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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35화 (135/214)

제135화. 호국공과 난쟁이 (6)

내 말에 호국공 아드게일은 놀라서 날 바라봤다.

언뜻 분노한 것처럼 보이는 게 내가 선을 넘었다 여기는 듯했다.

그의 입장에서 서로 자칭 재종조, 재종손이라고 부르는 건 자신이 먼저 물증 없이 호국공이라 밝힌 데서 시작한 농담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왕자의 이름을 팔아가며 난쟁이를 휘하로 두려는 건 명백히 왕족 사칭으로 보일 수밖에.

“젊은이…!”

“프레시아 자밀레이온 경.”

나는 아드게일이 뭐라 하기 전에 말을 잘랐다.

내 호명에 프레시아가 고개를 숙였다.

“하명하십시오, 왕자 저하.”

“재종조께서 무료해 보이시니 같이 나가서 경이 만족할 만큼 ‘가르침’을 받아라.”

내가 말한 가르침이란 나가서 실컷 싸우고 오란 소리였다.

초인과의 대련이면 프레시아가 막혀 있는 부분에 대한 실마리 정도는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네 스승이신 호레이즌 경도 호국공께는 예를 다하시니 무례는 없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프레시아는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내가 말을 안 꺼냈어도 프레시아가 먼저 부탁했겠구만.

나와 프레시아의 대화에 아드게일은 당황했다.

“재종조 어르신. 아직 첫 번째 부탁이 끝나진 않았지만 잠시 시간이 걸릴 듯하니 두번째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제 호위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자밀레이온 경은 검호가 가장 아끼는 제자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아드게일을 팔아먹을 세일즈 포인트는 이미 다 보여줬으니 여기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 여기 있으면 오히려 방해다.

있어봤자 적당히 팔아먹으려는 걸 방해할 게 뻔했다.

“자, 잠깐. 그 망나, 크흠! 호레이즌 경의 제자라고? 그리고 자밀레이온이라면… 이 아이가 호레이즌이 제자로 들였다는 그 ‘하얀 뿔’의 딸이라고?!”

역시 노인네답게 기억하고 있군.

하얀 뿔은 프레시아의 아버지의 별칭이었다.

지금이야 사람들은 붉은 이빨과 푸른 발톱만 기억했지만,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하얀 뿔까지 포함해 삼기사(三騎士)로 유명했었다.

프레시아의 아버지는 아직 초인이 되지 못했던 시절의 붉은 이빨과 푸른 발톱을 구하고 전사했다.

만약 살아남았더라면 잊혔을 리 없을 정도로 유망했던 기사였다.

호레이즌은 소설 속에서 5대 초인이 아니라 6대 초인이라 불렸을 거라고 회고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재종조께선 전대 자밀레이온 가주에게 빚이 있으셨죠? 이 친구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건 어르신이 먹은 술값이니 그 빚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내 말에 아드게일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지 나와 프레시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정말이라고? 이 아이가 호레이즌의 제자라는 말은, 너도 진짜 왕자라고? 정말 왕자라고?”

너무 놀라서인지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왕자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 패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신분 패는 아드게일에게도 익숙한 신분 패였다.

그도 어린 시절엔 왕손(王孫)이었으니, 분가하기 전에는 나와 같은 신분 패를 사용했을 터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재종조께서 호국공이시라면 저는 이 나라의 왕자라고.”

“이 녀석아! 그따위로 말하면 누가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여!”

버럭 소리치는 노인네를 보며 나는 낄낄 웃었다.

“제가 진담으로 받아들이죠. 전 재종조 어르신이 호국공이라 스스로 밝히실 때 정말로 호국공이란 걸 알았습니다.”

“잠깐, 그럼 알고도 내게 술을 안 주겠다고 그렇게 버틴 거냐?”

“에이, 호국공 같으신 분이 그렇게 탐욕에 휩싸여 아무런 보상도 없이 신분과 권력을 앞세워 무고한 이를 핍박하실 리 없잖습니까. 그러니 제가 재종조 어르신의 농담을 재치 있게 받아드린 거죠.”

내 능청에 아드게일은 이를 악물며 웃었다.

