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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70화 (70/214)

제70화. 겨울나무 숲의 현자 (2)

붉은 눈을 쓰러트린 다음 날.

나는 데미웨이가 이끄는 토벌대와 함께 바스타유 산맥 동쪽에서 활동을 시작한 몬스터들의 토벌을 나섰다.

내 일행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무리했던 것치고는 생각보다 내 몸은 멀쩡했다.

몬스터 토벌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특무대장을 비롯한 토벌대의 레인저들이 길잡이가 되어줘 길을 찾기 쉬웠고, 내게 대규모 인형 전술을 배운 실루아가 강철 거미 인형들을 조종해 줘서 보다 넓게 산개해 토벌할 수 있었다.

토벌이 끝난 후, 영지로 복귀한 데미웨이는 나를 불러 말했다.

“경의 의견대로 이번 왕후 폐서인 건에는 전하께 힘을 실었다.”

데미웨이는 대표적인 중립파의 거두였다.

바스타유 산맥과 붙어 있는 지리적 특성상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데다 북방 영지의 맹주 역할도 하는 만큼 그의 힘은 막강했다.

그가 원한다면 바로 중립파를 규합하여 새로운 정치 파벌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데미웨이는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 파벌을 만든다는 건 힘이 강해진다는 의미였지만, 동시에 강한 견제를 받는다는 뜻이었다.

여러 지원이 필요한 데다 섣불리 영지를 떠나지 못하는 데미웨이에게는 치명적인 일이기에 파벌을 만들거나,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그에게 강한 힘이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잘하셨습니다. 현재 중앙 정계는 제국의 사절로 인해 귀족파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가고 있을 겁니다. 사령관님이 힘을 싣는 것으로 다시 팽팽해지겠죠.”

왕실을 비롯해 많은 귀족들이 중앙 정계에 발이 묶이는 상황은 데미웨이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아무리 자치권이 보장된 고위 귀족의 영지라고 해도 중앙의 통제가 없진 않으니, 그만큼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변 영지의 영주들 또한 수도에 발목이 묶인 탓에 데미웨이가 주변 영지에 영향력을 높이기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파벌은 만들지 않는다고 해도, 보다 수월하게 지원을 끌어낼 수 있으니 영향력을 높이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내 도움으로 올해 ‘피의 봄’을 피해 없이 넘겼으니 상황은 더더욱 좋았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십쇼. 기회는 곧 위기를 동반하는 법이니, 평소 살피지 못한 곳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내 경고에 데미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걱정하는 건 아르카나의 움직임이었다.

“주의하겠네. 정말이지 경이 고용할 수 없는 …이란 게 한탄스럽군.”

데미웨이는 바로 옆에서 부관으로 일하고 있는 특무대장에게 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전술적, 정치적 조언을 들은 후에는 더욱 아쉬워했다.

날 얻으면 프레시아와 실루아까지 딸려오니 피눈물을 흘리도록 아쉬워할 만했다.

“그나저나 경이 사용한 그 상잔(相殘) 전술이란 걸 경이 없어도 사용할 수는 없겠나?”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많은 인적 피해를 각오하지 않는 이상 어렵습니다. 그럴 바에는 장벽과 요새에 더 투자하는 게 옳겠죠.”

내 전술은 인형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물론 정찰 인형이 필수 불가결 했기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인형들끼리의 정보를 연결한 건 내 오리지널 마법이었기에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거 아쉽군. 독자적으로 이렇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획기적으로 군비를 아낄 수 있을 텐데.”

“뭐, 저처럼은 불가능하겠지만, 지금까지보다는 인형을 잘 사용할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미리 작성해 둔 인형의 정비법과 인형 부대 전술안을 데미웨이에게 건넸다.

전술안이라고 해봤자 인형 조종 부대를 창설해 내가 원격에서 조종하던 걸 인형 열 대당 조종사 한 명이 붙는 형태로 바꾼 것뿐이었다.

전술안 보고서를 본 데미웨이는 의아해했다.

“우리 부대의 마도병단도 인형을 못 다뤘는데 가능하겠나?”

“정비하는 김에 인형 조종기를 만들어 놨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자동 전투겠지만 조종기를 통해 인형의 위치와 전투 방식은 조종사가 고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조종사는 양성하기 까다롭겠지만요.”

아무리 조종사를 둔다고 해도 인형술사만 못하겠지만, 그저 게오르가 설치한 자동 전투 프로그램에 의해서만 전투를 벌이던 것보다는 나을 거다.

“아니,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 그런데, 정말 수리 비용과 전공에 대한 포상을 그 정도만 받아도 괜찮겠나?”

데미웨이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었다.

내가 데미웨이에게 받기로 한 것은 약간의 포상금과 각종 영약, 그리고 이번 몬스터 토벌로 나온 마석과 부산물 정도였다.

여기서 부산물은 붉은 눈의 것도 포함이었다.

붉은 눈의 부산물은 많이들 아까워했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잡지 못했을 거란 데미웨이의 말에 토벌의 상징인 수급(首級)과 연구용 일부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받을 수 있었다.

“왜요? 깎아 달라면서요.”

내 장난기 섞인 물음에 데미웨이는 뻔뻔하게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물질적인 보상 외에도 몇 가지 권한을 받았다.

그 중 가장 귀한 건 내가 원할 경우 데미웨이 개인이라면 다섯 번, 블란츠바그 사령부 전체라면 딱 한 번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무려 검귀를 다섯 번이나 사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권리를 받았으니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귀한 것을 받아낸 셈이었다.

