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인어의 노래 (4)
내 외침에 체펠은 놀라서 바로 옆의 닭 수인 덕츠를 바라봤다.
노회한 뒷골목의 깡패인 덕츠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내 말을 받아쳤다.
“흥! 되도 않는 이간질이군. 체펠의 아비와 나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그런 헛소리는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래? 진짜 친구였나? 체펠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바람 걸음’이 탐이 나서 접근한 게 아니라?”
나는 키득거리다가 과장되게 손짓했다.
“아아, 물론 죽이라고 지시한 건 너희들의 잘난 대장인 말크렘이었지. 체펠의 아버지 두드만을 죽이라고 명령할 때 말크렘이 분명 이렇게 말했었지. ‘그놈의 딸년이 제대로 된 마법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니 탐이 난다. 고아로 만들고 은혜를 베풀자.’라고.”
이번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깡패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 단둘이 있었던 일을 내가 까발리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외다리 저크소스, 네가 노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아둔 비자금을 몰래 훔친 게 누구인지 아나? 바로 앞에 있는 왜소한 긱이다! 그리고 그 비자금의 위치를 알려준 란츠를 죽이고 원수를 갚아준 척을 했지!”
“닥쳐!”
왜소한 체구의 사내는 노회한 닭 수인처럼 능숙하게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반응에 의족을 한 사내는 자신의 동료를 노려봤다.
“왜소한 긱! 말크렘은 널 신용하지 않는다. 적당히 때를 봐서 네가 저지른 비리를 폭로하고 널 죽여 재산을 꿀꺽할 생각이지. 그런데도 충성을 다할 거냐?”
내 이죽거림에 덕츠가 외쳤다.
“저자가 되도 않는 소리를 더 지껄이기 전에 죽여!”
그리고는 스스로 앞장서서 내게 달려왔다.
뻔한 수작이다.
체펠이 뒤를 치기 전에 떨어진 거다.
덕츠의 뒤를 따라 긱과 주근깨 청년 오소독스, 채찍을 든 여자 제블, 썩은 팔의 남자 덱보블이 뒤를 따랐다.
아홉 명의 부하 중 따르는 게 넷이라. 인망이 없구만.
하기야, 눈 돌리면 등에 칼 꼽는 게 뒷골목의 생리 아닌가.
의심이란 독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마석 세 개를 손에 쥐고 먼저 달려드는 닭대가리를 집중해서 공격하며 외쳤다.
“장미 가시 제블! 네 연인을 죽인 놈과 붙어먹기로 한 거냐? 옆에 있는 오소독스가 널 차지하기 위해 강도로 위장해 죽인 건 알고?”
“헛소리!”
“놈의 오른쪽 어깨를 봐라! 특유의 번개 모양 흉터가 남아 있을 거다!”
내가 알려준 정보에 채찍을 든 여자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주근깨 청년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정말로 공격하려는 건 아니었는지 오소독스의 옷자락만 뜯어졌다.
채찍으로 저 정도 정밀도라니, 정말 달인이었군.
주근깨 청년의 맨살이 드러나자 제블은 이를 악물었고 입술에서 핏물이 흘렀다.
저런, 양치를 게을리 한 모양이다. 치주염인가?
“잭의 번개 자르기 흔적…!”
“아, 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 제블! 이건, 이건… 그래! 어렸을 때 같이 훈련하다가 생긴…!”
“닥쳐! 죽여 버리겠어!”
제블은 이성을 잃고 오소독스를 공격했다.
좋아, 하나는 이렇게 처리했고.
나는 덕츠에게 번개 화살을 점점 거세게 날렸다.
살기 위해 스스로 ‘바람 걸음’을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질리안 36호, 저 남자를 막아.”
“바이스 마스터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내 곁을 지키던 질리안 36호는 검을 들고 긱을 공격했다.
그사이 나는 썩은 팔을 견제하며 더욱더 덕츠를 몰아붙였다.
썩은 팔은 보잘것없는 저주술사라 접근만 막아도 괜찮았다.
하찮은 저주 따위는 로사리오의 가호를 뚫지 못할 테니까.
번개 화살을 피하던 닭대가리는 기어코 스스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비전 기술인 ‘바람 걸음’을 사용하고 말았다.
“덕츠! 네가 정말로 내 아버지를!”
“아니다! 이건 네 아버지가 내게 선물로 준 거야!”
되도 않는 변명에 적들은 혼란에 빠졌다.
나는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체펠, 말크렘이 네게 처음 온 날 이렇게 말했지 않나? ‘미안하다. 네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 정확한 흉수는 누군지 모르지만 베브루 그만의 문신을 한 녀석이었다.’라고. 그래서 정말로 죽인 놈은 잡았나?”
