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비 내리는 뒷골목 (10)
나는 버밀리온에게 하회탈처럼 생긴 가면을 씌웠다.
“음, 조금 갑갑한데.”
버밀리온은 가면 아래가 거치적거리는지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위치를 조정했다.
“갑갑해도 참아. 특히 넌 깡패 새끼들과 만나면 나중에 귀찮아질 테니까.”
버밀리온을 타박하며 나도 하회탈 가면을 착용했다.
프레시아와 길버트도 착용하자 나는 야드의 정보들을 살피며 말했다.
“이 영지의 암흑가를 장악한 갱단, 블랙 맘바 패밀리는 보스 노드르를 정점으로 총 세 개 파벌로 나뉘어 있어. 손도끼파, 쇠망치파, 작두파.”
각 파벌의 이름이 이 모양인 건 각 파벌의 파벌장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손도끼, 오함마, 딛개를 뗀 작두칼이라 그렇다.
세 파벌 중 가장 세력이 강한 건 손도끼파였다.
손도끼파는 보스인 노드르가 뒷골목에 발을 들이면서 동고동락한 깡패들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손도끼파를 이끄는 건 노드르의 오른팔인 아가르드로 사실상 노드르가 가장 확실히 지배하고 있는 파벌이다.
다른 두 파벌은 노드르가 세력 전쟁을 하면서 흡수한 놈들이었다.
일단 노드르의 힘에 눌려 굴복하고 따르고 있지만, 당연히 언제든 뒤통수를 후려갈길 틈을 노리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정머리 없는 양아치 새끼들답게 결속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런 조직을 해체시키는 건 눈감고도 할 수 있다.
“블랙 맘바 패밀리는 최근 세력을 급격히 확장했어. 그런 만큼 내부에서 붕괴하기 딱 좋다는 말이지.”
세력 확장에는 아무래도 프로스트가 연관된 것 같지만 버밀리온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내부 분열을 시켜 서로 상잔(相殘)시킨다는 말이야?”
버밀리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로 다수를 상대할 때는 이만한 방법이 없지.”
물론 전술 프레시아 한 방이면 이런 꼼수는 필요 없긴 했다.
“하지만 어떻게?”
버밀리온의 의문에 나는 반팔을 슬쩍 들어 올렸다.
내 팔뚝에는 검은 뱀 타투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의 블랙 맘바 패밀리가 되기 전에 노드르가 사용하던 갱단 문양이었다.
그 말은 손도끼파에게서나 볼 수 있는 문신이란 의미다.
나는 키득거리며 은하의 힘으로 버밀리온과 길버트의 가슴팍과 옆구리 쪽에 똑같은 문신을 새겼다.
어느 쪽이든 옷이 얇아서 격렬하게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보이기 쉬운 위치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자랑스러운 손도끼 파의 일원이다.”
감히 우리의 위대한 보스 노르드의 뒤통수를 까려는 간악한 쇠망치 파 새끼들을 참교육 시켜줄 거다.
“자, 전쟁이다.”
* * *
브류타 서쪽.
도시 사람들이 암흑가라 불리는 거리의 술집 ‘바람난 송아지’는 아침부터 북적였다.
이 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이 영지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블랙 맘바 패밀리의 일원이거나, 패밀리의 사채를 썼다가 노예처럼 굴려지는 불쌍하고 어리석은 이들뿐이었다.
술집 ‘바람난 송아지’는 도시에서도 손꼽히는 크기의 주점이었다.
그 이유는 블랙 맘바 패밀리를 구성하는 세 파벌 중 하나인 쇠망치파의 아지트를 겸했기 때문이다.
“푸하하하! 그래서?”
“아하하하! 그래서 그놈 애비가 질질 짜면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데 말이야!”
술집 안에선 얼굴에 흉터 하나쯤은 새긴 한량들이 술을 퍼마시며 자신들의 악행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빚에 반쯤 팔려온 사내는 얻어맞으며 바닥을 쓸었고, 술을 나르는 여인은 추행을 당하면서도 억지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흔한 암흑가의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술집에 웬 싸구려 가면을 쓴 남자가 하나 들어왔다.
“아하하하! 안녕들 하신가, X새끼들아!”
기이한 가면의 남자가 느닷없이 들어와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욕설 섞인 인사를 했다.
그러자 술집의 깡패들은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했다.
