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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52화 (152/214)

제152화. 비 내리는 뒷골목 (11)

오후가 가까워질 무렵, 뒷골목을 적시는 비가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제의 폭풍우에 비하면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 수준이었다.

도시를 적시는 비로 도시가 고요한 와중에 도시 서쪽의 암흑가는 때아닌 소란으로 가득했다.

“지금 이게 무슨 꼴이야!”

근육질에 오함마를 어깨에 걸친 사내는 자신이 아지트 삼은 술집에서 펼쳐진 광경에 노성을 내질렀다.

잠시 일을 보고 온 사이에 바닥은 수십 명이 쏟아낸 피로 흥건했고, 테이블이며 온갖 물품이 박살 나 있었다.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살벌한 기세를 내뿜는 그는 상처투성이의 쇠망치파 깡패들을 누런 붕대로 감고 있던 바텐더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 어떤 새끼들이 우릴 건드렸어?”

쇠망치파의 파벌장은 자신의 부하들을 이 꼴로 만든 놈들에 대해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이 영지에서 다른 조직이 남아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원래 운영하던 조직을 해체하고 블랙 맘바 패밀리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이후, 블랙 맘바 패밀리가 일대 암흑가 조직들을 일통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조직이 무너진 것에 대한 잔당들의 앙갚음? 웃기는 소리다.

그런 의리와 충성심이 있다면 애초에 뒷골목 생활을 하지 않았을 거다.

힘 앞에 개처럼 굴복하고 빈틈을 보이면 등을 찌르는 것이 암흑가의 생리였다.

개중에는 극히 드물게도 그런 의리가 있는 놈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은 보통 세력을 형성하기도 전에 배신당해 죽거나, 병신이 되어 암흑가를 떠나거나, 의리를 버리고 살아남는다.

“컥! 컥! 수, 숨이…!”

멱살이 잡혀 목이 졸린 바텐더가 컥컥거리며 말을 못 하자 쇠망치파의 파벌장은 멱살을 쥔 손을 풀어줬다.

“커헉! 허억! 헉! 그, 그 노인 가면을 쓴 놈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손도끼로 고, 공격했습니다.”

노인 가면이라면 남쪽 지방 연극에서 주로 사용하는 흔한 가면이었으니 습격자가 쓰고 있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주목할 점은 가면이 아니었다.

“손도끼?”

쇠망치파 파벌장의 물음에 바텐더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 그렇습니다!”

“가면 말고 그놈들의 다른 특징은 없었나?”

“그….”

바텐더는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머뭇거렸다.

마치 보면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불안해하는 꼴에 쇠망치파의 파벌장은 바텐더의 다리를 짓밟았다.

으득!

“아악!”

다리가 부러지는 소리에 바텐더는 비명을 질렀다.

“내 눈을 똑바로 봐라. 뭘 봤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갈 줄 알아라.”

살벌한 협박에 바텐더는 고통 속에서도 눈물을 삼키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 그것이 무, 문신을 봤습니다.”

“문신?”

“예, 정면을 향해 입을 벌린 뱀 문신이었습니다.”

뱀 문신.

그들이 암흑가를 통일하기 전, 뱀 문신을 사용하던 조직은 이 영지에서 다섯 정도 있었다.

하지만 정면을 향해 입을 벌린 뱀 문신을 새긴 조직은 하나뿐이었다.

블랙 코브라, 쇠망치파와 작두파를 흡수하기 전의 블랙 맘바 패밀리의 전신이 되는 조직이었다.

“그 말, 네 목을 걸고 사실이냐?”

블랙 맘바 패밀리는 대부분 굴복과 충성의 맹세로서 이전 조직의 문신 위에 덧대 그렸다.

하지만 원래부터 보스인 노드르를 따르던 이들 중 간부급은 그러지 않았고, 보스인 노드르는 묵인했다.

결국 그들은 보스의 확고한 지지 기반이었기 때문이었다.

“사, 사실입니다! 옷에 가려져 있었지만 싸우면서 살짝살짝 드러나서 다른 분들도 봤습니다!”

그 말에 시선을 돌리니 아직 정신을 부여잡고 있던 조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싸우면서 확실히 뱀 문신을 확인했다.

쇠망치파의 파벌장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

“으드득!”

그건 그와 함께 돌아온 부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새끼들을 싹 다 죽여버려야 합니다!”

