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호국공과 난쟁이 (4)
난쟁이는 열심히 큼지막한 망치를 휘둘렀다.
캉! 캉! 캉!
마치 박자를 맞추듯 울려 퍼지는 파열음에 붉게 달궈진 철이 얇게 늘어나며 순식간에 검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창 하나 놓여 있지 않은 폐쇄된 공간임에도 난쟁이는 괴로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대장일을 했다.
이 공간이 정령들의 힘에 의해 쾌적한 환경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약한 빛의 알갱이 같은 정령이 난쟁이의 땀을 날려주고, 공기를 순환시키며 화로의 불을 거세게 만들어 주었다.
인간 중에서는 정령술사가 ‘극히’ 드물었지만, 다른 종족 중에서는 ‘꽤나’ 드문 수준에 불과했다.
따라서 난쟁이가 정령을 다루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난쟁이는 다시 용광로에 철을 집어넣었다가 미지근한 기름에 담금질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망치질을 했다.
캉캉! 캉캉! 캉캉!
늘이는 것과 다른 박자로 다듬어진 철은 어느새 어엿한 한 자루의 검으로 완성되었다.
“음, 이것도 실패군.”
기사라면 누구라도 탐을 낼 명검을 만들어낸 난쟁이는 실패작 낙인을 찍고, 쌓여 있는 실패작 더미에 내려놓았다.
작업장 구석에 수북이 쌓인 검들은 대부분 다시 녹여 재료가 되거나, 판매되어 새로운 재료를 살 돈이 될 터였다.
난쟁이의 검은 희귀 합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매우 비싼 값에 팔렸다.
“하아아… 어디서 초인 하나 안 떨어지나? 그럼 필히 그녀를 이길 검을 만들 수 있을 텐데.”
탐스러운 수염을 여섯 갈래로 땋은 난쟁이는 수염을 만지며 한탄했다.
* * *
도시 북동쪽, 해안 절벽에 도착한 나는 주변 섬들을 바라봤다.
“세 개의 섬의 간격이 같아질 곳에 있다고 했으니 여기인가?”
도시 남쪽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들이 있었다.
이 절벽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섬들이 겹쳐 세 개밖에 보이질 않았다.
완벽히 겹쳐 보이니 그 섬들의 간격이 일정한 것처럼 보였다.
“자칭 재종손아, 정말 여기 난쟁이가 있느냐?”
아드게일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어보였다.
“아마 있겠죠. 없으면 자칭 재종조께서 일을 해준 셈 쳐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천루주 절반의 대가로 세 가지 일을 부탁할 권리를 받았다.
물론 데미웨이처럼 가능한 무조건 들어주겠다는 권리는 아니었고 간단한 부탁 정도였다.
깐깐한 노인네, 내게서 억만금 같은 술을 뜯어먹고도 고작 세 가지라니.
내가 첫 번째로 아드게일에게 부탁한 건 이 절벽 아래 굴을 파놓고 지내는 난쟁이에게 같이 가 내 노, 아니 성실한 일꾼이 되어달라는 ‘설득’을 돕는 일이었다.
당연히 난쟁이와 만나기까지 날 보호해 주는 건 기본이었고, 설득에 들어가는 ‘노동’ 또한 감수해야 했다.
“왔나 보네.”
이 절벽 아래 있는 난쟁이의 소굴로 들어가기 전에 내 일행들을 불렀다.
프레시아와 길버트, 실루아는 내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오빠! 난쟁이는 어디 있어요?! 저 난쟁이는 처음 봐요!”
실루아는 난쟁이에게 만들어 달라고 할 도면을 한아름 들고 있었다.
아주 뼛속까지 뽑아먹을 생각이구나.
이런 기특한 녀석.
“하하하, 내 볼일이 먼저란다.”
미소 지으며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프레시아와 길버트가 아드게일을 흘끔 바라봤다.
“도련님, 그런데 저분은 누구십니까?”
같은 기사라 그런지 프레시아는 아드게일이 은연중에 흘리는 기세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아아, 이분은 자칭 내 재종조 되시는 분이야.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내 소개에 왕족의 가계도에 대해 전혀 모르는 길버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내 가계상 재종조가 한둘이어야지.
사생아에, 외척인 왕비들의 가문까지 포함하면 아직도 살아 있는 재종조가 두 더즌은 될 거다.
