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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34화 (134/214)

제134화. 호국공과 난쟁이 (5)

수염을 여섯 갈래로 땋은 난쟁이, 벨트 비플레이오드는 제 몸집보다 거대한 망치를 가볍게 어깨에 걸쳐 메며 물었다.

“무슨 볼일이 있어 이런 곳까지 찾아왔소?”

난쟁이의 시선은 아드게일을 향했다.

인간은 이렇게 죄다 때려 부수며 집에 쳐들어왔으면 역정을 냈을 텐데. 난쟁이답다면 난쟁이다웠다.

그도 그럴 게, 설치되어 있던 함정은 눈앞의 초인에 비하면 벨트에게 한없이 가치가 없을 터였다.

나는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왔지.”

내가 나서자 벨트는 인상을 쓰며 손을 내저었다.

“네게 묻지 않았다, 인간 애송이.”

그의 말에 나는 당당하게 응수했다.

“하지만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나와 이야기해야 할 거다. 비플레이오드 일족의 ‘장로’, 벨트.”

난쟁이에게 있어 수염을 몇 갈래로 땋았느냐는 그 난쟁이의 실력과 지위를 상징했다.

난쟁이는 성인이 되면 수염을 기른다. 그러고는 한 명의 장인으로 인정받으면 수염을 땋기 시작한다.

수염을 여섯 갈래로 땋은 난쟁이는 모든 난쟁이들에게 최고의 실력자라 인정받은 이의 상징이었다.

내가 난쟁이의 이름과 일족의 직위를 말하자 그는 놀라며 내게 관심을 보였다.

“내 이름을 알고 있군? 뭐, 꽁꽁 숨겨놓은 이곳까지 찾아왔으니 그건 이상하지 않지. 인간들은 특이하게 실력으로 대표자를 선정하진 않는다고 들었다. 어린 인간아, 네가 저들의 대표자냐?”

난쟁이는 오롯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이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실력의 기준은 당연히 수염의 갈래 수였다.

“그렇다. 내가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한다면 내 ‘재종조’께서도 이곳을 떠난다. 이해됐나?”

지금 그가 우리를 반기는 이유는 모두 재종조가 탐이 나서였다.

내 대답에 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라.”

난쟁이는 내가 대표자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반말을 유지했다.

난쟁이는 오롯이 장인만을 존중한다. 그렇기에 검술의 장인인 아드게일에게는 예를 차렸지만 내게는 평대를 하는 것이다.

난쟁이는 벽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벽 안은 마치 방처럼 여러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었다.

벨트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침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휑한 방이었다.

난쟁이의 방이니 꽤나 화려할 줄 알았는데.

그는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담담하게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휑하다 생각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곳에 누군가 오리라 생각하지 않았거든.”

“아니, 느닷없이 쳐들어온 건 이쪽이니까.”

오히려 엉덩이를 걷어차며 쫓아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의를 차렸다 할 수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벨트가 깔아놓은 이불 위에 앉았다.

벨트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앞뒤 재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내 이름과 이곳을 알았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나중으로 넘어가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무엇을 원하나? 내가 무엇을 해줘야 저분을 얻을 수 있지?”

그의 물음에 나는 쓰게 웃었다.

역시 난쟁이는 사회생활이란 걸 모르는 놈들뿐인가?

“너무 앞뒤를 생략했군. 나야 이야기하기 편하지만, 정작 네가 도움을 받아야 할 재종조께서 이해하지 못하시잖아. 원하는 게 있다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어째서 원하는지부터 말해야지.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나는 거라고?”

내 지적에 그는 당황했다.

마음이 급해 보이는 걸 보니 미소가 절로 나올 것 같다.

조급해하는 상대만큼 등쳐 먹기 좋은 녀석도 없다.

“끄응, 나는 말재주가 없는데. 어디서부터 뭘 이야기해야 하나…”

“그럼 내가 대신 말해주지. 혹시 틀린 점이 있으면 말해라.”

나는 아공간에서 술과 술잔을 꺼내 목을 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플레이오드 일족의 장로, 벨트가 초인을 원하는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 때문이다.

* * *

약 15년 전.

