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202화 (202/214)

제202화. 허수아비의 기도 (3)

내가 만든 고문 기구에 시달린 지 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여관에서 체크아웃하고 나올 수 있었다.

“음, 예상보다 효율이 안 좋네요. 대맥을 강제 개발할 때는 못해도 이것보다 두 배는 더 효과적이었는데 말이죠.”

“어쩔 수 없지. 대맥과 달리 세맥은 보다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니까.”

제이드와 아바스엘은 만족스러운 듯 ‘마력회로 개발 마도구’라는 고문 기구를 개조하기 위해 내 몸뚱이를 만지작거리며 설계도를 살폈다.

“나…는, 실험… 동물이 아니…야… 이것들아!”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두 사람에게 드롭킥을 날렸다.

“어억!”

“우억!”

배를 맞고 마차 바닥에 구르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내 몸 상태를 살폈다.

기본적인 설계 근간은 게오르의 연구를 바탕으로 조정한 덕분인지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의 말대로 세맥을 개발하느라 조심스럽게 접근한 탓에 효율이 많이 나진 않았다.

대맥을 개발했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마력을 생산하는 심장 근처와 흉부의 세맥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전체적인 몸의 비율로 따지면 10분의 1 정도. 그 탓에 마력 통 자체는 그렇게까지 커지진 않았다.

하지만 마력을 생산하는 심장이 있는 흉부의 세맥을 개발한 덕분에 마력 생산량 자체는 크게 늘어났다.

비유하자면 마력을 담는 물통 크기는 큰 변화가 없지만, 수도꼭지의 크기가 훨씬 넓어진 셈이다.

“후우… 이 짓거리를 앞으로 아홉 번은 더 해야 한단 말이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그런 끔찍한 가능성은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하하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죠. 그래도 아홉 번이면 남들이 평생 하는 마력회로 개발을 모두 끝내는 거잖습니까.”

마력회로 개발은 단순히 대맥과 세맥을 넓히는 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통로를 완성시키는 것이야말로 마력회로 개발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마력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은 회로 개발보다 훨씬 고된 작업이라고 한다.

얼마나 고되냐면, 나야 처음부터 밀도가 너무 높아서 얼마나 고된지는 몰루?

“정말이지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나는 제이드의 뺨을 꼬집고 사정없이 늘렸다.

“아흐- 아흐니다.”

“아프라고 하는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러니 너도 청춘 좀 더 느껴봐.”

제이드의 뺨을 늘리며 아바스엘을 보고 미소 짓자 아바스엘은 양손을 들며 항복했다.

“제가 청춘을 구가할 나이는 지났지요, 주군.”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도 있잖아.”

나는 슬금슬금 도망가는 아바스엘에게 다가갔다.

“하하, 금시초문입니다만.”

“이리 와!”

“으아악! 주군!”

아바스엘의 뺨도 한껏 늘려준 다음 날 포박한 야드의 뺨도 늘리려 했지만, 눈치 빠른 야드는 마부를 자처하며 마부석으로 도망친 상태였다.

어차피 마차를 끄는 망아지 시리즈를 조종하는 건 실루아인데. 영악한 녀석.

“유안, 다음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눈물을 찔끔 흘리며 빨개진 뺨을 어루만지던 제이드는 창밖을 보며 물었다.

“글쎄, 다음 목적지로 생각하고 있는 곳이 두 곳 정도 있는데, 어디부터 가볼까.”

소설 속 내용을 생각해서 순서를 정하기에는 슬슬 미래가 크게 어그러진 게 느껴졌다.

별자리 미궁에서 ‘치천사의 창각’을 두고 아르카나와 경쟁하는 건 적어도 5년 뒤의 일이었어야 했다.

그것도 경쟁 상대는 ‘아르카나 02, 여교황’과 ‘아르카나 07, 전차’가 아닌 ‘아르카나 05, 교황’과 ‘아르카나 12, 매달린 사람’, ‘아르카나 17, 별’이었어야 했다.

하기야, 내가 살아남으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사상 최악의 병기가 되었을 실루아의 합류.

