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61화 (161/214)

제161화. 그 영웅은 맹세한다 (2)

나는 방대한 흑마력을 방출하며 광기 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어기스트림을 보며 뒤로 손짓했다.

저 멀리 숨어서 내 계획상 프로스트를 기습해 제압할 예정이었던 아바스엘이 내 손짓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동했다.

운이 좋게도 아바스엘이 적에게 노출되지 않았으니 예비 계획 5-3번으로 가기로 했다.

프레시아는 데스 나이트와의 전투가 거의 끝나가는 듯했지만 제이드는 적 사도를 제압하는 데 오래 걸릴 듯했다.

그런데 사도 중 누가 왔기에 마력 왜곡이 심하지?

은하의 광학 관측도, 나비와 람의 유체(流體) 측정도, 비암의 열 감지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뭐, 제이드면 알아서 잘해주겠지.

혹시 몰라서 실루아도 보내 놨으니까.

“음, 모로 가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된다지만 쥐새끼가 직접 나와줄 줄은 몰랐네.”

내 원래 계획은 중심지 근처에서 버밀리온을 인질로 잡고 나오라고 협박하는 거였다.

그런데 버밀리온이 직접 몸에 기적을 체현시키니 알아서 기어 나와줬다.

아무래도 반쯤 어기스트림의 공방화가 되어 있을 놈의 소굴에 들어가는 건 찝찝했는데, 잘됐다.

내 말을 들은 버밀리온은 키득거렸다.

“푸훗! 쥐새끼라니, 딱 어울리는 호칭이네.”

“하하핫! 그렇지? 생긴 것도 은근히 쥐새끼같이 생겼잖아.”

“으하하하하! 수염만 나면 딱이겠는데?”

나와 버밀리온의 대화에 쥐새끼, 아니 6사도 어기스트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이…!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지금까지 봐줬더니! 감히!”

나는 그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조소를 날렸다.

“응, 지랄하지 마. 봐주긴 뭘 봐줘? 그냥 여력이 부족했을 뿐이잖아. 이 무능한 새끼야.”

강마의식(降魔儀式)의 술식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규모가 거대하고 막대한 양의 흑마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의식의 주관자가 마력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강마의식은 흑마술 의식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난이도를 자랑했다.

그렇다고 의식을 주관하는 흑마법사를 여럿 두자니 미세한 불협화음에도 의식이 틀어질 위험이 있었다.

때문에 의식의 주관자는 최소 8위계인 슈프림 정도의 마법사여야만 했다.

“그리고 흑마력이나 엄청 풍기면서 잘난 듯 고개 뻣뻣이 들고 있지만, 지금 거기 서 있기도 벅차지?”

차라리 의식의 중심부에 있었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와 버밀리온을 보고 방심한 녀석은 스스로 밖으로 나오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내 비꼬는 듯한 물음에 어기스트림은 이를 악물며 웃었다.

“으히히히힛! 누굴 바보로 아시는 겁니까? 대략적인 준비는 모두 끝냈으니 당신들 같은 애송이쯤은 백 명이 덤벼도 여유롭습니다!”

저렇게 오만한 걸 보아하니 아직 아바스엘을 감지하지는 못한 듯했다.

하기야, 이렇게 마력 흐름이 사나운 곳에서 작정하고 마력을 숨긴 대마법사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 어디 그게 가능한지 한번 시험해 볼까?”

내 눈짓에 버밀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서 검을 치켜들었다.

“내가 어떻게 할까?”

버밀리온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보조해 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저놈을 죽여. 나는 널 보조하면서 나대로 죽여볼 테니까.”

“아하하핫! 그거 마음에 드는 작전이네! 어디 한바탕 놀아볼까!”

버밀리온은 전신에 황금빛 마력을 휘감으며 어기스트림에게 달려들었다.

“우후후후! 더 이상 몸이 상하지 않도록, 하지만 최대한 고통스럽게 제압해 드리죠!”

어기스트림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마법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오라! 나의 종복들이여! 나의 적을 물리쳐라! 어디 그 알량한 정의란 것을 한번 보여 주십시오!”

어기스트림은 정신계 흑마법사답게 자신이 조종하는 병력을 소환했다.

개중에는 전투력이라고는 전무한 어린아이와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새끼가!”

“무시하고 달려!”

나는 분노하는 버밀리온에게 외치며 최대한 마력을 끌어 올렸다.

내 마력량은 마력회로의 대맥을 개발 완료하고 이제 막 세맥을 개발하기 시작하는 정도라, 눈앞의 대마법사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하지만 내게는 짧게나마 그 간극을 뛰어넘을 방법이 있었다.

“람, 비암.”

나는 물의 정령인 람에게 마력을 불어넣어 허공에 수십 개의 수창(水槍)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불의 정령인 비암이 물의 창에서 열기를 빨아들여 마력으로 변환해 다시 내게 되돌렸다.

열기를 빼앗긴 물은 순식간에 단단한 얼음 창으로 변했다.

비암을 통해 수급한 마력으로 다시 물의 창을 만들고 열기를 흡수해 얼렸다.

