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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08화 (108/214)

제108화. 늙은 어부의 사랑 (7)

늦잠을 잤지만 다행히 늦지 않고 어제 주점에서 늙은 어부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아그니에게 간단히 내 일행들을 소개하고는 식사를 하기 위해 그가 안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아그니가 안내한 식당은 꽤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그래도 도시라고 이런 레스토랑도 있군.

하기야, 이곳은 어업이 성황이라 나라 곳곳으로 물고기를 나르기 위한 상인들이 많이 찾으니 그만큼 자본이 많이 흐르는 도시였다.

게다가 질리빌로 향하는 무역선이 중간 휴항구로 많이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때문에 어업 말고도 조선업이 흥했다.

“왜, 무리되는가?”

장난스럽게 웃는 노인을 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네, 조금 무리되는군요.”

내 대답에 그는 역으로 당황했다.

“어음, 다른 곳으로 갈까?”

“아닙니다. 어제 들려준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니 제가 조금 무리하죠.”

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본 아그니는 재미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거하게 얻어먹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구만.”

아그니는 식사가 나오기 전부터 이런저런 잡담 형식으로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평생을 어부가 아니라 이야기꾼으로 살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썰을 풀었다.

덕분에 식사가 지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끼어들 정도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음료를 사주며 합석까지 요청해 왔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며 제이드는 아그니에게 인사했다.

“귀족들이 왜 식사를 하면서 광대나 음유시인을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식사는 처음이었습니다.”

제이드의 평가에 아그니는 별것 아니라며 손짓했다.

“그저 나이가 많으니 이것저것 경험하거나 주워들은 게 많을 뿐이라네. 오히려 나는 저 친구의 폭넓은 지식에 감탄했어.”

아그니가 내게 시선을 보내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그저 책을 많이 읽었을 뿐이라.”

정확히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많이 읽었을 뿐이다.

게다가 아그니가 감탄한 지식이라고 해봤자 중, 고등학교 자연 과학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었다.

내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다.

정확히는 암기를 잘하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내게 이런 비싼 밥을 산 이유는 뭔가? 어제 말한 부탁할 것이 꽤나 고된 일인가 보지?”

경험 많은 늙은 어부는 호의란 아무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글쎄요? 고되다면 고되다 할 수 있겠지만 노익장께는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일 겁니다.”

“오호, 고되되 대단치 않은 일이라? 그 일이 무엇인가?”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가방에서 낚싯대를 꺼내 보이며 대답했다.

“이왕 어촌 도시에 왔으니 바다낚시 정도는 즐겨 봐야지 않겠습니까. 이 근방이 암초가 많은 대신 그 암초를 둥지 삼는 고기들도 많다죠?”

“그렇지, 질리빌 같은 얕은 바다보다야 고기가 많지. 삯만 충분하다면 배를 모는 건 어렵지 않아. 언제쯤 갈 생각인가?”

“노익장께서 괜찮다면 오늘 바로 배를 띄웠으면 합니다.”

내 말에 아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항구로 앞장섰다.

“그런데 어디까지 나갈 생각인가?”

앞서 나가는 늙은 어부의 물음에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소용돌이 군도. 아, 노익장께는 하얀 파랑(波浪) 군도란 이름을 더 좋아하시겠군요. 오랜 추억의 장소 아닙니까.”

늙은 어부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추억의 장소라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의뭉을 떠는 그에게 나는 동문서답하듯이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인어 전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노익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조사해 보니 이 도시에 퍼진 인어 전설의 주인공이 아직 살아 계신다고 합니다.”

“….”

“게다가 아직도 현역으로 배를 몬다지 뭡니까!”

내 능글맞은 호들갑에 늙은 어부는 천천히 걸음을 멈춰 섰다.

방금 전 식사했던 레스토랑은 음식 맛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벌써 항구에 도착했다.

“제가 알기로 노익장과 비슷한 연배의 어부가 또 없는 것 같은데, 틀렸습니까?”

