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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60화 (160/214)

제160화. 그 영웅은 맹세한다 (1)

“넌 끼어들지 마.”

버밀리온은 프로스트에게 집중하며 내게 말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나는 프로스트를 겨누던 정령 권총을 아래로 내렸다.

내 말에 버밀리온은 미소 지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버밀리온의 검이 날카로운 빛을 내며 휘둘러졌다.

카앙-!

프로스트는 아들의 검을 어렵지 않게 막았지만, 둔중한 피로감을 감출 순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검과 마법으로 초인에 이른 괴물과 사흘은 치고받고 싸웠을 테니 당연했다.

그래도 여력이 있어 보이는 걸 보면 먹지도, 자지도 않고 죽어라 싸운 건 아닌 듯했다.

초인에게 사흘 정도 쉬지 않고 싸우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상대가 초인이라면 말이 다르다.

“버밀리온, 네가 어떻게…!”

프로스트는 능숙한 버밀리온의 검술과 검에 맺힌 검기에 경악했다.

원체 재능 있는 녀석이란 건 알았겠지만, 고작 사흘 정도 보지 못했을 뿐인데 버밀리온의 경지가 어지간한 기사보다 높아져 있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사흘간 길버트와 프레시아와의 지도 대련과 뒷골목 깡패들과의 목숨을 건 실전, 그리고 검기와 검강을 다루는 것을 본 것만으로도 경지에 이른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재능이었다.

“아버지 눈에는 제가 어린아이겠죠. 당연합니다.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으니.”

“그건….”

버밀리온의 말에 프로스트는 미간을 좁혔다.

재능 넘치는 아들을 막아온 것이 자신이었으니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어린아이일 순 없습니다. 다 자란 새는 둥지를 떠나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버밀리온은 세 갈래의 궤적을 남기며 프로스트의 목을 노렸다.

프로스트는 아래에서 위로 검을 쳐올리며 버밀리온의 검을 받아냈다.

“찬영견검(燦英牽劍) 삼충앵(參衝櫻). 훌륭한 완성도구나.”

“찬영견검(燦英牽劍) 역천수(逆川守). 역시 아버지는 강하네요.”

두 부자는 서로가 사용한 초식을 말하며 순간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거리낌 없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찬영견검(燦英牽劍) 백분화(百紛花).”

버밀리온의 검에서 잘게 나누어진 수십 개의 검기가 쏟아졌다.

“찬영견검(燦英牽劍) 돌풍회연(突楓回連).”

프로스트의 검에서 뿜어진 검풍이 버밀리온의 검기의 감싸 비틀었다.

“퇴(頹).”

프로스트의 검 끝을 따라 감기던 버밀리온의 검기가 검풍이 사라지면서 다시 버밀리온에게 쏟아졌다.

버밀리온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검기 세례에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찬영견검(燦英牽劍) 육방쇄망(六放碎網).”

버밀리온이 검으로 자아낸 황금빛 그물은 그 안에 걸린 모든 걸 분쇄했다.

“멋지구나. 내가 그동안 본 이들 중 너와 견줄 재능은 없을 거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남들이 들으면 팔불출이라고 욕합니다.”

두 부자는 끊임없이 검을 부딪치며 검을 겨루었다.

꽤나 팽팽했지만, 흡사 사전에 합을 맞춘 듯 지도 대련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력을 다하는 버밀리온에 비해 전신을 짓누르는 피로감에도 여유로운 프로스트의 모습 때문에 그런 듯했다.

그렇게 수차례 검을 더 마주한 두 부자는 서로를 차분히 바라봤다.

“너와 이리 검을 마주하니 속없이도 마냥 좋구나. 아들아, 아느냐? 내가 너와 함께 이렇게 검을 연마하는 걸 꿈꿔왔다는 걸?”

