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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06화 (106/214)

제106화. 늙은 어부의 사랑 (5)

주점에서 나와 꽤나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늦은 시간까지 여는 술집이나 여관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을 무렵이었다.

덕분에 밤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지만, 가로등불이 거리를 밝혀 어둡지는 않았다.

달리면서 마법 등인가하고 흘끔 봤는데, 그냥 기름 등불인 것 같았다.

하기야 수도도 아니고 이런 어촌 도시에서 마석 값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령 감당할 돈이 있었어도 영주나 시장의 배 속으로 들어가겠지.

“여기인가?”

대로변을 지나 가로등이 없는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니 나비가 어느 으슥한 뒷골목의 낡은 주점 앞에 섰다.

딱 양아치 새끼들이 아지트로 사용할 법한 곳이었다.

“관청이나 구치소 감옥이 아닌 걸 보면 큰 사고는 아닌 것 같네요.”

프레시아의 추측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청이야 이 시간에 문이 열려 있지 않겠지만 구치소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참 다행이다. 마침 으슥한 골목이니 약간의 소동이 벌어져도 뒤처리하기 간단할 것 같다.

나는 마력을 담아 주점 문을 걷어차 부수며 외쳤다.

쾅!

“이리 오너라!”

당연히 나비의 힘으로 소리가 밖으로 퍼지지 않게 조치해 두었다.

음~! 눈치 안 보고 깽판 칠 수 있는 환경! 아주 좋아!

내 외침에 싸구려 연초를 뻑뻑 피워대며 술을 마시고 있던 양아치들이 아니꼬운 듯 나를 노려봤다.

실내에서 흡연을 하다니 저런 못 배워먹은 새끼들.

마음에 들었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프레시아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했다.

“아앙~? 너 뭐야? 멀쩡한 문은 왜 부수고 지랄이야!”

위협하듯 내게 다가온 양아치 1은 보자 나는 웃음을 참고 놀란 표정으로 양아치 1의 뒤를 바라봤다.

간단히 속아 넘어간 양아치 1은 한눈을 팔았고, 그 틈을 타 술병으로 양아치 1의 대가리를 힘껏 내리쳤다.

“뚝배기! 크으~! 좋다!”

이 그리운 손맛. 몇 년 만이지?

군대 입대 전에는 많이도 대가리 깨고 다녔는데.

아, 맞다. 몇 달 전에 디벳 영감의 뒤통수를 내리쳤었지.

그래도 약쟁이 뒤통수와 양아치 뒤통수는 타격감이 달랐다.

역시 양아치 뒤통수의 찰짐은 세계가 달라도 변치 않는 것 같다.

내 보잘것없는 근력에도 마력이 담기니 양아치 1은 한 번에 기절했다.

숨은 쉬는 것 같으니 일단 기절이 맞겠지.

“도련님, 사고 치지 말라고 하신 건 도련님 아닌가요?”

프레시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괜찮아. 내가 말한 사고는 뒷수습이 필요한 경우나 이 도시를 바로 떠나야 하는 경우를 말한 거야.”

“아, 그렇군요.”

고작 양아치 몇 놈 족친다고 경비대가 나설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밟아놓을 거면 확실히 해야겠지만.

갑자기 동료가 기습당하자 낄낄거리며 구경하던 양아치들이 놀라서 마시던 술병을 쥐어 들었다.

아까운 술이 바닥에 질질 흘렀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이 새끼가 죽으려고!”

흔해 빠진 양아치 한량이었다. 마력을 사용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단련은커녕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다.

양아치가 휘두르는 술병을 피하고 반격…하려 했지만 내게 다가오기도 전에 프레시아의 주먹에 양아치 셋이 제압당했다.

“이 하찮은 것들이 어딜 감히 도련님께 무기를 들이밀려 하는 거냐.”

으득! 으득! 으득!

“으아아악!”

프레시아는 양아치들의 팔을 밟아 부러뜨렸다.

“…아!”

내 취미가. 나는 아쉬움에 탄식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레시아는 자신의 일을 완수했다는 듯이 나를 보며 미소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 보였다.

“…잘했어.”

“아닙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뿌듯해하는 프레시아와 별개로 역시 아쉬웠다.

흥이 식어버렸다.

