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96화 (96/214)

제96화. 마법사와 겨우살이 풀 (1)

하늘을 가르고 새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내게 날아왔다.

손을 뻗으니 비둘기는 힘을 다한 것처럼 고꾸라지듯 내 손에 안착했다.

“휘유~! 마석 잔량이 아슬아슬했네.”

하기야, 바스타유 산맥은 워낙 넓은 데다 비행 몬스터도 많았다.

수도와 거리를 생각하면 전서구 인형이 도착하기 전에 마석이 다 떨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프레시아, 길버트. 편지 왔다.”

내 말에 채굴한 광석을 망치로 열심히 부수던 프레시아와 길버트가 움직임을 멈췄다.

실루아와 제이드가 내 지시로 열심히 땅을 파고 캐낸 각종 마법 금속 광물이었다.

“이건 길버트, 길버트, 길버트, 길버트…. 뭐 이리 많아?! 다음부터는 가족 외에는 한 줄 정도로 줄여. 괜히 여기저기 알리다가 나와 연관되어 있다고 꼬리 밟히면 너만 위험해지는 거 아니다?”

두꺼운 편지 뭉치를 건네며 경고하자 길버트는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뭐, 결국 편지를 보내준 건 나니까 뭐라 더 혼낼 순 없다만. 아, 프레시아. 여기.”

길버트와 달리 프레시아에게 온 편지는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호레이즌, 다른 하나는 가족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프레시아는 조실부모하여 가족은 오빠와 남동생뿐이었다.

오빠가 자밀레이온 가문의 가주로서 왕실 기사였고, 동생은 기사를 지망하고 있다고 했나?

왕실 기사라고 해도 왕궁에서 근무하는 ‘왕궁 기사’와 수도 방위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수도 기사’, 그리고 전국 각지를 도는 ‘야전 기사’로 나뉘었다.

프레시아는 호레이즌의 추천을 받아 왕족을 호위하는 왕궁 기사가 되었고, 프레시아의 오빠는 수도를 지키는 수도 기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프레시아와 길버트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편지를 뜯어봤고, 실루아는 부럽다는 듯이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나는 내게 온 편지를 뜯으며 실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부러워할 것 없어. 너는 보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있잖아?”

내 말에 실루아는 활기차게 긍정했다.

“네! 그러네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니도, 유안 오빠도, 프레시아 언니도, 길버트 오빠도, 모두 함께하고 있으니 부럽지 않아요!”

“그래, 장하다.”

미소를 지으며 헤리온의 편지를 확인하니 왕궁의 상황이 꽤나 재미있게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탄핵이 부결이라…. 뭐, 제국 후작이 직접 방문했으니 예상한 대로인가.”

데미웨이가 왕에게 힘을 실어주긴 했지만 직접 수도에 방문한 게 아니었다.

그의 지지는 그렇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 거다.

애초에 왕이 이기라고 힘을 실어주라고 한 게 아니니 상관없었다.

목숨이 위험한 건 왕이지, 내가 아니니까. 그래도 왕이 죽으면 내가 곤란하니 어느 정도 대비는 해야겠군.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정국은 적당히 혼란스러운 게 좋다.

그래야지 아르카나의 인적 리소스가 그쪽으로 낭비될 테니까.

실제로 아리사와 페어인 니벨도 바스타유에 오지 못하지 않았는가.

물론 니벨은 정국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게오르를 통해 위즐 백작에게 그림자 탑에 대해 흘려서겠지만.

“열심히 하는군요.”

한창 편지를 읽고 있는데, 예카트리체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나는 다 읽은 편지를 품 안에 집어넣으며 그녀를 반겼다.

“떠날 준비가 다 된 모양이군요.”

그녀의 복장은 마법사라기보다는 여행가 같은 모양새였다.

“제가 준비할 게 뭐 있나요. 저보다는 제자가 고생이죠.”

어제 이계의 구멍을 닫고 예카트리체와 제이드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둘만의 시간이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둘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눈 모양이었다.

“저도 제이드처럼 곁에서 은공을 도와야 하는데…. 제가 없는 대신 제자를 막 부려먹어 주세요. 제가 설득하기도 전에 제이드가 스스로 은공을 따라가겠다고 한 녀석이니 알아서 잘하겠죠.”

