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84화 (184/214)

제184화. 별자리를 거니는 히치하이커 (10)

왕묘 내부에는 횃불도 설치되지 않았지만 내부에 반딧불처럼 빛 알갱이가 날아다녀 밝은 편이었다.

빛의 밝기는 반딧불보다는 훨씬 밝았지만 건전지가 다 닳아가는 손전등 마냥 희미했다.

빛 알갱이가 많지 않았다면 횃불이 필요할 뻔했다.

“유, 크흠! 이안. 이 빛 알갱이는 혹시 제가 생각하는 건가요?”

제이드는 내 본명을 부르려다 고쳐 부르고는 빛 알갱이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정령의 모습까지 구현한 것 같네.”

왕묘 내부를 밝히는 빛 알갱이는 최하위 빛의 정령이었다.

실제 정령은 아니고,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것에 불과했다.

아니었으면 내 몸에 달라붙어 숨어 있는 자연재해들의 기척을 느끼고 두려움에 도망가거나 복종하기 위해 내게 달라붙었을 터였다.

그러나 빛의 정령들은 그런 기색 없이 그저 조명처럼 허공을 부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드루이드가 정령도 다뤘나?”

소설에서는 이 빛 알갱이가 정령을 구현한 거란 말은 없었다.

내 물음에 아바스엘이 대답했다.

“예, 제가 알기로는 소갈래로 정령술을 다루는 학파도 존재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고대 문헌에서나 언급되는 수준입니다.”

그건 놀라웠다.

드루이드라는 건 다른 말로 자연술사(自然術師), 자연술이란 학파를 다루는 마법사를 말했다.

‘학파’로 분류가 된다는 말은 특정 종족만 익히는 게 가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난쟁이들의 ‘금속과의 교감’을 마법의 학파로 인정하지 않듯이 말이다.

즉 ‘자연술-정령소학파’라는 말이 존재했다는 건 요정들뿐만 아니라 여러 종족이 정령을 다룰 수 있었다는 의미였고, 그중에는 분명 인간도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그건 분명 분홍 머리 사이코, 아니, 내 먼 선조의 비원(悲願)과도 맞닿아 있었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군.”

내 시조는 왕국을 건국하기 전에는 명성 높은 모험가였던 만큼 관련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유적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새삼 관심을 가지고 왕묘를 살폈다.

고대 건축물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견고하게 벽돌로 축조(築造)되어 있었다.

시멘트 같은 접착 물질 없이 서로 크기가 다른 돌들로 쌓은 모습은 마치 모자이크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기 드문 모자이크 양식의 고대 건축물이군.”

아이젤 탐험단의 부단장 델레브헴은 숙련된 도굴꾼답게 고고학 지식도 뛰어났는지, 우리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유적이 이 왕묘의 어느 시점을 구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벽돌에 사용한 안료가 많이 바랜 것을 보면 왕묘의 주인이 죽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시점 같다. 자세히 보면 각각의 벽돌의 크기가 다르듯 색도 다른데, 멀리서 보면 여러 그림들을 이은 모습이지.”

그의 말대로 벽에서 최대한 떨어져서 보니 마치 벽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기록하는 아이젤 탐험단의 단원들을 보고는 내 품 안에 숨어 있는 은하를 톡톡 건드렸다.

굳이 손 아프게 받아 적지 않아도 빛의 정령인 은하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이 이곳의 기록을 띄워줄 거다.

“나비야.”

-냐옹~!

내 부름에 나비는 내 주머니에서 나와 바람처럼 흩어졌다.

나비는 미세하게라도 공기가 통하는 곳이라도 지나갈 수 있으니 내가 모르는 왕묘의 비밀까지 물어오길 바랐다.

그때 먼저 앞서 나가며 함정이나 비밀 통로가 있나 수색하던 이들이 소리쳤다.

“몬스터다! 언데드! 스켈레톤이 가득하고 미라가 드문드문 섞여 있다!”

역시 왕묘라는 기믹답게 보안용으로 언데드를 풀어놨다.

드루이드 왕의 묘역이니 언데드보다는 동물들이 지키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는데, 역시 폐쇄된 구역을 살아 있는 생물이 지키는 건 무리였겠지?

