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11화 (111/214)

제111화. 인어의 노래 (1)

늙은 어부는 인어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리 늙었는데도 너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는구나.”

아그니의 말에 에일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내가 널 어떻게 알아보지 못하겠어?”

허공에 맺혔던 물로 만들어진 창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섬을 짓누르던 강한 중압감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그니, 네가 어떻게 여기 온 거야? 혹시 안내하라고 협박이라도 받은 거라면….”

나는 인어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아, 협박한 건 아니니 걱정 마시죠. 인어 전설에 관심이 있어 조사하다 보니 제 스승님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길래 궁금해서 정중히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스승이라고?”

“예, 게오르 필립이라고 아십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약간 경계를 풀었다.

“인형술사인 마스터 게오르라면 잘 알고 있지. 마스터 게오르와 마스터 제이올린 덕분에 의무를 다할 수 있었으니까.”

역시 게오르 영감이 크라켄 토벌에 관여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마스터 메이지 시절에 말이다.

새삼 괴물 같은 마법사였다는 게 실감나는구만.

아무리 대단하다는 마스터 메이지여도 크라켄을 상대할 정도는 아닐 텐데.

마법사의 아홉 위계 중 위에서 네 번째 위계인 마스터는 중간 정도인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높은 위계였다.

‘마스터(Master:통달한)’라는 말에 걸맞게 마스터 메이지는 한 학파의 모든 마법을 통달한 마법사에게 주어지는 위계였다.

바로 윗줄인 오노러블(Honorable) 메이지부터는 학파의 마법을 크게 발전시키거나 마법계 전체에 명성이 울리는 업적을 세웠을 때나 주어지는 위계였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마스터 메이지라도 학파에 따라 실력이 천차만별인 경향이 있었다.

현자를 배출한 학파의 마스터는 어지간한 학파의 오노러블보다 뛰어나지만, 영세한 학파의 마스터는 별것 없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말이다.

그때 실루아가 손을 들며 에일리에게 물었다.

“아버지랑 아시는 사이세요?”

“너는…. 어떻게 마스터 게오르와 같은 마력을 지닐 수 있지? 부모 자식 간이라도 지문처럼 마력은 달라야 할진대.”

게오르의 마력회로를 전부 이식했으니 같은 마력인 건 당연했다.

그래도 실루아가 실루아만의 독자적인 마법을 익히고 단련해 간다면 조금씩 달라질 거다.

에일리의 의문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개인 가정사이니 넘어가죠.”

“으흠. 그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마스터 게오르와 마스터 제이올린은 잘들 지내고 있나?”

그녀가 안부를 묻자 실루아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달의 곁으로 가셨어요.”

“…그런가. 미안하구나.”

에일리는 씁쓸한 얼굴을 했다.

음, 기억은 멀쩡해 보인다.

지금 시점에는 미쳐 있지 않은 걸 보면 인어에 의해 미래에 도시가 무너질 일은 없을 듯했다.

그럼 인어가 미쳤던 이유는 크라켄이 품고 있다는 ‘바다의 부정한 기운’이란 것 때문이었나?

저런 힘을 가진 인어가 고작 기운 하나 제어하지 못했다고 미쳐 버리기까지 한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변수가 있었나?

여러 궁금증이 생겼지만 나중에 풀기로 했다.

“저희는 일단 섬을 둘러보고 있을 테니, 할 이야기도 많을 텐데 두 분은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죠.”

나는 늙은 어부와 인어를 두고 일행들과 자리를 비켜주었다.

* * *

오랜만에 재회한 연인을 앞에 두고 인어 에일리는 우물쭈물했다.

마치 혼날 것을 걱정하는 어린아이 같아 보이면서도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그동안… 아니, 어머니랑 그 선배들이라는 분들과는 잘 만났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간단한 물음이 너무나 무서워 말을 돌리고 말았다.

지난 긴 시간 동안 그의 아내가 되었을 여자가 싫었고, 그가 낳았을 사랑의 결실이 부러웠다.

그녀에게 주어지지 못한 것들이 그녀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그녀의 물음에 아그니는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잘 만났어. 어머니도, 내가 구해준 선배도. 선배의 자식이 가출하는 것도 돕고, 또 결혼하고, 술집을 차리는 것도 봤지.”

결혼이라는 지나가는 말에 에일리는 움찔했다.

“어머니께선 20여 년 전 돌아가셨어. 연세가 많으셨으니 노환이셨지.”

“그,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묵하는 에일리를 보며 아그니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해변가를 걸었다.

쇠한 심장이 두근거리자 다시 그리웠던 젊은 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매일같이 꿈꾸던 추억이 다시금 현실이 되니 너무나 즐거우면서 동시에 서글펐다.

잃어버린 시간이 애달팠다.

그리 길지 않은, 그러면서 너무나 긴 시간 동안 해변을 거닐던 두 사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묻지 않는구나.”

늙은 어부의 물음에 인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못난 마음이지만, 그 침묵이 날 기쁘게 해. 결혼은 했느냐, 자식은 있느냐, 손주는 얼마나 컸느냐…. 그런 흔한 물음을 할 수 없다는 게 내 지난 심정을 보답받는 것 같다.”

그 말에 에일리는 울컥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마음은 형형할 수 없는 질투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잘 지내?”

억지로 내뱉은 물음에 아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어머니는 20여 년 전 돌아가셨다고.”

대답을 들은 그녀는 그가 하고자 한 말을 알아차렸다.

은연 중 숨겨왔던 두려움이 엄습해 오며 전신을 차갑게 식혔다.

“결혼은?”

“여기 했잖아.”

그는 마주 잡은 연인의 손에 끼워진 투박한 반지를 만졌다.