예카트리체의 말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농번기의 소처럼 부려먹을 테니 걱정 마시고 다 나을 생각만 하세요.”

오늘 아침 제이드는 우리와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카트리체가 설득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의외였다.

“제이드를 잘 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많이 여린 아이니 버팀목이 되어주십쇼.”

예카트리체의 인사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잘 부탁하는 건 내가 할 말이었다. 이 허약한 몸으로 누가 누굴 지탱한단 말인가.

“여기 추천서와 제 일행들의 편지입니다. 수도로 가셔서 제 말대로 하시면 세계 최고의 의원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건넨 추천서는 디벳과 아라드리네에게 건네는 편지였다.

두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해 예카트리체를 치료해 줄 거다.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은공께는 신세만 지는군요.”

면목 없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장난스레 웃었다.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마지막이라 말하지 마세요.”

“후후후, 그렇죠. 마지막이 아니니 꼭 은혜에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카트리체는 짧은 사이 정이 든 내 일행들과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에 뵐 때는 더 성장해 있겠습니다. …어머니.”

“그래…. 이 어미는 널 믿는다, 제이드.”

포옹한 두 사람은 작별을 고했다. 짧지 않을 테지만, 생각보다는 길지 않을 이별일 것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예카트리체의 뒷모습을 보며 제이드에게 말했다.

“네 스승님을 따라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내 말에 제이드는 싱긋 웃어 보였다.

“저도 이제 성인인 데다 겨울나무의 이름도 계승하였으니, 스승님께 의지할 때는 지났지요.”

나는 전서구에 편지를 넣고 날려 보내며 말했다.

“그래? 아, 별로 중요한건 아닌데, 나 사실 왕자다.”

내가 지나가듯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제이드는 놀라서 날 돌아봤다.

“아 그렇습… 예? 왕자요?!”

“자, 일하자! 일주일 안에 바스타유 산맥 안에 있는 모든 광물을 캐내는 거야!”

날려 보낸 전서구는 마터호른산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아바스엘은 잘 있나 모르겠군.

* * *

아바스엘이 손가락으로 귀를 파자 야드는 늘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엘의 이야기라도 하는 모양이죠?”

“아니, 온천물이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아바스엘과 야드는 지금 산 아래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후우~! 산 근처에 온천 마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었으면 진작 골병이라도 들었을 겁니다.”

야드의 앓는 소리에 아바스엘은 쓰게 웃었다.

주군인 유안이 알려준 방법대로 겨우살이 풀, 미스텔을 찾아 몇 달째 산행을 반복했다.

마터호른은 왕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높은 산이라 수색은 둘째 치더라도 오르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

야드는 마력을 다룰 줄 알고 단련이 되어 있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아바스엘은 마력이 봉인당한 데다 지난 10년간 골방에 갇혀 있었던 탓에 더더욱 어려웠다.

용맥이 흐르는 온천이라 치유의 힘이 깃들어 있어 그들은 짧으면 보름, 길면 한 달의 한 번 온천에 찾아와 체력을 회복했다.

“역시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잖습니까.”

아바스엘과 야드가 몸을 담고 있는 온천으로 어린 소년이 들어오며 그들을 찾았다.

“아, 클리오. 거의 삼 주 만에 제대로 쉬는 거잖아. 너도 몸을 담그지 그래?”

클리오라 불린 소년은 두 사람의 세르파였다. 야드의 권유에 클리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온천에 들어가는 것도 전부 돈인걸요.”

“고생했는데, 내가 돈을 내줄게.”

온천 값에는 숙박비도 포함되어 있어 비싼 편이었지만 아직 자금적 여유가 있었다.

그는 고생한 클리오를 위해서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그냥 제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전노 같은 반응에 야드는 키득거리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데?”

“아, 별건 아니고, 제게 길잡이를 요청한 손님이 두 분이 계신데, 합류해도 괜찮으냐고 여쭙고 싶어서요.”

갑작스러운 합류 요청에 아바스엘과 야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찾는 것은 귀중한 신화적인 마법 재료였던 만큼 타인과 함께 움직이는 건 꺼림직했다.