아버지의 서글픈 물음에 버밀리온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저 또한 이렇게 마음껏 검을 휘두르는 날을 언제나 소망해 왔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버밀리온의 손끝이 약간 더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의 천형(天刑) 같은 병은 하늘을 뒤덮을 재능에 박힌 거대한 말뚝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또 이렇게 검을 마주 댈 수 있을 거다, 이 아비는 그렇게 믿고 있단다. 그러니….”

“아니요. 저는 오늘 끝을 봐야겠습니다.”

“…그만 내 뜻에 따라주거라.”

프로스트의 말에 버밀리온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뜻에 따라 달라면서 왜 표정이 당당하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감당할 일이다. 너는 그저 살아만 주면 안 되겠느냐?”

“그럴 순 없겠습니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 불효자가 되기로 작당했거든요.”

날 핑계로 들자 프로스트는 사납게 날 노려봤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든 건 아드님의 의지입니다.”

물론 그 의지가 아니었다면 내 손으로 버밀리온을 죽였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내 의지를 관철해야겠구나.”

프로스트에게서 묵직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저 또한 제 신념을 관철할 뿐입니다.”

버밀리온도 그에 지지 않고 전신의  오라를 더욱 짙게 내뿜었다.

견고한 초인의 기세에 비하면 미약하던 오라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서서히 따라잡기 시작했다.

“헤헷, 이제 얼추 감을 잡았거든.”

버밀리온의 검에 맺혀 있던 검기가 서서히 밀도를 높여 유형화하기 시작하더니 실타래 같은 검사(劍絲)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프로스트는 그 광경을 보고 경악을 넘어서 믿지 못하겠는지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는 어느새 초인에 가까운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엄청난 재능?

아니, 이건 단순히 재능만으로는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정령의 눈과 그를 둘러싼 마력의 흐름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기적을 체득하고 행하고 있다.

그 기적은 그가 거머쥐었을 운명을 끌어오는 대신 막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자! 아버지, 전력을 다하십쇼!”

그의 전신에 혈관이 도드라지듯 거뭇한 줄기가 뻗어나가는 게 눈에 보였다.

지금 그는 부맥증이 발병하면서부터 멈췄던 단련을 지금까지 전력으로 노력해 왔을 경우 도달했을 경지를, 지난 세월을 뛰어넘어 도달한 것이다.

그 대가로 그렇게 노력했을 경우 얻을 병증까지 한 번에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버밀리온! 그만두거라!”

프로스트는 자신의 아들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 이해하고 소리쳤다.

적어도 수년, 어쩌면 십 년에 걸쳐 천천히 받아야 할 고통이 한 번에 엄습할 게 분명했다.

분명 숨조차 마음대로 쉬어지지 않을 통증이 전신을 지배할 터였다.

그러나 버밀리온은 고통에 잘게 떨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아껴온 수명이 뭉텅이로 사라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지만 한 점의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둘렀다.

“제대로 한번 놀아 보자고요! 아버지!”

“그만두라니까!!”

프로스트의 절규 섞인 외침이 검명과 함께 울려 퍼졌다.

콰아앙-! 콰앙-! 콰앙-!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도저히 검에서 나는 소리라 할 수 없는 굉음이 전신을 때렸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버밀리온의 검에 맺힌 마력은 견고해져 갔다.

가느다란 검사(劍絲)가 뭉치며 그럴듯한 검강의 형상으로 바뀌어갔다.

프로스트는 최대한 빨리 버밀리온을 제압하고자 사정을 두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아예 손목을 자를 듯이 휘둘렀음에도 프로스트의 극심한 피로로 미세하게 둔해진 움직임과 버밀리온의 예민한 감각 탓에 번번이 실패했다.

“아하하하하! 즐겁지 않습니까?”

버밀리온은 미친 듯이 웃었다.

통증을 잊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시시각각 수명이 끝나간다는 본능 때문인지 아드레날린에 과하게 취한 듯했다.

흡사 미래의 검악이 구현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버밀리온! 제발!”

