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사기꾼과 성녀와 사기꾼 성녀 (4)
거문고자리 구역은 땅에서 하늘로 흐르는 기묘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통 거문고자리 구역에 들어오면 강의 끝에 위치한 문을 통해 넘어오게 되는데, 강을 건너면 다음 구역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베가에서 거문고자리 구역으로 넘어온 우리는 알파성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숨겨져 있는 강 중간에 위치한 퇴적섬에 안착했다.
“묘한 마력 흐름입니다. 현실의 공간…이라고 말하면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현실의 공간이 아니군요.”
아바스엘의 말에 내가 첨언했다.
“미궁으로 구현되기 전, 신화시대 당시에도 지금 이 공간은 현실에 있던 공간이 아니었다는 말이지?”
“아! 예, 그렇습니다.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아바스엘의 분석은 정확했다. 이곳은 신화시대 당시, 관념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정확히는 저승이라는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경계가 되는 강.
삼도천(三途川) 혹은 스틱스강으로 당연히 현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와! 여긴 어디예요?”
마침 잠에서 깨어난 실루아가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살펴봤다.
그 순간 별자리 미궁의 공간이 흔들리며 천지가 요란하게 떨렸다.
천체 시계를 확인하니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별자리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흔들림에 섬이 무너지고 강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이런!”
제이드가 재빨리 마법 지팡이로 강물을 내리치며 강물을 얼렸다.
“어서 위로 올라가시죠!”
제이드가 만든 거대한 얼음덩어리는 격렬한 파도 위에서도 크게 요동치지 않고 안정적이었다.
“이거 얼마나 두껍게 만든 거야?”
내가 발아래 얼음덩어리를 발로 톡톡 건드리며 묻자 제이드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글쎄요? 한 30미터쯤? 아예 강바닥에 고정하려 했는데, 강이 그것보다 깊은 것 같네요.”
우리가 타고 있는 얼음덩어리는 강줄기를 따라 조금씩 하늘 위로 흘러갔다.
“달의 강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법이지.”
내 말에 길버트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여긴 저승인 거예요?”
“아니, 저승은 아니고 가는 길목쯤?”
그마저도 극히 일부만 구현되었다. 내 대답에 길버트는 무서워했다.
“그럼 강을 건너면 죽는 거 아닙니까?”
“진짜였으면 그랬겠지만, 가짜니까 괜찮아.”
기껏해야 강에 있는 거대 피라냐가 돌아다니긴 했지만, 이 정도 얼음 크기면 덤비진 않을 거다.
“은하야.”
차르르륵-!
내 호명에 은하가 빛을 가르며 헤엄쳤다.
내 주변을 빙빙 돌던 은하가 내 앞에 구역과 구역을 이동하는 문을 영상으로 띄워줬다.
대책 없이 넓은 곳을 수색하는 데는 역시 빛의 정령이 좋았다.
“어디 보자….”
나는 지도를 살펴보며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찾았다.
“이쪽 문이겠네.”
지옥의 입구처럼 보이는 문과 초목으로 둘러싸인 문 중에 지옥 입구처럼 생긴 문을 골랐다.
별자리 구역은 주기적으로 내부 구역의 위치를 바꾼다.
나는 그 규칙을 역산해서 일부러 미궁 최심부에서 그리 움직이지 않는 목동자리 구역과 연결‘될’ 거문고자리 구역으로 왔다.
지금 우리가 있는 거문고자리는 거대한 배가 되어 단숨에 별자리 미궁 최심부로 이동한 거다.
“은하야, 람아.”
내 부름에 은하는 내가 고른 문이 있는 방향으로 안내했고 람은 강의 흐름을 조종해 얼음덩어리를 움직였다.
당연히 가는 동안 간간이 튀어 올라 달려드는 물고기들은 검마가 회 쳐버렸다.
크으~! 버스 달달하다!
* * *
검선은 마검의 기운을 느끼고 별자리 미궁 깊숙이에서 빠르게 왕관자리 구역으로 왔다.
아슬아슬하게 왕관자리 구역에 도착한 직후 별자리 미궁의 구역 재배치가 시작되었으나, 다른 구역과 달리 왕관자리 구역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왕관자리 구역은 별자리 미궁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이동이 적은 지역 중 하나인 덕분이었다.
