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사기꾼과 성녀와 사기꾼 성녀 (2)
또 내 나쁜 버릇이 나왔다.
나는 왜 성실한 사람만 보면 골려주고 싶은지 모르겠다.
각각 성실함의 방향이 달랐지만 로툴러스도 아멜리도 성실했다.
용병왕은 돈과 의뢰 수행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그것을 성실히 이행했다면, 아멜리는 자신의 정의와 신앙에 성실했다.
둘 다 ‘어르신’이라 불리는 아르카나의 보스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목적이 있어서 아르카나에 소속된 만큼, 둘과 진심으로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물론 상대가 진심으로 날 적대시한다면 자비를 베풀 만큼 물렁하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연약하거든.
흔히 말하길 용서는 강자의 덕목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용서는 나랑 안 어울리는 단어였다.
어설픈 마음은 피를 부르는 법이다.
철저하게 짓밟고 다시는 이빨을 들이밀지 못하게 이빨을 뽑아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조금 더 놀리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나는 성녀와 용병왕을 뒤로하고 다음 별자리 영역으로 떠났다.
왕관자리 영역에서 독수리자리 영역으로 넘어온 나는 아나스타샤에게 검집을 던졌다.
“그 마검은 좀 특별한 거라 바로 잡수시지 마시고 안전한 곳에서 드세요. 검집에 넣어두면 굳이 억누르지 않아도 잠잠해질 겁니다.”
데벰버브의 마검 ‘백 마리 악마의 뿔’은 강한 힘을 선사하는 만큼 자기주장도 강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검이었다.
때문에 데벰버브도 세계수 가지를 깎아 검집을 만듦으로써 평소에는 마검의 힘을 억제했다.
“아, 검집은 나중에 반납해 주세요. 그건 따로 제가 써먹을 데가 있어서요.”
세계수 가지는 써먹을 데가 무궁무진했다.
특히 요정들에게 팔아먹으면 아주 골수까지 빨아먹을 수 있었다.
겁집을 받은 아나스타샤는 마검을 수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빨리 버스 기사를 갈아치웠네.
내 예상대로였다면 아이젤 탐험단은 검마를 만나기 전까지 두세 구역 정도 함께 움직였을 텐데.
나는 계획을 살짝 바꾸기로 했다.
뭐, 어차피 아이젤 탐험단 사이에 낀 것도 즉흥적이었으니 상관없었다.
“자, 그럼 지름길로 갑시다.”
별자리 미궁은 그 구조가 구역과 구역의 연결이 가지가 뻗어 나가는 듯한 구조라 가지가 연결되지 않은 구역으로 이동하려면 뒤로 돌아가 연결된 가지로 움직여야 했다.
초입은 뻗어 나가는 가지도 적고 이곳저곳 연결된 곳도 많아 뒤로 돌아가지 않아도 횡적인 이동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갈수록 가지 끝과 끝에 위치한 별자리 구역을 오가려면 보통 수고가 드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고를 줄일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별자리 구역에 숨겨진 ‘알파성지’였다.
특정 별자리의 경우 알파성끼리 연결되어 거미줄 같은 구조의 미궁을 횡적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독수리자리 구역에 숨겨진 알파성지는 알타이르.
지금부터 우리는 미답 구역인 알타이르의 ‘여름 대삼각형’을 타고 데네브와 베가를 지나 거문고자리로 향할 거다.
* * *
아멜리는 다음 영역으로 나아가는 유안의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했네요.”
“그래, 당했다.”
로툴러스도 분한 듯 깃털을 부풀렸다.
당장이라도 악이라도 질러 화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시선이 너무 많았기에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는 거하게 뒤통수를 맞고도 순순히 보내줄 수밖에 없던 자신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졌다.
“분하네요. 지금이라도 뒤쫓아 일전을 벌일 순 없겠죠?”
“검마에게 전부 죽을 거다.”
로툴러스의 단언에 아멜리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도 무려 용병왕이시잖아요.”
“그 용병왕 소리는 내 손발 같은 부하들이 있을 때나 통용되는 말이다. 혼자서는 그저 일개 초인에 불과해. 나 같은 검잡이는 전 세계에 수두룩하다.”
자신만의 심상을 바로 세우고 초인의 경지에 들어선 이들은 그리 흔하진 않았다.
작은 나라에선 한 명만 있어도 감지덕지하는 게 초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주 희귀하지도 않았다.
당장 어느 나라에 소속되지 않은 초인만 세어봐도 열 손가락이 부족했다.
견문이 넓은 로툴러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겸손할 수 있었다.
“여기 있는 성기사와 사제들도 로툴러스 님의 부하와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아요. 전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는걸요.”
“하지만 내 부하는 아니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눈짓, 손짓을 읽고 움직여 줄 수준이 아니면 얼마나 강하든 방해만 될 뿐이야.”
게다가 설령 성기사들과 손발이 잘 맞아 검마와 비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한들, 검마만 문제인 건 아니었다.
로툴러스와 성기사들이 검마에게 발목을 잡히는 사이 프레시아와 데일호르그가 전투 사제들을 모두 죽이고 검마에게 가세하는 순간 전멸은 순식간이었다.
프레시아는 자신을 철저하게 숨겼지만 데일호르그는 거리낌 없이 초인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냈기에 로툴러스의 시선에 걸렸다.
로툴러스의 말에 아멜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미련을 버렸다.
“어쩔 수 없네요. 어떻게든 잡아서 때려준 다음에 부려 먹고 싶었는데, 포기할 수밖에요.”
아멜리는 유안의 수완을 인정하고 탐냈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비록 뒤통수를 크게 맞았다고는 해도 그 정도로 사기를 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었다.
그 능력을 활용하고자 하면 무궁무진하게 써먹을 수 있다.
