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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57화 (157/214)

제157화. 악의 갈림길에서 (4)

순간 화장을 하지 않아 몰라봤지만 생긴 게 삽화랑 똑같이 생겨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여장 변태 주교 노르드가 이곳 암흑가의 보스였나?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놀라웠다.

저 변태 개그 캐릭터가 드레스가 아니라 평범하게 남자 옷을 입고 있을 줄 내가 어떻게 알고 있겠나.

야드가 조사한 정보에도 여장을 한다는 소리는 없었다.

“노르드! 왜 여장을 하지 않은 거지?!”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실망이다! 노르드!

내 분노에 노르드는 역으로 화를 냈다.

“왜 내가 여장 같은 짓을 해야 하냐고!”

“지금 네 욕망을 억제하고 있는 건가? 흑마력을 다루면 욕망에 거스르기 힘들 텐데. 대단하군.”

한낱 뒷골목 깡패 새끼라고는 생각지 못 할 대단한 절제력이다.

내 감탄에 노르드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아니라고! 아니야!! 내가 왜 여장을 참아!”

“그렇지? 역시 참지 않을 생각이구나! 난 네 취미를 존중한다!”

그러니 독자로서의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줘!

개그 캐릭터에게는 개그 캐릭터로서의 근본이 있어야지!

“아, 물론 존중한다고 내가 너와 같은 취미가 있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개그를 보는 것만 좋아하지,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취미 없다고!”

“뭐라고? 하지만….”

아니, 생각해 보면 여장을 하고 있지 않은 걸 보면 아직 뇌가 제대로 흑마력에 절여진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직 내재된 욕망을 해방하지 못한 건가?

아니면 계약한 악마가 그런 취미라 역으로 물들었을 가능성도 있긴 했다.

악마와 계약한 악마 숭배자는 악마의 똥 찌꺼기나 받아먹는 놈들이기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본인 자체가 강하면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깡패나 하던 놈이 그런 근성을 보여줄 것 같진 않았다.

“음, 알겠다. 아직은 숨기고 싶은 취미라 생각하겠어.”

그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내 말에 노르드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 새끼가! 저 새끼를 죽여!”

노르드가 날 지목하며 등 뒤의 데스 나이트들에게 명령했다.

-노르드 상급 신도. 네게는 우리에게 명령할 권한이 없다.

일곱 위(位)의 데스 나이트 중 가장 흉흉한 오라를 두른 데스 나이트의 말에 다른 여섯 데스 나이트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기스트림이 내게 너희를 맡겼잖아!”

-틀리다. 6사도께선 너와 함께 움직이라 했지, 너의 지시에 따르라 하시지 않으셨다. 따라서 내게 지시하고 싶다면 대주교가 돼라. 주교만 돼도 내 아래 직급의 데스 나이트는 부릴 수 있게 용인해 주마.

리더로 보이는 데스 나이트의 지적에 부하 데스 나이트들은 키득거리며 노르드를 비웃었다.

과연, 노르드는 지금 시점에선 아직 주교가 되지 못했군.

그렇게 생각하며 데스 나이트의 전력을 가늠했다.

데스 나이트는 새벽별 교단에서도 특별 취급하는 특기 전력이었다.

보통 대주교의 지시를 따른다면 초인급, 주교급의 지시를 따른다면 검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고위 기사급이었다.

-6사도께서 내린 명령은 우리의 사도가 되실 분을 무사히 모셔 가는 것. 버밀리온 님, 당신과 프로스트 경을 존중하여 얌전히 따라오신다면 친구분들은 무사히 도시 밖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흑마법사도 그러더니 프로스트가 버밀리온의 친구인 나와 내 일행들을 건들지 말라고 경고한 모양이었다.

데스 나이트의 말에 버밀리온은 유쾌하게 웃으며 검을 들었다.

“내 발로 너희 같은 구더기가 기어 다닐 것 같은 놈들과 함께 움직일 일은 없을 거다.”

-아쉽군요. 그것이 당신의 선택이라면 존중하겠습니다. 전원 발검!

리더의 호령에 데스 나이트들은 동시에 검을 뽑으며 살벌한 사기(死氣)를 내뿜었다.

-버밀리온 님, 당신 외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리!