기초정령술(基礎精靈術)!

물과 불의 이중주(二重奏)!

우박 세례!

나는 내 몸을 중심으로 무한히 순환하는 마력을 이용하여 얼음 창 폭격을 자아냈다.

그저 전투력 없이 조종당할 뿐인 이들은 내가 얼음 창으로 만든 창살 감옥에 갇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반면 그럭저럭 전투력이 있는 녀석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얼음 창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기초정령술(基礎精靈術)!

물과 불의 이중주(二重奏)!

얼음 사슬!

녹아내린 얼음 창이 물의 사슬로 변해 그들의 몸을 포박한 다음 다시 얼어붙어 몸을 고정했다.

평범한 마법이었으면 그럭저럭 마력이 소모된 느낌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내가 그동안 정령술을 잘못 사용해 오긴 했구나.

어기스트림은 계속해서 자신이 지배하는 병력을 소환했지만, 그 병력은 버밀리온에게 닿지도 못하고 내게 막혔다.

“왜 그래? 어중간하잖아! 더 강한 놈들은 소환 안 해? 아! 지금 소환했다가는 조종하는 놈들이 통제력에서 벗어나나? 그랬다가는 감당 못 하지?”

“이익! 이놈이!”

어기스트림은 내 비웃음에 정곡이 찔렸는지 부들부들 떨었다.

내 예상 이상으로 강마의식에 리소스를 많이 잡아먹히고 있는 듯했다.

“어딜 보는 거냐!”

버밀리온이 어기스트림을 베었다. 어기스트림은 다급하게 방어막을 치며 다시 의식의 중심지로 돌아가기 위해 하늘 위로 날아오르려 했다.

“어이쿠! 어딜 도망가!”

나는 특별히 수십 개의 얼음 창에 강력한 뇌전까지 둘러 어기스트림을 노리고 날렸다.

쾅-! 쩌적!

내 얼음 창은 어기스트림의 방어막을 부수고 지독한 냉기를 흩뿌렸다.

냉기에 전신 곳곳에 서리가 끼고 얼어붙은 어기스트림은 경악했다.

“으윽! 저 어린놈이 어떻게 이런 마력을!”

내가 마력량이 적어서 그렇지, 밀도만큼은 사계의 현자 중 한 사람인 제이드는 물론, 어지간한 드래곤보다도 높았다.

마력의 질만 따지면 드래곤 로드인 바하무트, 전대 겨울나무의 현자인 예카트리체와 동급이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단순한 파워 싸움으로 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니 다른 데 신경이 팔린 녀석 따위가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물론 그 탓에 마력통을 늘리는 데 애로 사항이 커서 장기전은 무리였지만.

지금은 코젯트의 연민과 정령술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해서 다행이지.

“그대로 그 X같은 의식과 함께 뒈져버려라!”

하늘로 피하면 내 정령술이, 아래로 내려가면 버밀리온의 검강이 몰아쳤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데스 나이트들을 처리한 프레시아까지 도착할 거다.

그렇다고 그 전에 우리를 제압하기는커녕 수세에 몰렸으니 어기스트림이 그토록 성사하려던 강마의식은 이미 파탄 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푸흐흐흐… 으하하하하하!”

내 정령술과 버밀리온의 검을 막고 피하며 상처를 입던 어기스트림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인정하죠. 제가 졌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했던 의식은 실패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 노력들이 이렇게 쉽게 파탄 나다니.”

어기스트림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전신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가 강마의식을 위해 잡고 있던 도시를 감싼 흑마력의 제어권을 놓아 버리면서 사방의 흑마력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주, 아주아주아주!! 짜증 나지만! 좋습니다, 버밀리온,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알량한 정의를 위해 이 도시를 구하려 한 거죠?”

그의 눈은 광기의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렇다면 이 도시째로, 당신의 친구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당신을 제압해 다른 곳에서 다시금 의식을 하겠습니다! 이제 당신의 자의식 따위는 존중해 주지 않겠습니다!”

어기스트림은 그렇게 선언하며 마법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오라! 내 앞의 굴종하라! 힘이여! 이 땅에 내려앉은 모든 마(魔)여!”

강마의식을 위해 준비했던 흑마력과 의식을 잃은 도시의 모든 이들의 생명력이 어기스트림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버밀리온은 경악했다.

그리고 나는….

“이걸 기다렸다! 악을 불살라 정화할지어다! 성스러운 불의 전차여!”

마법 술식 디바이스를 높이 치켜올려 저장해 두었던 술식을 가동했다.

순식간에 함수식으로 수십 겹의 마법진이 구성되며 하늘 높이 마법의 빛이 쏘아져 올라갔다.

하늘 높이 올라간 마법을 담은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아바스엘이 구축해 놓은 ‘보험’을 발동시켰다.

화르륵-!

도시를 둘러싼 성스러운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며 흑마력의 흐름을 타고 도시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최고급 성수를 매개체로 신성력을 뽑아 만들어진 화염은 부정한 마력과 무생물을 불살랐다.

동시에 화염이 지난 자리에 생기 가득한 초목이 자라기 시작했다.

