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102화 (102/214)

제102화. 늙은 어부의 사랑 (1)

예카트리체가 떠나고 약 일주일.

나는 내 일행들을 이끌고 산맥 이곳저곳에 잠들어 있는 광맥과 마법 재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반라의 상태로 마법 사슬에 사지가 묶여 있다.

“제길, 이 짓거리를 또 해야 하나? 하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제이드가 제조한 겨울나무의 현자의 비전 보신 영약을 삼키고, 내 스승인 망할 영감이 설계한 3차원 마법진 속에서 체념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산다면 모를까, 앞으로의 여정을 견디기에는 내 마력이 너무 보잘것없었다.

“빨리하시죠! 유안, 저는 지금 몹시 설렙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짜인 마법진이라니!”

탐구심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재촉하는 제이드에게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세웠다.

“야, 이 새끼야! 이게 얼마나 아픈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내 욕에도 제이드는 껄껄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야 당연히 알 길이 없죠. 저는 이미 마력회로를 완성하고 밀도를 높이고 있는걸요.”

“부러운 새끼.”

지난 일주일 내내 밤마다 둘이서 술병을 깠더니 왠지 모르게 서로 스스럼없이 말을 하게 되었다.

너무 과하게 스스럼이 없어진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나는 술친구가 생긴 것에 만족한다.

“가동하겠습니다!”

“자, 잠! 으아아아악!”

제이드는 마석을 다 채우고 바로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덕분에 강제로 마력회로가 개발되며 전신에 격통이 일었다.

“아아아아아-!”

“아, 조금 시끄럽네요. 소리는 차단하겠습니다.”

“으아아아! 이 X새끼야! 그게 할 소리냐!?”

내 항의를 듣기도 전에 제이드는 소리를 차단시켰는지 뭐라 입을 벙긋거렸다.

“아아아아아악-!”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제이드는 내 몸에 일어나는 현상을 기록하며 열심히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강제로 전신이 개통당하는 고통 속에 목이 쉬어라 비명을 지르던 나는 마법진 구동이 끝나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아으으으…!”

다행히 이번에는 기절하거나 하진 않았다.

“개새…!”

쉬어빠진 목소리로 하는 욕을 들은 제이드는 키득거리며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걱정한다고 다들 광석 캐고 있는 틈에 도와달라고 한 건 유안 아닙니까?”

“그건 맞지만 때로는 이유 없이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라. 그리고 왜 너는 날 걱정 안 하냐?”

제이드는 능글맞게 웃어넘겼다.

“에이, 제가 어떻게 유안을 걱정 안 합니까? 지금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것 안 보입니까?”

“실험동물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미치광이 마법사의 얼굴은 보인다만.”

“하하하하, 너무하시네요.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이거 좀 물고 계시면 목이 안정될 겁니다.”

나는 제이드가 건네는 목캔디를 우물거렸다.

시원하고, 쓰다. 씁쓸한 사탕이라니,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을 만들어냈군.

“역시 현자가 최후로 남긴 연구물입니다.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수식들이라니.”

“나한테는 쓸데가 많거든?”

그렇게 투덜대며 마력회로를 점검하며 마력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했다.

“두 배에 살짝 못 미치나.”

이번에 사용한 마석의 양과 질을 생각하면 저번보다 적어도 세 배는 늘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고작 두 배에 못 미쳤다.

“아무래도 이건 세맥(細脈)을 개발하는 데 그렇게 효율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하기야 마법 술식으로 마력의 흐름을 인도하는 형태니 어쩔 수 없네요.”

제이드의 분석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으로 대맥은 거의 다 개발했는데 더 이상 이런 편법으로 더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사실 마력통이 커져도 강해진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뿐이니까.

지금도 마석을 물 쓰듯 쓰고 있다 보니 마력 부족을 느끼지는 못했다.

“효율적이지 않다 뿐이지, 스스로 마력회로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빠를 겁니다.”

“맞네, 고통을 막아주는 마법들이 있으니까.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느낌이 들긴 해도 말이야.”

내 푸념에 제이드는 키득거리며 마법진을 정리했다.

이 새끼가 남은 심란한데 웃고 자빠졌네?

나는 옷을 입고 아퀼라의 마도서와 달랑타의 식자재 창고, 그리고 팔찌 형태의 예카트리체의 오두막을 착용했다.

오두막은 예카트리체가 떠나기 전 내게 준 선물로, 실루아의 저택처럼 그녀가 살던 오두막을 아공간의 형태로 만든 마도구였다.