3년은 이른 붉은 눈 토벌, 저주성 질병으로 사망했을 예카트리체의 생존과 제프리즈의 사망.

끝내 크라켄을 정화하지 못하고 미쳐버렸을 인어 에일리 생존.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난쟁이 비플레이오드 일족의 터전 이동.

금세기 최악의 악당이 될 버밀리온의 사망과 괴멸했을 도시민들의 생존.

아르카나에는 운명을 읽는 예언가가 있으니 미래가 바뀌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아직 소설의 시작 시점으로부터 2년 4개월가량이 남아 있는데도 이 모양이니, 앞으로 소설의 전개는 믿을 수는 없겠다.

고민하던 나는 동화 한 닢을 꺼내 위로 튕겼다.

어딜 먼저 가든 상관없다면 운으로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잘난 신들이 정해 놓았다는 운명이란 것이 나를 이끌지도 모르지 않는가.

“두구두구두구~! 다음 목적지는!”

허공을 돌던 동화는 내 손등 위로 안착했다.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 * *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귀신 들린 숲’, 혹은 ‘마녀가 잠든 숲’이라 불리는 숲 입구에 세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야, 정말이지 달도 사람을 험하게 굴린다니까. 안 그래?”

입구에 서 있는 중년, ‘아르카나 00, 광대’ 유밀 자반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다른 두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그와 나란히 서있는 ‘아르카나 06, 연인’ 중 한 사람인 로우어펠 제프리즈와 망토와 가면으로 온몸을 가린 왜소한 체구의 ‘아르카나 09, 은둔자’, 가블로 오스먼드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하네, 곧잘 반응해 주는 우리 아기 새 양이 그리워지는걸~”

자반의 푸념에 숲 안쪽을 바라보자, 한낮임에도 짙은 어둠을 유지하고 있는 숲속에서 후드를 깊이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자가 걸어 나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달도 참 못됐습니다, 광대.”

자반의 말에 동의를 하며 키득거리던 여자는 ‘아르카나 12, 매달린 사람’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자반은 손가락을 튕기며 손 기술로 소매에 숨겨둔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꺼냈다.

“오오, 레이디. 레이디는 동의해 주는구나. 그런데 언제 레이디가 된 거지? ‘매달린 사람’?”

바스타유 산맥, 겨울나무 숲에 침입하는 저번 임무에선 분명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을 지적하자 장미를 받아 든 그녀는 키득거렸다.

“글쎄요, 언제였더라? 킥킥! 다섯 시간 전이었던가? 모르겠네요.”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 또한 ‘매달린 사람’의 영혼 파편으로 만들어진 분신 중 하나였다.

그녀의 대답에 자반은 상관없다는 듯이 느끼하게 말했다.

“뭐, 언제 여성이 되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긴 하지. 사람은 언제나 지금이 중요한 법 아니겠어?”

은근한 눈빛으로 읭크를 하는 그의 모습에 소름이 돋은 ‘매달린 사람’은 한 걸음 크게 물러났다.

동시에 다음부터 자반과 함께 움직이게 될 때는 남성 분신만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별일이군요. 땡땡이도 치지 않고 당신이 그렇게나 사랑하는 부인과 떨어져서 움직이다니요.”

‘매달린 사람’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로우어펠에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로우어펠은 자반을 슬쩍 바라봤다.

그 모습에 그녀와 가면을 쓴 오스먼드는 바로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아무리 일터라지만 발정 난 듯 치마만 두르고 있으면 추근덕대는 변태가 있는 곳에 부인분을 데려오고 싶지 않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최악.”

사실 아내는 아바스엘과의 계약을 수행하기 위해 니벨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내는 중이었고, 로우어펠 본인은 자반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온 것 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알아서 오해해 줬다.

두 사람의 쓰레기 보는 듯한 시선에 자반은 억울해했다.

“아니! 아무리 내가 수비 범위가 넓다고는 하지만 유부녀에게까지 껄덕대진 않는다고!”

