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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99화 (199/214)

제199화. 해주(解呪)

제국 아즐란 백작령.

갱들이 지배해 암흑가라 불리는 거리는 그 이름과 달리 꽤나 활기찼다.

머리에 희끗한 새치가 나기 시작한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의 중년은 거리의 모습에 감탄했다.

“악명 높은 할커즈 거리라고는 생각도 못 할 모습이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력과 공포가 가득했던 거리는 어느새 환락과 유흥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아즐란 백작령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스카 페이스 패밀리의 보스가 말크렘에서 체펠로 바뀐 결과였다.

새롭게 패밀리의 보스가 된 체펠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적대 세력의 약점들을 공략해 세력을 빠르게 확장하는 한편, 권세가와 친밀하게 지내면서 양지의 유동 자금을 조금씩 음지로 끌어들였다.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정한 세계에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돈을 쥐게 된 체펠은 어느 조직보다도 세력을 공고히 했다.

철저하게 권력 친화적이면서 무력을 확보한 그녀의 세력은 백작령을 넘어 이웃한 영지의 뒷골목까지 보이지 않는 영토를 넓혀 갔다.

“오호호호! 그렇지요? 살롱에 아이들을 모아 놓았는데, 먼저 즐기시겠어요?”

중년의 사내를 안내하는 스카 페이스 패밀리의 간부, 장미 가시 제블은 나긋나긋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천천히 즐기도록 하고 우선 일부터 처리하지. 일을 미뤄두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어머, 그럼 저야 감사하지요. 따라오셔요.”

제블은 큰길 옆에 나있는 좁은 골목길로 빠지더니 허름한 약국으로 그를 안내했다.

약국에는 눈과 귀가 어두운 노파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지만 제블은 노파를 무시하고 바로 지하로 향했다.

“퀴퀴한 냄새군. 마약 제조 시설인가?”

중년인의 물음에 제블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에는요. 보스가 바뀌고 마약같이 위험한 사업은 접었답니다.”

정확히는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유안의 지시였다.

그래도 마약은 아니어도 뒷골목에 필요한 여러 의약품과 저품질의 독 등은 계속 제조했다.

“잘 생각했군. 황태자 전하께서 슬슬 약쟁이들을 뿌리 뽑고자 하셨으니 계속했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직째로 풍비박산 났을 거다.”

“아~! 그 현명하시기로 유명하시다던?”

제블의 능글맞은 말에 중년인은미간을 좁혔다.

“전하께선 네까짓 것들의 입에 오르내릴 분이 아니시다.”

은은한 노기(怒氣)에 제블은 움찔했다.

“오호호호, 죄송해요. 천것의 입방정이라 생각해 주시어요.”

“알면 되었다.”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지하실.

그 구석에 달린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공간에 마석이 담긴 포대자루, 그리고 제국 금화가 담긴 작은 상자가 있었다.

“음, 마력이 새어나지 않으면서 환기가 잘되는 시설이군. 여기서 마약을 제조했던 건가?"

“말씀드렸다시피 옛날이야기랍니다.”

“비밀리에 마법을 사용하기에 좋은 곳이군.”

중년인은 옆구리에 멘 공간 확장 가방에서 마법 지팡이와 여러 시약, 그리고 마석을 갈아 넣은 먹물을 꺼냈다.

“바로 해주(解呪)를 시작하겠다. 옷을 벗어라.”

중년인은 제블이 자신에게 걸린 지독한 저주를 풀기 위해 막대한 뒷돈을 먹여가며 초청한 제국 황실의 궁정 마법사였다.

마법사의 말에 제블은 거리낌 없이 몸매가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를 벗었다.

등에 잡티가 있긴 했지만, 아름다운 여성의 맨살에도 중년인은 아무런 감정 없이 제블의 등을 살폈다.

흡사 수술대 위의 환자를 보는 의사처럼 집중하며 그녀에게 걸린 저주의 일부분이라도 찾으려 노력했다.

