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56화 (156/214)

제156화. 악의 갈림길에서 (3)

제이드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흑마력에 그 근원지를 탐색했다.

동시에 그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며 혹시 몰라서 나름대로 도시 곳곳에 준비했던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제이드의 마력에 반응한 마법진은 흑마력의 흐름을 끊고 의식의 중심지로 향해야 할 흑마력을 응집시켰다.

야드는 그 모습에 감탄했다.

“제이드 군, 흑마법 의식을 저지할 수 있는 겁니까?”

야드의 기대에 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흑마력이 제 예상 범위를 한참 넘어섰습니다. 이 정도 흑마력이면 적어도 수천 명, 어쩌면 거의 만 단위의 생명력을 갈취해야 가능한 수준입니다. 무슨 의식인지 몰라도 그저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의식의 진행 상황으로 봤을 때 그저 밑 준비 단계에 불과했다.

그동안 마법을 배우고 익혀온 제이드의 눈에는 아직 의식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이 보였다.

그 말에 야드는 당황했다.

“그 정도로 대규모 인신 공양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내가 조사한 바로, 지난 3년간 실종자는 기껏해야 2백 명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2백 명이면 통상적인 실종자보다 오히려 적다 할 수 있었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빠지면 도시가 아니라 영지 자체가 휘청거릴 규모였다.

이 도시가 있는 영지는 작은 영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위 귀족 수준의 대영지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야드와 함께 조사했던 제이드는 이 정도나 되는 흑마력이 모였다고 생각지 못했다.

“아마 몇 년에 걸쳐서 천여 명에게 조금씩 갈취한 걸 겁니다. 갈취 대상은 암흑가 조직이 관리하던 빈민 거리의 이들이나 빚을 진 사람들이겠죠.”

야드는 처음 도시에 와서 본 노숙인들의 표정을 떠올랐다.

그들은 생명력을 갈취당하는 대가로 정신계 마법으로 삶에 대한 불안을 거세당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흑마법을 익힌 사람들은 뇌에 영향이 가서 절제하기 힘들어지고 다소 히스테릭해지거나, 편집증, 강박증 등이 생긴다고 배웠습니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오랫동안 참을 수 있었을까요?”

제이드의 의문에 야드는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아냈다.

“신앙심. 신에 대한 믿음은 때때로 고행을 견딜 수 있는 강하고 견고한 정신력을 주기도 하는 법이지.”

“예? 하지만 신자가 흑마법을 사용한다고요?”

“모시는 대상이 신이 아닌 악마라면 말이 됩니다. 악마 숭배 교단, 가장 유명하고 세력이 큰 곳은… 새벽별 교단이었나?”

새벽별 교단이란 말에 제이드는 전에 유안이 그런 집단이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1사도’라는 괴물을 중심으로 총 열두 명의 사도가 있고, 그 아래로 대주교급, 주교급, 일반 신도로 세 계급이 나뉘었다.

일반 신도는 다시 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뉘었으니 총 다섯 계급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의식이면 적어도 대마법사 수준이 주관하고 있을 겁니다. 일단 도시 사람들의 생명력을 더 이상 갈취하지 못하게 막았지만 얼마나 갈지 모릅니다. 우선 유안과 합류를…!”

말을 하던 제이드는 갑자기 다급하게 마법 지팡이를 들어 여러 겹의 보호막을 쳤다.

쾅! 콰과과광-!

멀리서 날아오는 대마법 규모의 폭격에 제이드의 보호막이 요동쳤다.

갑작스러운 폭격에 야드도 긴장하며 태세를 가다듬었다.

폭격으로 생긴 연무가 걷히고 그 사이로 허리까지 오는 남백색(藍白色:옅은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색) 장발의 여인이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새벽별 교단의 제 9사도, 아흘레탄이라고 합니다.”

방금 전의 맹렬한 마법 폭격을 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나른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따분하고 귀찮음으로 가득했다.

그에 반해 아흘레탄에게서 내뿜어지는 기세는 지독하게 살벌했다.

그녀의 인사에 제이드는 긴장하며 마법 지팡이를 겨누었다.

“당신이 이 의식을 준비한 사람입니까?”