많은 탐사대가 왕관자리 구역을 중간 경로로 집어넣는 이유가 있었다.
안전할 뿐만 아니라 예기치 못한 별자리 이동에도 흔들림이 적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쉬웠다.
다만 활짝 열려 있던 왕묘의 문이 닫히며 예를 취하듯 각자의 무기를 높이 추켜세우던 거대한 석상들이 원래대로 무기를 내렸다.
동시에 유적의 마력이 돌풍처럼 왕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휴식을 취하며 구역 재배치에 대비하고 있던 아이젤 탐험대의 탐험가들은 그 흐름에 휘말려 왕묘 안으로 빨려들어 갈 뻔했다.
“괜찮나?”
검선은 왕관자리 구역에 들어오자마자 거대한 흐름에 휘말린 사람들을 구했다.
유안이 성인 반열에 든 열세 전사와 대지의 여신의 사도를 처리해 버리는 바람에 비어버린 힘을 다시 채우느라 왕묘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힘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구해진 그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왕묘 안에 갇혔으면 답이 없었다.
아바스엘이 왕묘를 여는 방법을 기록했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어린 흡혈목도, 마력을 공급할 땅의 속성을 지닌 마력 결정도 없었다.
열기 위한 재료를 구하는 동안 갇힌 이들은 분명 굶어 죽거나 내부를 돌아다니는 스켈레톤에 의해 살해당할 게 분명했다.
“감사하면 내 질문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군. 이곳에서 혹시 검마를 보지 못했나? 아이젤 탐험단 친구들. 그리고 용병왕.”
검선 나유타 엘리스필의 질문에 로툴러스는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오, 검선.”
“오랜만이군. 리프텔에선 신세 졌다.”
“검마에게도 말했지만 그저 돈을 받고 한 일이었을 뿐이오. 괘념치 마시오.”
“하하하,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그런데 검마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유타의 물음에 로툴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아니, 이 유적은 시간이란 관념은 무의미한 공간이지. 아무튼 검마가 이곳에 왔었소.”
“이곳에 왔었다는 건 마검이 있었다는 거겠지?”
“그렇소. 고대 칠무신의 마검이라 하더이다.”
로툴러스의 대답을 들은 나유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검마라도 그 정도로 흉흉한 마검을 바로 포식하진 않을 것이오. 아마 안전한 곳, 적어도 이곳이나 몇몇 안전 구역에서나 시도하겠지.”
“그렇다면 말릴 기회는 아직 있다는 말이겠군.”
나유타가 오랜 친구인 아나스타샤를 뒤쫓는 이유는 아나스타샤의 위험천만한 마검 포식을 막기 위함이었다.
아나스타샤가 마검을 잡아먹음으로써 세상은 보다 안전해지지만, 그런 짓을 계속하다 보면 그 끝이 좋을 리 만무했다.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 있겠나? 이상하게 여기서부터 흔적을 전혀 못 찾겠어서 말이야.”
초인인 로툴러스가 흉흉하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마검이라면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방향을 느낄 수 있어야 했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검선과 아멜리가 만나 협력하여 자신들의 뒤를 추격하지 못하도록 유안이 정령들의 힘으로 그 흔적을 지운 탓이었다.
“독수리자리 구역으로 넘어갔소만, 방금 별자리가 크게 움직이면서 이곳과 독수리자리 구역의 연결이 끊어졌을 것이오.”
“끄응, 무작정 찾아보는 수밖에 없나?”
나유타가 고민하던 사이 아멜리가 말했다.
“검선 님, 제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잘만 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검마 님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 * *
황천길인 거문고자리 구역에서 목동자리 구역으로 넘어가자 드넓은 초원과 초원을 둘러싼 산들이 가득한 공간이 나왔다.
“평화로운 공간이네.”
소피아는 따사로운 햇볕에 기분 좋아진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기 양도 풀을 뜯고 있고. 별자리 미궁 최심부라고 하길래 굉장히 위험한 구역일 줄 알았는데 안전 구역인가 봐?”
그녀의 물음에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안전 구역? 저기 보이는 양,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상해? 뭐가?”
“잘 봐봐.”