지금까지 남성 분신으로 만나왔던 사람이 갑자기 여자 분신으로 왔다고 대뜸 추파를 보낸 사람의 말이라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수비 범위가 얼마나 되길래 그런 말을 하시는 걸까요?”

로우어펠의 물음에 자반은 유쾌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세보진 않았지만 나이로는 18세 이상 117세 이하 정도? 종족도 딱히 가리진 않는데… 그래도 유부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포기하는 편이야.”

자반의 대답에 로우어펠과 오스먼드는 감탄하며 한마디씩 했다.

“와오… 117살.”

“변태.”

두 사람의 반응에 ‘매달린 사람’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자, 이제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슬슬 일할 준비나 하죠. 지난번처럼 바스타유 산맥에 있는 겨울나무 현자의 영역에 침투하는… 자살 특공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이번에도 꽤 위험한 임무입니다.”

그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안에는 지독한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니 네 명이나 모였지.”

보통 아르카나의 임무에 어지간하면 넘버즈라고 불리는 대간부는 동원되지 않았다.

그들이 동원된다는 건 아르카나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일이거나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구할 경우, 또는 그들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극히 위험한 임무라는 의미였다.

이번 일에 네 명이나 모였다는 건 그만큼 아르카나에게 중요한 의미이자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면 여교황과 전차가 이 근방에서 임무 하나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아멜리야 귀찮게 들러붙는 성기사와 사제들 때문에 임무를 해결해도 쉽게 못 오겠지만, 로툴러스는 아니었다.

기대 섞인 ‘매달린 사람’의 물음에 자반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도 만만치 않게 위험한 임무라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이곳에 오기 전 지원을 하기 위해 갈려나갔던 그였기에 별자리 미궁에서의 임무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전설의 신수 펜릴과 신화 속 산사태양으로 추정되는 괴물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 비록 부하들을 대동한다 하더라도 대간부를 고작 둘만 투입하는 게 이상할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런 만큼 지원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가요? 그거 아쉽지만 별수 없죠.”

그녀는 말과 다르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며 마법으로 귀화(鬼火)를 일으켜 랜턴을 밝히고는 앞장서서 숲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세 명도 숲 안으로 들어갔다.

* * *

야드는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을 열고 도착을 알렸다.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군요.”

이 마차는 흔들림이 너무 없어서 커튼을 쳐두면 마차가 움직이는지 멈췄는지 구분이 잘 안 됐다.

나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네.”

지금까지 목적지가 기본 며칠씩 걸리는 거리였지만 이번 목적지인 ‘마녀의 숲’은 유적 도시 바하나드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서부 전선으로 물자를 옮기기 위해 잘 닦인 가도를 망아지 시리즈가 달렸으니, 빨리 도착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번 목적지인 마녀의 숲은 적대국과 형성한 서부 전선과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마차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켜며 아바스엘에게 물었다.

“이 마차는 못 끌고 들어갈 텐데, 그냥 세워둬도 되나?”

공간계 마법으로 떡칠해 놓은 마차는 아공간에 들어가질 않았다.

내 물음에 마차 밖으로 나온 아바스엘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숲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군요. 이럴 때는 아예 땅에 묻어 은폐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일행들이 마차에서 나오자 아바스엘은 마법으로 땅을 파 공간을 만들더니, 그 안에 마차를 넣고 풀이 자란 땅을 덮어 위장했다.

거기에 땅이 들어 올려졌던 흔적을 환영 마법으로 감추니 감쪽같았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아직 해가 하늘에 떠 있었지만 밤에 저 숲에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고 아침이 되면 숲으로 들어가자.”

내 말에 제이드와 야드, 길버트는 야영 준비를 시작했고, 나는 적당한 위치에 모닥불을 피우고 수첩과 책 한 권을 꺼냈다.

나는 제국에 보낸 깡패들의 목줄(저주 수첩)에 새로 새겨진 노예 6호, 노트라스펠에게 시킬 만한 일을 고민하며 ‘전설적인 사령술사 빌리의 마도서’를 펼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