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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67화 (67/214)

제67화. 붉은 눈 토벌전 (9)

붉은 눈도 지금 겪는 현상이 협곡 위에 있는 나로 인해 벌어지는 것을 눈치챘는지 살기를 내뿜었다.

와오, 살벌해라.

나는 나를 노려보는 붉은 눈을 보며 싱긋 웃었다.

“짐승 주제에 어딜 기어올라? 56번 마법진 가동. 땅은 당신을 붙들지어다.”

가혹함을 더한 중력은 협곡 위까지 뛰어오른 붉은 눈을 다시 땅으로 처박았다.

대마수답게 마력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저항하는 마력보다 더 많은 마석을 때려 박으면 될 일이다.

마석은 아직 반도 소모하지 못했다.

“다시 1, 2, 3, 4, 5번 마법진 가동. 쏟아져라, 얼음의 비여!”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나는 다시금 고고도에서 얼음 폭격을 쏟아냈다.

“실루아, 준비해.”

“네!”

실루아는 열 체의 네임드 인형을 소환했다.

네임드는 현재로서 열 체가 한계인가?

게오르의 마력회로까지 계승했으니 마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확실히 다룰 수 있는 숫자만 사용하려 한 모양이다.

나였으면 마력 부족으로 하나도 제 전력을 못 끌어냈을 테니 엄두도 못 냈을 숫자였다.

얼음 폭격이 끝나자 붉은 눈은 분노로 가득 찬 울음소리를 냈다.

“갸아아아아아!!”

“윽! 귀 아파.”

그래도 이번에는 나름 대비를 했더니 내상을 입진 않았다.

붉은 눈은 그동안 회복했던 힘을 꽤나 소모했는지 처음 얼음 창을 쏟아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대로면 이길 수 있겠습니다!”

길버트의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아니, 내가 못 버텨.”

아무리 미리 준비한 함정에 발에 채일 만큼 마석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결국 마법을 실행하는 건 나다.

강제로 몸과 마력을 회복시킨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벌써부터 몸에 부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력회로가 있는 자리가 저려오는 걸 보면 과부하에 걸린 듯 했다.

“프레시아는 아직인가?”

네임드 인형만으로는 불안한데.

“어쩔 수 없지, 시간을 더 끌어보는 수밖에. 57, 58, 59, 60번 마법진 가동! 땅은 당신을 붙들지어다.”

협곡 전역에 가중력 마법진이 발동되며 모든 것을 짓눌렀다.

이제 단숨에 협곡 위로 뛰어오르는 짓은 못 할 거다.

그러나 붉은 눈은 힘든 기색 없이 사방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날뛰었다.

쾅! 쾅! 쾅!

“바이스 마스터, 8, 9, 12번 마법진이 파손되었습니다.”

이런, 협곡 내부에 설치해 둔 마법진을 부수려는 건가. 짐승답지 않게 영악한 놈이다.

“53, 54, 55번 마법진 가동. 크리에이트 골렘.”

협곡의 벽 일부가 떨어져 나가며 세 체의 골렘이 만들어졌다.

“날뛰지 못하게 해라!”

거대한 골렘은 내 명령에 육중한 몸으로 붉은 눈을 깔아뭉개듯 달려들었다.

붉은 눈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골렘을 피하며 주먹으로 골렘을 부쉈다.

거력이 담긴 주먹에 골렘은 단숨에 무너져 내렸지만 핵이 멀쩡한 이상 금세 복구되었다.

붉은 눈은 어떻게든 날 죽이기 위해 협곡을 기어오르려 했지만, 복구된 골렘의 공격에 뛰어내리며 골렘을 공격했다.

“가중력 마법진을 감안하더라도 붉은 눈의 움직임이 많이 느려졌습니다.”

길버트의 감탄 어린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땀이!”

“괜찮아.”

빠르게 마력이 소모되었다가 채워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탈진 직전이었지만, 붉은 눈만큼 조바심이 나진 않았다.

지금 붉은 눈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초조해했다.

“슬슬 효과를 볼 때가 됐는데, 괴물 같은 놈이군.”

협곡 바닥에는 포이즌 오크의 독을 비롯해 온갖 몬스터의 독으로 가득 채워 놓았었다.

얼음 창이 녹아내리면서 물에 독이 섞였으니 지금쯤 극심한 중독 증세를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건만 붉은 눈은 굳건해 보였다.

그래, 여러 독물들을 잡아먹으며 내성을 길렀다는 거냐?

그럼 어디 이것도 내성이 있는지 보자.

나는 강철 거미 인형을 협곡 안으로 투입했다.

천여 기의 인형은 벽면에 단단히 다리를 박고 협곡 안을 독무(毒霧)로 가득 채웠다.