오두막 안에는 수십 개의 손님방과 냉동고, 보물고, 마석 창고, 마도서고가 있었다.

중요한 내용물, 특히 달랑타의 요리는 대부분 예카트리체가 가져갔지만, 오두막만으로도 충분히 보물이라 할 만했다.

덕분에 식자재 창고 안에 있던 잡다한 것들을 오두막에 넣었다.

이제 식자재 창고는 정말로 식자재 보관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제이드가 아니라 내게 줘도 되냐 물었지만 그녀는 이미 제자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마법 공방과 마법 지팡이 등 중요한 것은 물려주었으니 괜찮다고 대답했다.

원래 제자에게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게 겨울나무의 전통이라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소설 속의 제이드도 오두막을 추억의 장소로 두고 떠났다.

새롭게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핵심적인 것만 가지고 프레시아와 여행을 떠났었지.

스승과의 추억이 괴로워서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의미가 있던 모양이었다.

내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저 멀리서 프레시아와 제이드, 실루아가 광석을 전부 캐내고 도착했다.

“계속해서 몬스터가 몰려와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길버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엄살을 부렸다. 그의 엄살에 나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게 힘들면 훈련 부족인 거네. 더 굴려야겠어, 프레시아.”

“예, 알겠습니다. 훈련량을 늘리겠습니다.”

프레시아의 대답에 길버트는 사색이 되었다.

“아, 아니요! 하나도 안 힘듭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군. 훈련량을 늘리겠다.”

길버트의 발버둥은 너무나 간단하게 제압당했다.

나는 망연자실하는 길버트의 어깨를 두드려 위로하고는 실루아에게 물었다.

“어때? 내가 말한 곳은 다 캤어?”

“네! 지인~짜! 많이 캤어요!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일단 원석 상태로 저택에 보관 중이에요!”

보면 실루아의 아공간도 장난 아니게 컸다.

“그래, 이제 다시 추위가 불어 닥칠 테니까.”

이계의 구멍을 닫는다고 모두 끝나는 게 아니다.

산맥 전역에 퍼진 몬스터들도 수습해야 모든 일이 끝나는 거다.

제이드 혼자 이 더럽게 넓은 산맥을 돌아다니며 정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봉인을 유지하는 데 모든 힘을 사용하던 겨울나무 숲의 마력으로 앞으로 10년간 이 땅을 겨울로 고정해 처리하기로 했다.

보통 겨울이 아니다. 억센 몬스터들조차 동면을 선택할 정도로 지독한 바스타유의 겨울이었다.

5개월의 겨울 동안에도 못 먹은 몬스터들이 굶주림에 미쳐 날뛴다.

그런데 그 기간이 10년이나 되면 대부분의 몬스터는 동면 중 그대로 죽을 거다.

원래는 이계의 구멍을 닫은 즉시 했어야 할 일이었지만 내 부탁으로 일주일만 미뤘다.

프레시아와 길버트의 훈련도 훈련이지만, 역시 마법 재료와 희귀 금속을 캐낼 수 있는 한 전부 캐내야 했기 때문이다.

덤으로 데미웨이에게 10년의 겨울이 올 것을 알려줄 시간을 벌기 위해서기도 했다.

너무 추우면 전서구 인형이 날지 못하니까.

“자, 이제 슬슬 출발할 준비를 하자.”

목적지는 휴양 도시 질리빌… 이지만 가기 전에 둘러볼 곳이 있었다.

* * *

“으음, 곤란하네.”

강줄기를 타고 단숨에 바닷가까지 가려 했는데 배가 없다.

예카트리체의 오두막 창고를 뒤져봐도, 실루아의 저택을 살펴봐도 배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배를 만드는 건 무리인가?”

실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인형을 만드는 설계도는 많아도 배를 만들 설계도가 없었다.

게오르는 마법사였지, 조선공이 아니었다.

“그냥 왔던 때처럼 골렘을 타고 가는 게 어때요?”

실루아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석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아끼고 싶어. 다른 곳은 이렇게 쉽게 마석을 보충하기 힘들 것 같거든.”

바스타유 산맥에서야 발에 차이는 게 몬스터니 괜찮지만 이제는 슬슬 아껴야 했다.

마석에 의존하는 내 전투력이 한없이 내려가겠군.

뭐, 괜찮다. 애초에 나는 전투원이 아니었으니까.

“아, 수륙양용 인형은 없나? 네 아버지라면 만들었을 것 같은데.”

