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허수아비의 기도 (1)
유적 별자리 미궁에서 나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시공간이 왜곡된 유적의 특성상 별자리 미궁 안에서 보낸 시간과 유적 밖의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내 체감상 사나흘 정도 유적에 있었는데, 유적 밖에선 보름 이상이 흘러 7월에서 8월이 되어버렸다.
유적 깊숙이 들어갈수록 시간 왜곡 현상이 심해지는 탓에 생긴 괴리였다.
덕분에 습하고 찌는 듯한 더위가 도시를 뒤덮었다.
남부지역에 속한 유적도시 바하나드가 태양의 현자가 만든 사막에 영향을 받는 구역에 속해서 유독 덥긴 했다.
“후하~! 역시 숙소가 시원해서 좋네요!”
나유타의 훈련을 받느라 땀범벅이 된 길버트는 기진맥진이 돼서 여관방으로 들어왔다.
우리의 숙소는 비암과 람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나비가 공기를 순환해 준 덕분에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생했어. 훈련은 할 만해?”
내 물음에 길버트는 의기양양하게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검 위로 선명한 검기를 덧씌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약하고 흐릿했던 검기가 고르고 선명하게 맺힌 것만 봐도 그의 성장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오오! 대단한데!”
나는 읽던 책을 덮고 박수를 쳤다.
짝짝짝!
“헤헷! 프레시아 경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야 그 천재 중의 천재와 비교하면 누구라도 멀겠지.
프레시아와 비견될 만한 천재는 버밀리온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서 다섯 명이 채 안 될 거다.
그것도 순전히 재능으로서만의 이야기지, 실질적인 강함은 별개의 이야기였으니 프레시아 또래에 그녀와 비견되는 강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도 빨리 강해져서 도련님께 도움이 되겠습니다!”
사실 길버트도 일행 중 비교 대상이 프레시아라 그렇지 능히 천재라 불릴 만했다.
보통 기사 중 재능 있다는 이가 검기를 덧씌우는 시기는 마흔을 넘겨서다.
개중 수재(秀材)라 불리는 녀석은 삼십 대에 검기를 두르고, 천재라고 불리는 이도 이십 대는 되어야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 길버트는 저렇게 선명한 검기를 십 대 때 성취했으니 대단한 재능이었다.
“그거 기대되네.”
조금 더 빡세게 굴려도 되겠군.
그때 나유타가 안으로 들어오며 길버트를 찾았다.
“새끼가 빠져 가지고는! 옷만 갈아입고 온다면서!”
“앗! 예! 빨리 갈아입겠습니다!”
길버트는 나유타의 호통소리에 호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런 길버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좀 어떱니까?”
내 물음에 나유타는 마력장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만들고는 대답했다.
“저놈 물건이야. 생각보다 기초가 튼튼해서 한 몇 년만 각 잡고 가르치면 서른 되기 전에 초인에 오를 수 있을지도?”
“그런 칭찬은 길버트에게 해주시죠?”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쓰읍! 안 돼. 그럼 개빠져 가지고 게을러져.”
“하하하, 그럼 안 되죠. 프레시아는 어때요?”
유적에서 나온 이후 프레시아는 매일같이 나유타와 아나스타샤와 전력으로 대련을 했다.
당연히 두 초인이 전력으로 싸우는 만큼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유적 안에 들어가서 싸웠다.
“그 자기 목숨이 몇 개나 되는 줄 아는 미친년?”
나유타는 소설에서처럼 프레시아의 평상시 훈련을 보며 말했다.
‘이런 미친년을 봤나.’
처음에는 표정이 일그러지며 무슨 미친 짓이냐며 말렸지만, 프레시아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며 연공을 하자 무슨 괴물 보듯 보며 말리는 걸 포기했다.
“걔 나이가 몇이라 했지?”
“며칠 뒤면 열여섯 됩니다.”
“열여섯이라… 세상사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라지만, 그대로 성장한다면 스물쯤엔 나도 진심을 다해야 할지도? 검호(劍豪), 그 뺀질이 새끼가 과분한 제자를 얻었어. 부러운 새끼.”
검호 호레이즌. 프레시아의 스승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 갈아입었습니다!”
“그러냐? 가자.”
나유타는 재빨리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길버트를 데리고 훈련을 시키러 여관에 딸린 뒷마당으로 향했다.
나유타가 나가기 무섭게 창문으로 기척을 극한까지 죽인 아나스타샤가 들어왔다.
“프레시아는 어디 두고 혼자 오십니까?”
내 물음에 아나스타샤는 날 지그시 바라봤다.
“…유적에서도 그렇고, 어떻게 내가 온 걸 알았지? 유안 소년.”
“제가 감각이 좀 좋거든요.”
내 대답에 아나스타샤는 날 바라보다가 내 질문에 대답했다.
“프레시아 소녀는 반쯤 탈진해서 유적 내부에서 쉬고 있다.”
“마법사 세 사람이 지키고 있고요.”
프레시아와 아나스타샤가 대련하는 장소가 작은곰자리 구역이었으니 지금쯤 초토화되었겠군.
제이드와 아바스엘, 실루아는 현장이 복원되는 걸 관측하기 위해 따라나섰으니, 프레시아가 탈진했어도 안전할 거다.
아나스타샤는 허가증 따위 없어도 잘만 유적에 드나들었고 말이다.
내 추측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시아는 어떻습니까?”
“프레시아 소녀라면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 지금껏 수많은 광기를 보아왔건만 진정한 광기가 있음에 깨달음을 얻는다.”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었는데. 이 여자도 소설과 똑같은 반응이구만.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나스타샤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돌렸다.
“그보다 이제 답을 듣고 싶은데.”