벨트 비플레이오드는 인간들의 발이 닿지 않는 땅에서 평화롭게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있는 마을은 비플레이오드 일족의 난쟁이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비플레이오드는 난쟁이 일족 중에선 대대로 뛰어난 검장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좋군. 날카롭고 단단하며 아름다워.”

벨트는 자신이 만든 검에 만족하며 마무리 작업을 했다.

그러던 중 네 갈래로 딴 수염의 난쟁이가 급하게 벨트의 대장간으로 뛰어 들어왔다.

“장로님! 벨트 장로님!”

젊은 난쟁이의 급한 외침에도 벨트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마무리 작업에 힘썼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지어 비플레이오드. 너도 이제 꽤 나이를 먹지 않았느냐.”

두 난쟁이는 풍성한 수염이 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쟁이는 요정들처럼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모가 늙지 않는 종족 중 하나였다.

벨트의 꾸중에도 젊은 난쟁이는 안달복달했다.

“지금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검장(劍匠)님께서 장로님을 급하게 찾으십니다! 빨리요!”

“뭐? 족장님이?”

비플레이오드 일족의 족장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섯 장인을 일컫는 만예육장(娩藝六匠) 중 하나인 검장 코르 비플레이오드였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을 굳이 여섯 명만 꼽는 이유는 여러 설이 있었지만 난쟁이들의 전통인 여섯 갈래로 땋은 수염에서 비롯하였다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런 만큼 대대로 만예육장은 대부분 난쟁이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만예육장을 배출한 난쟁이 일족은 모든 난쟁이의 우러름을 받았다.

머나먼 고대, 지금은 멸족한 것으로 알려진 요정, 드워프가 세상에 존재했을 적에는 그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난쟁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벨트의 물음에 지어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밖에서 웬 인간인지 요정인지 모를 사람이 하나 찾아왔는데, 그 사람과 검장님이 잠시 대화를 하더니 장로님을 급히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인간인지 요정인지 모를 사람.

만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눈을 가진 난쟁이가 제 본질을 헷갈릴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것도 수염을 땋지 않은 어린 난쟁이라면 모를까, 네 갈래나 딴 난쟁이라면 더더욱 드물었다.

하지만 벨트는 지어의 눈이 올바르다 생각했다.

정확히는 인간의 본질과 요정의 본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이랜더, 인간의 피를 이은 요정이 찾아온 모양이구나.”

하이랜더는 얼핏 보기엔 한없이 인간 같아 보이지만 그 본질은 한없이 요정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인간의 피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요정의 피는 그 존재성을 과시하듯 발현된다.

동시에 인간의 피도 그에 지지 않게 힘을 발현하는 탓에 선천적으로 흉포한 투쟁심을 타고나 전투 종족이라 불리기도 했다.

벨트는 마무리 작업을 재빨리 마치고 족장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에는 여섯 갈래의 수염을 지닌 만예육장 중 검장, 크로와 흑갈색 머리카락의 키 작은 여인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키가 작다고는 했지만 난쟁이보다는 머리 하나 이상 컸다.

“부르셨습니까?”

벨트는 손님으로 찾아온 여인으로부터 날카로운 기세를 느꼈다.

마치 한 자루의 검이 사람의 형상을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심판이 왔군요. 벨트 장로, 이분은 제게 검장의 이름을 걸고 도전하러 오신 분입니다. 장로는 심판을 봐 주셔야겠어요.”

검장의 말에 벨트는 미간을 좁혔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말입니까?”

지금 비플레이오드 일족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만예육장의 이름을 빼앗고자 온 도전자라니.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벨트의 시선에 하이랜더는 호탕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그렇게 보지 마시죠. 검장께서 검장의 칭호를 건 만큼 저도 꽤나 큰 것을 걸었으니.”

그녀의 말에 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분은 초인입니다. 이번 대결에서 제가 이기면 우리의 걱정거리 하나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호전적인 하이랜더 중에서도 초인은 꽤나 드문 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초인 중에서도 더더욱 드문 편이지요.”

강인한 초인이라면 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두 사람의 말에 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심판을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 마을에서 벨트 장로, 당신의 눈을 따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때마침 티 장로도, 리제 장로도, 셋 장로도 자리를 비워 저밖에 남지 않아서겠지요.”

