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악의 갈림길에서 (6)
짝!
새벽별 교단 제 9사도 아흘레탄이 손뼉을 치듯 합장하자 허공에 수십 개의 마력 구체가 떠올라 쏘아졌다.
막기 힘들다고 판단한 제이드는 재빠르게 수인(手印)을 맺어 여덟 가지 보조 마법을 자신과 야드에게 걸어 마력 구체를 피했다.
콰과과과광-!!
피한 마력 구체는 건물과 땅에 닿자마자 폭탄이라도 터트린 듯 폭발했다.
야드는 자신의 마력으로 자아낸 보이지 않는 마력사(魔力絲)를 아흘레탄에게 투사하는 동시에 주변을 얽어매며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제이드는 계속해서 움직이며 마법지팡이를 휘둘러 그녀에게 수천 개의 얼음 화살을 날렸다.
옭아매는 마력사와 몰아치는 얼음 세례에 아흘레탄은 이번엔 조용하고 천천히 합장했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고밀도의 마력이 내뿜어지며 마력사를 끊고 얼음 화살을 튕겨냈다.
“하하, 새벽별의 사도란 것들은 다 이런 괴물들인가? 저건 무슨 마법이지?”
야드는 아흘레탄에게서 느껴지는 섬짓하고 압도적인 마력에 식은땀을 흘렸다.
생전 처음 느껴지는 위압감에 짓눌려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야드의 중얼거림에 제이드도 마른침을 삼켰다.
“마법 자체는 간단합니다. 그냥 마탄(魔彈)의 변형일 뿐입니다.”
마탄, 공격 마법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제이드의 대답에 야드는 주변을 돌아봤다.
“…저 폭발력과 크기가 그저 마탄의 변형이라고?”
도시에서도 꽤나 잘사는 계층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 튼튼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마력 구체 하나하나가 대마법이라 불러야 할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다.
“저분의 마법 수준 자체는 잘 쳐봐야 5위계인 세이지일 겁니다. 어쩌면 4위계인 스킬드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제이드의 추측에 아흘레탄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지만… 보는 눈이 좋으시군요. 맞습니다, 저는 마법에 재능이 없는 편이라서요. 마법계에서 구분하는 위계로 치면 저는 스킬드 메이지에 불과합니다. 당신처럼 한 번의 손짓으로 여섯 개나 되는 마법을 구사하는 건 꿈도 못 꾸죠.”
“여덟 개입니다.”
동체 시력 강화, 순발력 강화, 근력 강화, 인지력 강화, 피부 경화(硬化), 근지구력 강화, 심폐 지구력 강화, 체력 강화로 총 여덟 개의 보조마법이었다.
제이드의 정정에 아흘레탄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실례. 여덟 개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제이드와 야드는 거짓말이라고 확신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감히 5위계를 넘보지 못하고 4위계에서 스러진다.
때문에 4위계인 스킬드 메이지는 범재(凡材)의 한계라고 칭해지기도 했다.
그런 만큼 악마와 계약하고도 평생을 바쳐도 5위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아흘레탄의 마법적 재능은 범재를 넘어 둔재(鈍材)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력량과 밀도는 어지간한 대마법사도 경악할 정도로 높았다.
“아마 합장은 주문과 수인을 합친 마법적 행동이겠죠. 합장을 하면서 가장 먼저 맞닿는 손 위치와 합장에 이르는 속도, 그리고 합장한 손의 손가락 벌림 등에 따라서 마탄의 크기, 밀도, 폭발의 유무 등을 정하는 것 같습니다.”
제이드의 추측에 아흘레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실례지만, 대단하군요. 그 잠깐 사이 제 밑천이 밝혀질 줄이야.”
“밑천이라니,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잘도 그렇게 말하는 군요. 사실 알려져도 전혀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아흘레탄은 피곤한 듯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마법은 단순한 만큼 정교하고, 환경적 요인을 타지 않았으며, 외부의 간섭이 어려웠다.
명백히 학문이자 세상을 위한 기술로서의 발전을 위한 마법이 아닌, 철저하게 죽이기 위한 살상 도구로서의 마법을 추구한 결과물이었다.
