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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30화 (130/214)

제130화. 호국공과 난쟁이 (1)

소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소녀의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에는 무수히 많은 별빛이 맺혔다.

그런 소녀에게 한 여인이 다가오며 물었다.

“점성술인가요? 쿨럭! 수레바퀴.”

여인, ‘아르카나 18, 달’은 파리한 안색으로 잔기침을 하며 물었다.

‘아르카나 10, 수레바퀴’인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듀플리온 왕실의 왕후 탄핵 사건을 직접 본 이후로 아직 직접적인 미래 예지는 무리인가 보군요.”

달의 추측에 수레바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위대한 예언자로서 각성한 ‘별을 읽는 자’라고는 하지만, 미래를 직접 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막대한 수명뿐만 아니라 육체적 장애나 마법적 제약이 생길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점성술 등의 직접적인 예지가 아닌 마법을 통한 징조의 해석을 통해서는 그러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다소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예지력을 타고난 소녀의 힘을 이용하면 적중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계사재(四季四災)의 봉인을 계승한 1왕자의 위치를 읽어내는 건 당분간 무리겠군요.”

1왕자 유안의 위치를 바로 알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소녀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수레바퀴의 예지가 없었다면 ‘아르카나 03, 여제’를 움직이기 위해 아고슬라브 제국의 황제를 설득할 시간이 부족했을 터다.

그렇다면 듀플리온 왕국의 왕은 중립파 귀족들을 포섭해 왕후 탄핵에 성공했을 것이 뻔했다.

자밀 왕후 개인이야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치가 없었지만, 왕후란 직위는 아니었다.

차후 대계를 위해선 각국 정계의 영향력을 잃을 순 없었다.

특히 듀플리온 왕국의 경우 중요한 위치였기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다.

그때 수레바퀴는 고개를 저었다. 소녀의 간략한 고갯짓에 달은 흠칫 놀랐다.

“설마… 예지력을 회복해도 1왕자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겁니까?”

달의 추측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죠?”

소녀는 손가락에 마력을 담아 허공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죽었어야 할 운명에서 벗어남으로써 그의 주변은 커다란 운명의 공백 지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아직 편린을 읽을 수 있을진 몰라도, 시간이 더 지난다면 완벽히 ‘검은 별’이 될 겁니다.

사람의 운명은 별빛과 같다.

하지만 별빛도 관측되어야 의미를 갖는 법.

검은 별이 된 유안의 운명은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운명마저 끌어들여 가려버렸다.

그의 운명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아졌다.

그 말에 달의 표정이 굳었다.

죽음이란 운명에서 벗어난 것은 1왕자 유안뿐만이 아니었다.

“콜록! 콜록! 그렇다는 말은 설마!”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 겨울나무의 현자, 예카트리체 하이트필 또한 죽을 운명이었던 존재.

아직 운명이 예정한 그녀의 끝을 맞이할 시간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죽음에 다다를 계기’란 운명이 사라졌다.

계기가 사라졌으니 죽는다는 운명 또한 크게 흔들려 멀어졌을 터.

달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죽음에 다다를 운명은 언제였죠?”

-약 11개월 뒤.

그렇다면 앞으로 11개월 동안은 예카트리체를 예지해 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달이 묻기도 전에 소녀는 달이 할 말을 알고 미리 고개를 저었다.

“전대 겨울나무의 현자도 예지하지 못한다고요?”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달은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그래요, 그녀도 ‘별을 읽는 자’였지요. 게다가 사계사재 중 최강의 마법사이니 충분히 카운터 칠 수 있을 테고요. 제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어요.”

예지는 커다란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보통 마법사도 아니고, 드래곤조차 발아래 두는 괴물이 카운터를 친다면 수레바퀴 혼자 죽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게 뻔했다.

분명 수레바퀴와 깊이 연관된 이들에게 초월적인 ‘살(煞)’이 붙을 거다.

‘살’이란 파멸로 이끄는 거대한 운명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예카트리체나 그녀 인근 사람을 직접 예지하는 것은 절대적인 금기였다.

항상 바스티유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니 잠시 깜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큰일이군요.”

직접적인 예지는 이전에도 불가능했지만, 점성술과 같은 편법적인 방법으로도 충분히 예지가 가능했다.

