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왕자는 세계정복을 시작한다-66화 (66/214)

제66화. 붉은 눈 토벌전 (8)

데미웨이는 날 믿지 않는다.

아마도 토벌 작전을 수립하면서 내가 게오르의 인형을 아무리 잘 다뤄도 튼튼한 장벽 수준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을 거다.

그게 현명한 판단이다.

괜히 능력 이상의 것을 원했다가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기준치에 맞춰 작전을 짜는 것이 옳다.

지휘관이 불확실성에 기대는 순간 부대는 와해되는 법이다.

같은 이유로 나 또한 데미웨이를 믿지 않는다.

내 작전도 그가 토벌대를 이끌고 오지 않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인형들을 움직였다.

“도련님, 그럼 문제 아닙니까?”

길버트는 긴장하며 저 멀리 붉은 눈의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을 바라봤다.

지금도 살기에 반응해 본능적으로 기세를 끌어 올리려는 걸 간신히 막고 있는 듯했다.

나는 길버트의 물음에 싱긋 웃었다.

“문제라고 할 것까진 없어. 사령관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프레시아는 만사 제쳐두고 달려올 테니까.”

데미웨이가 자신이 구성한 토벌대를 이끌고 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프레시아만 있어도 내 계획은 실행할 수 있다.

“그래도 저는 역시 불안합니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고, 블란츠바그 사령관도 붉은 눈 토벌에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작전 초반부터 어그러지지 않았습니까.”

길버트의 걱정은 당연했다.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생각해 보면 데미웨이가 붉은 눈 토벌에 실패하는 건 당연했다.

원래 소설의 흐름대로였다면 아르카나 03, 제국의 아사자하드 후작이 이 시기에 왕국에 오지 않았을 테니 호레이즌의 파견이 성사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호레이즌도 죄인으로 끌려온 프레시아를 생각해서 파견에 응했겠지.

하지만 두 초인이 움직였음에도 소설 속에선 붉은 눈은 건재했다.

아마 소설 속에서도 지금처럼 붉은 눈의 뒤를 좇던 추적조의 실수로 행적을 놓친 거겠지.

데미웨이와 호레이즌이라는 두 괴물이 투입되고도 실패했으니 왕국의 다른 초인 세 명 또한 명성을 위해 몸을 사렸을 거다.

그 결과 제이드와 프레시아가 토벌하기까지 3년이란 시간 동안 제대로 된 토벌 시도도 못 하고 붉은 눈이 방치된 걸 테지.

“알아. 그러니까 최대한 안전을 기해야지. 가장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내 안전이야.”

나는 정찰 인형이 보내오는 붉은 눈의 위치 정보를 확인하며 미끼를 뿌렸다.

굶주림에 눈이 돌아간 붉은 눈은 유인하는 걸 모르는지, 아니면 유인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내 의도대로 움직여 줬다.

“앗! 정찰 인형이 격추당했네.”

꽤나 멀리서 관찰하고 있었는데도 정찰 인형이 거슬렸는지 붉은 눈은 잘근잘근 씹던 뼛조각을 뱉어 정찰인형을 격추시켰다.

붉은 눈은 주먹만 한 박쥐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거란 걸 알았는지 격추시킨 정찰 인형에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쓰읍, 여기서 더 멀리서는 관찰할 수 없는데.”

정찰 인형은 초음파로 주변 지형지물의 정보를 확인하는데, 청각이 예민한 붉은 눈을 섣불리 자극할 위험이 있어 시각적 정보로 붉은 눈의 움직임을 수집했다.

“실루아, 더 성능 좋은 건 없지?”

“네, 시각 정보로는 그게 한계예요.”

별수 없이 주변 정보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겠군.

갸아아아아아!!

또다시 붉은 눈의 포효 소리가 산맥에 울려 퍼졌다.

“뭐, 좋아. 저 돌대가리가 알아서 위치 알림 서비스를 해주니 괜찮겠지.”

곧 있으면 협곡 안으로 도달한다. 프레시아만 제시간에 도착해 준다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

* * *

붉은 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찐득한 피 냄새나 사냥감이 증발하듯 사라진 것도 그랬지만, 이렇게 유인하듯 먹이가 놓여 있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게 붉은 눈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먹을 것이 놓여 있으면 다른 몬스터들이 물어가기 마련이었다.

“갸아아아아아!!”

붉은 눈에게도 그 정도로는 생각할 머리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 모를 경쟁자가 놓인 먹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울음소리를 냈다.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하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누가 되었든 자신의 먹이를 탐내지 말라는 경고였다.

“아드득! 아드드득!”