“갸아아아아아!!”

이번에는 내성이 없는지 붉은 눈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붉은 눈의 주먹에 협곡 벽면이 크게 파이며 일대에 지진을 만들어냈다.

“나비야, 독연기가 올라오지 않게 막아줘. 질리안 오리지널, 열 감지 마법 필터 켜줘.”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가려졌던 시야가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협곡 안의 생명체는 붉은 눈 하나뿐이니 잡아내기도 쉬웠다.

붉은 눈은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골렘을 으깨고, 골렘의 잔해를 던져 독무를 내뿜는 인형을 격추시켰다.

협곡 안에 설치된 가중력 마법진은 인형의 움직임도 방해했기에 회피가 쉽지 않았다.

“바이스 마스터, 56, 57번 마법진이 붕괴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붉은 눈이 있던 위치의 중력이 원상 복구되며 붉은 눈의 행동이 빨라졌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여분의 마법은 충분하다.

“바이스 마스터, 53번 마법진이 파손되었습니다.”

계속된 충격 끝에 골렘의 핵이 부서져 버렸다.

“52번 마법진 가동, 크리에이트 골렘. 91, 92, 93, 94, 95번 마법진 가동, 하늘의 사슬은 성기어도 죄수를 심판할지어다!”

협곡 위에 설치된 마법의 사슬은 붉은 눈이 뛰어오르지 못하게 협곡 위를 막았다.

붉은 눈은 사슬망이 완성되기 전에 빠져나오려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망이 완성되는 게 빨랐다.

“갸아아아아아!!”

“우웩!”

붉은 눈이 사슬망에 매달려 지근거리에서 살기를 담아 울부짖으니 또다시 내상을 입어 피를 토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괴물 새끼!

“실루아!”

“네! 알겠어요!”

실루아는 붉은 눈이 사슬을 뜯어내기 전에 협곡을 막는 골렘 쪽으로 네임드 인형 열 체를 투입했다.

네임드 보라매와 파랑새가 하늘을 날아 붉은 눈을 요격했다.

“기야아아아!”

전신에 마력이 깃든 보랏빛 깃털과 파란 깃털이 꽂히자 붉은 눈도 타격을 받았는지 사슬에서 손을 놓고 협곡 아래로 내려갔다.

쾅! 쾅! 콰과과광-! 쾅!

그러고는 격전이 벌어진 듯 요란한 폭발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나는 인형이 움직이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가중력 마법을 풀었다.

다른 인형은 몰라도 가중력은 비행형 인형의 능력을 크게 낮추니 어쩔 수 없었다.

“실루아, 거미줄을 쏠게.”

“네, 인형들의 위치를 공유할게요!”

실루아는 협곡 내부를 표현한 지도 형태의 마법 인터페이스를 띄웠다.

인형은 푸른 점으로, 적은 붉은 점으로 표시되었다.

나는 아직 협곡 벽면에 매달려 있는 거미 인형으로 붉은 눈을 노리고 거미줄을 발사했다.

아직 독무가 걷히지 않아 보고 조준할 순 없지만 붉은 눈의 위치를 알았으니 좌표를 지정하여 쏘면 그만이었다.

“쳇, 너무 빠르군.”

붉은 눈은 네임드 인형들의 연계를 상대하면서도 요령 좋게 거미줄을 회피했다.

심지어 보이지도 않으면서 바닥에 깔린 얼음 조각을 던져 거미 인형을 격추시켰다.

“전대 블란츠바그 후작은 저런 괴물을 어떻게 격퇴시킨 거지?”

심지어 그때의 붉은 눈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을 텐데.

“아버지의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의 인형들로 1년간 집요하게 추적하며 공격해 약화시킨 후 토벌대로 기습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전대 후작은 당시 천하십검에 준하는 초인이었기도 하고요.”

“그러고도 놓쳤다고?”

“예, 1년간의 추적 과정에서 아버지의 추격용 인형이 대부분 소실된 상태에 네임드 인형도 열다섯 체가 유실되었거든요. 아버지의 병세도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었고 해서 마지막 도주를 추적할 방법이 없었어요.”

붉은 눈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그렇게 당했으니 회복을 위해 20년이나 동면을 했지.

물론 1년을 괴롭힘 당했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강했을 테니 전대 후작의 업적을 깎아내릴 순 없다.

붉은 눈의 공격에 격추당하면서도 협곡 벽에 붙어 끊임없이 거미줄을 날린 덕분에 협곡 바닥은 끈끈한 거미줄로 가득 찼다.

실루아가 조종하는 인형은 거미줄에 대한 대처가 되어 있지만 붉은 눈은 아니다.

