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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23화 (123/214)

제123화. 드래곤과 내기 (2)

갑작스러운 드래곤의 등장에 도시 전역이 소란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병사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긴급 소집되었다.

“생각보다 대비가 잘되었네.”

은하의 힘으로 외부 상황을 허공에 영상으로 띄워 확인한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슬쩍 숨었다.

난리가 난 건 백작의 대저택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곳에선 직접적인 폭발이 일어난 만큼 아비규환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의도한 대로 폭발에 의한 부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대저택을 둘러싼 보안 마법이 오작동을 일으켜 여기저기서 화염과 폭풍이 몰아쳤다.

노련한 사용인들은 그 여파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 사용인들은 도망치듯 정문 현관으로 대피하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드래곤을 보고 졸도했다.

기사들은 백작 일가를 지하 대피소로 안내하려 했다가 폭발한 흔적을 보고 아예 비밀 통로로 긴급히 저택을 빠져나가기로 한 듯했다.

헐벗다 못해 알몸인 백작은 공포에 떨며 간신히 속옷을 챙겨 입고 허둥지둥했다.

덕분에 위협적인 기사들과 병사들도 백작 일가를 호위하기 위해 3층을 지키던 병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자,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빨리 처리하고 튀도록 하자.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의 비밀 공간 세 곳 중 우선 백작의 방으로 향했다.

백작의 방은 폭발에 큰 영향이 없는 듯했다.

“침대 아래였던가? 나비야.”

-미야옹~!

나비가 바람으로 침대를 날려버렸다.

침대 아래 먼지 낀 카펫을 치우고 자물쇠 걸린 문을 마법으로 부쉈다.

작은 창고 같은 공간에는 금고가 담겨 있었는데, 이번에는 마법 금고였다.

“음, 이건 열면 주인에게 바로 신호가 가는 종류네.”

지금 금고를 열면 비밀 통로로 도망치고 있는 집주인이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올 위험이 있었다.

위치 추적 마법은 걸려 있지 않으니 나중에 풀기로 하고, 일단 금고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다음 타겟은 서재다.

서재는 폭발의 여파 때문인지 책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이건… 마도서? 마법서도 많네?”

이 집주인이 마법사인가? 아니면 그냥 수집가?

어찌됐든 제이드와 실루아가 아주 좋아하겠다.

책과 함께 책장 뒤편에 있는 비밀 공간을 들춰냈다.

이번에는 금고 따위가 아니었다.

“하하, 이래서 이 집을 털라고 한 건가? 영악한 드래곤 같으니라고.”

책장 뒤에서 나온 건 이단으로 낙인찍힌 악마 숭배자들의 제단(祭壇)이었다.

“이봐요, 바하무트. 이것도 챙겨 갑니까? 아니면 이대로 발견되도록 둡니까? 관음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내 귓가에 마력이 맺히더니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음이라니, 너무하네.

왠지 아까부터 거슬리는 감각이 들더니만 역시 지켜보고 있었구만.

역시 저 쾌락주의자가 재미있는 구경을 놓칠 리 없었다.

“그래서 이것도 가져가요? 솔직히 딱히 필요는 없습… 이런 쓰벌, 재수 옴 붙었네. 하필이면 새벽별 교단이야?”

새벽별 교단은 악마 숭배 교단 중에서도 가장 성세가 큰 놈들로, 오만의 마왕 루키페르를 따르는 미치광이들이었다.

희한하게도 따르는 건 오만의 마왕인데, 옛날에 색욕의 마왕을 따르는 교단을 잡아먹은 이후 핵심 간부들의 반 이상은 색욕의 마왕 숭배자들에게 역으로 물들어 있었다.

재수 없으면 아공간에 짱박아 둔 곰 인형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겠는데?

-으흠~ 이런 조언은 내기를 망치기는 하지만… 그 제단은 그냥 뒀으면 해. 내 지인이 대기 중이거든.

역시 비리 장부 내기는 나로 하여금 소란을 일으켜 이게 발견되게 하기 위함이었나 보군.

-내 생각 이상으로 잘해줘서 위험했네. 사실 그것까지 챙기려 했으면 내가 먼저 말을 걸었을 거야.

음, 그냥 말을 걸지 말고 챙길 시늉이라도 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그 대가로 꽤나 뜯어낼 수 있었을 텐데.

바하무트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단을 건드리지 않는 대가로 선물 하나 줄게. 그러니 얌전히 다시 책장으로 가려둬.

아마 악마 숭배 제단은 이곳에서 발견되어야 증거품으로서 법적인 효력을 갖는 거겠지.

