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인어의 노래 (6)
-인어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오래된 기억이다.
인어는 자신의 어미이자 위대한 바다 생물들의 왕 앞에 앉았다.
“네 어리석은 언니가 제 욕심을 못 이기고 이 바다의 재앙이 되었다.”
담담한 듯하지만 슬픔과 한탄 섞인 목소리에 젊은 인어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지만 네가 신성한 의무를 다하여 주어야겠다.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하여 주거라.”
제 핏줄의 숨통을 끊으라 명하고는 사과하는 어머니를 보며 젊은 인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참에 원하던 세상 구경 실컷 할 테니 너무 서글퍼 마세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젊은 인어는 어려서부터 나라 밖의 세상이 궁금했으며,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는 인간들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어리석은 짓을 벌인 가족을 죽여야 하는 것은 슬픈 일이었으나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에 설레기도 했다.
젊은 인어는 가족과 인사하고 힘차게 밖으로 헤엄쳤다.
-순수하고 맑은 곡조다.
시간은 도도히 흐르고 젊은 인어는 크라켄이 흘리는 부정한 기운을 따라 쫓았다.
그 와중에 많은 인간과 요정, 수인, 난쟁이를 만났다.
개중에는 순수한 호의로 그녀를 대하는 이도 있었고, 반대로 추악한 탐욕으로 사냥하려는 이도 있었다.
인간에게 실망하다가도 그들의 반짝이는 삶에 홀리듯 다가가 또 상처 입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인어는 자신과 같이 크라켄을 쫓는 젊은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인어는 처음 보는군. 도움이 필요한가?”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는 부상을 입은 인어에게 물었고, 인어는 경계하면서도 선뜻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쫓는 크라켄은 홀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해져 버렸다.
“그런데 전승에 의하면 인어는 아무 옷도 안 입는다고 하는데 너흐으느으!”
“게오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아내인 제이올린은 남편인 게오르의 뺨을 잡아당기며 싱긋 웃었다.
“제히오리, 아히아, 자못해흐-!”
게오르의 사과에 제이올린은 잡은 뺨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수염 난 얼굴을 잡았다 늘리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에 인어는 너무나 재미있게 웃었다. 그러고는 부부라는 관계에 관심이 생겼다.
마법사 부부와 동료가 된 인어는 크라켄을 쫓았다.
-맑은 노래는 즐겁게 울려 퍼졌다.
마법사 부부의 도움을 받자 지지부진하던 추격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법사 부부는 어느 어촌 도시 근방의 군도에 크라켄이 도망치지 못할 함정을 설치하기로 했고, 인어는 주변 정리와 몰이를 하기로 했다.
주변 해양 몬스터를 정리하고 크라켄이 뿌린 부정한 기운을 회수해 정화하는 중에 그녀에게 하나의 취미가 생겼다.
어부들의 배 근처에 몰래 숨어 그들의 노래를 듣는 일이었다.
“이봐, 신입! 노래나 한번 불러봐!”
“예에! 신입 조타수 아그니! 한 곡 뽑아 보겠습니다!”
맑고 힘찬 젊은 어부의 노래는 그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마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어부들의 노래도 개성 있고 즐거웠지만, 인어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는 하나뿐이었다.
배를 따라다니며 노래를 듣던 인어는 어느 날 배가 가서는 안 될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말리려 했다.
그러나 크라켄이 부정한 기운을 흩뿌려 날씨는 인어의 예상보다 빠르게 변덕을 부렸다.
결국 젊은 어부는 동료를 구하다 바다 깊이 빠져버렸다.
“아그니-!”
멀어지는 목소리에 젊은 어부를 구한 인어는 갈등했다.
지금이라도 배로 보내야 할까, 아니면 기적처럼 보이도록 섬이 아니라 항구로 젊은 어부를 데려가야 할까.
그런 고민 속에서 인어의 마음속에 젊은 어부의 노랫소리가 울렸다.