제이드의 물음에 아흘레탄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실례입니다. 저는 그저 도우미일 뿐입니다. 이 의식을 주관하는 건 6사도 어기스트림이죠. 저는 그저 그 편집증 환자가 왠지 모르게 불쾌한 기분이 든다며 도움을 요청해서 반쯤 끌려온 것뿐입니다.”

제이드는 그녀가 말한 '불쾌한 기분'의 정체에 대해 짐작이 갔다.

유안의 지시로 아바스엘이 열심히 설치한 ‘보험’에 들어가는 최고급 성수였다.

최대한 숨긴다고 숨겼는데, 사도 정도쯤 되는 흑마법사의 감각을 완벽히 속이는 건 어려웠다.

“…그걸 대답해도 괜찮은 겁니까?”

그녀가 순순히 대답하자 제이드는 오히려 속임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제이드가 어이없어 하자 잠시 멍한 표정으로 고민한 아흘레탄은 피곤한 듯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실례지만 당신들을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예, 뭐 그럼 괜찮겠죠.”

야드와 제이드는 원래 말하면 안 되는 정보였구나 확신했다.

“실례지만 빨리 끝냅시다. 돌아가서 쉬고 싶군요.”

아흘레탄이 양손에 흑마력을 모아 합장을 한 순간, 순식간에 대마법 규모의 마력 구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제이드도 지지 않고 겨울의 마력을 끌어올려 대마법을 구축했다.

콰아아아-!!

두 대마법이 부딪치는 순간 하늘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 *

살고 싶으냐는 내 물음에 버밀리온은 당연하다는 듯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살고 싶지. 하지만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갈취해서까지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의 선명한 눈동자에는 한 점의 미망조차 없이 올곧았다.

“그게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정의고, 나의 삶이니까.”

그 올곧음에 나는 키득거렸다.

“일을 여기까지 키운 데에는 네 아버지가 일조했지만 말이야.”

아차, 나도 모르게 또 나쁜 습관이 나왔다.

올곧을 정도로 성실한 녀석을 보면 괜히 속을 긁고 싶어진단 말이야.

내 짓궂은 말에 버밀리온은 잠시 사방을 훑었다.

사방에 흑마력이 요란하게 요동치는 것과는 달리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의 전 단계가 시작하면서 도시의 시민들이 모두 쓰러진 탓이었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의식이 완성되지 않아도 대부분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버밀리온도 그 사실을 짐작했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그럴 리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 아버지께선 날 아끼시니까. 날 살리기 위해서라면 신념을 꺾을 분이야. 의외로 마음이 약하신 분이거든.”

그렇게 말한 버밀리온은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신념을 다시 세워 드려야지.”

“불효자군.”

화끈한 불 속성 효자였다.

“아하하하하! 맞아, 불효자야! 그래서 뭐? 원래 자식새끼는 키워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법이라고!”

버밀리온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 나도 유쾌하게 웃었다.

“아하하하하! 옳은 말이네! 나도 도와줄 테니까 한번 화끈하게 불효를 저질러 보자고. 비행소년.”

“도와준다면 나야 좋지!”

나와 버밀리온은 가볍게 주먹을 마주쳤다.

“길 안내는 내가 할게. 최대한 빨리 의식의 중심으로 가서 박살 내버리자.”

의식이 시작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정도로 대놓고 흑마력을 풍기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된다.

나는 길가에 널린 나무판자를 들어 즉석에서 메모라이즈 마법으로 반중력 마법을 각인했다.

그저 땅에서 몇십 센티미터 띄울 뿐인 성능에 오래가지 못할 마법이었지만 당장 써먹기 좋았다.

내 느려 터진 발걸음으로 저 단련된 녀석들을 따라잡을 순 없지 않은가.

나무판자 위에 올라타 중심을 잡으며 체중을 앞으로 해 나무판자의 각도를 조절하고, 나비의 힘으로 밀었다.

“따라와.”

나는 빠르게 허공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나무판자를 타고 나아갔다.

육체파 세 사람은 가볍게 달려 내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빠르고 좋은데?

무게 중심을 잡는 게 약간 힘들긴 하지만, 나비의 힘으로 몸을 고정하니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내 왼쪽에 따라붙은 버밀리온은 내 나무판자를 흘끔 보고는 말했다.

