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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73화 (73/214)

제73화. 겨울나무 숲의 현자 (5)

제이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세 사람을 중심으로 커다란 결계가 만들어졌다.

“이걸로 다소 날뛰어도 스승님께 들키진 않겠죠.”

제이드의 말에 프레시아는 투쟁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거 다행이군요. 당신을 힘껏 두들겨 패도 방해는 없다는 말이니까요.”

프레시아가 도발하자 길버트는 깜짝 놀랐다.

길버트가 보아온 프레시아는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는 기사의 표본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며칠 전, 유안이 다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데미웨이에게 경고하던 프레시아를 목격했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저는 레이디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제이드의 말에 프레시아는 여느 도발보다도 확실한 분노를 느꼈다.

“어디 궁지에 몰리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봅시다.”

하지만 분노와 동시에 제이드가 내보이는 마력에 호승심을 느끼며 두근거렸다.

상대가 검을 들고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마법사라고 무시할 순 없었다.

그녀의 단련된 직감은 눈앞의 상대가 위협적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서로를 마주 보며 탐색하던 두 사람 중 프레시아가 먼저 달려들었다.

“엇!”

상식을 벗어난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자 제이드는 놀라며 방어막을 둘렀다.

캉!

프레시아의 검은 제이드의 방어막에 막혔다.

제이드는 검을 막아내자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방심했다.

그 순간,

“흐읍!”

카가가가강-!

프레시아가 반 호흡을 들이쉬며 검에 검기를 만들어 제이드의 방어막을 갈아버리듯 베어냈다.

제이드는 반쯤 허물어진 방어막 채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다행히 방어막을 베어낸 칼날이 제이드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격이었다.

그는 프레시아가 방금 전 일격으로 자신을 반토막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실망이군요.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제게 레이디 타령을 했던 겁니까?”

프레시아는 마치 상대할 가치가 없는 풋내기를 보듯 제이드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제이드는 굴욕감을 느꼈다.

다소 오만한 생각이라 자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산맥 밖으로 나가면 자신의 상대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제이드는 오랜 시간 산맥 각지로 흩어진 대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예카트리체의 고된 전투 훈련을 받아왔기에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방심하기에는 상대가 나빴을 뿐이었다.

“방심했을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다를 겁니다!”

제이드가 마법 지팡이에 마력을 담아 휘두르자 허공에 얼음이 맺히며 화살의 형태로 변했다.

“쏘아져라, 일흔두 개의 화살이여!”

얼음 화살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프레시아를 노리고 쏘아졌다.

프레시아는 지그재그로 달려 화살을 피하며 다시 한번 제이드에게 접근했다.

“솟아라! 삼십육 주의 기둥이여!”

제이드는 프레시아의 움직임을 예측해 얼음 기둥을 만들어 진로를 방해했다.

프레시아가 갑자기 솟아오른 얼음 기둥에 주춤한 사이 허공을 맴돌던 얼음 화살이 궤도를 틀며 프레시아의 등을 노렸다.

프레시아는 땅을 짚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피했고 얼음 화살은 그녀의 몸이 아니라 기둥에 박혔다.

“어떻습니까!”

제이드가 의기양양하게 외치자 프레시아는 피식 웃으며 검으로 얼음 기둥을 베어버렸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 말이 끝난 직후 프레시아는 제이드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엇?! 순간 이동?”

제이드는 당황했지만 이내 그저 자신의 동체 시력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판단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섬뜩함이 엄습해 왔다.

제이드는 본능적으로 전력을 다해 방어막을 펼쳤다.

쾅-!

어느새 등 뒤로 접근한 프레시아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고 제이드의 방어막에 막혔다.

처음 펼친 방어막보다 훨씬 견고한 방어막과 검기를 두른 검이 부딪히자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제이드는 방어막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프레시아가 있는 방향을 특정하고 마법을 날렸다.

“집어삼켜라! 얼음의 이리여!”

거대한 얼음 이리가 땅에서 솟아오르며 아가리를 벌리고 프레시아가 있던 자리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프레시아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쾅! 쾅! 쾅! 쾅! 쾅!

