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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81화 (181/214)

제181화. 별자리를 거니는 히치하이커 (7)

“서, 설마 아니겠죠?”

아멜리가 불안한 목소리로 묻자 다들 그녀가 왜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이 자리에서 아멜리의 불길한 직감을 공유하는 건 오랫동안 용병 생활을 하며 그만큼 뒤통수도 많이 맞아본 로툴러스뿐이었다.

누가 감히 위세 높은 바다 교단 엘리트들의 뒤통수를 후려쳐 봤겠는가.

“….”

로툴러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침묵하자 아멜리는 조바심을 내비치며 휘하 성기사단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이안 씨를 찾아보세요! 아니겠지만, 그래, 아니겠지만 이안 씨가 위험할지도 몰라요! 어서!”

“…예! 알겠습니다!”

그녀의 명령에 탐사대원들은 조금씩 큰일이 났음을 느끼고 흩어져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멜리만큼 조바심은 느끼지 못했다.

휴식할 때 솔선해서 자리를 정리하고, 유적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고고학자와 탐험가들과 어울리며, 맛대가리 없는 보존식으로 맛있다는 소리가 나올 만한 음식을 만들어 주는 유안이 그들을 배신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분도 친분이지만, 유안은 탐사대의 성기사들과 사제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은근슬쩍 바다 교단과 연줄을 만들고 싶어 하는 티를 내왔던 점도 그들의 믿음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저 이 위험한 유적에서 길을 잃은 불쌍한 유안과 그의 호위들을 찾을 뿐이었다.

“이안 씨의 안전을 위해 빨리 찾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고작 여섯 명이 이 위험한 유적을 돌파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있어서 유안은 허가증을 훔쳐 간 간악한 도둑의 음모에 신이 불쌍히 여겨 내려준 동아줄이었다.

그 착각이 유안을 찾는 수색 범위를 좁혔다.

“저쪽에 거대한 비석이 있었어! 1조는 나를 따라 저쪽으로 간다!”

“저기에 지나쳐 온 곳에 옛 건축물이 있었다! 2조는 나를 따라 건축물 쪽으로 간다!”

“3조는 혹시 모르니 베이스캠프 주변을 수색한다!”

수색하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유안과 제이드가 유적 곳곳에 있는 사료(史料)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아 그런 것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곳 위주로 수색을 시작했다.

성기사들이 수색을 시작한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하던 로툴러스는 탐사대의 물자부터 확인했다.

그의 경험상 누군가 배신 때릴 때는 물자에 장난질을 쳐놓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유물이 사라졌다.”

목적지까지 빨리 내려가는 게 목표였지만, 여러 별자리 구역을 거치며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나 우연히 발견한 좋은 유물들을 그냥 지나치진 않았다.

그런 유물들 중 가치가 높은 것들만 사라져 있었다.

“제길, 없어!”

군장을 풀어헤친 로툴러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식량이 가득 담겨 있어야 할 군장에 모포만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꿔치기 당했다.”

그의 말에 자리에 남아 있던 마법사들은 표정을 굳혔다.

유적 초입의 끝자락에 있었지만, 아직 별자리 구역과 구역을 넘어가는 지대에 방위 마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듀플리온 왕국이 배출한 역대 현자들과 시대별 마탑의 천재들이 새겨놓은 각종 살인 마법이 말이다.

허가증이 없으면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식량 대부분이 털렸다.

나름 안전 구역으로 분류되는 구역에 베이스캠프를 차렸지만 유적에서 리젠 되는 몬스터가 계속해서 나타날 게 뻔했다.

바다 교단의 성녀 아멜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시발, X됐다.”

* * *

겔겔겔겔! 아~! 이 상쾌한 느낌!

너무 오랜만에 맛보는 뒤통수의 찰짐!

그동안 너무 얌전히 지내와서 그런지 오랜만에 불광천의 미치광이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역시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구는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건 즐거웠다.

하지만 즐거움과 동시에 작은 탄식이 나왔다.

“하아, 나도 너무 유해졌군.”

아무래도 이 유약한 몸뚱이의 영향을 너무 크게 받는 느낌이었다.

