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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42화 (142/214)

제142화. 비 내리는 뒷골목 (1)

“괜찮습니까?”

제이드의 물음에 나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죽을 것 같다.

“프레시아는… 사디스트….”

내 힘겨운 중얼거림에 프레시아는 싱긋 웃었다.

“오해예요. 제 충심에서 비롯된 훈련입니다.”

제이드의 마법과 디벳의 상비약의 효과로 하루 만에 침대를 벗어난 나는 프레시아의 지옥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녀의 훈련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한계를 넘어서는 체력 단련과 연공법.

그리고 신체를 가볍게 하고 일시적으로 근력을 끌어올리는 기사들의 비전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생기로운 미소를 보고 있자니 악마가 따로 없었다.

저거 분명 나로 스트레스 푸는 게 분명했다.

“훈련이 아니라 고문 수준인데.”

“그럴 리가요. 훈련 난이도는 제가 처음 검을 잡았을 시절인 다섯 살 때 했던 훈련 정도입니다. 지금의 도련님께선 제 다섯 살 때보다는 신체가 강하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살 때보다는 강한 것 같습니다. 아마.”

왜 나이가 내려가는 거냐?

하기야 자밀레이온 가문의 혈통을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게 프레시아니 다섯 살 때부터 나보다 신체적으로 강한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세상에는 몇몇 특수한 혈통이 있는데 왕국에서는 듀플리온 왕가, 블란츠바그나 그레인, 자밀레이온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자밀레이온 기사 가문의 혈통은 선천적으로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던가?

참고로 왕가의 혈통이 가진 특성은 내 몸에 있는 사계사재의 봉인을 ‘유지’하는 힘이었다.

내 따가운 시선을 받은 프레시아는 작게 헛기침하며 슬며시 눈을 피했다.

“원래 훈련은 괴로운 법입니다. 그래도 도련님께 가장 필요한 부분을 우선해서 가르쳤는데, 도움이 안 되셨나요?”

확실히 프레시아의 교육은 회피와 도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프레시아라면 우선 체력 단련 후 내려치기부터 시킬 줄 알았는데, 무기는 손도 대지 않았다.

주요 공격 수단이 정령과 마법이란 점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긴 했다.

다만 쉽게 인정하기에는 전신이 근육통으로 배겼다.

회피 훈련으로 주먹을 휘둘러 공기탄을 날리는데, 그게 돌멩이를 던지는 것보다 아팠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솔직히 도움이 많이 된다.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몸을 혹사시키는 보조 트레이너만큼 도움이 되는 존재가 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두려웠다.

프레시아의 훈련이 도움이 된다는 걸 인정하면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단언하건대, 프레시아의 훈련은 어딘가 맛이 가 있다.

내가 슬며시 말려달라는 의미로 제이드를 바라보자 제이드도 싱긋 웃었다.

“그렇게 보지 마시죠. 저도 프레시아가 무섭습니다.”

“…배신자.”

나는 툴툴거리며 제이드의 회복 마법진 위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오늘 훈련은 끝난 겐가?”

빛의 정령인 은하의 은신 장막을 뚫고 호국공 아드게일과 난쟁이 벨트가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아드게일의 별장에 딸린 작은 훈련장 중 하나였다.

“가시는 겁니까?”

나는 아드게일이 어깨에 걸쳐진 검이 담겨 있는 자루를 보며 물었고, 아드게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어깨에 걸쳐 있는 검은 그가 벨트의 연구에 어울려 주는 대가로 받은 검이었다.

직접 사용할 갑옷은 개인 아공간에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야지. 원래 이 도시에서 잠깐 쉴 생각이었는데, 어느 속이 검은 재종손 덕분에 오래 있었지 않았는가.”

“그 속이 검은 재종손 덕분에 우리 대단하신 재종조께선 부하들에게 크게 생색낼 수 있게 되었고요.”

내가 아니었으면 여섯 갈래 수염의 난쟁이에게 검을 받을 수도 없었을 거다.

시중에 판매되는 난쟁이제 무기는 대부분 갓 장인이 된 어린 난쟁이들의 습작품이다.