당장이라도 망치와 칼을 들고 뛰쳐나가려는 부하들을 말린 쇠망치파의 파벌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영지의 뒷골목을 통일했으니, 사냥이 끝난 뒤에 삶아지는 사냥개처럼 이제 보스인 노드르가 자신을 숙청하려는 걸까?

아니, 그랬다면 부하들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도록 으슥한 곳에서 자신을 직접 처리했을 거다.

이미 부하가 되었는데 이렇게 날뛰며 항쟁을 벌여봤자 제 살을 깎아먹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노드르의 오른팔이자 손도끼파의 파벌장이 홀로 저지른 일인가?

그것도 이상했다.

손도끼파의 파벌장 놈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렇게 멍청하게 움직일 놈이 아니었다.

게다가 흉수는 소수 정예로 움직이지 않았던가.

“혹시 그놈들이 뭐라 떠들진 않았나?”

작은 힌트라도 있으면 좋았다.

쇠망치파의 파벌장의 물음에 바텐더는 최선을 다해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아…! 눈깔 똑바로 뜨고 혓바닥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한 번만 더 헛짓거리 하는 것 같으면 진짜로 모가지를 날려버릴 거라고 했습니다!”

“뭐, 이 새끼야!”

“히익!”

부하 중 하나가 바텐더가 한 말에 바텐더를 때려죽일 듯 노려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파벌장은 손을 들어 그런 그를 말리며 생각했다.

“헛짓거리…?”

자신이 했던 일들을 돌이켜 본 순간 심장이 철렁한 느낌을 받았다.

블랙 맘바 패밀리의 보스 노드르가 영지의 암흑가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적대적이었던 조직 보스들의 모가지를 딴 프로스트만 해도 흑마법사들의 소개로 알게 된 괴물 아니던가.

그렇기에 쇠망치파의 파벌장인 그도 비밀리에 흑마법사와 접선을 시도하고 있었다.

보스인 노드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주겠다고, 필요하다면 악마들에게 바칠 제물들을 두 배 이상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노드르가 알았으면 내부 항쟁이 벌어지더라도 그의 머리를 쪼개버렸을 일이었다.

암흑가에서 힘이란 절대적이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그는 확신했다.

손도끼파의 파벌장, 그리고 몇몇 간부들은 자신의 배신을 의심하고 있고, 노드르는 아직 모르고 있다.

아마 물증은 없는 상태에서 행동파 간부가 급발진해서 덤벼들었던 것이리라.

원래 뒷골목에서 주먹을 쓰는 놈들은 생각 없고 성격이 급한 게 보편적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그는 쇠망치를 들었다.

“지금부터 손도끼 놈들에게 피 값을 받아낸다.”

“오오오~!”

파벌장의 말에 부하들은 분기탱천해서 각자의 무기를 들며 환호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형님이야말로 동생들을 생각해 주는 진정한 형님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하지만 쇠망치파의 파벌장은 부하들을 위해서 나선 게 아니었다.

손도끼파 녀석들이 자신이 뒤통수치려 한 걸 의심하고 있다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먼저 움직여야 했다.

의리란 깡패 놈들에게 사치였다.

* * *

“음~! 아주 좋아!”

나는 가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저 멀리 벌어지는 암흑가 항쟁을 바라봤다.

역시 싸움 구경 중에서도 떼싸움이 보는 맛도 있고 재미있다니까.

마침 손도끼파가 작두파에 복수하러 움직이느라 전력이 분산된 사이 쇠망치파의 파벌장이 손도끼파의 아지트로 쳐들어왔다.

-와아아아~! 전부 죽여버려!

-피의 복수다!

-뭐, 뭐야?! 쇠망치파다!

-쇠망치파가 작두 놈들과 손을 잡은 게 분명해!

나비의 힘으로 듣는 저 멀리 깡패들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쇠망치파는 그간 어렴풋이 차별당해 왔던 설움을 담아 망치를 휘둘렀다.

손도끼파는 갑작스러운 기습에 분투했지만, 핵심 전력 대다수가 작두파를 공격하러 간 탓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은하가 비춰주는 화면 영상에 버밀리온은 혀를 내둘렀다.

“와, 이게 정말 되네?”

버밀리온은 내가 짠 작전에 잘 따랐으면서도 은근히 잘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잘되고말고. 깡패 새끼들 생각하는 수준을 보면 안 될 리가 있나.”