몸이 약해지니 마음까지 여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내 중얼거림에 제이드와 프레시아는 날 무슨 지옥을 뚫고 나온 대악마쯤 되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게 유해진 겁니까? 그렇다면 과거엔 어땠다는 겁니까?”

제이드가 프레시아를 돌아보자 프레시아는 유약했던 유안 왕자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저으려다 흠칫했다.

“…왕후를 정치적으로 죽여버린 것에 비하면… 유한 걸지도?”

“왕후요? 왕후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죽였는데요?”

제이드의 물음에 나는 별것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프레시아가 유난 떠는 거야. 고작해야 왕실 돈을 횡령한 걸 고발하고, 날 학대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운 다음에 대영지 예산 단위의 되는 빚을 드랍시키고 날 암살하려 했다는 증거를 만든 정도?”

왕후를 엿 먹인 것과 비교하면 고작해야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아놓았을 뿐이니 적당히 하긴 했다.

“그게 유난인 겁니까?”

“유난이지. 실각시키기는 했지만 결국 폐위는 못 시켰거든.”

지금쯤 왕후의 일은 왕의 왼팔이자 비서실장인 궁시부(宮侍部)의 상선(尙膳) 제르망이 하고 있겠군.

내 든든한 개 수인 시종장, 헤리온의 편지에 따르면 폐위만 못 시켰지, 내가 있던 별궁에 유폐됐다고 했던가?

“아니, 그래도 너무….”

“아, 왕후가 아르카나와 손잡고 날 암살하려 했거든.”

“…온화하게 처리하셨군요. 그걸 먼저 말씀하셨어야죠.”

제이드는 납득하는 동시에 “유안이라면 어떻게든 목을 쳤을 텐데 그렇게 자비로울 수가!” 하며 놀랐다.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내가 호레이즌과 위즐 백작의 눈을 피해 암살할 힘이 없었다고.

그 괴물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떻게 죽여?

물론 머리를 조금 쓰면 죽일 방법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다만 정말로 죽여버리면 수도를 벗어날 때 아르카나의 눈을 왕후 쪽으로 돌리지 못했을 거다.

내가 워낙 스포트라이트가 잘 받는 몸이라 말이지.

내 모가지를 노리는 사생팬을 둔 스타는 괴로운 법이다.

“그나저나 바다 성녀는 지금쯤 내가 뒤통수 후려갈긴 걸 깨달았겠지? 무진장 고민하고 있겠구만.”

아멜리는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작은곰자리 구역에 있는 ‘유물 관리 청사’에 보관되어 있는 허가증을 반쯤 강탈하느냐, 아니면 어차피 방위 마법이 걸려 있는 구역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강행 돌파 하느냐.

전자라면 적의 발목을 꽤 오랫동안 잡아둘 수 있었고, 후자라면 적의 전력을 깎아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이득이었다.

아멜리는 아마 전자를 고를 거다.

결국 피해 보는 건 그녀의 충실한 수족들이었고, 그들을 잃으면 정치에 개입한 그녀를 두려워하는 바다 교단의 고위층이 어떻게든 물어뜯어 실각시키려 할 터였다.

신성력 강탈이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있으니 무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 파괴적인 힘은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정치적으로 불리했다.

만능처럼 보이는 힘이라고 명분 없이 마음대로 휘둘렀다가는 폭군으로 낙인찍혀 모든 사제들이 그녀를 거꾸로 매달아 버릴 터였다.

제아무리 바다 신의 총애를 받는 성녀라도 교단 전체에 비할 순 없으니, 반란이 일어난다면 신도 그녀를 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지닌 힘이 파괴적이고 무서울수록 휘두르지 않아야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법이다.

지금도 꽤나 지쳐 있는 상황에서 식량도 없이 시공간이 왜곡된 유적 내부를 왕복하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잘만 하면 내가 유적을 벗어날 때까지 유적 초입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허가증은 소피아가 구해준 건데 대지 교단에 피해가 가지 않겠습니까?”