하지만 왕궁으로 들어오며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프레시아는 깜짝 놀라 날 바라봤다.
노인네가 호국공이란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우연히 만났어.”
“그런데 자칭이….”
“어떻습니까? 이 둘은 제 호위입니다.”
나는 프레시아가 묻기 전에 아드게일에게 물었다.
의외로 눈치가 빠른 프레시아는 내가 말을 자르자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게일은 프레시아와 길버트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쁘지 않군. 아니, 아주 좋아. 상당히 단련되었어. 이 아이는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듯 기도가 반듯하고, 저 아이는 실전에서 갈고닦았는지 기도가 사납구나.”
지금까지 수많은 기사를 길러온 아드게일은 프레시아와 길버트의 차이를 단번에 꿰뚫어봤다.
데미웨이는 그런 것까진 못 알아보던데. 대단하다.
하기야 그가 평생 동안 썰어버린 적국 기사와 병사가 네 자리 수일 텐데 그런 눈이 생길 법도 했다.
역시 인간 백정은 괴물 백정과 다르구만.
“음, 그런데 둘 다 어디서 본….”
“자, 그럼 다들 모였으니 내려가자고, 제이드.”
나는 아드게일의 말을 잘랐다.
“예, 알겠습니다.”
제이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를 허공에 띄워 절벽 아래로 천천히 이동했다.
“저기인 것 같습니다. 저기만 마력의 흐름이 이상합니다.”
제이드가 잠시 마력 흐름을 만지더니 바닷물이 갈라지며 그 아래에서 동굴이 나왔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이 자연적으로 생긴 곳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었지만, 누군가 벽을 깎고 길을 정돈해 놓았다.
“제대로 찾아왔네. 자자, 자칭 재종조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로 했으니까, 다들 방해가 되지 않게 다들 뒤로 빠져.”
내 말에 아드게일이 자신의 애검을 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칭 재종손에게 얻어먹은 게 있으니 일을 해야지. 너희들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드게일은 역시나 내 일행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나와 길버트는 정확히 확인했으려나?
“조심하세요, 자칭 재종조. 여기 사는 난쟁이는 보통 난쟁이가 아닙니다.”
“하하하하!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사칭이 아니라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
깡!
아드게일은 한 걸음 내딛자마자 날카롭게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사각에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오는 걸 잘도 쳐냈다.
“쓰읍, 보통 화살이 아닌데?”
“그야 난쟁이의 함정이니까요.”
내 말에 아드게일은 여유롭던 표정을 풀고 긴장했다.
“끄응, 아무래도 자칭 재종손이 내게 술값을 아주 제대로 치르게 만들 생각인가 보구나.”
“그럼요. 그러니 보고 배우라고 제 호위들도 데려온 것 아니겠습니까. 둘 다 잘 보고 배워.”
내 여유로운 대답에 아드게일은 낮게 웃었다.
“좋아, 후배들이 보고 있으니 오랜만에 힘 좀 써볼까!”
* * *
난쟁이는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풀무질을 하며 불의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띵-!
그러던 중 옆에 걸어둔 종이 울렸다.
거처 입구에 설치해 둔 함정과 연동되어 있던 종이었다.
“침입자? 굳이 이런 곳에?”
난쟁이의 거처는 위치를 모르고 있으면 찾기도 힘들뿐더러, 오로지 대장장이로서의 일만 하는 곳이라 보물 따위는 없었다.
그나마 값나가는 게 있다면 아껴둔 희귀 금속 몇 가지와 난쟁이 본인의 손재주가 전부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관점이었다.
난쟁이의 거처는 인간들에게 보물 소굴로 보일 법했으니, 침입자가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허참. 나름 조심했는데 침입자가 생길 줄이야.”
그가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갈 때마다 정령들의 힘으로 엄폐했다.
게다가 도시의 상인들과 거래할 때는 인간으로 변장했기에 설마 침입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어디 보자, 어느 괘씸한 것들이 왔을까.”
작은 빛 구체로 생긴 정령이 움직이며 동굴 입구의 상황을 난쟁이에게 보여줬다.
정령이 보여준 광경은 난쟁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허! 늙은 인간이 대단하군!”
여러 인간들 중 가장 앞장서 있는 노인의 실력은 수많은 검객을 봐온 난쟁이로서도 탄성을 내지를 만했다.