내가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할 때, 우리의 경험 많은 아이젤 탐험단은 각자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좁은 통로니 공간 확보에 신경 써! 움직이는 데 방해되는 순간 죽는다!”

이런 좁은 길목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 익숙한 듯 서로의 움직임이 방해되지 않도록 서로 돌아가며 싸웠다.

나는 아이젤 탐험단을 도우려는 소피아를 손을 들어 막았다.

“넌 힘 아껴. 나중에 가면 쓰고 싶지 않아도 크게 한 방 써야 하니까.”

“그래? 그럼 좀 쉬지 뭐.”

소피아는 다른 고고한 신념을 지닌 성직자들과 달리 어떻게 혼자만 쉬냐며 양심에 호소하지 않고 뒤에서 얌전히 싸우는 걸 구경했다.

편안해 보이는 게 진심으로 구경이나 할 생각인 듯했다.

지시를 잘 따라주니 든든하구만.

스켈레톤들은 파상풍을 기본 속성으로 지닌 듯한 녹슬다 못해 삭아버린 검을 열심히 휘두르며 침입자들을 격퇴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우리의 든든한 운전기사들이 검을 휘두르자 누런 이 딱딱거리는 스켈레톤들은 한참 육수를 우려내 칼슘 부족한 뼈다귀마냥 파사삭 부서져 버렸다.

언데드를 상대하는 데는 날붙이보다는 둔기가 더 효과적이라고는 하는데,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검은 날만 달려 있을 뿐이지 쇠몽둥이나 다름없었다.

역날도로 대가리를 후려쳐도 안 죽는 픽션은 만화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날이 상할 것 같긴 하지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데레브헴 씨! 이거 받으세요!”

나는 인형이 짊어지고 있는 가방에서 바다 교단의 거대 금고에서 허가증과 함께 몰래 기부받은 중급 성수를 던져줬다.

“오오! 역시 교단 소속 탐사대군! 성수라니!”

“저희로서는 이것밖에 해드릴 게 없군요. 죄송합니다.”

내 사과에 델레브헴은 자신의 검에 성수를 바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이런 좁은 곳에선 호흡이 안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싸우면 오히려 곤란해. 자네들 피로도도 생각해야지.”

확실히 나와 프레시아, 제이드는 든든한 버스 기사의 운전으로 편안하게 왔다지만, 다른 동료들은 델레브헴의 말대로 살짝 피곤해 보였다.

특히 인형을 주력으로 별자리 미궁을 돌파한 탓에 실루아는 피곤한지 인형에 업힌 채 자고 있었다.

원래 인형은 잠을 못 잘 텐데 단순한 마법 인형을 벗어나 하나의 생명체가 된 탓인지 이따금씩 피곤하다 싶으면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실루아에게는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실루아의 아버지인 게오르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이 된 결과니까.

물론 그 탓에 인형들을 내가 조종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좋아, 사망자는 없군! 각 조! 부상자부터 확인해!”

한차례 전투가 끝나자 탐험단 부단장인 델레브헴은 단원들을 추슬렀다.

“1조, 경상 셋! 탐사에 지장 없습니다!”

“2조, 경상 하나. 이하 같습니다.”

“3조, 부상자 없음. 이하동문.”

“4조, 경상 하나, 중상 하나. 중상으로는 왼팔이 부러졌습니다. 전투는 힘들지만 탐사는 가능합니다.”

위험한 미궁을 탐사하면서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을 순 없었다.

하지만 명성 높은 아이젤 탐험단의 정예들만 모였는데도, 그것도 성수까지 사용했는데도 고작 왕묘 초입에서 중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아 이 무덤이 쉽지 않은 곳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델레브헴이 왕묘 탐사를 뒤로 미루자고 하지 못하게 선한 미소를 지으며 상급 성수 4병을 건넸다.

“아무래도 저희보다는 여러분들께 더 필요한 물건 같군요.”

“아니! 이 귀한 걸!”

최고급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지만 상급 성수도 더럽게 비싼 물건이었다.

“아닙니다. 성수가 제아무리 귀한 물건이라지만, 형제님의 목숨과 안전에 비하겠습니까.”

어차피 왕묘를 탐색할 생각이었는지라 성수는 가방 한가득 챙겨 왔다.

