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92화 (92/214)

제92화. 봉인과 대마수 (14)

로툴러스는 한 손으로 부정한 기운이 스며든 옆구리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검을 추켜들며 중얼거렸다.

“최악이군.”

눈앞의 아리따운 흑발의 미녀가 내뿜는 절대적인 마력에 전신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상대는 그저 마력을 방출하고 있을 뿐인데, 무슨 전설적인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유안이 준비한 함정은 악마를 맛보기로,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 갈리는 각종 특제 함정을 준비해 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카트리체가 결계 외곽으로 나와 적들을 맞이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적이 가진 ‘열쇠’라는 마도구가 봉인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큰 위력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유안이 적의 수가 셋 이하로 줄어들면 몇 가지 조건하에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해서였다.

아니, 모두 변명이다.

예카트리체는 조금 초조해하고 있었다.

대마수를 토벌하러 간 제자에게 혹시라도 아르카나의 마수가 뻗어나갈까 걱정이 되어 이렇게 행차한 것이다.

스스로가 목표물이 되어 관심을 안으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예카트리체는 거친 숨을 토해내는 아르카나의 간부들을 보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왕이니 은공이 준비한 건 써먹어야겠죠.”

그녀의 말과 동시에 숲속에선 살기 짙은 눈들이 번뜩였다.

어두운 밤의 숲속에서 무수히 많은 거대한 개가 으르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렸다.

“앙크의 수호견. 저 지독한 것들을 준비했을 줄이야.”

비플레이오드의 중얼거림에 로툴러스는 시선을 전방에서 돌리지 않으며 물었다.

“저 개새끼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앙크의 수호견은 고대의 몬스터로, 불사의 괴물이다.”

“뭐? 불사라고?”

당황하는 목소리에 난쟁이는 망치를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괴물들은 물론,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겨울나무의 현자도 위협적이었다.

“그래, 머리를 터트려도 금방 재생하는 전설의 괴물이지."

“그럼 기절시키거나 속박하는 수밖에 없겠군.”

로툴러스는 잔뼈가 굵은 용병답게 바로 공략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상하군, 분명 앙크의 수호견은 먼 옛날 메마른 가뭄의 마녀를 마지막으로 소환 마법이 유실되었을 텐데 어떻게 소환한 거지?”

앙크의 수호견은 사재의 마녀 중 메마른 가뭄의 마녀가 즐겨 소환하던 소환수였다.

유안은 아퀼라의 마도서에서 읽고 써먹기 좋겠다며 함정으로 수십 마리를 소환했다.

물론 소환을 유지하는 마력은 마석으로도 대체했다.

“자, 물어뜯어라!”

예카트리체의 명령에 앙크의 수호견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어떻게 소환했는지가 중요해?! 죽여버려!”

로툴러스가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이며 앙크의 수호견을 베어냈다.

죽지 않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차피 제압하지 못한다면 전신을 토막 내서 재생하는 데 시간과 마력을 소비하게 하는 게 이득이었다.

“쯧! 비효율적이지만 어쩔 수 없군!”

비플레이오드도 망치를 휘둘러 개의 머리를 터트렸다.

그들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제프리즈가 오른팔의 통증을 이겨내고 예카트리체의 몸에 심어진 병을 악화시켜 주길 바랄 뿐이었다.

제프리즈가 진통제를 삼키며 중얼중얼 주언(呪言)을 읊는 사이, 빈틈투성이인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수호견들이 입을 벌렸다.

비플레이오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개 머리를 터트리며 막으려 했지만 한 손으로 모든 수호견을 막을 순 없었다.

날카로운 이빨에 제프리즈의 목이 꿰뚫리기 직전, 로툴러스가 왼팔을 뻗어 대신 물렸다.

주먹으로 수호견의 머리를 쳐내려 한 것이었는데 계속해서 전신에 퍼져나가는 부정한 기운이 행동을 느리게 만들었다.

아드득-!

수호견의 이빨은 굴강한 초인의 육신을 뚫진 못했다.

그러나 그것의 치악력은 부정한 기운에 약해진 뼈를 부러트리기엔 충분했다.

“으아아아아-!!”

로툴러스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검으로 자신의 팔을 문 수호견의 머리를 베어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수호견은 여전히 그의 팔을 물고 놓질 않았다.

로툴러스가 팔에 신경이 빼앗긴 사이 수호견 중 하나가 로툴러스의 다리를 물었다.

아드득-!

“크으윽!”