그렇기에 예카트리체의 죽음이라는 운명과 시기를 예지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거대하게 흔들린 운명으로 이제 그런 편법도 통하지 않는 상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불길한 느낌에 달은 수정처럼 생긴 통신 마도구를 꺼냈다.

“매달린 사람.”

‘아르카나 12, 매달린 사람’을 호명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들려왔다.

-오, 위대하신 달께서 무슨 일이실까? 나는 저번 임무에서 타격이 심각해서 회복 중인데 말이죠.

매달린 사람은 바스타유 산맥에서 악마에게 영혼의 일부를 심은 분신을 잃어 막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말로는 회복 중이라 했지만 영혼 조각의 상실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상처였다.

임무라면 거절하겠다는 뉘앙스에 달은 혀를 찼다.

“콜록! 엄살이 심하군요. 큰 상실감은 이해하지만 당신이라면 진작 떨쳐냈을 테죠.”

-하하, 천하의 달도 바스타유에서 입은 상처를 떨쳐내지 못했는데 하찮은 나 따위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달 또한 유안의 지독한 함정 탓에 입은 상처를 이겨내지 못했다.

단순히 육신에 입은 상처는 공간 이동 후 ‘아르카나 02, 여교황’에게 치료받았지만, 상처를 통해 스며든 저주가 문제였다.

‘아르카나 15, 악마’이자 독원의 다섯 마스터 중 하나인 말레콥 제프리즈가 살아 있었다면 치료가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말레콥이 사망한 이상, 그의 후계자인 로우어펠에게 저주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로우어펠은 아직 경륜이 쌓이지 않은 데다 멍청한 구석이 있어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위험한 임무를 시키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좋아할 일이죠.”

-오, 내가 좋아할 일은 무엇일까요?

매달린 사람의 물음에 달은 쓰게 웃었다.

“열쇠로 봉인을 푸는 계획을 잠시 유보하고, 원래 진행 중이던 해석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해석이라면 사계사재의 봉인?

“그렇습니다.”

달의 긍정에 매달린 사람은 흥미로운 듯 콧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건 수레바퀴가 예지로 열쇠의 행방을 찾은 뒤로 멈춘 계획 아닙니까?

“잠시 조직의 역량을 열쇠 포획에 집중한 것뿐이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계승자를 죽이고 다른 계승자에게로 넘어가기 전에 채가는 것도 꽤나 난도 있는 일이잖아요.”

-으흠~ 그건 그렇지. 내가 열심히 준비했었으니까 잘 알지.

“계획이 성공했다면 모를까, 실패했으니 다시 계승자를 찾기까지 투 트랙으로 계획을 진행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해석이 멈췄을 때 가장 아쉬워했던 건 당신이잖아요?”

달이 동의를 구하자 수정구 너머의 매달린 사람도 동의했다.

-다시 연구할 수 있다면 나야 좋긴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해석의 실증까지 얼마나 남았죠?”

결과물을 닦달하자 매달린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모릅니다. 쌓인 연구가 많으니 운이 좋다면 당장 내일도 될 거고, 재수가 없다면 100년이 지나도 지지부진할 겁니다. 350년 전에 해석 연구를 막 시작한 연구진도 처음에는 30년이면 될 거라 호언장담을 했다죠?

수백 년간 난제로 악명이 높던 문제가 갑자기 풀리기도 하는가 하면, 향후 수백 년을 지배할 이론이 느닷없는 계기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게 역사였다.

수많은 마법사가 연구를 위해 감언이설로 투자자를 유혹하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카나의 최고 간부 중 한 사람인 달은 그런 감언이설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가급적 빨리 완료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하죠. 아, 그러기 위해선 전차가 날 죽여 버리겠다고 찾고 있는 것부터 말려주시죠. 그런 괴물이 돌아다니며 살기를 날려대면 불안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아르카나 07, 전차’.

오색의 용병왕 로툴러스는 저번 임무로 매달린 사람에게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였다.

“알겠어요. 그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죠. 그럼 고생해 주세요.”

달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는 화제를 돌리듯 소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점성술로 무엇을 읽고 있었죠?”

-겨울나무의 현자.