각기 다른 방향에서 순식간에 다섯 번의 검격이 몰아쳤다.

너무 빨라 거의 동시처럼 느껴졌지만 미세한 충격의 차이로 프레시아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제이드는 프레시아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다시금 얼음 기둥을 만들었다.

하지만 마법이 완성되는 시간보다 프레시아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프레시아를 보고 마법을 사용하면 어느새 그녀는 다시 사각으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쾅! 쾅! 쾅!

프레시아의 검이 방어막을 두들길 때마다 제이드는 마력이 뭉텅이로 소모되는 것을 느끼며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빨리 어떻게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손도 못 쓰고 마력 고갈로 쓰러지게 생겼다.

“뻗어나가라! 얼음의 결정이여!”

제이드가 마법 지팡이로 땅을 내리찍자 공기가 빠르게 냉각되며 사방에 눈 알갱이 같은 얼음 결정이 맺혔다.

프레시아는 마력을 전신에 둘러 보호하며 갑자기 생긴 얼음 결정을 경계했다.

그러나 프레시아의 경계와 달리 얼음 결정은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무슨 마법이죠? 자포자기한 겁니까? 그렇다면 이제 끝을 내 주겠습니다.”

프레시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제이드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제이드는 여전히 프레시아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없었지만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읏!”

제이드가 날린 얼음 화살이 프레시아의 속도를 따라붙으며 쏟아져 내렸다.

프레시아는 얼음 화살을 쳐내며 피했지만, 타이밍 좋게 얼음 기둥이 비스듬히 솟아올라 그녀를 공격했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상체를 틀어 기둥을 피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던 제이드가 잠깐 사이 적응한 듯 마법을 사용하자 프레시아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쓰게 웃었다.

“그렇군요. 이 허공에 떠다니는 눈 결정이 제 움직임을 읽는 거군요.”

프레시아의 추측에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현 위치를 파악하고 결정이 당신과 부딪치며 생기는 충격량과 방향을 제게 알려주는 역할입니다.”

너무 빨라서 눈으로 놓친다면 다른 방법으로 감지하면 된다.

얼음 결정의 충격량으로 속도를 알고, 방향으로 진로를 알면 예측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었다.

즉흥적으로 떠올린 방법이 생각보다 잘 먹히자 제이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흥! 그래 봐야 격차가 조금 줄어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건 두고 봐야겠죠.”

두 사람은 자극되는 승부욕에 더더욱 투쟁심을 불태우며 서로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눴다.

제이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이 다채로운 마법을 사용하며 프레시아를 압박했고, 프레시아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제이드의 사각을 노렸다.

쾅! 쾅! 쾅! 쾅!

제이드의 마법과 프레시아의 검기가 맞부딪치며 주변을 폐허로 만들었다.

“으아아아아! 그만들 하라고요! 살려줘요, 도련님!”

그 와중에 두 사람을 말리러 따라왔던 길버트는 고래들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새우처럼 도망 다니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얼음 파편을 쉴 새 없이 검으로 쳐냈다. 제이드가 펼친 결계에 갇혀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길버트는 두 사람이 크게 다치든, 도련님에게 혼나든 신경 쓰지 않고 다시는 말리러 오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생존 투쟁을 이어갔다.

길버트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렬히 싸우는 두 사람은 점점 마법과 검기의 강도를 높여갔다.

“어디 이것도 베어보시죠!”

제이드의 머리 위로 거대한 용의 형상을 한 냉기 덩어리가 포효했다.

제이드는 얼굴이 상기되며 흥분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전력을 다해 싸워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건 프레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사과시키겠다는 처음 의도는 잊고 서로를 보며 호승심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작 그 정도로 잘난 척하십니까!”

프레시아의 검에는 검기를 넘어 강기가 만들어졌다.

제이드의 마법과 프레시아의 검이 충돌하려는 그때, 외부에서 결계를 무너트리며 한 노인이 개입했다.

“그만!”