나는 아쉬운 대로 술병으로 팔을 부여잡고 꿈틀거리는 양아치들의 뒤통수를 때려 편하게 해줬다.

역시 마취에는 술만 한 게 없지.

“나비야, 어디야?”

나비는 술장 뒤편에 가려져 있던 철문을 가리켰다.

철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혀 있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습격자면 충분히 관계자다. 그럼, 그럼.

보통 휴게실이 있어야 할 곳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프레시아는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내 앞에 섰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꽤나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 공간에는 건달처럼 보이는 놈들 열댓 명에 둘러싸인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길버트와 실루아, 제이드가 보였다.

“야, 너희들 뭐 하냐?”

“도련님!”

내 물음에 안절부절못하던 길버트가 구세주를 보듯 나를 반겼다.

아니, 저기서 가장 약한 길버트도 혼자서 반쯤 죽여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놈들에게 둘러싸여서 뭐 하는 거야?

“뭐야? 너희는 어떻게 들어왔어? 동료야?”

내 일행 세 사람과 마주 앉아 있던 껄렁거리는 인상의 사내가 인상을 쓰며 내게 물었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길버트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해 봐. 설마 여기 잡혀 있는 건 아니지?”

길버트가 내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껄렁거리는 인상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댁이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들 동료야? 이 친구들이 우리 값비싼 상품을 파손시켰거든?”

“너한테 안 물었으니까 닥쳐, 새끼야.”

내 날선 대답에 떡대들이 인상을 구기며 내게 다가왔다.

“어린놈이 예의가 없군. 쓴맛을….”

험악한 인상의 건달이 내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프레시아에게 막혔다.

으드득!

“아아악! 내 파으억!”

프레시아는 건달의 팔을 잡아 악력으로 팔을 부러뜨렸다.

그러고는 주먹으로 비명을 지르는 건달의 복부를 때려 날려버렸다.

동료가 벽에 처박히자 건달들은 일제히 프레시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다들 팔 하나씩 부러지고 기절했다.

기절하며 흐트러진 옷깃 사이로 눈에 익은 문신이 보였다.

“뭐야? 너희 어스름 상회였어?”

어스름 상회는 거대한 암시장을 보유한 암거래상이었다.

부티크가 극히 일부의 고위 귀족만을 대상으로 서비스한다면, 어스름 상회는 일반 서민부터 고위 귀족까지. 발을 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지어 이 나라뿐만 아니라 제국과 몇몇 왕국에까지 지부가 있어서 취급 품목이 아주 다양했다.

부티크가 암시장계의 백화점이라면 어스름 상회는 만물 잡화점이었다.

내가 아는 이 도시의 정보는 미친 인어에 의해 폐허가 된 이후의 것들이라 이곳에 지부가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제이드를 흘끔 바라봤다. 정말이지,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 봐 벌써부터 이런 트러블에 휘말리다니 참 대단하다.

“거기,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내 말에 지부장쯤으로 보이는 껄렁거리는 인상의 사내가 움찔했다. 역시 튈 생각이었군.

“네가 이곳 지부장이냐?”

“그, 그런데…요.”

“길버트,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봐.”

“아하하, 그게 말입니다….”

길버트는 나와 헤어진 뒤에 있던 일을 설명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군것질을 하며 늦게까지 관광을 하고 있다가 어두워지자 여관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상자를 옮기던 웬 미친놈이 스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상자를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냅다 상자에 들어 있던 비싼 도자기를 물어내라고 소리쳤다.

경비를 부를 거냐, 아니면 따라올 거냐 협박하는 통에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 따라왔다.

따라와 보니 이렇게 건달들에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비를 내게 보냈다.

이게 사건의 전말이었다.

사건이랄 것도 없군.

“그러니까 공갈 사기를 당했다?”

내가 지부장 놈을 노려보자 지부장은 프레시아의 눈치를 봤다.

그래, 무서운 건 프레시아다 이거지.

“사, 사기 아닙니다! 정말 비싼 도자기였단 말입니다!”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지부장의 말을 일축하고 소파로 다가가자 길버트와 제이드는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내가 소파에 앉자 프레시아, 길버트, 제이드는 날 호위하듯 둘러쌌다.