붉은 눈은 두꺼운 외골격에 싸인 거북이 형태의 몬스터를 네 손으로 들고 껍질을 씹어 부순 다음 속을 파먹었다.

순식간에 그것을 먹어치운 붉은 눈은 청각이 이끄는 대로 커다란 협곡 입구에 들어섰다.

* * *

붉은 눈이 협곡에 들어섰다.

붉은 눈을 사냥할 준비를 하느라 여기까지 유인하는 데 뺑뺑이를 돌리긴 했지만 덕분에 준비는 얼추 끝났다.

역시 인형술사가 최고다.

질리안 시리즈 덕분에 혼자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내 인형이 아니라 으스대는 건 꼴불견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도 사령관처럼 그럴듯한 작전명이라도 붙여볼까?”

내 제안에 실루아가 손을 번쩍 들며 작전명을 제시했다.

“유프라테스의 초진동 작전!”

“유프라테스의 초진동은 사용 안 했잖아.”

내 지적에 실루아는 “찰리 왼손 법칙 작전? 알파-감마 마도추출법 작전?”을 중얼거리며 작전명을 고민했다.

아니, 마법 이론에서 벗어나 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길버트를 바라보자 길버트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붉은 눈 대토벌 작전?”

“너무 흔한데.”

차라리 앞에 ‘폭풍을 부르는’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싶어지는 네이밍 센스였다.

길버트와 실루아는 서로 작전명을 붙이며 어느 게 나은지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길버트 오빠,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는 실루아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이름만 붙이잖아.”

“이상한 이름 아니에요! 찰리의 왼손 법칙은 40년 전 슈프림 메이지 찰리가 발견한 마력파 법칙인데…!”

둘 다 붉은 눈이 이곳에 온다고 긴장하더니 조금씩 긴장이 풀렸는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역시 긴장을 푸는 데는 실없는 잡담만 한 게 없다.

붉은 눈이 1차 작전 지역에 가까이 다가오자 협곡 곳곳에 심어둔 눈이 붉은 눈의 모습을 비췄다.

“자자, 이제 그만. 작전명은 ‘토끼 사냥’으로 정했어. 질리안 오리지널은 준비해.”

“바이스 마스터의 명에 따릅니다.”

내 말에 질리안 오리지널은 피도 안 마른 마석 더미를 짊어 메고 자리로 이동했다.

길버트와 실루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각각 검과 마법 지팡이를 들었다.

“대마수 토벌치고는 부족해 보이지만 실루아가 말한 작전명보다는 낫습니다.”

“살짝 맥이 빠지는 이름이지만 길버트 오빠가 지은 것보다는 낫네요.”

두 사람은 동시에 말하고는 서로를 노려봤다.

나는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기 전에 외쳤다.

“지금부터 오퍼레이션 ‘토끼 사냥’을 시작한다! 3번 마법진 가동! 쏟아져라, 얼음의 비여!”

최악의 최악까지 감안한 작전의 시작 신호에 질리안 오리지널은 첫 번째 마법진과 연결된 마력선에 마석을 놓으며 내 마법 연산을 보조했다.

마법이 발동하자 하늘에 얼음이 맺히더니 협곡 중엽 부근으로 거대한 얼음 창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갸아아아아아!!”

고고도에서 쏟아지는 얼음 폭격에 붉은 눈은 울부짖으며 회피했다.

콰과과과광-!

붉은 눈은 본능적으로 협곡 안으로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 했다.

“어림도 없지! 41, 46번 마법진 가동! 폭발하라!”

나는 이어서 일부러 실패한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쾅! 쾅! 쾅! 쾅!

그러자 붉은 눈이 향하는 방향이 무너져 내렸다.

붉은 눈은 거대한 산사태 같은 토사 더미가 쏟아지자 몸을 돌려 협곡 안쪽으로 피했다.

그래도 대마수라고 강제로 산사태를 뚫고 갈 줄 알았는데 살짝 실망이다.

협곡 밖으로 강행 돌파할 것을 생각해서 준비해 둔 130번 이후 마법진은 사용 못 하겠군.

“51번 마법진 가동! 크리에이트 골렘!”

51번 마법진이 움직이자 무너진 토사 더미가 뭉쳐지며 협곡 높이의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저 벽은 하나의 골렘이라 핵이 부서지거나 마석이 떨어지지 않는 한 무너지지 않았다.

물론 유지하려면 5초당 마석 하나를 잡아먹는 극악의 가성비였지만 오늘 내가 몰살시킨 군락만 5백 군데가 넘는다.

마석은 넘쳐난다는 의미다.

벽이 생기자 붉은 눈은 당황했다.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몰아친다.

“1, 2, 3, 4, 5번 마법진 가동! 쏟아져라, 얼음의 비여!”