리더를 포함해 세 위의 데스 나이트의 검에는 거뭇한 검강이 맺혔고, 나머지 넷의 검에는 짙은 검기가 서렸다.

데스 나이트들의 발검에 노르드도 엉겁결에 검을 뽑았다.

“프레시아, 걸어 다니는 시체들은 혼자서도 처리 가능하지?”

초인급이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초인급이냐 하면 애매하다.

기본적으로 언데드가 되면 생전보다 육체 능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대주교급이 부릴 수 있는 수준이라면 생전에 초인에 이르지 못한 기사였을 터였다.

언데드가 되면 마력량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사령술사의 마법적인 보조가 붙으니 초인급에 이른 거겠지.

생전에 초인에 이르렀던 데스 나이트라면 새벽별 교단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은 데다가 전대 사도급으로 존중해 줬다.

그들은 이런 데 불려 다닐 신분이 아니었다.

“물론입니다.”

프레시아도 칠성검을 뽑아 들었다.

혹시 몰라 매일 밤 최고급 성수를 바른 덕분에 그녀의 검강에 신성력이 듬뿍 서려 있었다.

“길버트는 저 여장 변태 놈을 맡아. 저 놈은 말크렘보단 약하지만 훨씬 더 질긴 녀석이니 주의해.”

길버트의 검에도 마찬가지 처리를 해 놓았다.

태양 교단의 성수라면 흑마력에도 잘 통할 터였다.

혹시 모르니 길버트에게 성수 한 병을 통째로 들이부었다.

빠르게 흡수된 성수는 길버트에게 항마(抗魔)의 힘을 선사했다.

이 정도면 죽진 않겠지.

“예! 알겠습니다! 덤벼라! 여장 변태!”

성수의 힘에 자신감이 붙은 길버트의 외침에 노르드의 얼굴이 터질 듯이 시뻘게졌다.

“여장 안 한다고!”

-크흠, 우리 새벽별 교단은 다른 이단처럼 개인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노르드 상급 신도.

“아니라고!!”

-어린 나이에 초인에 이른 기사여! 그대의 무위에 경의를 표하나, 저 허약한 사내를 지키며 우리를 모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데스 나이트의 리더는 노르드의 항의를 가볍게 무시했다.

-와라!

프레시아와 길버트가 적들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나는 뒤따라 공격하려는 버밀리온의 뒷덜미를 잡으며 뒤로 빠졌다.

“넌 나랑 할 일이 있으니까 싸움에서 빠져.”

“아니! 그래도!”

싸움에 미쳐 있는 버밀리온은 항의하면서도 프레시아와 데스 나이트의 검강에 매료된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난 방해되지 않게 먼저 갈 테니까 빨리 처리하고 쫓아와!”

나는 버밀리온을 반중력 마법이 걸린 나무판자 위에 올리고 나비의 힘으로 빠르게 밀었다.

프레시아는 그런 날 흘끔 보며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몸조심하세요!”

이 도시는 이미 흑마법 의식의 장 내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에서 날 순순히 보내줬다.

날 확실히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무리해서라도 날 먼저 보내지 않으려 했을 텐데.

나는 불한당 사냥에서도 미끼를 맡은 것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 줬던 것과 함께 그녀에게서 약간의 변화를 느꼈다.

그녀가 날 가르치면서 내 이미지가 자신이 아끼고 보듬어야 할 유약한 왕자에서 조금씩 탈피하는 듯했다.

좋은 일이긴 한데, 어라? 그럼 그 지옥 훈련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소리?

-어딜 가려는 거냐! 잡아라!

리더인 데스 나이트가 프레시아와 검격을 나누며 명령하자 초인급 데스 나이트 하나가 날 추격하려 했다.

“어딜!”

서걱!

프레시아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검강을 날려 자신을 피해 달리는 데스 나이트를 베어버렸다.

원래라면 언데드의 흑마법 핵이 건재한 이상 사령술사가 새겨놓은 복원 마법이 발동해 원상 복구되어야 했다.

하지만 상반신이 허공을 구르는 데스 나이트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악. 아. 아아. 아악아. 아아!!

축성(築聖)된 칠성검의 검강에 허리가 반 토막이 난 데스 나이트는 마치 늘어진 테이프를 억지로 재생시키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베어진 부위부터 정화되어 소멸했다.