“보통 이렇게 문신을 보여주면서 갑자기 공격하면 외부의 적이 위장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일견 타당한 의견이었다.

외부의 적이 남아 있었다면 말이다.

야드의 조사에 따르면 이 영지는 블랙 맘바 패밀리의 손에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게 유도했지.”

저들의 사고를 유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략적인 영지 규모로 계산한 암흑가 전체 조직의 규모, 그리고 블랙 맘바 패밀리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그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암흑가를 통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블랙 맘바 패밀리는 외부의 힘을 빌렸다는 말이 된다.

외부의 힘에 의해 통일되었다면, 그리고 파벌이 나뉜 조직이라면 서로 그 외부 세력과 손을 잡고 뒤통수를 치려 할 게 뻔했다.

이미 영지 뒷골목을 통일했으니 보스인 노드르만 고꾸라뜨리면 한입에 모든 것을 삼킬 수 있을 테니까.

아마 외부 세력은 악마 숭배자들일 거고, 정황상 버밀리온의 아버지인 프로스트도 엮여 있는 것 같았지만.

이 사실은 버밀리온에게는 잠시 비밀로 하자.

“서로 의심암귀에 빠지게 만드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거든.”

욕망과 불안을 자극해 주면 알아서 움직여 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람이나 짐승이나 원하는 것만 알면 조종하는 것쯤은 너무나 쉬웠다.

“아무리 그래도 동료인데 저렇게 믿음이 없단 말이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날 보는 버밀리온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동료니까 더욱 믿을 수 없는 거지. 그렇기에 저들이 기사가 아니라 깡패 나부랭이인 거고.”

차라리 적이었으면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을 거다.

적은 확실히 나를 공격하고 피해를 입힐 거란 것을 확신하지만, 동료는 함께하는 척하다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까.

하찮은 탐욕만이 지배하는 세계가 뒷골목 암흑가인 법이다.

그래서 이용해 먹기 좋고, 저들이 마음에 드는 거다.

“오, 작두파가 도망치기 시작한다.”

은하가 비춰준 작두파의 아지트로 삼은 술집에선 손도끼파의 정예가 작두파의 핵심 간부 중 셋을 죽이고 뒤쫓기 시작했다.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시간차를 두고 각기 다른 방향에서 종이 새가 날아왔다.

“그건 뭐야? 마법?”

“어, 내 친구들이 보낸 편지.”

내는 대충 대답하며 편지를 확인했다.

-유안, 아무래도 사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흑마술 의식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의식의 중심부를 찾아내야 하니 오늘 밤에는 여관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상황 보고는 주기적으로 하겠습니다.

제이드가.

-주군, 제이드 공의 연락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허락할진 모르겠지만 주군의 ‘보험’ 설치를 최대한 빨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상황 보고는 주기적으로 올리겠습니다.

아바스엘 올림.

이것 참, 벌써 거기까지 알아낸 건가?

역시 주인공 아니랄까 봐 엄청 유능하네.

나는 편지지 뒷면에 ‘OK’라고 적고 다시 종이 새를 만들어 날렸다.

내가 종이 새를 날리는 사이, 버밀리온은 은하가 띄운 화면을 유심히 보다 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싸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않을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신이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었으니, 어느 한 놈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괜찮아. 이상한 점을 눈치채기 전에 계속 기름을 부어줘야지. 그 준비를 하려고 프레시아랑 길버트도 보냈잖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프레시아와 길버트가 기절한 채 제압된 깡패들을 바닥에 질질 끌고 왔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내가 말한 대로 잘 잡아 왔네.”

소란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잡혀 온 깡패들은 세 파벌을 가리지 않고 섞여 있었다.

버밀리온은 의아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되게 악질로 유명한 놈들뿐이네. 이 녀석들은 왜? 죽여서 매달게?”

“세상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말을. 나는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선량한 시민이라고.”

역시 미래의 검악 버밀리온이다. 잘도 그런 반인륜적인 생각을 하는구만.

“이놈들은 이렇게 이용할 거야.”

나는 은하의 힘으로 누워 있는 깡패 중 하나로 변신했다.

“얼굴을 가린 게 문제라면 안 가리면 되는 거잖아?”

은하를 소환할 적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빛의 정령은 사기 치는 데 유용한 정령이라고.

예이~! 유쾌한 파티 타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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