이번에는 협곡 전역에 살벌한 고고도 얼음 폭격이 쏟아져 내렸다.

붉은 눈은 얼음 폭격을 피하기 위해 달렸지만 거대한 덩치로 피할 곳은 남아 있지 않았다.

“갸아아아아아!!”

“으윽! 쿨럭!”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신이 울리는 포효성이 협곡에 부딪히며 울리는 괴성에 전신을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이 썩은 몸뚱이는 너무 연약했다.

“도련님!”

“유안 오빠!”

내가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하자 두 사람은 걱정하며 날 부축하려 했다.

“제자리 지켜. 실루아, 신호 주면 바로 네임드 인형을 투입할 준비 해.”

붉은 눈의 하얀 털 사이로 조금씩 붉은 색이 번졌다.

7천 미터에서 떨구는 30센티미터 얼음 창 폭우를 맞고도 생채기 수준이라니, 미친 괴물이 따로 없다.

“11, 12, 13, 14, 15번 마법진 가동, 몰아쳐라, 열풍이여!”

“바이스 마스터, 얼음 창으로 인해 13, 15번 마법진에 이상이 생겨 가동하지 않습니다.”

질리안 오리지널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 범위다.

붉은 눈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의 공격인 만큼 바닥에 설치해 둔 마법진의 파손도 계산해 뒀기에 협곡 벽면에도 마법진을 설치해 놨다.

협곡 아래와 벽면에 깔아둔 11, 12, 14번 마법진에서 고온의 열풍이 뿜어지며 바닥에 빼곡히 박힌 얼음창을 빠르게 녹였다.

“람아.”

-삑!

내 어깨 위에 앉아있던 물의 정령, 람이 마석 자루로 뛰어오르더니 마석을 소모하여 제 힘을 발휘했다.

“으윽!”

람이는 마석을 쓰기 위한 마중물로 내 마력을 끌어다 썼다.

이것 참, 만만치 않다.

순간적인 급성 마력 고갈에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금세 나아졌다.

협곡 아래에서는 물로 만들어진 거인이 붉은 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 거인과 붉은 눈의 주먹이 서로를 사정없이 때렸다.

물 거인의 공격에 붉은 눈은 상처가 벌어졌고, 붉은 눈의 주먹에 물 거인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다시 모였다.

물 거인이 부서질 때마다 마석 한 움큼이 증발하듯 소모되었다. 마석이 소모되는 것에 비례하여 내 마력도 깎여나갔다.

“생각보다 오래는 못 싸우겠군.”

나는 물 거인을 조종해 붉은 눈의 전신을 휘감으며 머리를 감싸 질식을 시도했다.

“…아아아아!”

붉은 눈은 마력파와 함께 소리를 내지르는 것으로 숨통을 막던 물 덩이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몸을 휘감은 물은 미처 날리지 못했다.

“6, 7, 8, 9, 10번 마법진 가동! 스며들어라! 겨울의 발자욱이여!”

협곡을 메우던 열기가 단숨에 식으며 협곡 안의 모든 것을 얼리기 시작했다.

물이 흥건한 바닥부터 붉은 눈을 휘감아 조이고 있는 물로 이루어진 밧줄이 견고한 구속구가 되었다.

“갸아아아아아!!”

붉은 눈은 전력을 다해 구속을 풀려 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당연했다. 여기는 겨울나무의 현자가 지키는 혹한의 땅이다.

산맥 전역에 깔린 냉기를 끌어 모아 집중시켰으니 제아무리 대마수라도 쉽지 않을 거다.

“누니!”

-뾰로로로!

내 호명에 람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 누니가 대신 앉았다.

“16, 17, 18, 19, 20번 마법진 가동. 백 갈래의 벼락이여, 하나의 길을 타고 내리쳐라!”

우르르르-! 콰아아앙-!

누니가 마석 한 포대를 소모하며 마법의 촉매가 되어줬다.

벼락 군주의 힘이 담긴 뇌기가 협곡 안으로 내리꽂혔다.

나는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마력 탓에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와, 이 정도면 일격에 대형 몬스터 천 마리도 잡겠어요. 붉은 눈도 죽은 거 아니에요?”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그랬겠지. 101에서 129번 마법진 가동.”

내 주변에 스물아홉 개의 각종 회복 마법진이 떠오르며 내 몸과 마력을 회복시켰다.

“질리안 오리지널, 생체 반응 확인해 봐.”

협곡에 달아둔 눈은 몰아치는 번개의 섬광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이스 마스터, 협곡 아래 생체 반응이 잡힙니다.”

역시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번개가 사그라지자 검게 타버린 붉은 눈은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협곡 위로 뛰어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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