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82화 (182/214)

제182화. 별자리를 거니는 히치하이커 (8)

아이젤 탐험단.

왕국에서 유명한 탐험단을 꼽자면 다섯 곳이 있었다.

개중 가장 유명하고 실적이 좋은 탐험단은 아이젤 탐험대장이 이끄는 아이젤 탐험단이었다.

굳이 전국에 형성된 유물 시장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이젤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았다.

여느 술집이든 한구석에 처박혀 ‘보물 외상’으로 술이나 퍼마시며 왕년에 잘나갔다고 주장하는, 자칭 전설의 탐험가들이 가장 잘 팔아먹는 이름이 ‘아이젤’일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 이름값이 얼마나 높으냐면, 유적 허가증을 발급받은 조직 명단에 마탑과 일곱 교단, 위즐 백작가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나란히 할 정도였다.

“저 문장, 아이젤 탐험단이네요.”

프레시아는 탐사대 갑옷에 새겨진 ‘펼쳐진 책 뒤로 교차하는 세 자루 검 문양’을 보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검술 외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프레시아마저 저들을 알 정도였다.

“아이젤? 유명한 곳입니까?”

그러나 한평생을 바스타유 산맥에 처박혀 지낸 촌뜨기 제이드는 당연히 저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제이드의 물음에 프레시아는 당황했지만 나는 그러려니 했다.

호국공 아드게일도 모르던 녀석이 저들을 알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아이젤이 유명해 봤자 호국공만큼은 아니었다.

“도굴하는 데는 왕국 제일가는 놈들이지.”

내 알아듣기 쉬운 설명에 프레시아는 무슨 폭언이냐는 듯이 날 바라봤지만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그렇군요. 이제 저들 틈새로 끼어들어 방패로 써먹는 겁니까?”

“세상에 그렇게 사악한 방법이! 네가 그렇게까지 권한다면야 그럴까?”

내가 모른 척 능글맞게 묻자 제이드는 키득거렸다.

“모두 유안에게 배웠습니다. 말하자면 유안이 제 선생님인 셈이죠.”

“허허허, 이 선생에게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으니 하산해도 되겠어. 장하구나, 제자야.”

“아닙니다. 아직 배울 점이 많습니다. 어떻게 저들 사이에 낄 수 있을지는 감이 안 잡히는걸요.”

제이드도 날 따라 능글맞게 웃으며 내게 가르침을 청했다.

“슬슬 약속 시간 다 되어가지?”

내 물음에 제이드는 천체시계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 거의 다 도착했을 겁니다.”

나는 악동처럼 웃으며 아이젤 탐험단의 탐사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하의 힘으로 우리의 모습을 숨겼다.

그러고는 우리가 왕관자리 구역으로 들어온 문으로 나갔다.

여러 갈래의 길 중 아바스엘 일행이 지나 올 구역으로 향했다.

내가 미궁에 들어오기 전 지시한 대로 움직였다면 이곳으로 올 거다.

여기서 기다리면 아바스엘이 이끄는 일행들이 오겠지.

“탐험가 아이젤은 인덕이 높고 사람 좋기로 유명하지. 그런 아이젤을 따르는 탐험대도 그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경향이 강해. 특히 이런 유적 내부에서 다친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진심인 편이지.”

아이젤은 명성에 비해 짧게 등장하는 엑스트라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소설 속 내용만 본다면 호탕하고 사람이 좋은 아저씨였다.

그러나 다섯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쓰레기라는 진리는 차원을 넘어서도 불변한지, 탐험대원 개개인이 모두 아이젤처럼 호인(好人)인 건 아니었다.

다만 호인이 아니어도 아이젤 탐험대의 명성 덕분에 많은 이득을 보아온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탐험대원들은 아이젤을 흠모하든, 아니면 그를 이용해 먹으려 하든 간에 최대한 명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제이드는 깨달은 듯 감탄했다.