철사를 꼬아 만든 꽃반지였다.

젊은 날의 어부가 정성을 들여 만든 약혼 반지였다.

나중에 더 좋은 것을 사주겠다고 맹세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던 소중히 지켜온 소박한 증표였다.

“어째서…? 나이를 먹고 수많은 자식들과 손자들에 둘러싸여 웃으며 죽는 게 꿈이라 했잖아.”

그녀의 의문에 늙은 어부는 소탈하게 웃었다.

중년도 아닌 어리다고 해야 할 시절의 꿈치고는 너무나 소박한 꿈이었다.

“하핫, 어린 시절의 철없는 동경이었지. 생각해 보면 야망이 너무 없었던 것 같기도.”

야망은 없지만 그 꿈을 이루는 어부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시절에는 많은 어부가 바다의 격랑에 매몰되어 죽거나, 가난함에 가정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가 드물었다.

주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많다 보니 그런 꿈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던 시대였다.

“아그니!”

인어는 화를 냈다.

분노의 대상은 그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오래전 그를 구하고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됐다는 후회이자, 그가 다른 이가 아닌 자신만을 바라봤다는 사실에 느끼는 저열한 기쁨에 대한 혐오였다.

인어는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비틀거렸다.

“내가, 내가 네 인생을 망쳤….”

“에일리!”

늙은 어부의 호통에 인어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화를 내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어 더욱 놀랐다.

늙은 어부는 인어를 끌어안았다.

“네 존재는 내 어머니의 슬픔이었을지언정 바다 위를 표류하는 내 삶의 등대와 같았다. 때로는 슬프고 외로웠을지언정,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가치는 아무리 너라도 함부로 부정할 수 없어. 그래선 안 돼.”

품에 안긴 인어는 잘게 떨었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후회, 그리고 기쁨과 행복에 휩싸였다.

긴 세월을 살아온 잔잔한 바다와 같은 감정에 몰아치는 두 번째 격랑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저 다시 만났음에 기뻐하면 돼.”

늙은 어부는 삶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 * *

나는 섬을 둘러보며 제이드에게 물었다.

“어때? 뭔가 건질 만한 게 있어 보여?”

인어가 기거하는 섬이다.

어딘가에 숨겨놓은 보물 창고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는 이 군도 자체가 바다 깊이 침몰되어 버려서 정보가 없었다.

보물 창고가 아니어도 어디 떨어진 비늘이라도 있으면 마법 재료나 촉매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괜히 인어 사냥꾼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부정한 기운은 처음 접해봐서 설렙니다. 인어는 이 기운을 어떤 식으로 정화하고 있던 걸까요?”

제이드는 나와 달리 인어가 숨겨놓았을 보물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앗! 저기에 부정한 마력의 응집 현상이 있어요!”

“정말입니까?! 어딥니까!”

실루아의 발견에 제이드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길버트는 괜찮은 것 같고, 프레시아는 좀 어때? 아직도 숨 쉬기 힘들어?”

감각이 뛰어난 프레시아는 이 섬에 들어오고부터 계속 힘들어했다.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안색은 창백했다. 감각이 지나치게 뛰어난 탓이었다.

마법으로 주변에 부정한 기운이 오지 못하게 처리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프레시아는 이 또한 훈련이라며 사양했다.

하기야 앞으로 어떤 환경을 돌아다니게 될지 모르니 좋은 마음가짐이었다.

“도움이 되는 조언일지는 모르겠는데, 공기는 통하도록 마력으로 천을 만들어 코와 입을 감싼다고 생각하고 마력을 운용해 봐.”

마법으로는 간단한데 기사들의 마력 운용법으로도 간단한지는 모르겠다.

내 조언에 프레시아는 보이지 않는 마스크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한결 안색이 좋아졌다.

“숨 쉬기는 갑갑하지만 부정한 기운을 걸러내는 데는 좋네요. 역시 도련님입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선 괜찮으신가요? 옅은 기운이라지만 혹시 무리가 되진 않겠습니까?”

프레시아의 걱정에 나는 싱긋 웃어보였다.

“정령들이 있으니까.”

순수한 자연의 화신인 정령들은 자연스럽게 내게 부정한 기운이 닿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사실 정령들이 없어도 로사리오가 있으니 문제는 없었을 거다.

로사리오는 독과 질병, 저주 등 온간 부정하고 사이한 것들을 막아주는 성물이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던 중 인어와 늙은 어부가 손을 잡고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좀 더 두 분만의 시간을 즐겨도 되는데요.”

아직 정령들의 힘으로 섬 탐색이 끝나지 않았는데 아쉽다.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어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너희가 떠난 다음에도 계속 함께일 거니까. 사실 이 위험한 곳에 아그니를 데려온 걸 살짝 혼내려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고마워. 그이를 데려와 줘서.”

그녀의 감사 인사에 나는 싱긋 웃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한꺼번에 받기로 하고, 우선 크라켄의 사체나 봤으면 합니다. 바다의 부정한 기운을 정화하는 걸 도와드릴 테니까요.”

나야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제이드와 실루아라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도움이 될 거다.

무엇보다 게오르가 내게 유산으로 남긴 연구 일지에는 크라켄의 사기(邪氣)를 정화하는 법도 남겨져 있었다.

그 연구 이론이 완성되고도 에일리를 도우러 오지 못한 이유는 이론이 완성된 시점이 첫째 딸을 잃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딸을 잃고 제이올린의 병세가 악화되어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내 제안에 에일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크라켄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앞장섰다.

“그래, 정령왕의 후계자인 너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

“…예? 누구요? 나요?”

내가 보기 드문 정령술사인건 맞지만 소설에서 이름만 나오는 그 엑스트라 녀석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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