* * *
아드게일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향하지 않게 튕겨내며 바쁘게 발을 놀렸다.
그의 걸음이 닿는 곳 바닥마다 철컥! 소리가 나며 함정이 쏟아져 나왔다.
아드게일은 몸을 비틀어 바닥에서 비스듬히 솟아오른 창을 피하는 동시에 창을 베어 다시 밟아도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이어서 천장에 매달린 쇠구슬이 날아들자 검강을 두른 검으로 깔끔히 일도양단했다.
“저 정도 두께면 검기만으로 저렇게 베어내는 게 불가능합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움직임은 프레시아가 설명해 줬다.
“어때? 배울 만한 점이 있어?”
내 물음에 프레시아와 길버트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프레시아는 아드게일의 마력 운용을 봤고, 길버트는 몸놀림을 봤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교보재가 있으니 둘을 데려오길 잘했다.
“여기도 함정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드게일이 미처 파훼하지 못한 함정을 발견하고 밟았다.
“이익! 이 자식이!”
아드게일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함정을 피하는 동시에 몸을 날려 내게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캉-!
“에헤이~! 제대로 함정을 처리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너 말이야…!”
주름진 그의 목에 핏대가 서며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
나는 싱긋 웃으며 기대듯 벽면을 짚었다.
찰칵-!
“어어! 저기 돌 굴러옵니다!”
내가 벽면과 연동된 함정을 가리키자 아드게일은 두고 보자는 듯이 날 노려봤다.
그리고는 달려가 집채만 한 바위 덩어리를 주먹으로 산산조각 냈다.
콰앙-!
바위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각종 함정을 발동시켰다.
“이이…! 망둥이 같은 녀석아! 가만히 있어!”
“어이쿠! 실수입니다요! 실수!”
“거짓말을 할 거면 처웃지나 말아라!”
아드게일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함정을 파훼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잔상마저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인 그는 포효했다.
“으아아아!! 성질 같아선 전부 갈아버리고 싶네!”
“어어? 저희를 다 생매장할 셈입니까? 이야~! 우리 자칭 재종조, 그렇게 안 봤는데 살인멸구에 취미가 있으셨군요?”
이런 함정 따위 초인인 그가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면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한 힘을 사용한다면 높은 확률로 해안 절벽이 무너지며 모두 생매장당하겠지.
난쟁이가 이런 곳에 거처를 만들어놓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적이 낼 수 있는 힘의 한도를 강제하고, 그 힘으로는 못 막을 함정을 설치해 적을 격퇴한다.
꽤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난쟁이다.
“넌 제발 좀 닥쳐!”
나는 낄낄거리며 아드게일이 바쁘게 움직이느라 놓친 함정 쪽으로 다가갔다.
“어이쿠! 습기 때문에 발이 미끄러졌네~!”
찰칵-!
“이 자식이! 일부러지?!”
아드게일은 나를 지키기 위해 전력으로 다시 뛰어와 내 몸을 노리는 철퇴와 창을 베어냈다.
“일부러라니요. 재종조께서도 농담을 참 잘하십니다.”
난쟁이가 머리를 잘 쓰긴 했지만, 그래도 함정은 초인에게 통하지 않았다.
“아니야, 넌 내게 준 술이 아까워서 내게 심술을 부리는 게 분명해!”
“섭섭하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리한 노인네.
“여기 들어오기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칭 재종조께선 난쟁이를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셔야겠다고. 이건 설득의 과정입니다.”
이 동굴에 자리를 잡은 난쟁이, 벨트 비플레이오드는 초인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지금 벨트는 분명 침입자가 들어온 것을 알 거다.
분명 어디에선가 우리를 보고 있을 테니 나는 그에게 보여줄 뿐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노라고.
물론 아드게일이 생각보다 더 실력이 좋아서 쉽게 쉽게 함정을 처리해 줬다.
그 덕분에 아주 약간 더 실력을 볼 수 있게 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벌써 다 도착한 모양입니다.”
동굴의 끝에는 창문과 문이 나 있는 반듯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벽 너머에서 수염을 여섯 갈래로 땋은 난쟁이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눈에는 경계심보다는 흥미로움이 어려 있었다.
자, 이제 재종조를 비싸게 팔아 넘길 시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