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불의 제전(祭典) (2)
베브로드론의 신물을 받아든 벨트는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으며 망치를 길들였다.
그런 그를 보던 제이드가 물었다.
“충성 바치는 걸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괜찮은 겁니까?”
제이드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제이드, 난쟁이의 눈은 본질을 꿰뚫어봐. 어린 난쟁이라면 모를까, 벨트는 여섯 갈래의 수염을 한 장인 중의 장인이야. 당연히 내 본질을 보고 충성을 바쳐도 괜찮다고 판단한 거겠지.”
사실 살짝 도박이긴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난 그렇게 번듯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호국공을 미끼 상품으로 내밀며 유혹했다지만, 거절당할 것도 염두에 두었다.
날 주군으로 모시지 않겠다고 결정해도 우대 고객쯤으로 여기도록 거래할 생각이었다.
찾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다른 난쟁이의 소재를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날 주군으로 선택했으면 된 거지, 뭐.
나도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게 이렇게 증명이 되는구만.
속으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벨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 건 주인의 본질을 봐서가 아니다. 이런 경우는 살면서 처음인데, 주인에게선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 말에 나는 당황했다.
“잠깐, 그럼 왜 내 부하가 되기로 한 건데?”
“당연히 주인이 제시한 조건들이 탐나서다.”
그 말에 나는 좌절했다.
“그, 그럴 수가. 내가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단 말이야?”
그야 물론 의도한 바긴 한데! 그렇긴 한데!
본질을 볼 줄 아는 난쟁이라고 탐욕이 없는 건 아니다.
난쟁이에게 탐욕이 없었으면 벨트의 형인 가터 비플레이오드는 일족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일족의 신물을 탈취해 도망치지도 않았을 거다.
오히려 사물의 본질을 알기에 직설적이고 본능적이기도 하다.
다만 다소 순수한 면이 있을 뿐이다.
“주인에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주인의 선악을 판단하겠나?”
내가 충격을 받자 벨트는 헛기침하며 변명했다.
“험험! 그래도 주인의 재종조를 제외한 이들의 본질은 선하고 순수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주인을 존중했지. 그 점도 선택에 영향이 있긴 했다.”
아드게일을 제외한 건 그가 오랜 세월 좋은 꼴, 나쁜 꼴 모두 맛본 백전노장이라 그럴 거다.
한평생을 전쟁터에서 굴러먹은 괴물이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오히려 공포다.
“…영향은 얼마나?”
“…10퍼센트?”
90퍼센트는 탐욕이잖아!
“쳇! 됐어. 오히려 그런 무형의 것보다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관계가 확실한 법이지.”
내 말에 벨트는 유쾌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삐진 건가? 부하가 되라며 구슬릴 때는 경험 많고 노회한 장사꾼 같더니. 주인도 꽤나 나이다운 구석도 있군.”
“됐고, 비플레이오드 일족의 총의는?”
재미있다는 듯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짓던 벨트는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심호흡했다.
“족장과 장로회는 주인에게 동맹의 자격을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자격이라면?”
“주인이 불의 제전을 치룰 것을 원한다.”
벨트의 말에 실루아가 내 소매를 살살 당겼다.
“불의 제전이 뭐에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불의 제전은 말하자면 난쟁이의 성인식이야.”
“정확히는 성인식만을 칭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로 성인식을 위해 이용하지.”
그가 말한 성인식이란 일족을 떠나 모든 난쟁이에게 성인이라 인정을 받는 의식을 말하는 만큼, 불의 제전보다 확실히 난쟁이의 인정을 받을 만한 것도 없긴 했다.
문제는 소설에서 불의 제전이란 게 난쟁이의 성인식으로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나오는 건 제단에 눕는 순간 의식이 불의 제전으로 끌려간다는 묘사밖에 없었다.
“대리인을 내세우는 건?”
“당연히 불가하다.”
“동행은?”
“다른 이들도 불의 제전을 받고 싶다면 받을 순 있겠지만, 제전은 홀로 치러야 할 거다. 성인식에도 사용되는 의식인데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리 없지 않나.”
어쩔 수 없군.