그래도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으니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 이름과 얼굴이 모두 가짜라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일단 임무가 우선이니까요. 특히 이번 임무는 절 위한 임무기도 하고요.”
아멜리와 로툴러스가 노리고 있는 유물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유물이었다.
아르카나 중에선 그녀만큼 잘 사용할 사람은 없었을뿐더러 ‘아르카나 10, 수레바퀴’의 예지에 따르면 유물을 얻기 위해선 ‘신성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여러 정치적 제약을 달고 있는 성녀인 그녀가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아멜리의 말에 로툴러스는 부리 아래를 쓸어 만지며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검마와 그 사기꾼 녀석은 통제 불가의 변수다.”
로툴러스의 지적에 아멜리는 의아해했다.
“그건 그렇지만 이 넓은 미궁에서 저희에게 영향을 줄까요?”
“감이 좋지 않아. 그 사기꾼은 대지 교단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몰라도 허가증을 구해놓았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접근해 함께 움직이자고 하고 뒤통수를 쳤지.”
그 말에 아멜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저 편하게 오고 싶었던 건… 아니겠죠.”
“검마 때문에 지적하지 못했지만 여섯 명 외에도 스무 명이 같이 움직였다. 동료가 더 있었던 만큼 우리들 사이에 끼어든 목적이 있었을 거다.”
그가 보기엔 유안은 이유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종일관 장난스러운 얼굴과 행동을 보이지만, 그 안에 무언가 숨겨진 섬뜩함을 느꼈다.
“설마… 저를 위해서란 말이 사실이라고 말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아멜리가 인상을 쓰며 묻자 로툴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입에 발린 소린 나도 믿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유적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는 건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로툴러스의 의견에 아멜리의 머릿속에는 ‘어째서?’라는 물음으로 가득 찼다.
“…목표가 같아서 견제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멜리의 가설에 로툴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 정확한 목표에 대해서 아는 건 우리를 비롯해 극소수다. 정보 유출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예언가가 수레바퀴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같은 목표를 예지해 냈을 수도 있어요. 원래 이 작전은 보다 나중에 실행될 예정이었잖아요.”
누군가 목표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예지했기에 실행을 당긴 걸지도 모른다.
아멜리의 추측은 의외로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예언가들의 예지 전쟁은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벌어진다면 운명을 요동치게 만들기도 했다.
로툴러스는 그녀의 추측에 납득하지 못했으나 마냥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일은 다각적으로 살펴봐야 함이 옳으니 한 생각에 매몰되지 마라. 다만, 별을 읽는 자가 수레바퀴 외에 또 있으리란 생각은 안 되는군.”
이 세상에는 별을 읽는 자가 아니어도 예지를 할 수 있는 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새벽별 교단의 사도 중에서 예지의 악마와 계약한 예언자가 있다는 것쯤은 로툴러스도, 아멜리도 알고 있었다.
“그건 그렇죠. 그럼 상대의 행동 원리는 치워두고 어떻게 대처할지부터 생각해야겠네요. …그런데 상대편에 검마가 있는데 답이 있나요?”
아멜리의 물음에 로툴러스는 부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없는 건 아니다. 검마가 있는 곳에는 항상 검선도 있지.”
“아, 그러고 보면 검선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허가증도 없이 별자리 미궁으로 들어왔다고 했었죠. 검선과 협상해서 도움을 받는 건 차치하더라도, 이 넓은 유적 안에서 그녀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죠?”
그녀의 의문에 로툴러스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검선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쉬울 거다. 게다가 검선만 있다면 그 사기꾼의 뒤를 쫓는 것도 불가능한 것도 아닐 테지.”
로툴러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멜리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이젤 탐험단의 부단장인 델레브헴이 조심스레 아멜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저희가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주겠다는 것치고는 굉장히 공손하고 정중한 물음이었다.
델리브헴의 물음에 아멜리는 순간 경계심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자신들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처지였다.
위험한 미궁을 돌파하기 위해서 미궁 탐사에 필요한 비전투 인력보다 전투 인력 위주로 데려온 탓에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식량이 없었다.
아멜리는 델레브헴의 제안에 능숙하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머, 저희가 먼저 부탁드렸어야 했는데 감사합니다.”
유안이 떠나기 전에 델레브헴과 귓속말로 속삭이던 게 걸리긴 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아멜리의 대답에 델레브헴은 유적의 마력을 읽어내는 마도구 천체 시계를 꺼내 별자리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성녀님을 돕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영광이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슬슬 별자리가 크게 움직일 시기라 움직이는 건 위험하니 안전지대에서 편히 쉬시죠.”
결국 그녀는 독이 든 성배일지라도 목을 축이고 봐야 했다.
* * *
별자리 구역에서도 숨겨진 지역인 알파성지(星地)는 구역에 숨겨진 히든 스테이지답게 굉장히 험악한 환경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몰려오는군요.”
제이드는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괴조가 소멸하며 남긴 마력 결정을 마법으로 쓸어 담으며 혀를 내둘렀다.
독수리자리의 알파성지인 안타레스에서 나오던 붉은 깃의 거대 독수리와 달리, 이번에는 백조자리의 알파성지 데네브라 그런지 하얀 깃의 거대 고니가 날아다녔다.
“주군! 이거 보십쇼. 마력 결정 하나하나가 주먹만 한 크기입니다.”
미궁 초입부에서 얻을 수 있는 마력 결정은 좁쌀만 했는데 역시 히든 스테이지답게 미친 난이도와 미친 보상을 자랑했다.
나는 아바스엘이 건네는 마력 결정을 햇빛에 비춰보며 탄성을 질렀다.
“캬~! 역시 이 맛에 버스 탄다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