 소피아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고 넘겼다.
“그런데 이 숲에 들어온 이유는 뭐야?”
“묻는 게 늦지 않아?”
내 되물음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일행들을 훑어봤다.
“누군가는 물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묻길래.”
마지막으로 시선을 받은 제이드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물어도 안 가르쳐줄 것 같았거든요. 알다시피 성격 나쁘시잖아요.”
“야! 너무하네, 나만큼 성격 좋고 잘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 항변에 제이드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물론 유안이 하는 일이니 의미가 있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숲속을 걸으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일행들의 긴장도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길버트와 실루아는 아직도 무서운지 뻣뻣하게 움직였지만 말이다.
“숲에 들어온 이유는 별것 아니야. 이 숲 중앙에서 만날 사람이 있거든.”
“만날 사람? 누구?”
소피아의 물음에 나는 악동처럼 짓궂게 미소 지었다.
“그건 비밀.”
* * *
“으하~! 드디어 도착이다!”
로우어펠은 산발이 된 상태로 주저앉았다.
그의 옷은 땀으로 절여져 있었고, 곳곳에 고생한 듯 흙과 나뭇잎이 붙어 있었다.
“여기가 안전 가옥인가.”
자반도 한껏 고생한 듯 옷에 핏자국이 배어들어 있었다.
끝없이 몰려드는 그림자 짐승들을 상대하느라 입은 상처였다.
부상은 실력 좋은 의사인 로우어펠이 처치하고, 마녀의 숲에 오기 전 아멜리에게 지원받은 성수로 봉합했다.
지원받은 성수는 대부분 상급이었지만 신성력과 상극인 음차원의 마력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인 만큼 성수에 담긴 신성력이 빠르게 휘발되어 갔다.
“휴식 요망.”
‘은둔자’ 오스먼드도 지친 듯 마법 지팡이에 체중을 실으며 숲속에 지어진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두막은 아르카나가 숲을 만들면서 지어둔 안전 가옥으로, 숲의 마력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몇 없는 장소였다.
오두막으로 들어간 로우어펠과 오스먼드는 곧바로 쓰러지듯 누웠다. 먼지가 쌓여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저 당장은 쉴 수만 있으면 족했다.
“아- 마력이 지랄 맞은 환경이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두 사람은 안 힘들어요?”
로우어펠은 오두막에 들어오고도 퍼지지 않고 짐을 풀며 휴식 준비를 하는 자반과 ‘매달린 사람’을 보며 물었다.
“안 힘들 리가 있나. 애초에 외부인의 접근을 막으려고 이 숲을 만들었는데.”
자반의 말에 누워서 발과 발을 비비며 대충 장화를 벗은 로우어펠이 물었다.
“이 숲을 누가 만들었는데요?”
그 물음에 죽은 듯이 누워서 앓는 소리를 내던 오스먼드가 말했다.
“바보.”
“갑자기 뭐예요! 전 숙부한테 천재 소리 듣고 자랐거든요!”
로우어펠이 분개하자 ‘매달린 사람’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연인, 당신 브리핑 자료 안 읽었군요. 이 숲을 만든 건 아르카나입니다.”
“네? 아르카나가요? 왜요?”
로우어펠이 놀라자 오스먼드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멍청이.”
“우이씨! 멍청이 아니거든요!”
로우어펠은 일어날 생각 없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양말도 벗었다.
땀이 차서 갑갑했던 발이 자유로워지자 로우어펠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마저 물었다.
“이 숲을 아르카나가 만들었으면 저 지랄 맞은 그림자 괴물은 왜 저희를 공격하는 거예요?”
그의 질문에 매달린 사람도 갑갑했던 방어구를 풀었다.
“저 그림자 짐승들은 아르카나가 만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가방 속에서 간편식을 꺼내 동료들에게 건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숲은 아르카나가 어떤 마녀를 봉인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마법진입니다. 숲을 가득 메운 음차원의 마력은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고, 우리가 손목에 차고 있는 마도구도 이 숲을 관리하기 위해 있는 거죠.”
“그럼 그 그림자 괴물들은…?”
“말했듯이 아르카나가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런 괴물들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요?”
로우어펠이 경악하자 그녀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봉인된 마녀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풀어놓은 소환수입니다.”
“봉인되었는데 저만큼이나 소환수를 부린다고요?!”
“부린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마녀는 봉인당하기 직전, 숲의 마력을 역이용해 숲에 들어온 모든 이들을 공격하라 명령했을 뿐, 마녀가 조종하는 게 아닙니다.”
그녀의 정정에 로우어펠은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대단한 사람이었나 보네요.”
“예, 대단한 사람이었죠. 그녀는 무려 사재(四災)의 마녀 중 한 사람으로 사계(四季)의 현자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겨울나무의 현자와 비견되던 괴물 중의 괴물이었으니까요.”
‘매달린 사람’은 과거의 공포가 엄습해 왔는지 안색이 안 좋아지며 부르르 떨었다.
마녀를 봉인하기 위해 투입된 아르카나 넘버즈의 숫자는 무려 열세 명.
‘아르카나 00, 광대’
‘아르카나 01, 마술사’
‘아르카나 02, 여교황’
‘아르카나 03, 여제’
‘아르카나 05, 교황’
‘아르카나 07, 전차’
‘아르카나 08, 힘’
‘아르카나 12, 매달린 사람’
‘아르카나 13, 죽음’
‘아르카나 14, 절제’
‘아르카나 15, 악마’
‘아르카나 16, 탑’
‘아르카나 18, 달’.
예카트리체가 지키는 이계의 구멍의 봉인을 뒤흔들기 위해 파견한 숫자의 거진 두 배였다.
마녀를 봉인하기 위해 움직였던 이들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격전(激戰)이었고, 대간부 외의 고위 간부를 비롯한 말단까지 세자면 천 단위의 전력이 움직인 대작전이었다.
그 살아남은 사람 중에선 이 자리에 있는 ‘매달린 사람’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도 온전히 살아남았다고 할 순 없었다.
마녀와의 전투의 여파로 그녀의 영혼은 백여 조각으로 쪼개어졌고, 쪼개진 영혼의 삼분의 일은 그 자리에서 소멸해 버렸다.
영혼이 흩어져 죽는 것을 막기 위해 발악하던 그녀 혹은 그는 본체가 존재하지 않는 몇십 개의 분신들로 이루어진 군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요. 그녀가 얼마나 강력한 대마법사였건 간에 지금은 봉인되어 잠이나 자고 있는 할머니일 뿐이니까요.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숲에는 그림자 짐승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마녀의 허수아비라는 괴물이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