프로스트의 외침에도 버밀리온은 검에 구현된 검강을 다시 검사로 풀었다.

그러고는 가느다란 검사 하나하나를 조종하며 각기 다른 방향에서 프로스트를 베었다.

“하하하하!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니까요. 그나저나 어떤가요? 새로 만들어 봤습니다. 이름은 뭐로 할까요? 찬영견검(燦英牽劍)… 사사로이(絲使虜荑)?”

사방에서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검사에 프로스트는 조금씩 반응하지 못하더니 조금씩 베이기 시작했다.

한 번에 몰려오는 피로감 때문일까, 아니면 같은 무예를 익혔기에 보이는 작은 틈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부정(父情)에서 오는 미세한 망설임 탓일까.

만전 상태였으면 뚫리지 않았을 견고한 방어에 균열이 일며 서서히 뚫렸다.

“안 돼…! 아아…!”

프로스트는 자신의 몸이 베이는 것보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좀먹어 가는 버밀리온의 육신이 고통스러운 듯 부탁했다.

“제발 멈춰다오!”

“아니요. 멈출 수 없습니다. 오늘의 끝에 제 죽음이 있더라도,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멈추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버밀리온은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누구보다 강인하게 바로 섰다.

찬란한 의지와 굳건한 신념이 그의 몸을 지탱했다.

“저는 그걸 당신에게 배웠습니다, 아버지.”

“버밀리온!!”

버밀리온과 프로스트는 서로를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쩌저적!

정면에서 부딪친 두 부자의 검은 프로스트의 검강이 부서져 흩날리며 결말이 지어졌다.

황금빛 검강의 파편이 비산했다.

사그라진 마력의 잔향을 뚫고 버밀리온의 검이 아버지의 가슴을 베어냈다.

단련된 굴강한 초인의 육신은 쉬이 날붙이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검에 담겨 있던 마력은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그의 몸을 거세게 두들겼다.

“쿨럭! 크읍…!”

프로스트는 검붉은 피를 토하며 절대 꺾이지 않았어야 할 검을 짚고 무릎을 꿇었다.

꺾인 것은 그의 검일까, 신념일까, 아니면 마음일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애처로이 자신의 아들에게 향해 있었다.

버밀리온은 아버지의 시선을 오롯이 받아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아요? 그러니 이번만 눈감아 주세요.”

이번을 넘기면 다음은 없으리란 건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그럼에도 버밀리온은 평소처럼 유쾌하게 웃었다.

“…못난 녀석. 그게 아비에게 할 소리더냐.”

피를 토하듯 떨리는 목소리에 버밀리온은 고개를 돌렸다.

“하하하! 오늘만큼은 불효자가 되기로 친구와 약속했다고 했잖아요. 아버지도 친구를 소중히 하라고 하셨고요. 안 그래?”

버밀리온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래. 친구와의 약속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프로스트가 도시 안으로 들어온 건 내 계획대로였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건 아니었다.

버밀리온의 각성은 내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대단한 녀석.”

내 감탄에 버밀리온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하하하!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뭘 멋대로 끝내려는 분위기입니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와 동시에 흑마법 의식의 중심지에서 거대한 흑마력 기둥이 용솟음쳤다.

“으히히힛! 실망입니다, 프로스트 경. 그런 데서 쓰러지다니. 아드님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겁니까? 예?! 말해 보시죠오오!!”

흑마력 기둥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 옅은 갈색 단발의 사내, 6사도 어기스트림은 진심으로 역정을 내고 있었다.

“뭐 하자는 겁니까! 귀중한 몸을 그 모양으로 만들다니요! 내가! 내가! 내가! 내가 그 몸뚱이를 얻기 위해 몇 년을 개고생했는데! 뭘 멋대로 망가트리고 있는 거냐고!!”

그의 분노와 동시에 의식의 장이 된 도시에 깔린 흑마력이 동조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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