인형도 마석을 소비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물길을 타면 그 소모량이 확 줄어든다.

“있긴 한데 대형, 중형은 설계도와 관련 설비만 남아 있고, 소형만 몇 개뿐이에요. 원래도 수가 적었는데 예전에 크라켄이 날뛰었을 때 모두 부서졌다고 해요.”

“타고 가다가 얼어 죽을 게 아니라면 배는 필요하겠네. 뗏목을 만들어야 하나?”

내가 고민하는데 제이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께 듣기로는 제 스승님의 스승님께선 낚시가 취미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근방 호수에 가면 쓸 만한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카트리체의 스승이면 적어도 백 년 전 사람 아닌가? 아직도 멀쩡할지는 모르겠네.

“일단 가보자.”

우리는 제이드의 안내를 받아 전전대 겨울나무의 현자가 낚시를 즐겼다는 호수로 향했다.

도착한 호수는 무슨 바다처럼 보일정도로 커다랬다.

“어디 보자, 마력의 흐름을 보면 여기쯤에 창고가 있을 텐데.”

땅을 짚던 제이드는 땅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큼지막한 창고가 솟아올랐다.

마법으로 보호가 되어 있긴 했지만 유지 보수 없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인지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윽, 냄새.”

제이드는 문을 열고 마법으로 환기를 시켰다.

창고 안에는 여러 낚싯대와 루어, 그리고 썩은 떡밥이 방치되어 있었다. 떡밥이 썩은 탓에 냄새가 난 모양이었다.

길버트가 썩은 것들을 호수에 내다 버리고 간단히 청소를 하는 사이 나는 창고를 훑었다.

“이런 창고는 여기저기 있는 거야?”

“예, 대부분 후계자에게 물려주기 전까지는 산맥에서 멀리 떠나지 못했으니까요. 아마 잘 찾아보면 선대들의 유산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찾아 나서기에는 시간이 없었으니 찾을 생각은 없었다.

찾아도 이런 낚싯대나 농기구 정도겠지.

“이 낚싯대 쓸 만한데? 챙겨 가야겠다.”

오래 방치된 것치고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아직도 탄성이 멀쩡했다.

적어도 물고기 잡다가 부러지거나 하진 않겠네.

내가 낚시 도구를 챙기고 있을 때 제이드가 천막에 덮여 있던 배를 찾아냈다.

“역시 있었네요.”

제이드가 찾아낸 배는 전전대 겨울나무의 현자가 혼자 사용하던 배라 그렇게 크진 않았다.

하지만 물고기들을 싣기 위해서였는지 아슬아슬하게 다섯 명은 탈 수 있어 보였다.

“나무가 조금 슬어 버렸지만 어떻게 한 번은 탈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뗏목을 만들어 타는 것 보다는 낫겠지.”

그래도 보존 마법은 걸려 있던 모양이다. 아니었으면 길버트가 호수에 버린 떡밥처럼 다 썩어 문드러졌겠지.

낚싯대와 작살, 어망과 그물, 밧줄 등을 챙기고 나비의 힘으로 배를 호수 위에 띄웠다.

마력이 늘어나니 배같이 무거운 것도 혼자 들 수 있었다. 역시 힘은 기르고 볼 일이다.

“물고기 3형으로 앞에서 끌고 가게 할까요?”

실루아의 물음에 나는 식자재 창고에서 선풍기같이 생긴 것을 꺼냈다.

내가 네슬릭 상단에서 저격용 석궁과 함께 주문 제작한 것들 중 하나였다.

“람이 있으니까 괜찮아.”

원래 이렇게 사용하려 했던 건 아니었지만, 물건은 어떻게든 사용하기만 하면 장땡이다.

프레시아가 배 뒤편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나는 밧줄로 선풍기 프로펠러가 물에 잠기게 고정했다.

그리고는 배 위에 올라타 람에게 프로펠러를 돌리게 시켰다.

그러자 배가 모터라도 단 것처럼 빠르게 나아갔다.

“오오! 노를 안 저어도 배가 나아가네요!”

길버트는 감탄하며 집었던 노를 내려놓았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뱃머리에 서서 방향을 잡았다.

“위대한 정령의 힘이지! 방향은 동쪽! 목표는 질리빌까지 가는 배가 있는 작은 항구 도시 아크라!”

내 지시에 내 어깨 위에 서 있는 작은 다람쥐가 나를 따라 자그마한 팔을 내지르며 물길을 조종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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