“그렇군요! 마침 허가증의 정원보다 인원도 적으니 예기치 못한 사고로 동료를 잃고 부상을 입은 척을 한다면 저들도 쉽사리 거절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렇지. 덧붙이자면 너무 심각한 부상자로는 안 꾸밀 거야. 유적 탐사에 거치적거린다고 느껴지면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가자며 안전지대에 식량과 함께 버려질 수도 있거든.”

이 유적에 있는 탐사대를 이끄는 부단장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냉철한 사람이기도 했다.

방해된다고 여겨진다면 이용해 먹을 수 없었다.

내 부가적인 설명에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침 소속이 다른 허가증도 두 개니 위기 속에서 서로 힘을 합쳤다는 설정도 괜찮겠습니다. 한 세력이라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낄 테고, 두 세력이면 자신들의 명성이 퍼지기 좋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마침 허가증 두 개 모두 일곱 교단의 것이니 설득력 있는 설정이야.”

내 칭찬에 제이드는 쑥스러운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하하하, 유안이라면 이미 견적을 다 짜놨을 텐데, 괜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아이젤 탐험단의 탐사대는 40명, 우리는 인형을 포함했을 때 26명이다.

아무리 명성을 따지는 아이젤 탐험단이라 해도 위험한 유적에서 자신들의 절반 이상이나 되는 숫자를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별자리 미궁의 경우, 시정부의 심사를 통과한 집단만 들어올 수 있으니 뒤통수 맞을 확률이 낮았다.

그래도 어스름 상회 같은 양아치들도 있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날로 일취월장하는 제이드의 모습에 나는 흐뭇해하면서 생각했다.

역시 이 녀석도 원래 이런 녀석이라니까? 나랑 만난 지 몇 달이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물들 리가 없지 않은가.

소설에서의 제이드는 순진하고 무턱대고 정의롭긴 했지만, 아퀼라의 마력회로에 크게 데인 후로 소설의 내용은 맹신하지 않는다.

나와 제이드가 머리를 맞대고 부상자는 몇 명으로 할 건지, 일행들은 어떻게 나눌 건지 등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익숙한 인형이 보였다.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아바스엘의 물음에 나는 잠시 내 동료들의 몰골을 천천히 확인했다.

내가 지시한 경로 중 꽤 험한 구역도 있었던 탓인지 얼굴에는 피로감이 드러났다. 땀과 먼지로 더러워진 옷은 해지고 찢어지기까지 했다.

좋은 운전기사가 있는 탐사대에 끼어서 최대한 안전하고 빠른 길로 온 덕분에 땀으로 옷이 조금밖에 젖지 않은 나와는 상반되었다.

얘들은 크게 안 꾸며도 되겠구만.

제이드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당히 부상 정도만 꾸미면 충분하겠는데요?”

“아, 혹시 몰라서 마법 소재용 몬스터 피도 가방에 넣어두었을 거야.”

제이드가 가방에서 피와 붕대를 꺼내 소품을 만드는 사이 나는 방금 막 도착한 이들에게 나와 제이드의 계획을 설명했다.

“와! 그러면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거예요?”

“재미있겠네!”

실루아와 소피아는 환하게 웃으며 계획을 반겼다.

데일호르그는 내 의견이 마음에 안 들어 보였지만 소피아가 좋아하니 반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인형 몇 개에게 붕대를 감아놓으니 정말로 역경을 돌파한 역전 부대의 풍모가 보였다.

자, 그럼 이제 히치하이킹 하러 가볼까.

* * *

아이젤 탐험단 바하나드 전문 탐사대는 왕관자리 구역에 도착한 뒤로 푹 쉬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델레브헴 부단장! 이것 좀 봐 봐요! 이건 어느 시대 건축물일까요?”

작은 키에 짧은 갈색 머리를 한 소녀 탐사대원이 물었다.

양말을 벗고 무좀이 생기지 않게 발을 말리던 아이젤 탐험단의 부단장 델레브헴은 대충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지붕 양식을 보면 신화시대 초기에서 중기 사이 고대 건축물. 바스타유 산맥 너머에서 자주 발견되는 북방 왕릉 양식이야. 보편적으로 출토되는 것보다 규모가 크긴 하지만 말이야.”