“야, 그거 좋아 보인다?”

“만들어줘도 넌 못 탈걸? 마법 몰라서 조종 못 하잖아.”

길버트와 프레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쩝, 그건 그러네.”

입맛을 다시던 버밀리온은 갑자기 검을 뽑아 휘둘렀다.

“커억!”

골목길 사이에 숨어 있던 흑마법사가 버밀리온의 검에 목이 잘려나갔다.

“아아악!”

오른쪽에선 프레시아가 숨어서 기습하려던 흑마법사를 검기를 두른 검으로 두 동강 냈다.

길버트였다면 마력을 아끼라 하겠지만 프레시아에게 검기는 대수롭지 않은 공격이니, 그냥 두기로 했다.

“오오, 저게 검기인가!”

버밀리온은 프레시아의 검에 감탄했다.

“너희 아버지도 검기 정도는 사용할 줄 알 텐데?”

초인인 프로스트라면 검기가 아니라 검강까지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아, 아버지는 내가 병에 걸린 이후로 내 앞에서 검을 안 드셔. 어렸을 때는 위험하다고 검기 같은 건 안 보여주셨고.”

버밀리온은 여유롭게 떠들며 흑마력을 풍기며 달려드는 새벽별 교단의 교단원들을 베어냈다.

처음 만났을 때 길버트를 상대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던 녀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버밀리온 님! 당신은 우리의 사도가 되어주… 으억!”

“이렇게 하는 건가?”

서걱!

“진정하시고 저희 말씀을 들, 커헉!”

“아니네. 음, 그럼 이렇게 하는 건가?”

서걱!

“버밀리온 님을 제압해! 약간의 상처는, 으아악!”

서걱!

버밀리온의 검에는 어설프지만 노르스름한 검기가 서렸다.

며칠 동안 길버트와 프레시아와 대련하고, 깡패들을 상대로 실전 좀 치렀다고 검기를 터득한다고?

무슨 불합리한 재능인거지?

“오! 조금 알 것 같…! 으윽!”

불합리한 재능에 대한 대가로 그의 손끝이 검게 물들어 갔다.

마력을 사용한 부작용으로 육신이 썩기 시작한 거다.

잠깐의 싸움으로 버밀리온의 수명은 얼마나 소모되었을까?

알 수 없었다.

“버밀리온, 마력 사용은 자제해. 길버트.”

“예! 알겠습니다!”

길버트가 버밀리온을 안쪽으로 밀어내며 왼쪽에서 달려드는 쓰레기들을 상대했다.

길버트의 검에도 푸르른 검기가 서려 있었다.

버밀리온은 아쉬워하면서도 길버트의 검에 눈을 반짝였다.

실시간으로 몸이 죽어 가면서도 저런 눈을 하다니, 보통 열망이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하급 교단원으로 보이는 쓰레기들이 세 사람에 의해 썰려 나갔다.

“으엑, 이 사람들 기분 나쁘네요.”

길버트는 검을 휘둘러 검고 끈적한 피를 털어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되니 편하네.

적이 정면에서 오면 정령 권총으로 쏴 죽이겠는데, 죄다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니 총을 쓰기가 애매했다.

그때, 저 멀리서 거대한 마력파가 느껴지더니 하늘이 일그러지며 굉음이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콰아아아-!!

“와오, 이 마력은 제이드인가.”

주인공답게 벌써 사도급과 조우해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제이드가 싸우는 곳은 의식의 중심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지금 저기서 제이드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건 이 도시엔 적어도 사도급이 둘 이상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최소 상급 신도나 주교급이 부대 단위로 더 있을 것 같은데.

아니, 태양 교단의 추기경이 저들을 잡아 족치겠다고 날뛰는 지금 시국을 생각했을 때 그렇게 끌어다 사용하는 건 무리겠구나.

그럼 데스 나이트나 데려왔겠군.

“멈춰라!”

아니나 다를까 의식의 중심지에 가까워지니 웬 건달 하나가 데스 나이트 무리를 데리고 나왔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아! 여장 변태 주교 노르드!”

그래, 새벽별 교단과 연관된 에피소드에선 빠지지 않던 악역이었다.

내 외침에 노르드는 버럭 소리쳤다.

“누가 여장 변태라는 거냐!”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