일순 왁자지껄하게 벌어지던 술집이 고요해지자 가면을 쓴 남자는 여유롭게 휘적휘적 중앙을 걸어 바 테이블로 향했다.
그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상한 차림새에도 그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가면의 남자는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들고 혀를 찼다.
“쯧쯧쯧, 거 좋은 술 좀 마시지 병신처럼 이딴 개X같은 술이나 처마시고 있어? 느그 파벌 수장이 안 챙겨주디?”
“…뭐?”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둔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지 깡패들은 버벅거렸다.
그 행동에 가면의 남자는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귀가 먹었나. 그래, 내가 특별히 치료해 줄게.”
그렇게 말한 가면의 남자는 술병을 거꾸로 들고 있는 힘껏 얼 타던 깡패의 귓방망이를 후려쳤다.
퍼억-! 와장창!
머리를 얻어맞은 깡패가 뒤로 넘어가며 원형 테이블을 짚다가 테이블이 뒤엎어져 접시와 술병이 깨졌다.
“아이~ 좋아! 어때? 치료되는 느낌이 들어?”
가면의 남자가 들고 있는 술병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사태 파악이 된 쇠망치파 깡패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단검과 쇠망치를 꺼냈다.
“이 개자식이!”
“이런 XX 새끼가! 너 어떤 새끼가 보냈어!?”
가면의 사내는 키득거리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느금마가 보내서 왔다, XXX아!”
술집 안의 깡패들이 화를 내며 가면의 남자에게 달려드려 했다.
모두의 시선이 바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에게 몰린 순간, 같은 가면을 쓴 세 명의 괴한이 손도끼를 들고 들이닥쳐 배후를 기습했다.
“좋아~! 모두 조져버려!”
바 테이블에 기댄 가면의 남자는 가면의 턱 부분을 내려 병나발을 불며 흥겹게 소리쳤고, 항쟁이 시작되었다.
* * *
나는 병째로 술을 들이키며 흥겹게 싸움을 구경했다.
내가 시선을 끌고 기습한 결과는 굉장히 좋았다.
프레시아가 확인한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일곱 깡패는 프레시아가 던진 손도끼에 맞고, 새하얀 얼굴의 백설공주가 되어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길버트와 버밀리온도 손도끼를 던져 야드의 조사 중 손꼽히는 악한들의 등을 예쁜 붉은색으로 꾸며줬다.
당연히 기습을 당한 쇠망치파는 당황해서 대응이 늦어졌고,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픽픽 쓰러지며 고작 세 사람의 기세에 밀렸다.
“쓰읍, 퉷! 이놈들은 뭐 이딴 술을 마시고 있냐?”
술에서 개미 오줌 같은 맛이 났다. 깡패 새끼들, 사람들 고혈을 빤 돈으로 좋은 술 좀 마시지, 이딴 쓰레기나 마시고 있냐?
나는 그나마 좋아 보이는 술을 찾았다.
“음, 이게 그나마 나은가?”
“으아아악!!”
내가 술을 찾는 사이에도 멍청한 쇠망치파 친구들은 우리 자랑스럽고 용맹한 손도끼파의 용사들을 죽이려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은 역으로 당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커억!”
쇠망치파 놈들이 날파리처럼 내게도 달려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프레시아가 밧줄을 단 손도끼를 던져 처리했다.
“이봐, 바텐더. 저 위에 있는 술 좀 내놔봐.”
나는 내 바로 뒤에서 피 가래를 물며 쓰러지는 놈들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다.
나는 팔을 높이 들어 은근슬쩍 반팔 소매 사이로 옛 손도끼파 문신을 보여줬다.
“하, 하지만 저 술은 보스 겁니다만….”
“어허! 지금 저놈들 보스 쇠망치가 가까울 것 같아? 아니면 내 손도끼가 가까울 것 같아?”
언제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법이었고, 먼 주먹보다 가까운 주먹이 무서운 법이었다.
바텐더도 빚 때문에 여기 있는 거긴 했다.
하지만 야드의 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동화되어 반쯤 조직원이 되어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야드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자잘한 것까지 알아낸 거지?
참 대단하다.
“드, 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대가리가 반으로 쪼개진 아저씨를 발판으로 삼는 건 좀 그렇잖아? 그 물컹거릴 술 배를 밟고 디뎌봤자 기분만 나쁠 뿐이지.”
내 장난기 가득한 말에 바텐더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공포에 떨었다.