“그, 그렇지. 보상은, 으드득, 당연한 거지!”

내 말을 부정한다면 신분과 권력으로 핍박하는 사람이 되니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참, 나이 많으신 노인네가 강냉이도 참 튼튼하다.

“재종조께서도 그리 생각하신다니 다행입니다. 뭐 하십니까? 어르신의 말씀대로 어서 나가서 제 두 번째 부탁을 들어주셔야죠. 아, 겸사겸사 이 친구도 함께 봐주십쇼.”

나는 길버트를 끼워 팔듯 떠밀었다.

“이 친구는 아직 재종조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실력은 아닙니다만 둘의 대련을 보다 보면 배우는 게 있겠죠.”

그리고는 은하와 람을 프레시아에게 붙여줬다.

은하의 힘이면 열심히 치고받고 싸워도 누군가에게 보일 일은 없을 거다.

참고로 람은 길버트를 보호하라고 보냈다.

죽지 마라, 길버트!

아드게일은 아직 내게 뭔가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손을 내저으며 내쫓듯이 내보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요.”

“끄응… 젊은이, 아니 왕자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왠지 말려드는 기분이야.”

아드게일이 프레시아와 길버트를 데리고 동굴을 떠나자 나는 다시 벨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내 물음에 벨트는 수염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내가 네 사람이 된다면 내가 안고 있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안고 있는 문제는 알고 말하는 건가?”

“당연히 알고 있으니 말하는 거지. 그리고 정확히 하자고, 해결해 주는 게 아니야. 도움을 주는 거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도와줄 방법을 찾아주는 선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백날 망치로 쇠를 두들긴다고 천하십검 중 하나이자 만예육장 중 하나인 검장을 뛰어넘는 검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벨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런데 내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의 물음에 나는 되물었다.

“그게 문제 해결보다 중요한가?”

“아니, 중요하지 않지.”

“그럼 넘어가자.”

“알겠다.”

벨트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버렸다.

나였다면 끝까지 추궁했을 텐데. 역시 난쟁이는 묘하게 나사가 빠져 있다.

“그럼 너는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지?”

그의 질문에 나는 싱긋 웃었다.

인간과 사고의 흐름이 다른 난쟁이에게 흥정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한번 결정을 내리면 아무리 다시 제안해도 뒤돌아보지 않는 난쟁이를 상대할 때는, 내줄 수 있는 건 모두 내주고 받을 수 있는 모든 걸 받아오는 게 상책이었다.

“우선 네가 원하는 대로 초인, 정확히는 재종조 어르신의 시간을 빌려줄 수 있다.”

원래는 프레시아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마침 아드게일을 만나서 다행이다.

프레시아는 지금 중요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했으니 괜히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내 아까운 술이 아드게일의 배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아아, 생각할수록 아깝다. 내 술.

“얼마나 빌려줄 수 있지?”

“닷새. 안타깝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해.”

마음 같아선 몇 달이고 도와달라 하고 싶지만 들어줄 리 만무했다.

닷새도 꽤나 아슬아슬하게 잡은 시간이었다.

참고로 아직 아드게일은 내가 자신을 팔아넘긴 걸 모르고 있었다.

돌아오면 지나가듯 슬쩍 통보해야지.

“음, 닷새라.”

“필요하다면 나중에 내 인맥으로 검호나 검귀와의 자리를 마련해 줄 수도 있어. 물론 그럴 경우 따로 협상을 해야겠지만 말이야.”

천하십검과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하니 혹하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지가 네가 안고 있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도움이다.”

비플레이오드 일족이 안고 있는 문제는 두 개가 더 있다.

“다음으로 너희 일족이 검장 아레하에게 원래 부탁하려 했던 문제. 네 형인 가터 비플레이오드가 가지고 도망친 일족의 신물을 되찾는 걸 도와주겠어.”

가터의 이름이 나오자 벨트의 기세가 일순 사나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가터는 신물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장인 여럿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장인을 숭상하는 난쟁이에게 있어서 더 이상 망치를 잡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일이었다.

“도움이라면, 네가 재종조라 부르는 초인도 돕는 건가?”