내 말에 다들 저 멀리 있는 양을 유심히 바라봤다.
“잠깐… 저 양 근처 나무가 왜 저렇게 작아? 관상목인가?”
“저건 나무가 작은 게 아니라….”
“양이 큰 거잖아!”
우리의 인기척을 느낀 신화시대의 양, 산사태양은 이쪽으로 달려왔다.
“메에에에에~!”
양 울음소리에 전신이 두들겨 맞은 듯 울려왔다.
혹시 몰라서 나비에게 대비시키지 않았으면 저 음파 병기에 당해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내뿜으며 죽을 뻔했다.
스르릉-
검마가 천천히 검을 뽑자 나는 손을 들어 말렸다.
“죽이지 마세요. 딱히 덤비려고 달려드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죽이면 곤란하거든요.”
내 말대로 울음소리로 산사태를 일으킨다는 전설의 양은 육중한 몸으로 달리다가 정확히 우리 앞에 서서 자신의 옆구리를 내어줬다.
빗으로 빗으라는 의미였다.
산사태양은 우리를 양치기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죽지 않는 인간은 그들을 이끄는 목동뿐이었다.
나는 나비의 힘으로 바람 갈퀴, 아니 빗을 만들어 산사태양의 털을 빗었다.
“메에에에에~!”
양은 기분 좋은 듯 울었지만 그 여파로 땅이 울리고 산이 조금 허물어졌다.
그러고는 양 울음소리에 이끌린 듯 산맥 곳곳에 숨어 있던 다른 양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멀리서 고개를 내민 양들은 귀여웠지만, 가까이서 집채만 한 머리를 내미니 무서웠다.
저 괴물들이 한 번에 울기 시작하면 이름에 걸맞게 그야말로 천재지변이 일어날 터였다.
“이 산사태양은 목자와 투쟁의 신이 키우던 양이야. 미궁이 만들어진 시기를 생각하면 정확히는 그 신의 선조들이 가꾼 양 목장을 구현한 거겠지만.”
내부 유적에 시대를 추론할 수 있는 사료(史料)들이 가득한 덕분에 얼추 이 유적이 만들어진 시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설명에 소피아는 혀를 내둘렀다.
“내가 배운 성서 속 삽화와는 너무 비주얼이 다른데?”
“그야 지금은 이 산사태양은 멸종 상태거든. 성서에서도 나오잖아? 목자와 투쟁의 신이 신계로 올라갈 때 신수(神獸)인 목양견 타다알과 양 떼를 이끌고 일곱 종을 치며 신대(神代)를 끝냈다고.”
그때 목자와 투쟁의 신이 산사태양을 모두 신계로 데려가 그대로 멸종해 버렸다.
“과연, 이런 비주얼의 양을 키웠으니 일곱 시련도 이겨냈지. 그런데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책을 보면 알 수 있지. 독서를 해.”
“칫! 나도 나름 많이 읽거든!”
“그렇겠지.”
내 손짓에 양이 엎드리고 고개를 내렸다.
털을 빗어주자 날 양치기로 인정하고 머리 위로 올라탈 수 있게 배려해 준 모양이었다.
나는 산사태양의 뿔을 잡고 머리 위로 올라탔다.
“올라와. 이 구역에서 여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을 테니까.”
내 말에 다들 양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양을 타고 초원을 돌아다니는데 제이드가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아, 별건 아닙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여기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요.”
제이드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야 그렇겠지. 여기 바스타유 산맥에 있는 분지 지형이거든.”
정확히는 산맥을 지배하는 다섯 대마수 중 하나인 ‘외뿔’의 영역이었다.
“아! 그렇구나! 어쩐지 익숙하더라.”
600여 년간 설원이었던 땅이 먼 과거에는 초목이 드리운 평화로운 땅이었다는 사실이 신기한 듯 제이드는 익숙한 지형을 두리번거렸다.
양의 머리를 타고 다니자 하나둘씩 모여드는 양들이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내 중얼거림에 소피아가 물었다.
“뭐가?”
“내 목표물.”
그때 하늘이 울리도록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아우우우우-!”
산사태양을 인도하는 목양견 ‘펜릴’이 목에 쌍방울, ‘치천사의 창각’을 달고 등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