“당신의 마법은 마법사의 것이라기보다는 기사의, 정확히는 초인의 것에 가깝습니다.”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대마법사도 자신의 마법에 의념(意念)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아흘레탄의 마법은 이질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정도가 과했다.
간단한 마법임에도 그토록 위력적인 것은 초인의 검에 심상이 깃들어있듯, 그녀의 마법에도 그녀만의 심상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흘레탄은 전투 마법사로서 하나의 완성이라 해도 무방했다.
제이드의 평가에 아흘레탄은 웃었다.
“후후후, 실례일 수 있겠으나 당신은 재능이 있으니 충고해 드리죠. 사회적인 통념에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마법사와 기사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둘 다 마력을 사용하기는 매한가지인 법이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한번 합장했다.
“아, 실례. 당신은 이곳에서 죽을 테니 무의미한 충고였군요.”
허공에 떠오른 집채만 한 마탄의 형체가 구체가 아닌 원뿔형으로 변하며 제이드와 야드에게 쇄도했다.
몰아치는 마탄 세례에 피할 수 없다 판단한 제이드는 가능한 높은 밀도의 빙결탄 마법으로 요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력의 밀도를 넘어 아흘레탄의 심상이 담긴 마탄은 제이드의 빙결탄보다 단단했고, 빨랐다.
콰과과과광-!
제이드의 빙결탄이 분쇄되며 무수한 폭격이 쏟아져 내렸다.
흙먼지가 자욱해진 것을 보고 아흘레탄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흙먼지가 걷히고 나니 제이드와 야드가 서 있는 반 평의 땅을 제외한 지형은 쥐에 파 먹힌 것처럼 파여 있었다.
“실례지만, 궤도를 튼 건가요?”
“정답입니다.”
아흘레탄의 마력 구체의 궤도를 틀기만 했다면 이렇게 상처 하나 없진 않았을 터였다.
제이드는 그 틀어진 궤도를 이용해 서로 연쇄적 충돌을 발생시켜 안전한 공간을 확보했다.
그 사실을 눈치 챈 아흘레탄은 눈 앞의 어린 마법사에게 경외심을 느꼈다.
“경이로운 계산력과 감각이군요. 방금 공격은 저희 사도들 중에서도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는 이가 드문 공격이었는데, 상처 하나 없을 줄이야.”
새벽별 교단에서 그녀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녀보다 강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진심을 담아 권했다.
“실례지만, 당신이 탐이 나는군요. 저희 교단으로 오세요. 당신이라면 바로 사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도 자리가 없다고 한다면 제 자리를 물려드리겠습니다.”
그녀의 권유에 제이드는 단호히 대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지금 전 제가 짊어진 것만으로도 벅차서 말이죠. 또한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을 제물로 사용하는 당신들 같은 이들이라면 더더욱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의 단호하고 심지 굳은 눈빛에 그녀는 피곤한 듯 마른세수를 했다.
“실례지만, 거절한다면 죽을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 제 신념에 반하는 집단에 속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아쉽습니다. 당신이라면 앞으로 10년만 있어도 교단의 대적(大敵)이 될 테죠. 당신에 대한 경계를 상향 조정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흘레탄의 몸에서 찐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다시 한번 합장을 하려던 그녀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합장을 했다.
콰아아아-!!
방금 전까지 그녀가 서 있던 자리로 거대한 빛줄기가 내려앉았다.
쏟아지듯 내려앉은 초고온의 광선은 땅을 녹이며 아흘레탄에게 따라붙었다.
뒤로 계속 피하며 합장을 한 아흘레탄의 마력 구체가 폭격하듯 광선의 시작점을 때렸다.
콰과과광-!
마력 구체가 허공에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키자 하늘이 일그러지며 공중에 떠 있는 성체가 위장을 벗어던지고 모습을 드러냈다.
성체의 망루에는 하얀 머리와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자신의 키보다 큰 마법 지팡이를 들고 늠름하게 서있었다.
“실루아!”
제이드와 야드는 소녀를 확인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실루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외쳤다.
“제 2격 발사!”
-마스터의 명을 따릅니다.
소녀의 전신에 보랏빛 마력회로가 떠오르며 명령하자 현자 게오르의 유산, 공중 이동 요새 ‘인형의 성’이 다시 한번 아흘레탄을 노리고 섬멸의 광선을 내뿜었다.