“꼭 같이 가야 하나?”

아바스엘의 물음에 클리오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새로 요청하신 손님은 그냥 산 중턱 마을까지만 안내하면 되는데…. 안 되나요?”

“으흠. 그 정도면 굳이 새로운 손님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않나?”

산 중턱 마을까지 안내하는 비용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길도 잘 닦여 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하핫! 그게 그 손님들이 돈을 굉장히 많이 주시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혹시 안 된다면 죄송하지만 재빨리 새로운 손님을 먼저 안내해 드리고 난 다음에 안내드리고자 합니다.”

아바스엘과 야드는 정규 산길이 아닌 길을 돌아다니기에 비싼 값을 치르는 데다 장기 이용 고객이었다.

그런 손님을 버려두고 새로운 손님을 안내하겠다는 말은 그 손님이 굉장히 비싼 값을 제시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같이 가지. 대신 산 중턱 마을까지 값은 계산하지 않겠다.”

아바스엘의 말에 클리오는 얼굴이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죠!”

비싼 손님을 놓치지 않아 기뻐하는 클리오를 보며 야드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돈이 필요한 이유는 알고 있으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

클리오는 고아로,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

고아원은 보통 신전이나 귀족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때문에 수도나 대귀족 영지의 대도시라면 모를까, 이런 촌구석의 고아원은 언제나 운영 자금이 부족했다.

클리오는 어린 나이에도 세르파로 일하며 운영 자금에 보태고 있었기에 돈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고아 출신이었던 야드는 클리오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너만큼 유능한 세르파를 또 어떻게 구하겠어?”

“손님…!”

야드의 인정에 클리오는 감동했다.

야드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처음 마터호른을 등반하기 위해 세르파를 찾을 때 유안이 말한 클리오는 너무 나이가 어려 신뢰가 가질 않았다.

때문에 다른 세르파를 구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정규 루트를 벗어나길 극도로 꺼리거나 벗어나도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의 시간을 허비한 끝에 유안의 지시에 따라 클리오를 찾았다.

클리오는 정규 루트가 아니어도 제집 앞마당처럼 척척 길 안내를 해줬다.

두 사람의 입장에선 클리오를 절대 놓칠 순 없었다.

클리오도 그 사실을 알고 배짱을 부린 거였다.

온천에서 몸을 회복시킨 두 사람은 클리오를 따라 합류하기로 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야~! 안녕하세요! 이번에 신세 지게 된 로우어펠 제프리즈라고 합니다.”

“페브리 제프리즈라고 해요. 갑자기 저희가 끼어들어서 불편하신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의 예의 바른 인사에 아바스엘과 야드도 정중히 인사를 받았다.

“엘 프로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야드 토슬이라고 합니다. 중간 마을까지만 함께하는 건데 불편할 게 뭐 있나요? 여기 아름다운 숙녀분께 드리는 제 반가운 마음입니다.”

야드가 소매에서 꽃을 꺼내 페브리에게 건네자 로우어펠이 낚아챘다.

“그 반가운 마음, 제가 받고 싶네요.”

로우어펠이 억지로 웃으며 마력으로 야드를 압박하자 페브리는 자신의 남편의 등을 때리며 말렸다.

“어머, 자기도 참! 오호호호, 이이가 애처가라서요.”

그녀의 사과에 야드는 느끼하게 웃어 넘겼다.

“아닙니다. 이런 아리따운 부인을 두고 있다면 누구나 경계할, 쿨럭!”

아바스엘이 야드의 옆구리를 강하게 때리며 느끼한 말을 하는 걸 막았다.

“제 일행이 실례했습니다. 이 친구가 다 좋은데 여자만 보면 혓바닥에 버터를 바르는 녀석이라 말이죠.”

“아니, 엘! 버터라니요! 저는 그저 순수하게 마음을 담아….”

“제발 좀 닥쳐주게.”

아바스엘이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자 로우어펠은 웃으며 아바스엘을 격려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비슷한 분이 계서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 뭐…. 이 친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입장이라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죠.”

아바스엘은 쓰게 웃을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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