바다를 회한 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인어 사냥꾼이라도 되나?”

인어의 피와 비늘은 좋은 마법 재료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불로장생의 영약이라는 전설까지 있었으니, 인어는 늙은 권력자의 노림을 받는 존재였다.

지금이야 미신이나 옛 전설 취급 받지만, 그는 젊었던 시절 그런 인어 사냥꾼들에게 꽤나 시달렸던 모양이었다.

“아니요, 애꿎은 사람을 왜 사냥합니까. 저를 그런 안면몰수한 불한당 취급하시다니 너무합니다.”

“그럼 왜 인어에 관심을 보이는가?”

그의 적의에 나는 항구에 매인 그의 배를 찾으며 대답했다.

“인어는 노래를 잘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저 노래를 들어보고 싶을 뿐입니다.”

“노래?”

“예, 겸사겸사 잘 살아 있는지도 확인해 보고요.”

내 대답에 늙은 어부는 미간을 좁혔다.

마치 네가 왜 그런 걸 확인하느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늙은 어부의 이름이 적힌 배를 발견하고 올라타며 물었다.

“노익장께선 정말로 전설대로 인어가 당신이 가족, 친구들과 지내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연인을 떠나보낸 거라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나는 물었다.

* * *

아그니는 돛을 펼치고 노를 저었다.

지금은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썰물도 아니고, 대낮이라 육지가 더 뜨거워 바다에서 육지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럼에도 늙은 어부의 배는 순풍을 맞은 듯 바다로 나아갔다.

“허허, 대단하구만. 어부라면 모두가 탐을 내겠어.”

늙은 어부는 배를 몰면서 감탄했다.

그야 배가 움직이는 바람과 해류를 조종하는 게 내 어깨 위의 작은 정령들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법사도 탐낼 겁니다.”

“맞아요! 부러워요!”

제이드와 실루아도 내 정령을 탐냈다.

두 사람의 반응에 아그니는 허허롭게 웃으며 돛과 연결된 밧줄을 잡아 방향을 틀었다.

나는 바람과 물길을 제공할 뿐, 자연을 읽고 배를 모는 건 순전히 그의 능력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엔진이 되어줄 뿐, 항해는 선장인 늙은 어부가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한 말은 틀림없겠지?”

늙은 어부의 불신 섞인 물음에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자그마한 군도를 바라봤다.

“아마도 그렇겠죠? 저도 여러 정보를 조합하다 유추한 사실이라 틀릴 가능성은 있습니다.”

내 대답에 그의 인상이 구겨졌다.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이제 당신이 당신의 연인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겁니다.”

“…그래, 나로서는 저 소용돌이와 폭풍을 넘을 수 없으니까.”

늙은 어부는 한탄했다.

그 한탄은 어딘가 체념이 섞여 있으면서도 미련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약간의 들뜸이 느껴졌다.

이번 항해는 지난 수십 년간의 헛수고와는 다를 테니 당연했다.

나는 낚싯대에 미끼를 걸며 부탁했다.

“그러니 옛이야기나 해주시죠.”

내 요청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전설처럼 타인의 경험인 듯 꾸민 이야기가 아닌, 순수하고 열정 가득했던 어부가 직접 경험했던 일을 추억했다.

* * *

어리지만 배 모는 기술이 뛰어난 어부였던 아그니는 영주의 명으로 선배 어부들과 고기잡이에 나섰다.

선배 어부는 커다란 어선의 난간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런 징발은 언제쯤 끝나려나. 고기를 낚아도 내 것이 없으니 의욕이 안 나는구만.”

그 말에 선장으로 임명받은 은퇴를 앞둔 노련한 어부가 다독였다.

“그래도 블란츠바그 인근 수습이 거의 다 되었다고 하니 올해가 마지막일 거다.”

“그랬으면 좋겠수다.”