로툴러스는 즉시 다리를 문 수호견의 목을 베어내고 몸을 날려 하늘에서 쏟아지는 얼음 창을 피했다.

예카트리체도 가만히 구경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앙크의 수호견은 마력만 충분하다면 무한히 재생하고 역소환이 되질 않으니 부상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공격했다.

로툴러스와 비플레이오드는 몰아치는 얼음 폭풍과 쏟아지는 얼음 창을 견뎌내며 수호견을 상대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최대한 주언을 읊는 제프리즈를 보호하려 했지만 두 사람의 방어를 뚫고 제프리즈의 몸에 상처를 냈다.

제프리즈를 보호하는 것을 알고 예카트리체가 일부러 그에게 공격을 집중한 탓이었다.

피투성이가 되며 옷 곳곳이 찢어지고 까마귀 부리 가면이 부서져 주름진 얼굴이 드러났다.

“으흐흐흐, 다 됐다. 고통 속에서 통곡해라! 겨울나무의 현자여!”

제프리즈가 잘려나간 오른팔에서 침식해 오는 악마의 부정한 기운을 이겨내고 주언을 완성해 냈다.

독원의 마스터 중 하나인 디지즈 마스터 말레콥 제프리즈의 몸에서 녹빛의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마력, 60년 전 쳐들어왔던 당신이군요.”

예카트리체는 과거 봉인에 균열을 만들러 쳐들어왔던 아르카나의 간부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갔던 사내를 기억해 냈다.

“그래! 예카트리체! 네 손에 죽은 내 연인의 복수를 하러 내가 다시 왔다! 너는 오늘로 비로소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하리라!”

질병 악화의 저주를 담은 주언은 예카트리체에게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제프리즈는 폭소했다.

“으하하하하!! 내 연인의 얼굴은 기억하느냐?”

자신의 양팔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예카트리체의 모습은 그가 오래도록 바라던 모습이었다.

괴로워하던 예카트리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으으, 저는… 기억을… 후후훗, 당연히 못 하죠.”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과연, 은공이 다른 사람을 짓궂게 놀리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군요. 해보니 꽤나 재미있어요.”

“무슨…?”

제프리즈는 당황했지만 예카트리체는 키득거리며 그에게 얼음 마법을 퍼부었다.

비플레이오드와 로툴러스는 다급하게 막으려 했지만 지치고 다친 두 사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최선을 다해 검과 망치를 휘둘렀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 무력함을 느끼며 절망할 때 결계 중앙에서 방대한 마력의 폭풍이 일어났다.

“봉인에 균열이 일고 있어?!”

오래 산 만큼 몇 번이나 ‘열쇠’로 봉인에 균열이 이는 걸 본 적이 있는 비플레이오드는 경악했다.

‘열쇠’는 지금 제프리즈의 손에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의문이 들던 그때, 갑자기 예카트리체의 마법이 그들을 빗겨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들과 예카트리체의 사이에서 면사를 쓴 한 여인이 나타났다.

“제가 조금 늦었나 보군요. 오랜만입니다, 겨울나무의 현자님.”

여인의 인사에 예카트리체의 미간이 좁혀졌다.

“오랜만입니다, ‘아르카나 18, 달’. 설마 아르카나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인 당신이 이곳까지 행차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세계에서 ‘달’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았다.

달은 무려 일곱 주신 중 하나의 상징이었다.

‘달’이라 불린 여인은 예카트리체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광대’와 ‘수레바퀴’의 부탁이 있었거든요. 도와달라고.”

예카트리체는 달을 노려봤다.

“수레바퀴라, 그사이 저 말고 새로운 예언자를 찾은 모양입니다.”

“예, 당신을 위해 비워둔 자리였지만 언제까지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아르카나의 ‘수레바퀴’는 대대로 별을 읽는 자를 위한 자리였다.

이전 세대의 별을 읽는 자인 예카트리체가 아르카나가 아닌 사계의 현자의 제자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오랜 시간 ‘수레바퀴’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달’은 어떻게든 예카트리체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결국 설득하는 것보다 새로운 별을 읽는 자가 태어나는 게 빨랐다.

“오호, 그래서 이제 저는 필요 없어졌으니 죽이러 온 겁니까?”

예카트리체의 가시 돋친 물음에 ‘달’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후후후, 제가 어떻게 감히 이 땅에서 당신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은 본체가 아닌 분신이잖아요?”

달의 지적에 로툴러스와 비플레이오드는 경악했다.