답?
“아, 바스타유 산맥에서 이계의 구멍을 지키고 있어야 할 제이드가 왜 여기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요?”
그녀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런데 본인에게 물어도 괜찮았을 텐데 굳이 제게 묻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내 물음에 아나스타샤는 잠시 날 바라봤다.
“…소년이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앞선 침묵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은 아닐 것 같구만.
“뭐, 좋습니다. 어려운 대답도 아니고요.”
내 말에 아나스타샤가 무섭게 집중하며 날 바라봤다.
“이계의 구멍은 무사히 봉합하고 제이드는 자유가 되었습니다. 제이드의 스승님이자 전대 겨울나무의 현자이신 예카트리체 씨는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떠났고요.”
아나스타샤에게서 느껴지던 무거운 압박감이 사라졌다.
“병을 치료하신다고?”
“예, 어느 ‘별을 읽는 자’가 말하길, 죽음을 회피했다고 예카트리체 씨가 말하더군요. 본인도 한 다리 건너서 들은 모양이지만요.”
아마 그 별을 읽는 자는 ‘아르카나 10, 수레바퀴’일 테고 수레바퀴의 말을 전해준 다리는 ‘아르카나 18, 달’이었겠지.
“…그런가.”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침묵했다.
“지금까지 삼킨 마검이 폭주하지 않는 걸 보면 좋은 소식인가 봅니다.”
“…….”
그녀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그녀치고는 감정을 크게 내비친 셈이다.
그녀가 항상 무표정하고 감정의 동요를 내비치지 않는 것은 마검을 삼킨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녀의 감정이,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요동칠 때면 그녀가 쌓아온 마검의 힘이 폭주했다.
실제로 소설에서도 제이드에게 예카트리체의 죽음을 들은 그녀는 한차례 폭주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초인 중 한 명이라 불리는 그녀조차 자칫 잘못하면 제어하지 못할 힘이었다.
마검을 포식하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고, 때문에 나유타는 그녀를 말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이드에게 예카트리체에 대해 묻지 못한 거리라. 그녀는 예카트리체의 ‘운명’을 알고 있었으니까.
제이드가, 예카트리체의 후계자가 자신의 폭주에 휘말릴까 두려웠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나는 휘말려도 상관없다는 말이겠고.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뭐가요?”
내가 모른 척 능청스럽게 되묻자 그녀는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소년이 내 폭주에 휘말려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내가 괜찮다고 한 건 소년이 내 폭주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나아가서 어쩌면, 소년이라면 내 폭주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나스타샤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제가요? 절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닙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내가 천하십검을 제압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소년이야말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녀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 객관화가 뛰어나다고 말해야겠지. 이 허약한 몸뚱이에 뭘 바라겠는가.
“그것보다는 예카트리체 씨가 있는 곳을 알려드려요?”
내 말에 아나스타샤는 순간 움찔했다.
“…아니. 내가 어떻게 감히 그분을 뵐까.”
“예카트리체 씨가 아쉬워하겠네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데, 소식이라도 전해 드릴까요?”
내 장난기 섞인 물음에 아나스타샤의 미간이 무려 2밀리미터나 좁아졌다.
“아! 어차피 제이드가 알아서 쓸 테니 저까지 쓸 필요는 없겠군요.”
내가 낄낄거리며 웃자 그녀는 살얼음이 낀 듯한 무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겁이 없군, 소년.”
“그럴 리가요. 제 별명이 겁쟁이 왕자랍니다. 너무 겁이 많아서 탈이죠.”
겁쟁이 왕자는 ‘왕자 유안’의 별명이었다. 왕궁을 떠나기 전에는 그런 별명을 잘 이용해 먹긴 했지.
내가 생글생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무표정하게 내 눈을 응시했다. 왠지 그녀의 시선이 어이없다는 듯이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슬슬 떠나실 생각이시죠?”
내 물음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럼 가기 전에 제이드에게 인사나 하고 가세요. 가족은 소중히 여겨야죠.”
“…오지랖이다. 소년.”
“뭐, 그럴지도요. 그래도 귀여운 사촌동생 아닙니까. 연배는 반세기 이상 차이 나지만요.”
아나스타샤도, 나유타도 생긴 건 20대였지만 나이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생각해 보지.”
보아하니 그냥 얼굴만 비추고 갈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소년. 소년은 나와 제이드 소년, 그리고….”
“예카트리체 씨와의 관계를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럼 같은 성을 사용하고도 모르길 바랐던 겁니까?”
내 반박에 아나스타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소년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당신도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수많은 마검을 삼켜 소멸시키며 마검이 지닌 특수한 힘을 얻었다.
개중에는 예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능력도 있었다.
예언가 노릇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능력이었지만, 생각보단 많은 것을 알려주는 능력이었다.
내 말에 아나스타샤는 보란 듯이 말했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어떻게 알았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었다.
“글쎄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참 신기하죠?”
“알려줄 생각은 없는 듯하군.”
“정확히 보셨습니다.”
내가 박수를 치며 정답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더 이상 나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그렇다면 이만 떠나겠다.”
아나스타샤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처럼 창문틀을 밟고 나가려 했다.
“알려드리기로 한 마검의 위치는 공평하게 이틀 뒤 알려주신 연락 방법으로 동시에 보내드리죠.”
“알겠다.”
“아! 그리고 이건 지금까지 도와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언하자면 수도로 가시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지도? 특별히 검선에게는 비밀로 하는 정보입니다.”
내 말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도 하나 조언하지, 소년. 상상이란 때로는 벽을 뛰어넘을 힘을 주기도 한다.”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아나스타샤는 태양 빛에 일렁이는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