“정확히 어떤 의식인지 설명을 듣고 싶은데.”
“설명해 주고 싶어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는 용암 지대에서 검 한 자루를 벼려내는 것이었지.”
불의 제전은 신화시대부터 내려오던 의식인 만큼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즉, 의식 중에 죽으면 실제로도 죽는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정령은 데려갈 수 있다. 나도 성인식 때 정령의 힘이 없었다면 용암에 녹아버렸을 거다.”
“그것 참 위로가 되는 말이구만.”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이다.”
난쟁이는 비꼰다는 개념이 없는 건가?
“난쟁이처럼 무언가를 잘 만들 자신은 없는데.”
“아, 기록에 따르면 다른 종족은 그에 걸맞은 시련이 주어진다고 한다. 난쟁이는 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시련이 주어지지.”
“예를 들면?”
“엘프는 숲과 관련된 시련이, 인어에게는 바다와 관련된 시련이 주어진다고 한다. 주요 관심사나 특성에 따른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주인이라면 마법이나 정령에 관련된 시련이 내려질지도 모르겠군.”
벨트의 설명에 실루아와 제이드도 관심을 보였다.
“마법과 관련된 시련이요?”
“혹시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까?”
“자세한 건 관심이 없어서 모른다. 기록이라면 마을에 있을 거다.”
질문을 대충 넘긴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우리 일족의 제안을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주인.”
“네 일족 입장에서는 내가 불의 제전을 치르는 게 좋을 텐데?”
천 년 동안 고갈되지 않을 미스릴 광맥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소설에서는 내 영지의 미스릴 광맥을 발견한 게 바로 벨트였다.
그러니 언젠가는 발견했겠지만, 소설과 달리 이미 그 땅의 주인은 내가 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마력 금속 광맥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나. 충성을 맹세한 이에게 위험을 감수하라 진언할 순 없다.”
이것 참, 이런 외골수적인 면은 마음에 든다.
사실 그를 얻은 것만으로도 목표한 바는 이미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별수 없지. 믿음이란 때론 천금보다 더한 값을 하는 법이니, 믿음을 사기 위해선 감내할 수밖에.”
말로만 떠드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답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주인…!”
“아,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면 무사히 나올 순 있지?”
“…아니, 감동하려는데 그 물음은 너무하지 않나? 주인.”
너무하다니! 내 안전이야말로 가장 우선순위라고!
* * *
당초의 목표를 이룬 유안이 내일 다시 오겠다며 떠났다.
벨트는 불의 제전을 준비하며 족장과 장로회에 보고를 했다.
“이걸로 한시름 덜은 건가?”
마법 금속이 매장된 광맥이 고갈되는 건 난쟁이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하물며 고갈이 예측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일이다.
비플레이오드 일족의 광산은 이미 수십 톤의 땅을 파봤자 나오는 건 1그램도 되지 않는 마력을 머금은 부스러기뿐.
진작 고갈이 확정되었으나 폐광 일자를 계속 미뤄왔던 건 그저 볼품없는 미련 때문이었다.
다시 마법 금속을 녹여 어린 난쟁이에게 줄 수 있다면 자신이 아껴온 역작이라도 진즉 녹여줬을 거다.
하지만 한번 난쟁이와 교감을 나눈 금속은 어린 난쟁이와 교감을 나눌 수 없었다.
정확히는 높은 수준의 제련을 경험한 마법 금속은 어린 난쟁이의 미숙한 실력에 교감을 거부하는 것이다.
난쟁이에게 제련이란 하나의 의식이자 그 자체로 마법의 행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안의 제안은 메마른 가문 땅에 내리는 봄비와 같았다.
부하가 아니라 노예가 되라고 요구했어도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아아…! 이런 흥정 따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인간 상인들은 어떻게 이런 정신을 갉아먹는 짓을 하는 거지?”
하지만 그는 일족의 장로이자 어른이었다.
개인으로서는 어떠한 처우라도 기꺼이 받아들였을 거다.
하지만 그 처우를 받아들이는 대상이 일족이 되어선 안 된다.
그렇기에 벨트는 일생일대의 흥정을 시도했다.