“이야~! 최고급은 괜히 최고급이 아니구만.”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닌 성수는 뭐가 달라도 크게 달랐다.

역시 사람은 좋은 걸 쓰고 봐야 한다니까.

프레시아도 이런 건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해서 속절없이 소멸하는 과정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려 초인급이 무력하게 당하자 데스 나이트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아니면 이미 죽은 몸이었음에도 섬뜩함을 느꼈는지 덜덜 떨었다.

-모두 조심해!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다!

프레시아는 보다 과감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데스 나이트들은 합격진을 구성하여 신중하게 상대했다.

대놓고 버밀리온을 데리고 도망치는 날 보고도 그냥 놓아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날 잡겠다고 약간의 빈틈을 보이는 순간 의미 없이 소멸할 각오를 해야 했으니 당연했다.

프레시아의 축성검강(築聖劍綱)이 데스 나이트의 흑마력 검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며 버밀리온은 중얼거리듯 물었다.

“저건 조금 비겁한 거 아니야?”

“어허! 비겁하다니, 준비성이 뛰어나다고 말하도록! 다구리 당하는데 저런 템빨은 있어야 공평하지.”

성수가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벗어나지도 못했고, 프레시아도 날 지키기 위해 부상을 감수했어야 했을 거다.

버밀리온은 멀어지면서도 눈이 프레시아와 데스 나이트의 검강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자, 그럼 우리는 의식이나 박살 내러 가보자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성자나 성녀 한 명 구해 봐야겠다.

여의치 않다면 쓸 만한 신관이라도 잡아다가 성직자 템으로 떡칠해 놔야지.

* * *

“으음, 곤란하게 됐군.”

아바스엘은 도시 밖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엘 아저씨, 그러게 제가 적당히 끝내자고 했잖아요!”

실루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도시 외곽을 넘어 아예 밖으로 나온 사이 도시 전체를 감싸는 결계가 생겨버렸다.

“끄응~ 미안하구나.”

그녀의 지적대로 지금 상황은 아바스엘 탓이었다.

유안의 지시대로 보험을 설치를 끝내고 약간 아쉬움이 남아 추가적인 마법진을 설치하던 중에 일이 터질 줄은 몰랐다.

흑마법으로 이루어진 결계는 정해진 인원이 아니라면 출입을 막는 종류였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지 출입을 위한 열쇠가 되는 술식을 모른다면 결계를 부수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도시 외곽에서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는 알게 되었구나.”

아바스엘은 그동안 정체를 알 수 없어 답답하던 속이 뚫린 느낌을 받았다.

도시 외곽에서 느껴지던 위화감은 도시를 외부와 차단하는 결계를 숨겨놓았기 때문에 생겼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았다.

“그건 그래요! 결계가 발동하니 숨긴 방식을 알 것 같아요. 여기서 마력 파이프를….”

“하하, 우리 실루아는 감각이 뛰어나구나. 거기에….”

두 마법사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니 대화는 상황에 대한 대처보다는 학구열이 넘치는 토론으로 바뀌어 갔다.

그때 갑자기 아바스엘의 어깨 위에서 불꽃이 튀더니 작은 흰 뱀 하나가 나타났다.

“응? 넌, 주군의 정령? 아! 그렇군! 정령은 결계를 통과할 수 있는 건가! 자연체인 정령이라면 촘촘한 마력의 트므억!”

비암은 꼬리로 아바스엘의 뺨을 후려쳐 그의 학구열을 끊었다.

그리고는 근처 나무를 불로 지져 유안의 편지를 구현했다.

“역시 주군이군. 물리적 간섭을 차단하는 결계억!”

-샤아아아!

다시 한번 아바스엘의 뺨을 후려치고는 편지나 읽으라고 꼬리로 가리킨 비암은 화르륵 타오르듯 사라졌다.

아바스엘은 붉게 꼬리 자국이 생긴 뺨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최근 비가 계속 내려서 신경이 날카로운 모양이네.”

요즘 환경은 불의 정령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검게 타오른 자국을 확인한 아바스엘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하하하! 역시 주군, 영악하시고… 또 잔혹하시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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