아무리 자신들이 여러 함정으로 지치고 다쳤다 해도, 결계의 힘으로 약해져 있다 해도 안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눈앞의 예카트리체는 계획했던 모든 간부가 전력의 상태로 싸웠다 해도 감히 범접하기 힘든 강자였다.

“분명 봄꽃의 현자가 경고를 했을 텐데, 당신이 아무리 결계 안이라고 해도 봉인 곁을 떠날리 없죠. 지금쯤 당신은 봉인의 균열을 수습하기 위해 정신이 없을 게 뻔합니다.”

‘달’도 봉인이 아니라 목표치만큼 접근해 먼 거리에서 ‘열쇠’를 꽂았다.

아무리 아르카나의 최고 간부라도 결계 안으로 몰래 숨어드는 건 목숨을 건 일이었다.

심지어 봉인까지 다가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때 빈사 상태인 제프리즈가 피가래를 토해내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예카트리체를 노려봤다.

“어떻게…! 내 60년이 담, 쿨럭! 담긴 주언을 피할 수 있었지…!?”

그의 주언은 특별했다.

오랜 시간 원념을 담아 준비한 만큼 본체가 아닌 분신이라도 주언을 맞으면 분신체를 통해 본체까지 파고들도록 만들어졌다.

과거, 제프리즈가 예카트리체에게 연인을 잃었을 때에도 예카트리체는 아르카나의 간부들을 분신으로 상대했었기에 철저하게 준비했다.

제프리즈의 물음에 예카트리체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의 노력이 무의미했기 때문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늙은 주술사의 원한은 지독하리만큼 날카롭고 끈적였다.

유안의 대책이 없었다면 분명 자신은 이 자리에서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몰렸을지도 몰랐다.

“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제프리즈는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핏발선 눈에서 눈물 대신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울부짖음에 예카트리체는 초월적인 직감으로 깨달았다.

저 피투성이의 늙은 주술사가 바로 운명이 정한 자신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자신의 운명이 일그러졌음을 확신했다.

‘달’은 제프리즈가 절망하며 절규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예카트리체를 바라봤다.

“축하드립니다. 운명을 비트는 건 저희도 힘든 일인데 이루어냈군요. ‘수레바퀴’가 무리해서 읽어낸 예언이니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한 ‘달’은 기습적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뵙죠. 겨울나무의 현자님.”

'달'의 발밑에 떠오른 마법진은 탈출용 공간 이동 마법이었다.

‘달’은 예카트리체가 방해할 것을 대비해 길게 떠들어 댔지만 예카트리체는 탈출을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커억!”

오로지 제프리즈를 죽이는 데만 신경을 썼다.

유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대신 내건 조건 중 가장 우선순위가 말레콥 제프리즈를 죽이는 일이었다.

제프리즈의 심장에 얼음 가시가 솟아오르더니 철저하게 전신을 유린했다.

“이런!”

‘달’은 예카트리체의 공격을 막아보려 했다.

모든 간부들이 귀중했지만, 제프리즈는 독원의 마스터라는 점에서 그 쓰임새가 차원이 다르게 귀중했다.

하지만 ‘달’이 탈출에 모든 신경을 쓴 것처럼, 예카트리체 또한 제프리즈를 죽이는 데 모든 신경을 몰두했다.

탈출을 포기하고 구하려 한다면, 어쩌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판단한 ‘달’은 제프리즈를 포기하고 탈출했다.

제프리즈를 구하려다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당신을 죽여드리죠.”

예카트리체의 살벌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쳐가며 주변 풍경이 숲에서 귀족가의 저택에 있을 법한 고급스러운 방으로 바뀌었다.

이미 시체가 된 제프리즈를 챙길 여력 없이 로툴러스와 비플레이오드, 그리고 면사의 여인만이 도착했다.

“쿨럭! 쿨럭!”

공간 이동이 끝나자 ‘달’은 복부를 부여잡으며 피를 토했다.

“괜찮으십니까?! 설마 공간 이동이 실패한 반동입니까?”

로툴러스는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 ‘달’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간 이동은 완벽하게 성공했어요. 다만 열쇠를 사용할 때 약간 방심했는지 부끄럽게도 함정에 걸렸어요.”

그녀가 부여잡은 복부에는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누가 설계했는지 정말 지독한 함정….”

“정신 차리십쇼! 치료신관! ‘달’이 아무 이유 없이 이곳으로 왔을 리 없어! 분명 이곳에 ‘여교황’이 있을 거다! 당장 불러와라, 난쟁이!”

그녀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기절해 버렸고 로툴러스는 다급하게 ‘아르카나 02, 여교황’을 찾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