소녀가 말하는 존재는 ‘개인’이 아닌 ‘직위’로서의 겨울나무의 현자를 의미했다.

사계의 현자는 특별한 운명을 짊어지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운명과 동시에 현자로서의 운명도 지닌다.

달은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별을 읽는 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예지자가 아닌 사람이 바라볼 수 없는 세상이었다.

이 감각은 흡사 앞을 보지 못하는 이가 무지개란 현상을 머리로는 알아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무엇을 읽었죠?”

-계승.

소녀의 짧은 대답에 달은 놀랐다.

“그럴 리가! 예지된 계승은 10개월 뒤가…. 아니, 죽음의 운명이 소멸한 탓에 생긴 여파인가.”

봉인의 열쇠는 실종 상태인 데다 저번 이계의 구멍을 막은 봉인을 헐겁게 만드는 작전 이후 바스타유 산맥에 이상한 징후가 감지되었다.

어쩌면 겨울나무의 현자가 바뀌었기에 생긴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바스타유 산맥의 중심부로 파견해 겨울나무 숲의 동태를 살필 인선(人選)을 고민하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신도 밤이 늦었으니 들어가서 쉬도록 하세요.”

마음 같아선 소녀에게 예지시키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섣불리 닦달해선 안됐다.

리스크도 리스크지만, 예지란 원한다고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레바퀴만을 위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달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제대로 들어맞는 계획은 태양신의 교단으로 그 더러운 악마숭배자들을 처리하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정도인가요. 정말로 쉽지 않군요.”

마계의 악마들에게 세계를 팔아 넘기려는 더러운 매국노 놈들은 아르카나와 공존할 수 없는 적이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조직의 힘을 소모해서라도 토벌해야 하는 암 덩어리들을 잠재적 적들의 힘을 깎아가며 처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으리라.

답답한 마음에 밤공기를 쐬다가 소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 *

중장갑을 입고 소수의 부하 기사들을 대동한 채 말을 바삐 달리던 늙은 기사는 잠시 멈춰 서고 아름다운 휴양 도시의 전경을 바라봤다.

“내 눈이 이상한 겐가? 왜 멀쩡해 보이지?”

노기사의 물음에 부하로 보이는 중년의 기사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도시를 바라봤다.

“제 눈도 이상한 듯합니다.”

부하의 대답에 노기사는 중얼거렸다.

“분명 드래곤이 도시를 공격 중이라는 긴급 연락을 받고 이 늙은 몸을 이끌고 왔건만.”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중년의 기사는 직접 말을 달려 도시로 향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난감한 표정으로 노기사에게 돌아왔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부하의 모습에 노기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 하던가?”

상관의 질문에 중년의 기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알아온 사실을 보고했다.

“그게 말입니다. 드래곤은 사실 악마 숭배자들이 도시에 혼란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환영이었다고 합니다.”

“뭐, 환영? 환여어엉?!”

노기사는 마법으로 전해진 긴급한 구원 요청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목숨까지 바쳐 국가를 수호하겠다고 결의했건만, 드래곤이 가짜였다는 말에 맥이 풀리다 못해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 진정하십쇼! 호국공(護國公) 저하!”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내 이놈의 새끼들을!”

“저하! 저희가 너무 급하게 와서 정보가 부족했던 겁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이끌고 직선거리로 오지 않았습니까!”

질리빌시는 드래곤의 등장에 즉시 구원 요청을 보냈다.

몇 시간 뒤 태양신 교단의 발표가 있은 뒤, 바로 구원 요청을 철회했지만, 그때는 이미 노기사와 최정예 기사들이 출발한 뒤였다.

닷새 거리를 사흘 만에 올 만큼 최단 거리로 움직인 탓에 갱신된 정보를 전달받을 틈이 없었다.

왕국을 대표하는 다섯 초인 중 한 사람, 호국공 아드게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모처럼의 휴양 도시니 푹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강행군으로 꽤 지치지 않았습니까.”

중년의 기사가 권하자 기사들은 눈을 반짝였다. 그들의 모습에 아드게일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허, 그래. 조금은 쉬는 것도 좋겠지.”

기사들은 주군의 결정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드게일이 이끄는 기사 무리는 느긋하게 도시로 들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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