지부장은 껄렁한 인상과 달리 눈치가 빠른지 바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어스름 상회가 양아치 새끼들이라는 건 개나 소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 얼마나 불렀냐?”

내 물음에 지부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를 봤다.

“어, 얼마 안 불렀습니다.”

“800만 듀플을 불렀습니다.”

길버트의 말에 나는 낮은 테이블 위에 놓인 나무 상자를 내려다봤다.

그 안에는 깨진 자기 조각이 담겨져 있었다.

저게 그 공갈용 항아리인가 보군.

“800만이 얼마 아니라…. 그러고 보면 아래 지키고 있던 양아치 새끼들 때문에 귀중한 내 손목이 시큰거리는군.”

내 말에 프레시아가 살벌한 기세를 내뿜었다. 나는 그 기세를 업고 가볍게 웃었다.

“치료비로 그 얼마 안 되는 돈 좀 주겠나?”

지부장은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 아니요, 그게….”

“그런데 이런 공갈 사기는 돈 좀 있어 보이는 녀석에게 치는 법인데, 왜 내 일행에게 사기를 치려고 했지?”

나와 내 일행의 복장은 여행객치고는 깔끔했지만, 부유해 보이진 않았다.

물론 난쟁이가 본다면 제이드가 입고 있는 망토나 실루아가 입고 있는 옷가지가 구하기 힘든 몬스터 소재로 만든 걸 알아보긴 할 거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소재를 알아보는 건 어디까지나 난쟁이 정도나 되어야 했다.

“그, 그게요….”

지부장의 시선이 길버트에게 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길버트?

길버트의 차림은 평범했다.

검을 패용하고 블란츠바그령 소속 장인의 가죽 갑옷을 입고 있어 용병으로 보일 순 있어도 부잣집 도련님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길버트와 지부장을 번갈아 보다 지부장의 시선이 정확히 길버트의 손목에 향한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 난쟁이가 제작한 걸 알아봤나? 생각보다 안목이 좋네.”

길버트의 손목에는 원래 2왕자의 생일 선물이었던 난쟁이가 제작한 검이 걸려 있었다.

제대로 값을 매기면 천만 듀플은 가볍게 넘길 수 있다. 왕후가 직접 의뢰한 걸 생각하면 그 세 배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테이블 위에 다리를 얹으며 말했다.

“빨리 내놔, 내 치료비 800만 듀플.”

내 당당한 요구에 지부장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치료비가 800만이나 하는 건 너무합니다!”

“그럼 싸구려 도자기가 800만이나 하는 건 안 너무하고?”

“이, 이 도자기는 정말로 비싼 물건입니다!”

“하! 이 새끼가 사기 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는 말도 못 들어봤나? 안되겠다. 길버트, 프레시아, 제압해.”

내 고갯짓에 두 사람이 지부장의 팔을 꺾어 테이블 위에 눕혔다.

“일단 손모가지부터 썰려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길버트, 버둥거리지 않게 팔 잡고 있어봐.”

내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자 지부장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절 건들면 어스름 상회에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어스름 상회의 규모는 세계적이었다. 만약 적대하게 된다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응, 중요 지부도 아니고 이런 시골 지부 지부장 팔 하나 자른다고 어스름 상회주는 신경도 안 써.”

이런 양아치 새끼 한 명 바다에 공구리 쳐서 담근다고 눈 하나 깜짝할 놈들이 아니었다.

“뭐, 간부도 상회 재산 중 하나라고 팔 하나면 대충 5만 듀플쯤 요구하긴 하겠네.”

내 중얼거림에 지부장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놀라서 날 올려다봤다.

“아~! 간부 팔 하나에 5만 듀플이면 싸다! 싸! 양팔이면 10만 듀플이냐?”

“…두 팔 모두면 20만 듀플입니다. 살려주세요, 형님! 저 팔 잃으면 아랫것들에게 죽어요!”

“확 마! 누가 형님이야? 액면가만 해도 내 세 배는 되게 생겨 처먹은 게.”

얼마나 부하들을 개같이 굴렸으면 부하에게 죽을 걸 걱정해?

“아아악! 살려주세요! 형님! 아, 아니, 나으리! 도련님! 주인님!”

나는 비명을 지르는 지부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살려주면 뭘 해줄래?”

지부장은 마치 악마를 본 듯 나를 올려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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