“좋습니다. 선물 기대하죠.”

나는 순순히 제단에서 떨어지고 책장을 세웠다.

그러고는 서재를 빠져나와 마지막 비밀 공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지막 비밀 공간은 딱히 별다른 무언가 없이 그저 간단히 마법 금고 하나만 놓여 있었다.

“키에에에에엑-!!”

창밖으로 내가 만들어둔 드래곤 환영이 날아다니며 질리빌 경비대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환영의 조종은 대충 은하에게 맡겨 놓았더니 알아서 잘 움직이고 있었다.

어쩐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마력이 계속 빠져 나간다 싶었다.

보통 환영마법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환영술로 만든 환영은 술사의 집중력이 흩어지면 사라지거나, 일그러지거나, 그도 아니면 잘해봐야 움직임을 멈춘다.

하지만 나는 정령에게 맡겨놓으니 그런 걱정이 없어서 좋았다.

빛의 굴절률을 일일이 계산해 투영하는 것은 인간에게나 중노동이었지, 정령에게는 숨 쉬듯 간단한 일이었다.

“다들 이제 그만해도 괜찮아.”

내 지시에 누니와 나비는 환영에 현실감을 주던 번개와 울음소리를 멈췄다.

은하는 누구라도 환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드래곤의 모습을 일그러트리며 지워버렸다.

자연스럽게 드래곤이 도망치는 모습을 꾸밀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무역 도시인 이곳에 정말로 큰 타격이 입을 위험이 있어 티 나게 소동을 마무리했다.

실제 드래곤이 도시를 위협하는 것과 어떤 괴짜가 환영을 만든 것은 사건의 크기가 다르다.

“자, 그럼 이제 튀자.”

아직 내기가 끝나는 시간인 동이 트기까지 여유가 많았다.

내가 재빨리 저택을 탈출하자 나와 교대하듯 태양의 문장을 내건 성기사단과 이 지역 영주의 문장을 내건 영지 기사단이 저택을 급습했다.

꽤나 재미있어 보였지만, 중간중간 초인까지는 아니어도 무시할 수 없는 괴물들도 보였다.

몰래 숨어 구경하는 건 아쉽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 * *

밖에서 내가 위험하면 들이닥칠 준비를 하던 프레시아와 제이드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오자 실루아를 돌보고 있던 길버트가 반겼다.

“오셨습니까. 어디 다치진 않았습니까?”

“괜찮아. 뭐 위험한 일 했다고 걱정씩이나.”

나는 피식 웃으며 악마 숭배자 백작의 저택에서 털어온 금고를 꺼냈다.

“아, 이거 털던 김에 가져온 거.”

내가 백작의 서재에서 가져온 마도서와 마법서들을 꺼내자 제이드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감사합니다. 와! 다양하군요. 일반적인 마법서뿐만 아니라 구하기 힘든 사령술서, 저주술서, 흑마술서라니!”

특히 흑마술서는 마도서로 분류되는 물건이었다.

실루아도 깨어 있었으면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곤히 자는 중이었다.

친구인 우리와의 삶도 중요했지만 기록실에서 보내는 가족과의 시간도 중요할 테니 굳이 깨우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무 말도 없네?”

내가 프레시아를 흘끔 보며 묻자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 말씀이신가요?”

“아니, 그 있잖아. 내가 아무 말 없이 드래곤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서 위험하지 않느냐고 할 줄 알았거든.”

무역선 권리 증서를 사는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은 이유도 위험하다고 반대할까 봐서였다.

내 말에 프레시아는 오히려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다른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무려 자하룡 바하무트 님이시잖아요!”

아, 그 주가 조작범이 건국 신화의 주역 중 하나였지.

왕가의 문장인 드래곤 문양도 바하무트에서 따왔으니 말하자면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수호룡이었다.

정확히는 시조와 친분이 있을 뿐, 딱히 국가 수호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바하무트 님과 함께 돌아간다면 와, 크흠! 도련님을 무시하던 사람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줄 수 있을 거예요!”

왕궁에 있을 때 내 전속 호위 기사로서 받은 설움이 있는지 살짝 흥분했다.

반짝이는 눈을 보니 차마 바하무트와 함께 움직일 생각이 없다고 말할 엄두가 안 났다.

“어.. 음, 그러네. 나비야, 소리 증폭.”

나는 시선을 외면하며 금고 다이얼을 만졌다.

증폭된 소리와 손끝의 감각으로 금고 비밀번호를 맞췄다.

득, 득, 득, 득… 철컥!

얼마 지나지 않아 금고가 열렸다.

몇 년 만에 만지는 금고라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몸으로 익힌 경험은 어디 가질 않는구만.