“오빠의 마석이 녹아내리고 있네.”
아직 게오르의 마력회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실루아는 동력원으로 물 쓰듯 마석을 사용해 요새를 움직이고 있었다.
* * *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고, 하늘에 작은 성체가 보였다가 다시 흐릿해졌다.
실루아가 결계 안으로 들어온 걸 보니 아바스엘이 기습에 성공한 모양이다.
결계 밖에 있던 실루아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건 프로스트가 들어오며 사용했을 열쇠를 즉석에서 복제해서였다.
실루아는 복제할 실력이 안 되지만 같이 있던 아바스엘에게는 어렵지 않았을 테니 저렇게 안으로 들어온 거겠지.
“밖에서 볼일은 다 마치신 겁니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이긴요? 그저 옛 친구 배웅은 잘 마쳤는지 여쭙는 거죠.”
내 장난스러운 대답에 프로스트는 굳은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프로스트가 지금 상황에 도시를 비울 만한 일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전(前) 상관이자 둘도 없을 친구인 겔스토 아이오마이어를 막기 위해서였을 거다.
기사의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암약 조직 ‘자유 기사 연맹’의 맹주인 아이오마이어는 아르카나의 정보력과 수레바퀴의 힘까지 동원해서 프로스트를 추적했을 테니 의식 시기를 맞춰 오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을 테고.
새벽별 교단 측에서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프로스트에게 맡긴 건 프로스트의 힘을 빼놓기 위함이었겠지.
새벽별 교단의 입장에선 프로스트가 방해 요소였지만 동시에 버밀리온이 의식으로 폭주하지 않도록 하는 통제 요소기도 했다.
그러니 도시를 감싼 의식이 제대로 시작되면 반드시 불러들일 거라 생각했다.
아마 프로스트에 의해 힘이 빠진 아이오마이어를 처리하는 데 적어도 대주교급 셋 이상, 혹은 데스 나이트를 동원한 사도급 전력이 파견되었겠지.
제이드가 사도급과 싸우고 있는 걸로 보아 개인적으로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지만, 후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뭐, 각각의 경우를 상정해서 아바스엘에게 지시해 놨으니 문제는 없겠지.
“네놈, 뭘 알고 있는 거지?”
“그리 많이 알고 있진 않습니다. 당신이 소중한 아들을 위해 자신의 신념과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을 엿 바꿔 먹었다는 거? 그리고 그걸 보다 못한 옛 친구가 당신을 말리려 한 것 정도일까요?”
내 대답에 프로스트의 인상이 사나워졌다.
“…모든 걸 알고 있군.”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죠.”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그저 조사한 정보를 조합해 추론했을 뿐이다.
다만 조금 더 세밀한 인간관계를 더 알고 있었을 뿐, 모든 걸 알지는 못했다.
“내 아들에게 일부러 접근했던 거냐?”
프로스트의 살벌한 기세에 나는 싱긋 웃었다.
“제가 먼저 있던 곳에 아드님이 와서 말을 건 겁니다만.”
내 대답에 버밀리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프로스트는 날 믿지 않았다.
“아들아, 이리 오거라. 네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았다. 더 이상 네가 검을 익히지 못해 절망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가 아들에게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버밀리온은 서글픈 눈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절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어요. 여기서 아버지의 손을 잡는 게 효도하는 거겠죠. …하지만 아버지,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시나요?”
불치병에 걸린 아들이 나을 것을 생각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어도 모자라건만, 프로스트의 얼굴은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
“아버지, 아버지도 알고 계시는군요. 절 치료하는 방법이 옳지 못하단 걸요.”
“…버밀리온.”
프로스트의 애틋한 부름에도 버밀리온은 차분한 눈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제가 나을 방법이 수많은 무고한 이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저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습니다.”
“버밀리온! 모든 죄악은 내가, 내가 짊어질 테니….”
“그것이! 당신에게 배운 나의 삶이니까! 나의 정의니까!”
버밀리온의 전신에 황금빛 오라가 피어오르며 검에는 유형화된 고밀도의 선명한 검기가 맺혔다.
“저의 길을 막아선다면 존경하는 아버지, 당신이라 해도 베고 나아가겠습니다.”
악의 갈림길에서 두 부자는 서로를 위하여 검을 들고 마주 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