제이드의 지적은 그럴듯했다. 아멜리도 내 허가증이 대지 교단의 것이라고 알고 있다.

“괜찮아. 이 허가증 반납 안 할 거거든.”

“예?”

놀라서 날 돌아보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악동처럼 웃었다.

“잘 생각해 봐. 내가 허가증을 반납하면 대지 교단도 한패로 취급당하겠지. 그런데 자기들 뒤통수친 사기꾼이 허가증까지 반납하지 않고 날라버리면 뭐라고 생각할까?”

내 물음에 프레시아와 제이드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야….”

“…저놈들도 사기당했구나?”

“그렇지!”

내가 손가락을 튕기며 긍정하자 두 사람은 날 보며 이게 사람 새끼인가, 악마 새끼인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순전히 대지 교단을 위해 반납하지 않는 거다, 이 말이야.”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은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잘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기 당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 자기 합리화를 위해 타인의 피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뛰어나고 훌륭한 나도 당했으니 나보다 부족한 저들도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이렇게 말이다.

원래 프라이드 높고 어중간하게 똑똑한 놈들을 등쳐 먹는 게 멍청한 놈들 속이는 것보다 쉬운 법이다.

자신은 당하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 여기저기에 빈틈을 보이거든.

내 말에 제이드와 프레시아는 동시에 말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어련하시겠어요.”

대단히 억울했다. 허가증이야 날려 먹어 봤자 대지 교단의 힘으로 얼마든지 재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바다 교단과의 분쟁은 두 교단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둘이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이 본 왕자는 기쁘구나.”

내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반발했다.

“아니! 호흡이 잘 맞는다니요!”

“아니! 누가 말입니까!”

잘 맞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서로 분야도 다르면서 아직도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말을 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슬슬 약속 장소에 다 와 가는데 아직인가?”

아멜리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긴 나는 아멜리가 캠프를 차린 곳에서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가 지나쳐 온 구역이 아니라 다른 구역으로 넘어갔다.

미궁의 각 구역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양방통행인만큼 혹시 모를 추격을 따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권말 부록에 실린 지도를 규칙에 맞춰 현시점에 재배치하고, 그것을 따라 지름길인 미 발견 별자리 구역 세 곳을 지났다.

어느새 나는 별자리 미궁 심부로 지나는 구역인 왕관자리 구역까지 왔다.

심부로 향하는 길은 여러 곳이지만, 왕관자리는 몬스터나 함정이 출몰하지 않는 구역이었기에 많은 탐사대가 중간 경로로 지나가는 곳이었다.

제이드가 안주머니에서 마도구 천체시계(天體視計)를 꺼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꽤 남았군요.”

미궁 내부는 시공간이 뒤틀린 공간이었기에 보통 시계(時計)로는 각 구역의 공통적인 시간을 측정할 수 없었다.

때문에 복수의 탐사대를 운용하는 조직이 반드시 지참하는 마도구가 유적의 마력 흐름을 기록해 별자리의 움직임으로 나타내는 천체시계였다.

별자리의 움직임은 모든 구역이 동일했기에 각 별자리가 중앙에 오는 것으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말하자면 시간이라는 4차원 축이 왜곡되었기에 가상의 5차원 축을 설정하여 측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란 것도 결국엔 사람이 정의한 하나의 단위계였으니 말이다.

꽤 비싼 물건이었지만, 천체나침반처럼 부르는 게 값인 것도 아니고, 마탑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위즐 백작가의 경우 탐사대원 모두가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저기 숨어서 쉬고 있을까.”

왕관 모양으로 거대한 바위 석상이 빙 둘러진 들판 위에 사당이 놓인 왕관자리 구역은 고대 어느 왕의 무덤이었다.

검을 든 옛 전사들의 석상의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초입 방향 문을 열고 사람들이 왕관자리 구역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내 일행들인가 하고 숨어서 확인했지만 다른 탐사대였다.

“도련님, 왜 웃으세요?”

“흠흠!”

프레시아의 물음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악동 같은 미소를 지웠다.

“아니, 그냥.”

히치하이킹을 할 다음 운전사를 발견한 것 같아서 말이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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