벨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장은 나와 내 일행이 전부야. 워낙 공사가 다망하신 영감이라 말이지.”

내 대답에 벨트는 실망한 듯 보였다.

“너무 실망하지 않아도 돼. 재종조는 그저 초인일 뿐이지만, 나는 너와 너희 일족의 문제를 알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도 전의 너를 찾아낸 사람이야.”

“그렇군! 신물을 되찾는 데는 무력보다 정보력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확실히, 위치만 알아낸다면 나를 비롯해 일족의 전사들이 제압해도 되는 거니까.”

사실 가터 개인의 무력은 아르카나의 네임드치고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아르카나에서 그의 위치가 높은 이유는 순전히 장인으로서의 능력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임무가 배정되는 일도 없을 뿐더러, 있더라도 어지간히 비밀스러운 임무가 아니라면 평소에는 강한 호위에 둘러싸여 있어 잡기 힘든 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예카트리체에게 듣기로 봉인을 흔들러 온 이들 중 난쟁이가 있었다는데, 왜 왔는지 모르겠다.

혹시 누가 임무에 참가하면 수염 발모제라도 주겠다고 했나?

하지만 습격자들 중에 광대 놈이 있었다면 모를까, 자반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여담이지만 난쟁이에게 풍성한 수염이란 미의 상징이었다.

수염이 없으면 대머리보다 더한 취급을 받았는데, 가터 비플레이오드는 선천적으로 수염이 자라지 않는 난쟁이였다.

“당장 찾아주는 건 무리겠지만 최대한 노력할 거야.”

난쟁이는 수명이 긴 만큼 느긋한 편이니 내가 늙어 죽기 전까지만 찾아다 주면 되겠지.

어차피 아르카나와 적대하다 보면 적으로 만나게 될 테니까.

“아, 그리고 필요하다면 신물을 대신할 것도 빌려줄 수도 있어.”

나는 아공간에서 거대한 망치 하나를 꺼냈다.

쾅!

무거운 망치를 내려놓자 바닥이 깨지며 크게 파였다.

“아이고, 팔이야. 여전히 더럽게 무겁네. 이 망치는 지금은 멸족한 베브로드론 일족의 신물이야.”

이 망치는 왕궁 대장간에 숨겨져 있던 물건이었다.

내가 프레시아를 데리고 밤 산책에서 챙긴 물건 중 하나였다.

이 망치의 원래 주인은 시조와 함께 모험했던 난쟁이로, 최후의 베브로드론 일족이었다.

“베브로드론이라면, 석공장으로 유명했던 그 베브로드론?”

“석공뿐만 아니라 목공, 그리고 대장장이로도 유능한 일족이었지. 어때? 너희 신물을 되찾기 전까지는 쓸 만하겠지?”

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묻자 벨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쓰, 쓸 만한 정도겠나! 그 베브로드론의 망치라면 아레하 한을 뛰어넘을 검을 벼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망치를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앗!”

“이건 어디까지나 내 사람에게 맡길 물건이야. 네가 내 사람이 된다면 네 일족 중 너만이 베브로드론의 신물을 들게 되겠지.”

그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망치만큼은 탐이 날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비플레이오드 일족이 안고 있는 마지막 문제, 너희가 정착한 땅의 광맥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거겠지.”

그것도 그냥 철광이나 구리광이 아니다. 무려 미스릴 광맥이 고갈되어 버렸다.

난쟁이들에게 마력이 담긴 금속이 묻힌 광맥이란 삶의 터전이자 생명줄 같았다.

난쟁이는 마법 금속을 재련함으로서 마법 금속과 교감하며 성장한다.

광산을 잃은 난쟁이는 어린 난쟁이를 기르지 못하고, 결국 쇠퇴하다 사라지게 된다.

그 옛날, 베브로드론 일족처럼.

“비플레이오드 일족이여, 나의 땅의 영지민이 되어라. 나의 땅에는 천 년은 갈 미스릴 광맥이 잠들어 있으니 터전을 내어주마.”

나의 영지민이 된다는 건, 나의 사람이 된다는 말이었다.

이제 미끼는 모두 던졌다.

나는 고작 난쟁이 하나 얻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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