빠르게 번진 불길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이들을 정화하고 치료했다.

그 대신 도시가 불타 사라지고 있었지만.

의식이 시작하기 전에 발견했다면 모를까, 이미 강마의식이 반쯤 발동한 상태라 어차피 이 도시는 흑마력에 오염되어 재해 구역으로 지정될 운명이었다.

오히려 철거 비용을 아꼈다 할 수 있다.

“음음, 나쁘지 않아.”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하늘 높이 올라가던 어기스트림을 바라봤다.

“으아아아악-!!”

성스러운 불길은 흑마력을 따라 빠르게 번지며 신성력을 흩뿌렸으니 도시의 모든 흑마력을 모으던 어기스트림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원래의 강마의식대로였으면 여러 구역을 거치느라 이렇게 빠르게 중심지로 흑마력과 신성력이 모이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어기스트림은 의식을 준비하느라 모아둔 막대한 흑마력이 아까워 스스로에게 모으려 했기 때문에 막을 새도 없이 신성력에 직격했다.

“아파! 아파! 아파!! 으아아아악-! 주, 죽여 버리겠어! 감히! 감히!”

안 그래도 방대한 흑마력을 자신의 몸으로 모으는 짓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서로 상극인 힘끼리 몸 안에서 터지듯 반발하니 마력회로가 과열되다 못해 파열되고, 전신을 좀먹어 갈 터였다.

“아하하하! 한번 해봐, 병신아!”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날렸다.

“이, 이, 이 새, 끼가!!”

어기스트림은 새벽결 교단에도 몇 없는 슈프림 메이지.

지금 공격하면 오히려 그 공격을 이용해 신성력의 흐름을 끊고 마력을 수습할 게 분명했다.

그는 그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였다.

그러니 나는 그가 스스로 파멸하기를 여유롭게 기다렸다.

그때 저 멀리서 빠른 무언가가 날아와 어기스트림의 복부에 직격했다.

저건….

“…마탄?”

나는 놀라서 마탄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은 제이드가 새벽별 교단의 사도와 싸우고 있던 방향이었다.

그곳에선 푸른빛이 감도는 백발의 여성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웃으며 뭐라 말했다.

‘이 정도면 도움이 됐겠지.’

그녀의 입 모양은 그렇게 말했다.

“아! 아아! 아아아! 도움이 되고말고요! 아흘레탄!”

9사도 아흘레탄?!

새벽별 교단에서 무력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괴물이 와 있었다고?!

아니, 지금은 헬 소서러가 탄생하기 이전이니 무력으로는 명실상부한 이인자였다.

그런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도시를 벗어났다.

“제이드! 야드! 실루아! 무사해?!”

은밀함을 위해 사용을 하지 않고 있던 통신 마도구에 대고 외치자 야드와 실루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 유안 군. 제이드 군이 약간 부상을 입긴 했지만 무사합니다. 실루아 양의 공중 병기와 유안 군의 보험이 아니었으면 오늘 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빠! 인형의 성에 넣어둔 마석을 모두 소모했어요! 지원은 못 갈 것 같아요.

이런, 실루아의 ‘인형의 성’은 아흘레탄과 싸울 걸 상정하고 투입한 게 아니었다.

어기스트림이 내 보험을 이겨냈을 경우를 상정했을 때를 위한 거였다.

그저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라 우선 제이드를 도우라고 보냈던 거였는데.

“이런, 큰일 났군.”

어기스트림은 중상을 입었지만 빠르게 신성력과 흑마력을 분리해 수습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전능하신 루키페르시여, 영원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새벽 별의 빛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순식간에 신성력을 걸러내는 데 성공한 6사도는 피를 토하며 오만의 마왕에게 기도했다.

색욕 계파면서 그래도 새벽별 교단이라고 기도는 오만의 마왕에게 하는군.

그나저나 예비 계획 5-3이 아니라 6-2로 갔어야 했나?

아니, 괜찮다.

다소 힘들겠지만 남은 수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괜찮아.”

버밀리온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애초에 내 문제로 일어난 일이니, 마무리도 내가 해야지.”

그의 편해 보이는 미소에는 굳건한 의지와 해탈한 듯 개운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끌어내는 마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기스트림이 끊어내면서 갈 곳을 잃은 신성력이 버밀리온의 몸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는 한 번의 기적을 끌어내고 멈춘 듯 보였던 부패가 다시 눈에 보이도록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곳이 나의 마지막 전장일지니.”

전신에 피어오르는 황금빛 오라가 폭발하듯 내뿜어지며 사방을 비췄다.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오롯이 하나뿐.”

그리고 그의 검에는 찬란한 신념이 머물기 시작했다.

높이 치켜든 검 끝에 걸린 그의 심상은 위로 뻗어나가 하늘을 가득 메운 비구름을 한순간에 밀어냈다.

맑게 트인 푸르스름한 남보랏빛 하늘을 가르는 서광(曙光)이 그의 앞을 비추니.

“심상구현(心象具現), 영웅의 길.”

그야말로 기적으로 가득한 영웅의 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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