한참을 집중하던 그는 과도하게 집중한 탓에 땀을 흘리며 숨을 토해냈다.

“누가 걸었는지는 몰라도 평범한 마법사는 흔적도 발견할 수 없겠군.”

“그럼….”

“난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방법을 알겠군.”

그의 미소에 제블은 기대감에 잘게 떨었다.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저주를 안고 살아가는 건 매 순간이 공포였고, 고통이었다.

“다만 준비한 마석이 부족하겠군.”

중년인은 제블이 준비한 마석 포대자루를 바라봤고 제블은 다급하게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신다면 어떻게든…!”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있으니 일단 그걸 사용하고 값을 배로 지불해라.”

중년인의 말에 제블은 환한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두 배! 아니 세 배라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도록.”

중년인은 중앙에 제블을 세워두고 그녀 주변에 마석을 갈아 넣은 먹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워낙 은밀하고 지독한 저주라 해주하는 데 값비싼 마법 시약도 듬뿍 들어갔다.

마법진 위에 마석을 촘촘히 배치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고 마법 지팡이를 들었다.

“지금부터 해주를 시작한다. 약간 고통스럽더라도 참아라.”

“그럴게요.”

제블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를 건 유안은 저주를 풀 수 있으면 풀고 자유를 찾아보라 했지만, 혹시라도 저주를 풀려고 시도하면 저주가 발동해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더 컸기에 저주가 걸린 다섯 명 중 제블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다른 네 명도 알음알음 저주를 풀기 위해 마법사를 구하는 중이었지만, 유안이 시킨 일도 있었기에 그녀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진실의 거울은 그 영혼을 비출지니….”

중년인은 황궁 마법사답게 섬세하게 마력을 조절하며 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제블의 영혼에 새겨진 저주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오른 작은 마법 문자로 빽빽이 이루어진 복잡하고 정교한 저주 술식에 중년인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세상에 이런 술식이 있다니! 경이롭도다!”

마법사답게 지식욕에 눈을 반짝이며 저주를 분석했다.

해주 과정이 길어질수록 제블은 언제 고통이 엄습해 올지 몰라 덜덜 떨었지만, 저주는 그녀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한 느낌과 활기까지 주어서 그동안 잠을 설친 탓에 좋지 않았던 컨디션이 좋아졌다.

“아하하하하! 난 천재야! 해주식을 알아냈다!”

중년인은 희열을 느끼며 마법 지팡이를 높이 들어 해주 술식을 자아냈다.

마력으로 자아낸 해주 술식이 허공에 떠 있는 저주 술식과 만나 마치 짝이 맞는 자물쇠와 열쇠처럼 아다리가 맞아떨어졌다.

드디어 저주에서 풀리는 건가?

제블은 기대 어린 눈으로 중년인과 허공에 떠오른 토 나올 정도로 복잡한 마법을 바라봤다.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해 보이던 그때, 갑자기 중년인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 어어?”

저주 술식과 해주 술식이 맞물리더니 허공에 글자가 떠올랐다.

-땡! 다음 기회에.

글자가 떠오른 그 순간 저주와 해주가 서로 얽혀들더니 해주를 하던 중년인에게 쏟아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중년인은 전신이 불개미에 파 먹히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고통스럽게 바닥을 굴렀다.

“살려줘! 으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에 제블은 공포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수 분간 고통에 버둥거리던 중년인은 차츰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침과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의 눈앞에는 허공에 문자가 떠다니더니 하나의 편지를 완성했다.

-내 저주를 풀려 시도했던 어리석은 마법사에게.

내 노예가 된 것을 축하한다. 네게는 네가 해주하려던 것과 같은 저주가 새겨졌으니 내가 원하거나 내 지시를 어길 경우, 방금과 같은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될 거다.

자세한 이야기는 널 고용했던 이에게 듣고, 지금부터 명령을 내린다. 나에 대해서 절대적인 비밀을 지켜라. 일주일 이내로 체펠과 만나….