베브루 그만은 과거 말크렘의 최대 적대 갱단이었고, 지금은 와해되고 말크렘에게 흡수된 세력이다.
내가 단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정확히 이야기하자 체펠의 눈이 돌아가 버렸다.
“덕츠!”
“아, 아니라니까!”
나는 당황하는 닭대가리에게 느긋하게 물었다.
“덕츠! 그러고 보니 네 딸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버린 놈이 긱이란 걸 알고 있었나? 딸이 납치된 게 당신이 암흑가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 아니었던가?”
“네놈이 그걸 어떻게…!”
덕츠가 흔들리자 긱이 억울하게 외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왜 그러겠어!”
“아아, 저 억울해하는 건 정말일 거야.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못 할 테니까. 저 쓰레기가 열여덟 살 때 한 일이라서 말이지. 원래 가해자는 피해자의 사정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잖아?”
내 말에 긱은 걸리는 게 있는지 움찔했다.
노련한 덕츠는 그 반응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기익!! 이 X새끼가!”
참고로 아쉽게도 이번에는 말크렘과는 연관 없었다.
그때는 아직 그가 선량한 기사였을 때의 일이었다.
내 위대한 마법, 이간질에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뒷골목 깡패 새끼들이 산산이 분열했다.
“죽여 버리겠다! 긱! 감히 내 딸을!”
“그 추레한 깃털을 다 뜯어버리고 그 닭 볏을 아버지 영전에 바치겠다! 덕츠!”
“잠깐! 아니야! 오해라고!”
“뭐가 오해라는 거냐! 그 흉터나 지우고 헛소리해!”
내 마법의 효과는 그들에게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적의 헛소리에 넘어가서 아군끼리 싸우다니!”
길버트와 열심히 검을 맞대고 있는 말크렘도 부하들이 혈전을 벌이자 당황해서 싸움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설픈 검기의 길버트와 검강을 앞에 두고 있을 정도로 굳건한 검기의 말크렘의 승부는 당연하게도 길버트가 밀리고 있었다.
내 이간질에 집중하지 못해서 승부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라 봐야 했다.
길버트가 많이 배우겠구만.
“적들을 앞에 두고 아군끼리 싸우면 다 죽는다고! 이 멍청이들아!”
말크렘의 외침에도 그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외다리와 병든 닭이 힘을 합쳐 긱을 공격했고, 고양이 귀는 오롯이 덕츠의 빈틈만을 노렸다.
긱은 두 명의 합공에 남은 넷에게 소리쳤다.
“너희들 가만히 있지 말고 날 도와! 덕츠를 죽여!”
긱은 그 와중에 멍청한 짓을 벌였다.
병든 닭 덕츠는 노련한 만큼 갱단의 안살림을 도맡은 자였다.
지위는 말크렘의 오른팔인 긱이 높아도 뒷골목의 비루한 자들치고 작게라도 덕츠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다.
물론 그만큼 원한도 많았지만 말이다.
갈등하던 네 명 중 둘은 방관을 선택하고 나머지 둘은 덕츠를 돕기 시작했다.
이건 덕츠의 인복이라기보다는 긱의 인성 때문으로 보였다.
이런 인망 없는 새끼. 이럼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잖아. 그럼 안 되지.
“썩은 팔 덱보블! 네 팔이 썩도록 저주를 건 저주술사의 위치를 긱이 알고 있다! 그 녀석이 죽으면 너 혼자 한참 찾아다녀야 할 걸?”
내 조언에 정신없이 공격을 당하던 긱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그래! 알고 있어! 그 정보를 줄 테니 나 좀 살려다오!”
멍청하면 몸이 고생이구만.
생명줄이 될 수 있는 정보를 바로 떠올리지 못하다니 말이다.
“…내가 계속해서 찾고 있었던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시팔! 그래! 나중에 이 정보 가지고 거하게 이용해 먹으려 그랬다, 새끼야! 꼽냐?! 꼬와도 날 살리란 말이야, 이 개새끼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의 진심 어린 외침에 썩은 팔 덱보블은 혀를 찼다.
“미안하오, 덕츠. 꼭 찢어 죽이고 싶은 새끼가 있어서 말이오.”
덕츠를 돕던 썩은 팔이 전향하자 얼추 균형이 맞았다.
아주 개판인 모습이 뒷골목의 쓰레기들다워서 보기 좋았다.
어차피 소설 속에서도 내분으로 무너지는 놈들이니 시기가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미련한 존과 쇠망치 터틀, 사교도 질리언이 이 자리에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놈들까지 처리해야 제대로 궤멸하는 건데.
“자, 그럼 검은 구슬부터 처리해 볼까?”
프레시아가 열심히 촉수를 베어내고, 제이드와 에일리가 크라켄을 다시 죽음으로 되돌려 보내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동도 안 텄는데 해가 질 때까지 싸울 것 같았다.