내 말을 소피아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생육과 재생의 가르침을 내리신 풍요로운 대지께서도, 만물을 품으시는 위대한 바다께서도 여러분을 보우하실 겁니다. 다 함께 잠시 짧게나마 은혜를 내려주신 감사의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소피아의 말에 탐험단원들은 모두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위대한 주께서 가로되 너의 형제를 사랑하라, 너의 이웃을 존중하라. 그 형제는 주의 자식이요, 이웃은 형제의 피붙이라 하심에, 사랑과 존중이야말로 만물의 생육의 근원일지어다.’ 하늘과 땅, 그 모든 곳에 있는 위대한 어버이시여, 미욱한 자식들이 위험한 험지에 임하였으니. 부디 어린 양이 길을 잃지 아니하시도록 보우하시며, 일찍이 달로 가지 않도록 자애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실 것을 간청드리오며, 형제의 아픔의 나눔을 가엾이 여겨 주시소서.”

소피아의 한마디 한마디에 은은하게 신성력이 흐르며 따스한 기분이 들자 탐험단원 중에서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거 무슨 축복이나 버프 같은 거 없이 그냥 잠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발열 마법 같은데?

내가 소피아를 흘겨보자 그녀는 슬쩍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가 금세 자애로운 성녀 같은 표정으로 바꿔 지었다.

역시 전문가는 달라도 뭐가 다르구만.

저들도 뛰어난 실력자들이라 평소였으면 눈치채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전문 종교쟁이답게 선동에 능해서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다.

“자, 상급 성수는 아껴두시고 일단 중급 성수로 치료부터 하시죠.”

나는 성호를 그으며 중급 성수를 꺼내 팔이 부러진 부상자에게 다가갔다.

“윽!”

내가 상처 부위를 만지자 아픈지 신음성을 흘렸다.

물의 정령인 람을 한 번 거친 다음 손끝으로 마력파를 흘려 뼈가 어떻게 부러졌는지 확인했다.

“이대로 붙이면 이 팔을 못 쓰겠군요. 조금만 참으세요.”

으드득-!

“아아악-!!”

나는 람과 누니의 힘으로 혈류와 근육을 조작해 뼈가 원래 있던 자리로 오도록 만들었다.

마취도 없이 뼈를 맞추는 거라 더럽게 아프겠지만, 그렇다고 위험 지역에서 마취를 할 순 없지 않은가.

내가 아픈 것도 아니니 그냥 해야지.

뼈를 맞춘 다음 환부에 성수를 붓고 한 모금 먹였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아픕니까?”

“아, 아… 아니요.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성수 덕분에 금세 뼈가 붙었는지 손을 쥐었다 폈다는 반복했다.

“다행이군요. 중급 성수로는 뼈가 붙게 할 수 있지만 아직 내부에는 충격이 남아 있을 겁니다. 무리해서 사용하면 다시 뼈가 부러질 테니 최소 한 달 이상은 사용을 자제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사제님!”

“아닙니다. 모두 풍요로운 대지의 은덕 아니겠습니까.”

나는 사제가 아니었지만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뒤통수에 늙은 성기사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모른 척했다.

내가 스스로 “나 사제요!” 한 것도 아닌데 뭐 어쩌라고?

-미야옹!

모습을 감춘 나비가 왕묘를 모두 둘러보고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얼추 휴식도 끝난 것 같은데, 다시 움직이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델레브헴에게 반쯤 남은 중급 성수를 건네며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단원들을 다시금 추슬렀다.

“이번에는 2조 1분대가 선행 수색을, 4조 1분대가 후미를 맡는다.”

아이젤 탐험대는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추고 다시금 탐사를 속행했다.

나는 일행들에게 한 번씩 눈짓하고는 프레시아와 제이드, 소피아에게 고갯짓했다.

프레시아와 제이드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피아는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쉿.

나는 소피아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하고는 은하의 힘으로 나와 프레시아, 제이드, 소피아의 분신을 만드는 동시에 모습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아바스엘과 야드, 길버트는 자연스럽게 누가 우리 분신을 건들지 못하게 둘러쌌다.

나는 놀라는 소피아를 보며 말했다.

-가자, 보물을 먼저 털어야 하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