난쟁이들은 수염의 갈래가 많을수록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오래 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심한 경우, 한 자루의 검을 만드는 데 백여 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아드게일에게 준 검들은 반쯤 습작품이라 만드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쟁이 일족의 차기 족장이 만든 만큼 시중에 풀린 난쟁이제 무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았다.

“하하하하! 그것도 그렇군.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인가?”

호탕하게 웃는 아드게일을 보며 나도 미소 지었다.

“뭐, 정당한 거래였으니 누가 따로 감사해 할 만한 일은 아니죠.”

“그렇구만. 그럼 나는 오늘 출발할 건데, 원한다면 계속 이 별장의 연무장을 사용해도 괜찮네. 관리인에게 말해 놓지. 그래도 우리가 같이 술잔을 나눈 사이 아닌가.”

아드게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희도 슬슬 떠날 참이라 괜찮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마지막 부탁을 안 드렸네요.”

내 말에 호국공은 내가 무슨 부탁을 할까 살짝 기대 섞인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앞서 한 두 부탁 모두 그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아니었으니 그리 보는 것도 당연했다.

“나중에 제가 부탁할 때 딱 한 번, 이유 여하를 따지지 않고 제 편을 들어주십쇼.”

백전연마의 장수이기도 하지만 노회한 정치꾼이기도 한 아드게일은 내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고작 술값으로 너무 큰 것을 바라는구나.”

아드게일은 왕족이었지만 동시에 공을 세워 독립 분가한 귀족이었다.

출신 때문에 기본적으로 친왕실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긴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다.

중립인 이유는, 그가 근간으로 둔 기반 지지 세력이 군부인 서부 사령부였기 때문이었다.

대대로 군대는 왕의 명령에 복종하되 정치적 중립을 중요시 여겼다.

“그저 술값이 아닌 저와의 인연 값으로 생각해 주시죠. 저도 제가 부탁드리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사람 일이란 게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생기지 않길 바란다라….”

내 말에 담긴 의미를 가늠하던 아드게일은 쓰게 웃었다.

“확답은 줄 수 없다. 다만 네가 부탁할 때가 되면 한번 고민해 보겠다.”

아드게일의 대답에 나는 싱긋 웃었다.

“예,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큰일이 터졌을 때 아드게일과 독대하며 부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이득이었다.

“그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보도록 하지. 내 영지에 찾아왔을 때 박대는 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드게일이 떠나자 나는 벨트를 바라봤다. 벨트는 못 보던 큼지막한 상자를 메고 있었다.

“너도 떠나는 거야?”

그가 등에 짊어진 상자는 그의 대장간을 담고 있는 마법 상자였다.

아공간과 달리 정해진 것 외의 다른 물건들을 수납하는 게 불가능했지만, 대신 보존 기능은 아공간보다 훨씬 좋았다.

“그렇다, 주인. 애초에 이곳에서 목적했던 것을 기대 이상으로 이루었으니 주인이 말한 영지를 살펴보고, 일족이 터를 잡을 공간을 확인해야지.”

벨트는 침울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내 개인이 지고 있는 의무 탓에 주인의 여정에 함께하지 못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됐어. 내가 허락한 일이고, 비플레이오드 일족이 터를 잡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

제대로 터를 잡아야 나중에 도망가지 못하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편지로 의뢰했다가 나중에 찾아가거나 배송시키면 그만이었다.

물건 배송은 아공간 마도구를 전서구 인형에 보내면 되겠지 뭐.

“이해해 줘서 고맙다, 주인. 아! 이건 주인이 말했던 것들이다.”

벨트는 내가 의뢰했던 대로 소형 권총과 전용 탄창 및 탄환, 프레시아와 길버트의 갑옷 등을 꺼냈다.

루거 권총과 비슷하게 생긴 정령 권총의 총탄은 탄피가 없는 원뿔 형태였다.

화약이 아닌 정령의 힘으로 발사하는 구조라 탄피 배출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 덕분에 구조가 단순해 내구도나 기능 고장 걱정이 없었다.

다만 권총이라 사거리나 위력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잘 만들었네. 아주 좋아.”