노인은 제이드의 마법을 역산하여 마법을 허물어뜨렸고 프레시아가 날린 강기를 공간 이동시켜 사라지게 만들었다.

콰아아앙-!

저 멀리 산등성이로 공간 이동된 강기 덩어리는 산을 베어내며 거대한 산사태를 일으켰다.

“어린 녀석들이 서로 절차탁마하는 것 같아 내 그냥 지켜보려 했으나 둘 다 지나치구나! 서로를 죽일 생각이었더냐!”

갑자기 나타난 노인의 호통에 프레시아와 제이드는 경직되었다.

노인의 목소리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힘이 담겨 있었다.

“말해보거라! 제이드! 저 붉은 머리의 아이가 네게 죽임을 당할 정도로 못된 짓을 한 것이냐!”

노인은 먼저 대마법을 만든 제이드를 꾸짖었다.

“아, 아닙니다.”

“네 이놈! 그런데도 그런 대마법을 사용해!”

“그, 그건 저분이라면 충분히 받아낼 수…”

“이놈이! 그래도 말대꾸야! 예카트리체가 그리 가르쳤어?!”

노인의 꾸중에 제이드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너도 그렇다!”

노인이 프레시아에게 화살을 돌리자 프레시아도 노인의 기세에 눌려 움츠러들었다.

“내가 검에 대해 식견이 높진 않다만. 아이야, 방금 전 네 검은 명백히 대련에서 사용할 만한 검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냐!”

“그, 그렇습니다.”

“네게 검을 가르친 고인(高人)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자네의 스승도 그리 경솔하게 검을 휘두르라 가르치진 않았을 터! 대련에서 그런 검을 사용하고 부끄럽지도 않으냐!”

“죄송…합니다.”

프레시아는 면목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주저앉은 길버트에게 다가갔다.

“아이야, 저런 철부지들을 말리느라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노인이 손을 내밀자 길버트는 얼떨떨한 얼굴로 노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닙니다. 결국 말리지 못했는걸요.”

“괜찮다. 방금 싸움은 누구든지 쉽게 말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지 말고 정진하거라.”

길버트가 노인에게 그런데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노인은 다시 프레시아와 제이드를 노려보며 폭풍 같은 잔소리를 시작했다.

“요즘 어린 것들은 말이야 앞뒤도 생각하지 않고 순 제멋대로지. 알량한 재능을 믿고 까불다 어디 뒈져봐야….”

일장 연설 같은 잔소리에 두 사람은 얼어붙어서 벌을 받는 아이처럼 움츠렸다.

폭풍같이 몰아치는 잔소리가 이어지는 그때 저 멀리 오두막에서 한 사람이 날아왔다.

“달랑타? 언제 온 거야?”

“오랜만이다, 예카트리체. 얼려둔 밥은 아직 남아 있나? 요리도 못하는 친구가 걱정이 돼서 말이야.”

예카트리체가 오자 달랑타도 잔소리를 멈추고 오랜 친구를 반겼다.

“마침 잘 왔어. 안 그래도 비축식이 다 떨어져 가는 참이었거든.”

반갑게 부둥켜안으며 인사하던 예카트리체는 제이드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폐허가 된 주변을 살피고는 물었다.

“네가 한 짓이더냐?”

“그, 그것이!”

제이드는 뭐라 변명을 해보려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변명거리가 없었다.

처음 구실이야 스승을 위해서다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지만, 결국은 호승심 때문에 일을 키웠으니 그 명분은 빛 좋은 개살구만도 못했다.

“실망이구나, 제이드.”

평소와 달리 더할 나위 없이 차가운 스승의 시선에 제이드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손님 두 분은 가서 저녁 식사를 하시죠. 유안 씨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카트리체의 말에 프레시아와 길버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우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했던 겨울나무의 현자의 거처에서 사고를 쳤으니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특히 프레시아는 사고를 친 당사자로서 불안에 떨었다.

스승에게 차가운 눈초리를 받은 제이드처럼 유안이 자신에게 그런 시선을 보낼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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