-두근거림과 설렘의 노래는 서서히 어둡게 바뀌어간다.
인어는 말했다.
“너를 보면 심장이 아프도록 두근거려. 그런데도 그게 너무나 기분이 좋아. 내가 이상한 걸까?”
인어의 물음에 젊은 어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런 걸 보면 이상한 건 아닐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간단한 요리를 했다.
요리라 해봤자 생선을 굽고, 마법사 부부가 가져와 주는 빵과 치즈, 채소를 자르는 것뿐이다.
벌써 몇 개월이나 반복한 일과였다.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일상에 평온함을 느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하지만 유능한 그녀의 친구 부부는 그 행복의 끝을 예고했다.
너무 빠르다고, 조금 더 천천히 해도 된다고 에둘러 말해봐도 마법사 부부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최대한 미뤄왔음을. 더 이상 미룬다면 결국 크라켄을 놓치고 다시 끝없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그 끝에는 결국 이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연인인 젊은 어부는 인어의 손을 마주 잡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살아 있다는 것만 알리고 다시 돌아올 거야. 어머니는 날 붙잡기야 하겠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게.”
그러고는 그물과 낚싯바늘에 사용되는 철사 조각들을 엮어 만든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줬다.
“지금은 이런 것밖에 주지 못하지만, 도시에서 더 좋은 반지를 사 올 거야. 그러니 이건 약혼반지야.”
젊은 어부의 말에 인어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인어는 울지 못한다.
그러니 웃자. 누구보다도 행복했노라 말할 수 있도록 웃자.
“결혼반지, 기대해도 되는 거지?”
인어는 후회할 말을 입에 담았다.
순수한 청년은 이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호언장담했다.
“그럼! 기대해!”
젊은 어부는 마법사 부부가 준비한 배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점처럼 작아지다가 이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갔다.
“네가 없던 삶은 너무나 무기질적이었어. 하지만 너와 헤어지고도 나의 삶은 이리도 다채롭구나.”
인어는 노래했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랑이 떠나갔음에 구슬피 노래했다.
울음을 토해내듯 하늘 높이, 바다 깊이 울리도록 노래했다.
세상이 그녀의 노래에 공명하듯 소용돌이치며 섬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이 막혔다.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나갈 수 없는 고립된 섬들 사이에서 인어는 자신의 옛 핏줄에 원망을 쏟아냈다.
마법사 부부가 도왔음에도 육주야(六晝夜)를 처절하게 싸웠다.
그 싸움의 끝에 바다의 부정한 기운을 담은 괴물은 쓰러졌고, 일을 마친 마법사 부부는 떠나갔다.
인어는 홀로 남아 정화를 위해 노래했다.
-그렇게 노래는 외로움을 담았다.
홀로 남은 인어는 치열하게 노래를 불렀다.
부정한 기운을 수습하고 정화하는 동안 친구와 연인이 있던 섬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 위로하며 노래했다.
-그렇게 노래는 그리움을 담았다.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록 인어는 끊임없이 노래했다.
섬 밖을 내다볼 여유도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그녀의 연인도 포기했겠지.
인어의 노력이 빛에 닿았는지 추억이 깃든 섬에 작은 생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잡초에 불과할지라도, 그 보잘것없는 풀 하나는 희망이었다.
비록 그이도, 친우도 없는 섬이었지만 다시 이 섬을 원래대로 돌린다면 그때처럼 돌아오지 않을까?
인어는 그런 헛된 기대를 담아 노래했다.
-그렇게 노래는 기쁨을 담았다.
-그렇게 노래는 슬픔을 담았다.
-그렇게 노래는 추억을 담았다.
-그렇게 노래는….
인어의 노래가 끝나가자 부정한 기운을 담고 있던 보옥에서 맑고 순수한 바다의 기운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아아아….”
그렇게 모든 곡조의 노래가 끝나자 부정한 괴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하나의 가련한 인어가 수조 안에 담겨 있었다.