“뭐, 그것도 있고요.”

검장은 싱긋 웃어 보였고 벨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전자 측에서 준비한 심판은 없습니까?”

벨트의 물음에 하이랜더는 호탕하게 웃었다.

“아하하하하! 없습니다. 난쟁이의 눈만큼 정확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심판 따위는 없어도 이곳에 스스로의 눈을 속일 자는 없지요.”

그녀의 말에 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두 장인은 각자의 망치를 들고 화로 앞에 서서 풀무질을 시작했다.

마을의 난쟁이들은 그들의 대결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대결에 있어서 재료와 설비는 동일했으나, 이 대결은 도전자에게 불리했다.

대장간의 익숙함은 둘째 치고, 모든 설비가 대장간의 주인인 난쟁이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자인 하이랜더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묵묵히 쇠를 달구고 망치질을 시작했다.

캉! 캉! 캉!

망치질을 할 때마다 작은 불똥이 사방으로 튀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두 장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만들 검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자루의 검이 완성되자 난쟁이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검장이 전력을 다해 만든 검도 검이었지만, 도전자의 검도 만만치 않았다.

“보세요.”

“보시죠.”

두 장인의 검이 벨트의 손에 쥐여졌다. 두 검 모두 세상에 이름을 떨칠 만한 명검으로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던 벨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검이!”

도전자가 만든 검을 본 벨트는 충격에 주저앉고 말았다.

“승자는… 승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중얼거리던 그를 대신해 일족의 족장이 대신 입을 열었다.

“…승자는 당신입니다. 도전자, 아니 새로운 검장(劍匠)이여.”

족장 코르의 선언에 난쟁이들은 놀라 숨을 들이켰다.

상대가 심판을 내세우지 않았으니 결과를 우기는 것쯤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장인으로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에 코르는 눈물을 흘렸다.

새로운 검장은 고개를 숙이며 선대 검장에게 예를 표했다.

“아주 약간의 차이였을 뿐입니다.”

“그래요, 아주 약간의 차이였죠. 하지만 제게는 그 차이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군요. 나중에, 실력을 다시 갈고닦은 후에 다시 당신을 찾아가 도전해도 괜찮겠습니까?”

코르의 물음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뛰어난 장인과의 교류는 제가 언제나 열망하던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새로운 검장은 떠나갔고, 족장은 모든 일족의 난쟁이에게 임무를 내렸다.

“일족의 장인들이여, 단련하라. 단련하고 단련하여 이 검을 뛰어넘어라. 그 누구라도 좋다. 다시금 만예육장의 자리를 되찾아오라!”

하이랜더가 마을을 떠난 지 1년 후.

만예육장 중 하나이자 천하십검의 한 사람인 검장, 아레하 한의 명성은 세상에 울려 퍼졌다.

그녀가 그녀의 검으로 드래곤을 죽임으로써.

* * *

“…그래서 당신은 검장 아레하 한과 비플레이오드의 차이가 초인으로서의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초인을 만나보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 다녔지.”

내 말에 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하지만 초인은 만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난쟁이라는 것을 밝히고 만나고 싶다 찾아갈 수도 없었지.”

“찾아가 봤자 만날 수 있으리란 법도 없을뿐더러, 구속되어 반쯤 노예처럼 굴려질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야.”

때문에 난쟁이는 인간들이 사는 도시에는 접근조차 하질 않았다.

“네가 이 도시에 머무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겠지. 하나는 무역 도시인 만큼 재료를 구하기 쉬운 곳이라. 다른 하나는 난쟁이의 무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인 행세를 해서 어떻게든 초인과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

“그 말이 맞다. 아직 제대로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초인이 찾아와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벨트는 쓰게 웃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벨트 비플레이오드,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럼 네 일족이 떠안고 있는 문제 세 가지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탐이 났다.

그의 일족이 탐이 났다.

그들이 만들 모든 것이 탐이 났다.

나는 호국공을 힐끗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너를 대우하고, 너희를 존중하며, 최선을 다해 돕겠다. 이 나라의 왕자, 유안 델 아즈데미안 듀플리온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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