족장과 장로회를 설득해 불의 제전을 하도록 제시한 것이다.
유안이 알았다면 그것도 흥정이라고 한 거냐며 폭소를 터트렸을 터였다.
그러나 천생이 난쟁이인 그에게는 정보를 속인 채 조건을 내거는 건 정신적 부담이 컸다.
너무 과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벨트가 불의 제전을 조건으로 내건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에 와서는 불의 제전은 난쟁이들의 성인식이나 성장을 돕는 의식이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불의 제전의 원래 목적은 난쟁이를 속이고 적의를 가진 타 종족을 불태워 죽이는 의식이었다.
먼 과거, 신화시대에는 난쟁이의 본질을 보는 눈을 속일 수 있는 종족이 꽤 있었다.
살아남으면 동료가 될 자격을 얻고, 불타 죽으면 적인 셈이다.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아. 의식이 끝나면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자.”
그가 유안의 본질을 볼 수 있었다면 굳이 불의 제전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죽음이란 운명에서 벗어남에 따라 유안은 난쟁이의 눈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버렸다.
벨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를 쓸어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신의성실을 자신이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 * *
“와오, 섬이 완전히 사라졌는데?”
프레시아와 아드게일이 대련하는 장소는 도시 인근 떨어진 무인도였다.
나름 자제하는 모양이었는데 그래도 초인 둘이 전력을 다하니 지도가 바뀌는구만.
지금은 거의 바다 위에서 싸우고 있었다.
“저기서 싸우고 있는 겁니까?”
“확실히 저기서 사나운 마력파가 격돌하는 건 느껴지는데, 보이질 않아요.”
제이드와 실루아는 내가 보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 은하가 잘 감춰주고 있는 모양이네.”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섬을 중심으로 반경 1킬로미터를 광학 위장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정령의 계약자인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위장이었다.
“대단합니다. 보통 마법이면 이 정도로 사나운 마력파에 찢겨 나갈 텐데 조금의 흔들림도 없군요. 게다가 제 마법으로 너머를 보려 하는데 뚫는 게 쉽지 않아요.”
아, 어쩐지 방금 마력이 뭉텅이로 빠져 나가더니만 제이드 때문이었나.
“잘 감추고 있는데 방해하지 마. 실루아도 그만해, 마력 빠져 나간다.”
“에헷!”
제이드를 따라 내 정령 마법에 간섭하던 실루아는 혀를 내밀며 웃었다.
귀여우니 봐줬다.
나는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앞장섰다.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간식이나 사가지고 여관으로 돌아갈까?”
끝나면 여관으로 오라는 쪽지를 가까이서 관전하고 있을 길버트에게 날렸다.
그러고는 도시 외곽에서 중심지로 향하는데, 제이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불의 제전 말입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마 위험하겠지.”
벨트는 잘 숨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불의 제전을 이야기할 때부터 동요하고 있었다.
그의 동공, 자세, 맥박, 호흡, 사소한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 빤히 보여서 헛웃음이 나오는 줄 알았다.
난쟁이가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난쟁이들끼리 모여 살다 보면 당연히 거짓말이란 문화가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럼….”
나는 제이드가 뭐라 말하기 전에 야드의 천변 가면과 머리끈을 착용해 얼굴과 머리색을 바꿨다.
“위험을 피할 생각은 없어. 다만 위험이 빤히 보인다면 리스크를 줄여야지. 아,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건 프레시아에겐 비밀로.”
그러고는 어스름 상회와 통하는 뒷문으로 들어가 임시 VIP 카드를 들이밀었다.
우리는 곧바로 접객실로 안내받았다. 지부장 조르딕 데펠로호그가 우리를, 정확히는 나를 반겼다.
“어서 오십쇼, 고객님. 무엇을 원하시나요?”
싱긋 웃는 지부장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팔러 온 게 아니라 사러 온 거니 긴장 푸시죠.”
“아하하! 그거 다행이군요. 무엇을 팔아 드릴까요?”
나는 제이드와 실루아에게 카탈로그를 건네며 말했다.
“맛있는 간식, 그리고 난쟁이들의 불의 제전에 대한 모든 정보. 2시간 내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