나를 비롯한 이 자리의 모두는 그녀의 삶이 담긴 노래에 한마디 찬사도, 섣부른 갈채도 보낼 수 없었다.
자칫 노래에 대한 모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담담한 것은 노래를 부른 그녀뿐이었다.
“잘 가요, 어리석고 사랑스러운 언니.”
에일리의 작별 인사에 인어는 맑고 순수한 기운의 보옥만을 남기고 물거품으로 변해 사라졌다.
보옥을 회수한 그녀는 내 손에 쥐여줬다.
커다랬던 보옥은 정화하고 나니 한 손에 쥐어질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은 내 예상과 달리 부정한 기운이 담겨 있을 때보다 더욱 강렬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꼭 좋은 일에 사용해 줘. 약속해 줄 수 있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였으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노래를 들어놓고 거짓을 입에 담을 수 없네요. 제가 약속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꼭 필요한 일에 사용하겠습니다.”
내 솔직한 대답에 그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면 돼. 네게 필요한 일이 좋은 일이길 바라며 노래할게.”
“그럼 저는 그 노래가 언제든 들리길 바라죠.”
필시 아름다운 노래일 것이다.
에일리와 아그니는 돌아가며 나와 내 일행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소용돌이 군도에서의 볼일을 마친 우리는 다시 타고 왔던 배에 올라탔다.
놀란 것이 있다면 아그니가 함께 배에 올라탔다는 것이었다.
“여기 남지 않으셔도 되는 겁니까?”
내 물음에 늙은 어부는 유쾌하게 웃었다.
“홀로 섬에 남으면 무엇 하겠나?”
그의 말에 바닷속에서 인어가 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함께 섬을 나서는 것이다.
“섬에 살림을 차리려면 아직 필요한 게 많아. 가구도 함께 골라야 하고. 먹을 것도 생선만 먹을 순 없지 않은가.”
“그렇군요.”
이제 늙은 어부가 홀로 바다를 나서는 일은 없을 터였다.
연인이 언제나 함께할 테니 말이다.
늙은 어부는 노를 저으며 노래했다.
흥겹고도 즐거운 노래에 귀 기울이며 바닷바람을 맞았다.
* * *
평화로운 날, 평화로운 바다, 평화로운 섬.
인어는 파도치는 계곡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여보, 노래를 들려줘.”
그녀의 부탁에 늙은 남편은 주름진 손으로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놓친 세월이 아쉬워, 남은 시간이 흘러 나갈까 두려워 꼭 붙잡았다.
“그래, 노래를 불러줘야지.”
은퇴한 어부는 따사로운 햇살에 흥겨워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온 어느 날, 몇 번의 가을과 그만한 겨울이 두 사람의 곁을 훑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당신이 불러줘.”
은퇴한 어부의 부탁에 아내는 흔쾌히 노래를 불렀다.
한참을 부르다 노래의 마지막이 다가오자 아내는 남편의 뺨을 쓸어 만졌다.
“이제 당신 차례야.”
“….”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그녀는 남편을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노래를 불렀다.
그대 이제 그만 돌아오오, 먼 곳을 돌고 돌아
그리운 땅에 그리던 임에게 노를 저어
바람을 타고 부푼 돛을 머리에 이어
낡은 뱃고동 소리 울리면, 그대인 줄 아오
선잠에 들린 바위 바람 소리에
그대인가 버선발로 달려 나가네
허탈한 갈매기 한 쌍만 어이 나를 반길꼬
온갖 진자리 다 밟고 오시려나, 기다림 하염없네
간절한 노랫소리 들려올 적에는
못다 한 말 귓가에 읊조리리라
그리움의 반은 설렘이오, 다른 반은 추억이라
다시 돌아온 그대, 낡은 뱃고동 소리
어찌 이제야 오셨소, 이제야 오셨소
…
..
.
“잘 자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반은 설렘으로, 반은 추억으로 기다릴 테니.”
인어는 노래했다.
행복했던 추억을 풍요롭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