아니, 몸이 바뀌었는데 몸으로 익힌 경험은 어폐가 있나?

금고 안에는 품질 보증서까지 첨부된 값비싼 보석들이 든 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꽝이군.”

내가 도둑이었다면 당첨 중의 당첨이었겠지만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비리 장부였다.

그래도 털 만한데? 이참에 도둑으로 전직해 봐?

득, 득, 득, 득… 철컥!

득, 득, 득, 득… 철컥!

이어서 연 금고 안에는 보석함과 부피는 작지만 진귀한 마법 재료들이 나왔다.

지하에는 부피가 큰 금괴와 예술품 등이 있고, 1, 2층에는 부피가 작은 귀중품이 있다면, 진짜는 3층의 금고란 소리였다.

하기야 유독 3층 경비만 그렇게 대단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3층에 있던 금고를 열자 흑마력과 사기가 가득한 보석과 마석, 그리고 마도구들이 가득 나왔다.

아마도 악마 소환이나 의식에 사용하는 재료 같아 보였다.

“이건 이거대로 쓸 만하겠네.”

다른 한 금고에서는 악마 숭배 교단의 상징과 교단 의복, 그리고 각종 비리 장부로 보이는 것들이 나왔다.

“떴다~!”

서류 내용에 따르면 새벽별 교단과 연관된 장부와 백작으로서 뇌물을 받아먹은 장부가 나눠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찌 됐든 백작의 비리 장부이기만 하면 됐다.

짝짝짝짝!

내 환호에 바하무트가 창문으로 들어오며 박수를 쳤다.

“이야~! 재미있었다. 수고했어, 백작의 저택에 초인급에 준하는 데스나이트도 있어서 실패할 줄 알았는데 그런 방식으로 성공할 줄이야.”

바하무트의 말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데스나이트?”

그런 건 없었는데?

“아, 백작의 등에 새겨진 문신이 데스나이트와 연결된 소환 문신이야. 백작이 원한다면 마력과 수명을 대가로 소환할 수 있거든.”

그러고 보면 새벽별 교단의 고위 간부 중에서 데스나이트를 다루는 사령술사가 있었지.

그 사령술사가 백작에게 데스나이트를 호위로 준 모양이었다.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으면 확신범이군요.”

내가 살짝 노려보자 바하무트는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쉬운 일이었으면 내기로도 걸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고 싶어도 나는 드래곤이라 특정 조건이 맞지 않는 이상 인간 세상에 간섭해선 안 되거든.”

인간 세상에 간섭해선 안 되는 녀석이 무역선을 납치해 표류시키고 주가 조작을 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가 불신의 시선을 보내자 그녀는 당황했다.

“정말이야! 이건 일곱 신이 인세에 강제한 규칙이거든.”

모든 규칙에는 허점이 있다.

즉 바하무트는 허점을 이용해 떼돈을 벌었다는 소리였다.

아마 그 허점은 사회 보편적 인식상 드래곤이 간섭한다라고 인지되어야 제약이 발동한다는 것일 거다.

“당신도 참 대단합니다.”

“아하핫! 그렇게 칭찬할 건 없는데.”

칭찬 아니다.

쑥스러워하던 바하무트는 싱긋 웃으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제단을 건들지 않는 조건으로 말했던 선물은 이거야.”

종이에는 ‘교환권’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레어에 있는 보물 중 하나와 교환할 수 있는 권리야. 내가 직접 줄까 하다가 직접 고르는 걸 좋아할 것 같아서 말이야.”

확실히 좋긴 하다.

바하무트의 레어에 있는 보물이라면 왓슨의 거울 방패, 드래곤 하트 귀걸이, 영광의 관, 세계수 가지 활 등등 차고 넘쳤다.

“참고로 레어에는 너 혼자 들어갈 수 있어.”

바하무트의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이것 또한 유흥이라는 건가?

그녀의 성격상 레어 보물 창고 속에는 꽝도 숨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럼 이번 내기는 제 승리 맞죠?”

내가 비리 장부를 들자 바하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는 이제 내 친구다, 유안. 편하게 대해도 좋아.”

그녀가 손을 뻗어 비리 장부를 가져가려 하자 나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말했다.

“편하게 대해도 된다니 편하게 말하지. 내기 조건은 어디까지나 비리 장부를 가져올 것. 너한테 장부를 줘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잖아?”

내 말에 바하무트는 당황했다.

나는 그녀는 보며 싱긋 웃었다.

“선 제시요.”

어리석은 드래곤 같으니라고.

날 이용해 먹기에는 백 년은 이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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