실험 삼아 몇 발 쏴봤는데 조용하고 자동 장전도 빨랐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워낙 많은 걸 만들라고 해서 철야했는데, 보람이 있어. 확인해 봐.”

벨트가 꺼낸 상자 안에는 내가 요구한 수류탄, 최루탄, 연막탄, 크레모아 같은 자잘한 무기가 가득했다.

얼마나 쓸모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는 게 내 신조였다.

“고생했어. 앞으로 잘 부탁할게.”

“얼마든지 요구해라. 내가 마을 개척으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인의 것이라면 언제든 무엇이라도 만들어 주겠다.”

나와 벨트는 서로 악수했다.

* * *

벨트를 떠나보내고 나도 질리빌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바하무트가 주가 조작한 무역선이 차례대로 도착했다.

나는 각종 상단과 거래해 권리 증서를 현금과 어음 수표로 바꾸었다.

물론 워낙 많은 무역선의 권리 증서를 샀기 때문에, 내가 도시에 체류하는 동안 도착한 무역선은 일부에 불과했다.

나는 바하무트와 연락해 남은 권리 증서를 그녀에게 위탁하고, 차차 무역선이 도착하는 대로 처분하기로 했다.

바하무트와 친구가 되기로 하면서 연락할 수 있는 마법 통신 장비를 받았다.

나는 여관 뒤편에서 공구를 만지고 있는 아바스엘에게 물었다.

“어때? 공간 확장 마법 설치는 잘됐어?”

아바스엘에게는 부티크에서 뜯어낸 마차의 개보수(改補修)를 맡겼다.

일행의 머릿수가 늘게 되어 애초에 넷 이상은 타기 힘들었던 마차를 다 함께 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공간 확장 마법은 품이 많이 들어가는 탓에 큰 마차로 바꿀까 고민했지만, 대형 마차는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아 생각을 바꿨다.

물론 도시 안에서는 이 작은 마차에서 너무 많은 인원이 나오면 이상해 보이니 주의해야겠지만 말이다.

내 물음에 아바스엘은 신이 나서 마차를 어떻게 개조했는지 설명했다.

“예, 내부는 마력 효율을 위해 네 배 정도로 넓혔고, 마차 밑에는 충격 흡수 마법과 벨트가 만든 스프링 실린더를 부착해 흔들림을 최소화했습니다. 그리고 바퀴에는 6단 기어를….”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싸구려 마차처럼 보이지만, 아바스엘과 벨트의 마법 기술로 육해공 모두 다닐 수 있는 최첨단 자동차로 바뀌었다.

아마 마법사들의 성지라는 천공 도시에도 이런 마차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수고했어.”

“아닙니다. 자유롭게 만질 수 있으니 재미있었습니다.”

아바스엘은 나중에는 방위 체계도 갖추고 싶다며 웃었다.

마차가 아니라 전술 병기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

그때 슬라반 서커스단의 부단장 야드 토슬이 날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내가 앓아눕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 언제든 찾아왔어도 됐는데.”

먼저 내게 날아온 아바스엘과 다르게 야드는 동료 서커스단과 함께 움직이느라 늦게 도착했다.

야드가 도착한 날에는 내가 기절해 있던 상태라 못 봤다.

그 뒤로 야드는 서커스 공연 탓에 바빴고, 나도 프레시아의 지옥 훈련을 받느라 짬이 나질 않았다.

내 인사에 야드는 여전히 느끼한 미소를 흘리며 인사를 받았다.

“아닙니다. 레이디와 환호성 가득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분을 방해할 순 없죠.”

“전혀 즐겁지 않았어. 그리고 환호성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비명이었고 말이야.”

아직도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전신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 삐걱거렸다.

그래도 프레시아의 훈련 덕분에 연공법이 익숙해지고,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을 빠르게 터득했지만 말이다.

내 대답에 야드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윙크했다.

“저희 사이에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고 있군.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바스엘이 신세를 졌으니 보답할게.”

마침 주머니가 두둑하니 잘됐다.

내가 안주머니에서 금화 자루를 꺼내려는데 야드가 손을 들어 말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조금은 편하게 부탁드려도 괜찮겠군요.”

“부탁?”

야드는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당신의 여정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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