내가 열심히 싸우고 있는 길버트와 말크렘에게 다가가자 사태를 관망하던 둘이 내 앞을 막았다.
하지만 이 둘 가지고 날 막는 건 무리였다.
“질리안 34호, 35호. 처리해.”
“바이스 마스터의 명을 따릅니다.”
두 떨거지가 질리안 시리즈에게 밀려나자 나는 적당히 말크렘이 내게 달려들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서 검은 구슬이 쥐어진 그의 왼손을 노렸다.
“나비야.”
-미야옹~!
보이지 않는 바람의 화살이 날아들자 말크렘은 검으로 바람의 화살을 베어내고 재빠르게 길버트의 검을 쳐내 뒤로 물러났다.
“에헤이, 안 싸우고 뭐해? 내빼면 훈련이 안되잖아?”
“빠드득! 이 자식이!”
내 이죽거림에 말크렘은 이를 갈았다.
지금 상황은 그에게 절망적이다.
죽은 크라켄을 일으켜 사역하면 방심하고 있는 인어 하나쯤은 손쉽게 죽일 수 있을 줄 알았을 테지.
하지만 예상과 달리 크라켄은 발이 묶여 있고, 충성스러웠던 부하들은 사분되어 서로 싸우고 있다.
모든 게 신경 쓰이는 와중에 본인은 길버트의 훈련 교재 취급이나 받고 있으니 울화통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개자식! 너부터 죽여 버리겠어!”
“어딜!”
내게 달려드려는 말크렘을 길버트가 막아섰다.
이제 익숙해졌는지 미약한 검기로도 정련된 검기를 잘만 튕겨냈다.
과연, 힘으로 밀리니까 순발력으로 밀어내는 건가?
마력통이 커지면서 인지 영역도 커진 건지 길버트가 한 짓이 무슨 짓인지 느껴졌다.
길버트는 순간적으로 검이 부딪힐 좁은 부위에만 두껍고 밀도 있는 검기를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순간적인 질적 승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러 이유로 신경이 분산되어 있다지만 나로서는 엄두도 안 나는 미친 짓이었다.
아주 마음에 든다.
나는 낄낄거리며 계속해서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목표물은 하나, 오롯이 검은 구슬이었다.
“아이고, 기사단장 후보로 이름 높던 기사 양반이 참 많이 영락했다. 핏덩이를 상대로 그렇게 질질 끌다니 말이야. 쯧쯧쯧, 그러니 쫓겨났지.”
“네 이놈!”
나는 계속해서 말크렘의 역린을 건드렸다.
분노를 오롯이 눈앞의 상대에게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인데 자꾸만 내게 시선이 가니 결국 길버트의 검에 옆구리가 얇게 베였다.
“아하하하! 비유~웅신! 기사 작위는 뒷돈 먹여 땄었냐? 하기야 뒷골목 깡패 새끼가 들어간 기사단이 제대로 된 곳일 리 없지.”
아즐란 백작가의 기사단이 그렇게 무시당할 곳은 아니었지만 아무렴 어떠하랴.
싸울 때는 상대를 빡치게 하는 게 이기는 거다.
“에돈이라고 했던가? 그 기사 양반도 참 병신이다? 그치? 어떻게 너 같은 걸 기사단에 받아드….”
“이 개자식!! 주둥이를 찢어버리겠어!”
“아하하하! 할 수 있으면 한 번 해~봐~!”
“으아아아아!”
꼴에 은인이라고 이성을 잃다니 참 멍청하다.
나는 그가 날뛰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바람의 화살로 왼손 검지와 중지를 날려버렸다.
비어버린 손 틈새로 검은 구슬이 굴러 떨어졌다.
“아, 안 돼!”
검은 구슬에 내 마력의 절반을 때려 박은 바람의 화살이 박히자 구슬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자 한껏 날뛰던 크라켄 사체도 힘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으아아아아! 감히 네놈이… 어흑!”
말크렘은 앞뒤 분간하지 못하다가 길버트의 검에 가슴이 꿰뚫리며 피를 토했다.
제국 전역에 악명을 떨치던, 아니 악명을 떨쳤어야 했을 암흑가 보스의 최후치고는 너무 하잘 것 없는 최후였다.
그는 소설 속에서 제이드 일행을 가장 곤혹에 빠트렸던 악역 중 하나였다.
말크렘의 패거리는 개개인의 무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불리하면 일반 시민을 인질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다가 내부 배신자의 도움으로 내분을 일으켜 물리친 적이었다.
“자, 그럼 이제 팝콘이나 씹으며 싸움 구경이나 할까?”
아직 원한 가득한 부하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파이팅! 이기는 놈들은 살려줄 수도 있어!”
아닐 수도 있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