붉은 눈의 움직임이 확연히 둔화되었다.

“전 인형! 전력으로 공격!”

콰아아아아앙-!

실루아의 외침과 동시에 협곡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마력이 뿜어져 기둥을 만들었다.

마력 기둥은 협곡의 윗부분을 막는 사슬도 끊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런! 나비야!”

내 외침에 나비는 우리가 있는 곳에 바람의 결계를 만들어냈다. 독무도 기류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앗! 죄송해요!”

실루아의 사과에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협곡 아래를 살폈다.

“그 공격을 버틴 건가.”

붉은 눈은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오른쪽 아래 팔을 잃었지만 건재했다.

“갸아아아아아아!”

분노에 가득 찬 붉은 눈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고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 요동치며 갈아엎어졌다.

그저 땅이 흔들렸을 뿐인 이전까지와는 달리 협곡의 일부가 무너지고 갈라질 정도의 주먹이었다.

거미줄의 점성이 무력화되자 붉은 눈은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네임드 인형 보라매를 반토막 냈다.

“73, 74번 마법진 가동!”

“바이스 마스터, 방금 협곡 내부에 설치한 마법진의 절반 이상이 파손되었습니다.”

질리안 오리지널의 보고에 나는 마법진을 살폈다.

방금 전 네임드 인형들의 집중포화와 붉은 눈이 땅을 내리치는 것으로 협곡의 벽면도 갈라지며 파손되었다.

협곡 내부에 설치된 80개의 마법진 중 멀쩡한 것을 세는 게 빠를 지경이다.

나는 협곡에 남아 있는 마법진을 모두 발동시켜 붉은 눈의 발목을 붙잡으며 인형들을 움직였다.

“전 인형 부대! 모든 마석을 때려 박아 포격해!”

협곡 벽면에 붙어 있는 6백여 기와 협곡 위에 집결한 5천 대의 인형이 일제히 협곡 안으로 마력포를 때려 박았다.

협곡 안에 있는 인형도 휩쓸릴 테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인형이야 고치면 그만이다.

몇 분이나 이어진 마력포 세례에 인형들이 하나둘씩 동력을 잃고 침묵했다.

이윽고 모든 인형의 움직임이 멈추고 고요해지자 우리는 긴장한 채로 대기했다.

“끝…이겠죠?”

길버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요하던 일대가 진한 살기로 요동쳤다.

“이런, 부활 주문을 걸어주면 쓰나.”

나는 쓰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이윽고 붉은 눈은 높이 뛰어올라 협곡 위로 올라왔다.

붉은 눈은 오른쪽 아래 팔이 사라진 단면에서 폭포같이 피를 흘리며 낮게 울었다.

“갸르르르르르…!”

바닥을 적시는 피의 색이 검은 것을 보면 독에 제대로 중독된 것 같았다.

멀쩡하지 못한 건 오른쪽 아래 팔만이 아니었다.

토끼 귀처럼 길쭉했던 붉은 눈의 왼쪽 귀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왼쪽 얼굴도 흉한 화상 자국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불에 탄 듯 드러난 복부 가죽에는 오래된 상처가 다시 터져 내장이 보였다.

전대 블란츠바그 후작이 입힌 상처인가?

붉은 눈은 비틀거렸지만 살기는 한 발자국을 디딜 때마다 증폭됐다.

마치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날 죽이겠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내가 원흉이란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건가?

“이거 X됐네. 무서워서 지릴 것 같잖아?”

내가 킥킥거리며 웃자 길버트는 검으로 붉은 눈을 겨누며 나를 흘끔 바라봤다.

길버트의 시선에서 혹시 남겨둔 공격 수단이 남아 있나 하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남은 공격 수단은 없었다.

내 마력도 고갈 직전이고 말이다.

“오라! 인형들이여!”

실루아는 네임드 인형을 협곡 위로 불러들였다.

올라온 것은 일곱 체의 네임드 인형들.

모두 멀쩡하진 않았다. 수리 비용은 데미웨이에게 청구하자.

“갸아아아아!”

붉은 눈은 울부짖으며 내게 달려들었고 길버트는 정면에서, 인형들은 후방에서 붉은 눈을 공격했다.

붉은 눈은 자신에게 오는 모든 공격을 무시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가 멈췄다.

“하핫, 늦었잖아.”

붉은 눈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무시하고 내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도련님.”

붉은 눈의 팔이 잘려나가며 프레시아가 나와 붉은 눈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온갖 난리를 부려서 잘라낸 팔을 프레시아는 너무나 손쉽게 잘라버렸다.

“노렸다면 꽤나 고단수야, 프레시아. 반해버릴 뻔했잖아.”

영웅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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