그 외에도 바스타유 산맥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통행권과 산맥 내부에서 마음껏 광물을 채굴할 수 있는 권한 등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내게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권한도 받았다.

이제 산맥 안에서 미스릴을 캐내든, 마정석을 캐내든 블란츠바그 후작과 척질 생각이 아니라면 내게 뭐라 할 수 없었다.

물론 사람도 없는 곳이니 몰래 캐내면 상관없는 것 아니냐 물을 수도 있었지만 원래 보험은 만약을 위해 들어 두는 것이다.

그리고 기타 잡다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럼 이제 떠나는 건가?”

데미웨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눈 토벌로 망가진 인형도 수리했으니 그래야죠.”

너무 한곳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아직 실종 상태를 유지해야 했으니 움직일 시간이었다.

* * *

“스승님, 날이 춥습니다.”

짙은 회색 머리에 시리도록 푸른 눈을 한 소년의 말에 검은 흑발의 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곳이 언제는 안 춥더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최근 들어 잔기침이 늘지 않으셨습니까?”

소년의 걱정 어린 물음에 여인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병세가 깊지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잔병 하나 없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

스승의 말에 소년은 잠시 침묵했다.

자신의 스승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 중의 마법사였으니 별것 아닌 병 따위에 잔기침을 할 리 없었다.

“산 아래에는 독원이라는 곳에 명의(名醫)들이 모여 있다고 했으니 제가….”

“제이드!”

스승의 호통소리에 회색 머리의 소년, 제이드는 움찔했다.

“독원에 대해서는 어디서… 아니, 달랑타 녀석 외에 더 있을 리 없으니 녀석이겠지. 맞느냐?”

“….”

제이드가 대답이 없자 그녀는 자신의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걱정은 잘 안다. 허나 독원의 의원들은 네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그리고 제아무리 놈들이 유능해도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약을 지어 줄 순 없다.”

제이드도 자신의 스승이 이 혹한의 땅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으면 의원을 데려오면 되지 않나 싶었지만, 그들이 있는 땅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제자가 시무룩해지자 스승은 가볍게 웃었다.

“하하하! 최근에 의약술을 공부한다 싶더니 이 스승을 위해서였느냐?”

“그건… 그렇습니다.”

제이드가 부끄러워하며 긍정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워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 열심히 해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보거라. 이 스승은 잠시 천문을 보고 들어갈 테니.”

제이드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운명이 요동치는구나. 어쩌면 내 얼마 남지 않은 삶도 귀히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위대한 사계의 현자 중 하나, 겨울나무의 현자 예카트리체 하이트필은 검은 눈으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담았다.

* * *

“푸엣취! 으으! 추워!”

두꺼운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전신을 감았건만 바스타유 산맥 깊숙이 들어갈수록 냉기는 털가죽을 뚫고 몸 안으로 침투했다.

“도련님! 눈으로 굴을 만들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프레시아는 열심히 삽으로 얼어버린 눈밭을 쪼개 이글루를 만들었다.

이글루라기보다는 대충 만든 동굴 같아 보였지만 이 추위를 피할 수 있으면 생긴 게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람아, 물을 옅게 뿌려 보강해 줘.”

-삑삑!

내 지시에 람은 눈 집 위로 옅게 물을 뿌렸다.

물이 뿌려진 눈 집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견고해졌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식자재 창고에서 블란츠바그 영지에서 가져온 장작을 꺼내 불을 붙였다.

“누니야, 태워.”

-뾰로롱~!

딱! 딱! 딱! 화륵!

장작에 스파크가 튀더니 불이 붙었다.

이제는 마법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지만, 정령의 힘을 사용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마력 낭비가 적었다.

모닥불을 피우는 데 드는 불마법이 10의 힘이라면 누니를 통했을 땐 0.001정도였다.

이래서 정령술사가 극히 드문데도 마법사들이 정령에 대해 연구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람아, 물 채워줘.”

람이 달랑타의 마법 주전자에 물을 채우자 주전자는 마석의 마력을 먹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부가 따듯한 공기로 덥혀지자 다들 굳어 있던 표정이 풀어졌다.

“아아, 살겠다.”

나비가 입구로 들어오는 찬 공기를 막아주니 내부는 금방 따뜻해졌다.

“역시 정령술이 최고인 것 같아요.”

실루아는 부럽다는 듯이 내 정령들을 바라봤다.

인형들이 들으면 서운해하겠군.

무려 현자가 만든 인형인데 말이다.

한숨을 돌린 나는 길버트에게 물었다.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 썼어?”

“아, 조금 남았습니다.”

“또 보낼 거니까 대충 써. 프레시아는?”

프레시아는 호레이즌과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꺼냈다.

“저는 다 썼습니다.”

프레시아가 편지를 꺼내자 길버트는 편지지를 꺼내 허겁지겁 편지를 완성했다.

완성된 편지를 대충 읽어보니 동생 외에도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었는데 그 수가 굉장히 많았다.

“이야, 길버트 너 인싸였구나.”

도대체 친구가 몇 명이야?

편지 쓰는 데 오래 걸리는 것도 당연했다.

“인싸… 말씀이십니까?”

“아, 친구 많다고. 행적이나 정보 같은 건 없어 보이니 이대로 보낸다.”

나는 편지지를 봉투에 넣고 전서구 인형을 꺼냈다.

나와 프레시아, 길버트의 편지를 담은 인형은 수도를 향해 날아갔다.

“뭐, 빠르면 일주일 정도 후에는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어떻게 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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