좋아, 목격자에게 깊은 인식을 새겨준 것 같으니 잘 떠벌려 주겠지.
그렇지 않다면 호가호위하는 시건방진 바텐더를 굳이 내 등 뒤에 펼쳐지는 붉은 분수 퍼레이드에 참가시키지 않는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술병을 따고 병나발을 불었다. 그래도 파벌 보스의 술이라고 나쁘지 않았다.
꽤 고급스러운데?
“아하하하하! 이것밖에 안 돼?! X 안 서는 놈들처럼 왜 이렇게 비실거려! 좀 더 힘내보라고!”
버밀리온은 마력 한 줌 사용하지 않고 신나게 도끼를 휘둘러댔다.
버밀리온의 도끼가 깡패의 팔목을 베어내고 허벅지를 도려냈다.
선혈이 낭자한 곳에서도 저렇게 신명나게 싸우는 모습을 보니 미래의 검악(劍惡)은 검악이구나, 싶었다.
“정신 차려, 이 XX, 개X같은 새끼야! 네 XX를 잘라 네 목구멍에 처박아 버리기 전에 일어나 싸우라고!”
어… 음, 내가 최대한 깡패스럽게 연기해 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저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저거 정의가 아니라 그냥 싸우고 싶어서 불한당 사냥을 제안한 거 아니야?
그래도 다행히 죽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놔두면 실혈사할 것 같아 보이는 놈들은 많았지만 양호하다.
적어도 신성력 치료를 받지 않는 이상 사지 중 두 개 이상 멀쩡히 사용할 수 있어 보이는 놈들이 없었다.
보아하니 더 이상 깡패 짓은 못 하겠다.
이 정도면 소기의 목적은 훌륭히 달성했다.
“아으으으…!”
“사, 살려줘…!”
어느새 깡패 새끼들은 바닥을 기며 울고 있었고, 나의 자랑스러운 손도끼파 영웅들만 멀쩡히 서 있었다.
나는 상처 부위를 부여잡으며 땅을 구르고 있는 놈들에게 말했다.
“너희 시건방진 대가리에게 제대로 전해라. 눈깔 똑바로 뜨고 혓바닥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한 번만 더 헛짓거리 하는 것 같으면 진짜로 모가지를 날려버릴 거니까.”
이렇게 말해두면 알아서 의심암귀에 잡아먹히겠지.
나는 길버트와 버밀리온의 등을 치며 앞장서서 술집을 나섰다.
프레시아는 생각보다 평온했지만 길버트와 버밀리온은 흥분한 듯 동공이 확장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프레시아의 훈련을 이겨내 온 길버트가 고작 이 정도로 지쳤을 리 없다.
역시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난전을 벌이는 건 정신력 소모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고생했다.”
내 칭찬에 길버트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처음 살인했던 하얀 파랑 군도에서는 길버트가 죄책감이 생기지 않도록 말크렘이 저질렀던 악행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줬었다.
당시 아닌 척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본성이 순진한 녀석이라 멘탈 케어에 신경 썼는데 이번에도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다행인 점은 아직 죽은 놈은 없다는 것 정도인가?
이대로 가만히 두면 대부분 죽을 테지만 그건 파벌장이 알아서 할 일이고.
“후우~! 생각보다 할 만한데?”
실컷 피를 본 버밀리온은 의외로 금세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가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토해내는 것도 정신력 소모보다도 첫 실전이라 체력 소모가 큰 탓 같았다.
“난전에는 좀 더 몸을 효율적으로 써야겠어.”
스스로 개선점을 점검하는 버밀리온을 보자니 범상치 않은 정신 세계에 감탄이 나왔다.
프레시아는 날 흘겨보며 물었다.
“다음에는 작두파입니까?”
“그렇지.”
“이번에도 도련님께서 미끼가 되시고요?”
불만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가면을 벗으며 싱긋 웃었다.
“아니면 나도 싸울까?”
“그냥 미끼로 만족해 주세요.”
괜히 난전에 끼어들었다가는 되려 프레시아의 보호에 방해만 되니 오히려 눈에 띄는 데 있는 게 가장 안전했다.
물론 깡패 새끼들 수준이 시시해서 죽고 싶어질 정도로 허접해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아니었으면 나도 몸 사리지. 그럼, 그럼.
“자, 다음 참교육의 현장으로 가자! 자랑스러운 작두파 형제들이여!”
내 팔뚝의 문신은 어느새 뱀에서 곰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