각종 명령이 적힌 편지를 보며 중년인은 명령을 받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푸른 글씨가 보이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이 편지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 새겨진 것임을 깨달았다.

저주를 받아버렸다. 명령을 받아버렸다.

그는 그 사실에 절망하며 소리쳤다.

“네 이녀어언-! 내게 뭘 해주시키려 한 것이냐!”

분노 어린 노호성에 제블은 울고 싶어졌다.

그녀가 초청한 궁중 마법사는 무려 황태자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실세 중의 실세면서도 더 높이 올라갈 것이 확실한, 앞날이 창창한 마법사였다.

다소 심한 과시욕이 흠이었지만, 궁중 마법사들 중에서도 확실한 실력자로 유명했다.

“네년을 죽여버리, 으아아아아!!”

제블에게 살의를 품자 저주가 발동하며 다시금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유안의 명령 중 하나였다.

‘노예끼리 상잔(相殘)하지 말라.’

제블도, 궁중 마법사인 중년인도 유안의 노예였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법진의 마력을 유지하던 마석이 다 소모되며 허공에 떠오른 저주 술식이 사라지며 그녀의 망막에 한 문장이 맺혔다 사라졌다.

-저주를 풀고 싶으면 얼마든지 시도해. 단, 시킨 일은 늦지 않게 하고. 고생해, 장미 가시 제블.

유려한 글씨에 제블은 공포에 덜덜 떨었다.

평생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전신을 옥죄는 듯했다.

“으아아아아! 이럴 순 없어!”

제블의 저주를 풀려 했던 궁중 마법사는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그가 받은 명령 중에는 그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명령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해주를 시도할 것. 단, 본인은 저주를 건드리지 말 것.

다음 해주 시도까지 남은 시간 479:58:53

해주를 시도하되, 본인은 마법을 건드릴 수 없다는 건 타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도 유능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해주를 시도할 수조차 없을 테니 수많은 제국 마법사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다단계 마법 노예 피라미드는 시작되었다.

* * *

“7번 미세 별 렌치.”

“여기 있습니다.”

나는 제이드가 공구함에서 꺼내준 별 모양 렌치를 받아 부품을 조립했다.

끼릭끼릭끼릭.

“5번 일자 드라이버.”

끼릭끼릭끼릭.

“13번 핀셋. 이게 마력 절연체 맞지?”

“맞습니다.”

나는 지금 마력회로의 세맥을 개발하기 위한 마도구를 조립하고 있었다.

이게 완성된다면 드디어 마력회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고통스럽겠지.

“에휴.”

내가 한숨을 내쉬자 옆에서 부품에 마법을 각인하던 아바스엘이 쓰게 웃었다.

“힘내십쇼, 주군. 그래도 이건 마법계의 혁신입니다.”

“그 혁신을 실험하는 게 내 몸뚱이가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니면 아프지 않을 방법을 찾거나.

다시 조립을 위해 손을 움직이려는데, 주머니에서 환한 빛이 나오며 마력이 느껴졌다.

“응?”

주머니에서 빛나는 물건을 꺼내보니 작은 수첩이었다. 정확히는 소용돌이 군도에 쳐들어왔던 말크렘의 부하들에게 채운 목줄과 연결되어 있는 저주의 본체였다.

“그거 그 목줄 아닙니까?”

제이드는 본인이 직접 만든 마도구를 보며 신기해했다.

“하하, 새끼들이 빠져서 벌써부터 목줄을 끊어내려고 수작 부렸나 보네.”

수첩을 펼치자 저주를 풀려고 한 마법사, 새로운 노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노트라스펠 델 모스톤 폰 아우소스페라투.

“휴유~! 재주도 좋아라. 이 사람은 어떻게 고용했대?”

아우소스페라투 공작가의 노트라스펠이라면 제국 공작의 동생이자 황태자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명망 높은 슈프림 메이지다.

소설에선 제이드 파티의 화력을 자랑하는 마법사로, 최종전에 제국군을 이끄는 장군으로 나오는 유망한 마법사였다.

지금은 내 노예가 되었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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