유적에 하루 이틀 들어와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구역이라면 모를까, 왕관자리 구역은 유적 심부로 향하는 탐사대라면 경로로 잡는 구역인 만큼 익숙했다.

부단장이 땀에 찬 가죽 군화를 흔들어 말리며 대충 대답하자 물어본 탐사대원은 불만인 듯 툴툴거렸다.

“조금만 더 성의 있게 대답해 주시면 안 돼요?”

“야, 유르페. 여기서 어떻게 더 성의 있게 대답하냐? 너야 저 건축물이 신기하지, 여기 있는 놈들은 익숙하다 못해 질리게 봤다고.”

델레브헴의 말에 노련한 탐사대원들은 낄낄거리며 맞장구쳤다.

“그래, 신입인 너야 신기한 것투성이겠지만 우린 이제 좀 지겹다!”

“아이고, 신기한 게 많아서 좋겠다!”

선배들의 놀림에 신입이라 불린 탐사대원 유르페는 뾰로통해졌다.

“저도 벌써 5년 차 탐험가라고요!”

“아이고~! 어리다! 5년 차면 햇병아리지!”

아이젤 탐험단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각종 유적과 비경(秘境), 마경(魔境)을 탐사했지만 주요 전력의 대부분은 바로 이곳, 별자리 미궁 탐사에 집중되었다.

별자리 미궁만큼 신화시대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적이 없는 만큼 중요도는 높았지만, 삐끗하면 죽을 함정과 괴물들이 많은 탓에 그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입하지 않았다.

5년의 경력이 결코 짧은 경력은 아니지만, 별자리 미궁에 투입될 정도로 긴 경력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아이젤 탐험대에서 그녀의 재능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내부는 어때요? 시간이 비껴갔으니 유적 밖에서 발굴된 왕묘와 달리 내부도 멀쩡하겠죠?”

유르페는 새로운 것을 볼 생각에 설레는 듯 주근깨 가득한 뺨이 붉게 상기되었다.

탐험가란 무릇 새로운 경험을 사랑하는 족속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껄껄 웃으며 그녀를 놀리던 선배들은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러세요? 설마… 그렇게 오랫동안 별자리 미궁을 탐사하시고 이 왕묘를 질리도록 봤다고 하셨으면서 내부 탐사도 못 해보신 건 아니죠?”

역으로 놀릴 건덕지를 찾은 그녀는 씨익 웃으며 선배들의 옆구리를 찔렀다.

“네에~? 한번 말씀해 보세요. 왜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을까?”

“시, 시끄러워! 아직 저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못 찾았단 말이야!”

왕관자리 구역이 발견된 지 80년이 넘었음에도 그 누구도 영역 중앙에 떡하니 있는 왕묘 내부를 탐사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는 왕묘로 들어가는 방법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살아서 유적을 나온 사람 중에선 왕묘를 탐사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정말로요? 저 놀리려 하는 게 아니라?”

유르페의 물음에 선배 탐사대원들은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탐험단의 부단장 델레브헴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예전에 여기서 각 잡고 며칠 동안 머물며 살펴봤는데 모르겠는 걸 어쩌냐.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것보다 다른 영역을 탐사하는 게 더 수확이 좋기도 하니 뒷전이 될 수밖에.”

별자리 미궁은 너무나 넓었고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구역, 밝혀지지 못한 비밀들로 가득했다.

막힌 부분에 붙들려 시간을 잡아먹느니 그 시간에 다른 영역을 탐사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그들의 수명이 무한하지 않은 한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었다.

“그건 그렇죠. 그럼 저 내부는 못 들어가겠네요.”

유르페가 아쉬워하자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들어갈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이젤 탐험단의 탐사대원들은 일제히 그들이 지나 왔던 문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약간 부상을 입은 이들이 있었고, 선두에 서 있는 유약해 보이는 금발의 소년이 미소 짓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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