약 10년 전, 블란츠바그 요새가 대마수 ‘붉은 눈’에 뚫리면서 전대 사령관이 전사함과 동시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왕국 북서부에 퍼져나갔다.

왕국은 민간에 큰 피해를 입히고, 바스타유 산맥 전선의 후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몬스터들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때문에 왕령으로 모든 영지에 총동원령을 선포했고 근처의 영지는 병력을, 멀리 있는 영지는 식량을 징발했다.

어부들이 속한 영지는 거리상으로는 블란츠바그와 나름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소크레 산맥과 바스타유 산맥에 가로막혀 빙 돌아야 했기에 먼 영지로 분류되었다.

“자자! 다들 움직이자! 신입! 날씨를 보아하니 하얀 파랑 군도 쪽에 어군이 있을 것 같다!”

선장의 호명에 조타수였던 아그니는 키를 돌려 방향을 틀어 고정하고 갑판장을 도와 돛의 밧줄을 당겨 바람을 탔다.

하얀 파랑 군도는 멀리서도 보였지만, 실제 거리는 10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었기에 당일치기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배에는 거대한 수조가 실려 있었다.

그렇게 갑판장과 함께 열심히 돛을 접었다 폈다, 좌우로 틀기를 한참 하다 보니 어느새 군도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날씨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폭풍우다! 배가 떠밀리지 않게 닻을 내리고 돛을 접어!”

선장의 외침에 어부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실에 폭풍우를 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대처를 잘못하는 순간 배가 뒤집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선장! 자리를 피해야 하지 않수?!”

“배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야! 내 감이 말하고 있다! 이 밑에 커다란 게 있다고! 이 정도면 절반은 우리가 삥땅 쳐도 모를 거야!”

절반을 빼돌려도 모를 정도란 선장의 말에 모두가 기대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경험 많은 어부의 감은 때때로 예언가의 예언보다 정확했다.

그동안 고기를 잡는 족족 징발당하기 일수였으니 공친 날에는 어부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들까지 굶주리기 십상이었다.

풍족한 식탁이 언제였던가, 모두가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렇기에 선장을 필두로 어부들은 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폭풍우는 점차 거세졌고, 파도는 난간을 넘어 갑판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노련한 선장의 예상대로 배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으아아아!”

“형님!”

배는 버텨도 그 위에 있는 사람이 버티질 못했다.

배 위의 어부들은 하나같이 일당백의 노련한 일꾼들이었지만, 가족을 챙기느라 본인의 위장을 챙기지 못한 어부 하나가 출렁이는 갑판에 튕겨 올랐다.

모두가 그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바다에 빠져버렸다.

구할 수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때 배에서 가장 어린 어부가 돛대와 연결된 밧줄을 들고 뛰었다.

“아, 아그, 푸억! 아그니!”

“어린 자식새끼 두고, 푸우! 애비가 먼저 가는 거 아닙니다!”

“고맙다…!”

젊은 어부는 밧줄을 선배 어부의 허리 벨트에 걸어 묶고 자신 또한 묶으려 했다.

하지만 험난한 자연은 쉽사리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머리 위 수 미터에 달하는 거센 파도가 덮쳐오니 그만 밧줄을 놓치고 떠밀려 버렸다.

“아그니!!”

“선…! 푸르륵!”

선배 어부가 있는 곳으로 헤엄을 쳐보려 했지만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그도 자연을 이길 순 없었다.

“아그니-!”

멀리서 젊은 어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파도에 휩쓸릴 뿐이었다.

배를 주린 것은 선배뿐만이 아니었다.

“어, 끄륵, 어머니…!”

그렇게 발버둥 치던 젊은 어부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점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흐리고 탁한 바닷속에서 젊은 어부는 큼지막한 지느러미와 반짝이는 비늘을 보았다.

-아아~!

그리고 들릴 리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천상의 천사가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은 노랫소리였다.

그리고 젊은 어부는 의식을 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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